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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0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9) (280/301)

〈 280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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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하기 전에 메이크업 샵에 들러 화장을 하는 건 하나의 관례 같은 행위였던 것 같다.

따라와 주신 스태프 AI 분들이 얼굴을 닦아내고 다시 화장을 해줬는데 메이크업 샵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시간도 비슷하게 끝난 것으로 보아 아마 맞지 않을까 싶다.

이제 결혼식까지 대략 50분 정도가 남은 상태였다.

난 서윤이와 신부대기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밖이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고자 했다.

“와…. 좀 이른 시간인데 많이들 찾아오네?”

“그러게.”

나도 설마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아올 줄 몰랐다.

오늘 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건 나와 선생님뿐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전부 나와 선생님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왠지 스몰 웨딩을 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와 있는 상태라 좀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20분 정도가 더 흐르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겠지?

아직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나와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찾아온다.

그게 참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럴 거면 메이크업 샵은 왜 갔어?”

신부대기실에 들어온 희진이는 내 얼굴의 화장을 보며 밉살스러운 입방정을 떨었다.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했더니 희진이는 쫄래쫄래 서윤이의 근처에 붙어버려서 날 피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희진이는 내가 펑펑 우는 바람에 뭔가 어색해졌던 첫 만남을 수정하듯이 서윤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랑 다르게 누구든 금방 친해지는 모습이 꼭 오빠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엄마가 대학생 때 친해진 좋은 친구가 있다고 했었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네요.”

“좋은 친구?”

“네. 가끔 아빠가 아싸라고 놀리면 친구 있다고 소리쳤었거든요.”

“이 기지배는 그런 소중한 친구한테 연락 한 번을 안 하고….”

“미안.”

근데 너도 안 했잖아….

나는 그런 감정이 담긴 복잡한 시선으로 서윤이를 바라봤다.

서윤이는 그런 내 시선을 고개를 살짝 돌려 피해버렸다.

마치 본인 잘못이 아니라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네가 먼저 말을 걸어오고 전화했으면 되잖니?

희진이는 우리가 미묘한 공기를 내뿜고 있음을 알았는지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와 내 등을 살짝 눌렀다.

“엄마, 저기 봐봐.”

“왜?”

“아, 글쎄 보라니까?”

난 희진이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얼마 전에 봤던 사람이니까.

“글램핑장에서 봤던 사람들… 맞지?”

“응. 맞는 거 같은데?”

아, 그렇구나.

누구든 찾아오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했으니 찾아온 거구나.

글램핑장에서 만났던 남편분을 마주한 선생님은 정말 눈부실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가 찾아와 준 것처럼.

“신기하네.”

“뭐가?”

“이곳도… 하나의 세계가 맞긴 한가 봐.”

어딘가 외롭다고 느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니 그것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로 생각됐다.

***

결혼식이 시작됐다.

사회자는 저번과 같이 선생님의 친구분인 준범 씨가 맡게 됐다.

주례는 저번과 달리 준호 씨가 맡게 되었다.

ㅡ 지금부터 신랑 김준수와 신부 이수진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주례를 맡아 줄 사람은 우리의 불알친구 준호입니다!

준범 씨가 그리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자 예식장은 작은 웃음소리로 흘러넘쳤다.

스크린에선 나와 선생님이 그간 찍었던 사진이 영상이 되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준범 씨는 그 영상을 살짝 바라보곤 목을 가다듬은 후 천천히 사회를 진행했다.

ㅡ 자, 20세기, 21세기, 22세기를 살아온 남자가 있습니다.

ㅡ 그 남자는 놀랍게도 38살에 19살 여고생을 만나 사랑에 빠졌죠. 이거 완전 범죄자 새끼 아냐?

준범 씨가 그리 말하자 찾아온 내빈들이 웃기 시작했다.

홀이 살짝 떨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들 껄껄거리며 웃는 느낌이었다.

“저 새