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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9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8) (279/301)

〈 279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8)

* * *

결혼식까지 제법 시간이 남았다.

선생님은 그동안 서로소를 읽는 독자분들을 위해 하나하나 청첩장을 쓰기 시작했다.

독자님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특별한 경험을 주고 싶다나 뭐라나….

여전히 선생님은 선생님이었다.

매일같이 노트북 앞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던 선생님을 바라보길 3주가량이 지났다.

이제 내일이면 결혼식이다.

나와 선생님은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인지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안 오네.”

“그러게요.”

“이젠 좀 익숙해졌는데도 이런단 말이지.”

“무려 ‘세 번째’니까 익숙해지긴 하겠네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이 몸을 움츠린 게 느껴졌다.

“뭐라 할 말이 없네.”

“장난이에요.”

“말에 가시가 느껴지는데?”

“절반만 장난이에요.”

“80년이나 지났는데도 신경 쓰여?”

“그게 여자라는 생물이거든요?”

“그래?”

“그래요.”

나와 선생님은 서로 마주 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때보다 80년은 더 늙었으니 이런 느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런 느낌이 어떤 느낌인데요?”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느낌?”

나도 내 감정을 잘 모르겠는데….

뭔가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의 전날 밤은 복잡한 기분이 된다.

무언가가 끝나고 무언가가 다시 시작될 것 같은 그런 예감.

“다들 찾아와주겠지?”

“그렇게 열심히 청첩장도 썼는데 와 주겠죠.”

평소에 서로소를 2시간 정도 쓰는 것 외엔 노트북을 그리 들여다보지 않는 선생님이다.

하지만 근 2주간은 매일 4시간씩 키보드를 두드렸다.

친구분들에게 보냈던 것처럼 최대한 특별한 청첩장을 준비하겠다며 인상을 찌푸렸던 선생님이다.

그러니 다들 알아줄 거다.

“하암. 이제 자야지.”

“그래요.”

나와 선생님은 손을 잡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다음날.

우린 간단한 아침을 먹곤 집을 나섰다.

스튜디오에서 준비한 차가 도착했고 우린 그 차에 올라탔다.

이제부턴 가볍게 메이크업하고 식장으로 가면 끝나는 일이다.

앞으로 몇 시간 후면 결혼식이 시작된다.

“왜 그렇게 떨어?”

“선생님은 표정이 왜 그래요?”

나와 선생님은 처음도 아니면서 그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역시 결혼식은 이 묘한 기분이 참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우리를 태운 차는 눈 깜짝할 사이에 메이크업 샵에 도착했다.

우린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얼굴에 분장을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30분의 시간이 흘렀다.

“이야, 역시 VR 세계가 빠르고 좋기는 하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신부 화장은 2시간은 걸리는 시간인데 30분 만에 끝나버려서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이번엔 머리에 웨이브를 좀 줬네?”

“어때요?”

“예쁘지.”

“그럼 됐어요.”

나와 선생님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몸을 딱딱하게 만들던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그럼 가실까요?”

화장하니 그럭저럭 턱시도가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어색한 18살의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다.

“네, 가요.”

난 그런 선생님의 손에 손을 얹었다.

우린 80년 전의 그때 그날처럼 서로 손을 잡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아직 예약한 시간까지 한참이나 시간이 남은 상황이다.

우린 아무도 없는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결혼식을 진행할 때만 해도 같은 날에 1시간 전후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 외에는 예약자가 없는지 상당히 한산했다.

우리가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몇몇 사진이 액자에 담겨 배치되기 시작했다.

뭔가 이 예식장을 전세 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건 뭐, 전세네.”

선생님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입을 살짝 벌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2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찍 오셨네요.”

“우리 왔어~!”

그건 고등학생 정도의 외형을 한 진수와 희진이였다.

축의금 받는 사람은 없으니 천천히 와도 된다고 했는데 일찍 찾아온 모양이다.

“와~ 엄마 진짜 예쁘네. 역시 우리 엄마지.”

희진이는 그리 말하며 내 얼굴을 이런저런 방향에서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근데 말이야.”

“응?”

“아빠랑 오빠. 이렇게 서 있으니까 진짜 부자는 부자구나 싶네.”

“그러게.”

선생님은 진수가 나를 많이 닮았다고 했지만 둘이 나란히 서니 선생님도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썹과 코까지 T라인을 그리는 부분이 상당히 닮아서 누가 봐도 부자로 보이는 느낌이었다.

“너도 네 엄마랑 서 있으니까 모녀 같네.”

“모녀 맞잖아?”

“성격만 보면 어디 굴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 같으니까 그렇지.”

“아빤 진짜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희진이가 화를 내며 선생님을 툭툭 때리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그리운 기분이 되었다.

꼭 오빠와 다투던 예전의 내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2명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일찍 왔네.”

“아, 외삼촌~”

오빠와 언니였다.

“수진아, 진짜 너무 예쁘다~”

“고마워요.”

아직 시간이 남은 우린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너희 남편이나 아내는 어딨니?”

언니가 그리 말하자 진수랑 희진이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무래도 얼굴을 안 본 지 좀 오래돼서 어색할 거 같다고 늦게 오기로 했어요.”

“그래?”

아마… 우리를 배려해준 거겠지.

하객으로 참석하겠다는 뜻이리라.

앞으로 결혼식까지 대략 1시간 30분 정도 남았는데….

그렇게 멍하게 앉아있으려니 또다시 2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신부님은 그때보다 더 예쁜 거 같네.”

“준수 이 자식은 전생에 나라가 아니라 세계를 구했네, 구했어.”

그리 말하며 걸어온 것은 선생님의 친구분들이었다.

“난 전생에 소설가였는데?”

“예이 예이 K­헤밍웨이 선생님.”

“…하. 내가 왜 그런 필명으로 글을 썼을까?”

“어련하시겠습니까?”

선생님과 친구분들은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모습이 썩 즐거워 보였다.

“아빠도 친구분도 한결같네.”

“그러게.”

나와 희진이는 선생님이 떠드는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어느새 긴장은 사라지고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 우리가 처음으로 올린 결혼식도 이런 느낌이었지.

막 가슴이 떨리고 땀이 흐르는 듯하다가도 저런 모습을 보면 어딘가 웃음이 나왔었다.

누군가가 우리의 새 출발을 응원해준다.

그게 정말로, 정말로 행복하다.

나도 선생님처럼 다른 친구가 있었다면 느낌이 좀 달랐으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난 그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딘가… 익숙했다.

“오랜만이야, 수진아.”

“서, 설마… 서윤이니?”

“그래, 이 못된 기지배야. 잘 살았어?”

그건 서윤이였다.

내가 대학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로판을 쓰던 친구.

내가 희진이를 낳고 가정에 힘을 쏟다 보니 어느새 서서히 거리가 멀어져 버린 친구.

그 서윤이가 날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에 너와 네 남편분 이야기가 TV에 나와서…. 한 번은 찾아와야 할 것 같아서 와봤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무언가가 흘러넘치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난 서윤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고마워…. 고마워….”

“너… 우니?”

“….”

“신부가 결혼식도 전에 울면 어떡해!”

서윤이는 당황했는지 내 등을 두드리며 울지 말라며 날 위로했다.

하지만 그 약간 어색한 손놀림이 내 등에 닿을 때마다 자꾸 무언가가 울컥거리며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난 바보였다.

아직 철이 없던 학생일 때 겪었던 사건으로 소중한 인연을 잘라냈다.

결혼을 했다, 아이를 돌봐야 한다, 가정에 충실한 아내가 되어야 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거리를 뒀다.

선생님은 나와 결혼해도 친구분들과 관계를 맺고 가끔 만나서 이야기도 나눴는데 나는 그렇게 살았다.

언젠가 떠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사건이 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새로운 인연을 밀어냈다.

선생님은 달랐다.

나와 결혼이라는 형태로 묶여 언제나 내 곁에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 그저 밀어냈는데… 그랬는데 이렇게 찾아와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용기를 내봤어야 하는데.

그런 후회와 미안함, 고마움이 터져 나와 난 결국 엉엉 울고 말았다.

서윤이는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는지 당황해하다가 이내 작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설마 이 나이에 이렇게 펑펑 울게 될 줄이야….

***

눈물로 번진 화장을 닦아내고 다시 신부대기실에서 화장을 시작했다.

서윤이는 그 근처의 의자에 앉아 내 화장이 고쳐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렇게 울 줄 몰랐는데….”

“나도… 그렇게 울 줄 몰랐어.”

“그렇게 울 거면 평소에 연락 좀 하고 살지 그랬니? 이 야속한 기지배야.”

“미안.”

“장난이야.”

거울 너머로 보이는 서윤이의 모습은 대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듣던 그때의 그 모습이었다.

“너도 수명 늘려주는 수술… 받았구나?”

“돈은 있었으니까.”

서윤이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대학을 나와 적당히 벌다 보니 취직보단 전업으로 작가를 시작한 일.

작가로 살다 보니 집안에만 있게 되는 것 같아서 운동도 할 겸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한 일.

테니스를 배우다 알게 된 사람과 결혼하려다가 그대로 파혼이 되어버렸다는 일.

“그, 미안….”

“아냐. 내가 꺼낸 이야기니까.”

아무래도 서윤이가 버는 수익이 더 크다 보니 그걸로 자격지심을 느꼈던 남자 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는 것 같다.

서윤이는 그렇게 맞선을 몇 번 보다가 결혼했다고 한다.

“역시 소설은 소설이었던 것 같아.”

“그래?”

“싸우기도 엄청 싸우고 아이들은 말을 안 듣고… 그렇지 않아?”

“으음…. 잘 모르겠어.”

“하긴 너흰 잘 사는 것 같더라.”

서윤이는 선생님이 쓴 소설을 읽어봤는지 부럽다며 한숨을 쉬었다.

“네가 결혼한 사람이 19살이나 연상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땐… 그, 미안한데 약간 미쳤다고 생각했거든.”

선생님이 들으면 울겠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걸 보니 인연이었던 게 아닐까 싶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선생님과 결혼한 뒤론 싸워본 적이 없다.

선생님은 사랑할 시간도 아까우니 서로 헐뜯으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 했다.

사소한 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 말에서 선생님의 죽음을 떠올렸고 그럴수록 선생님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도 떠나기 전에 내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우린 그렇게 서로를 아끼며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지금의 우리가 있다.

“아무튼 축하해. 여기 사람들은 행복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부족한 거 같다고 글이 올라오는 데 너를 보니까 아닌 것 같아.”

“그래?”

“응. 아주 행복해 보이거든.”

아마 이 행복한 표정은 네가 찾아와줬기 때문일 거야.

정말 고마워, 서윤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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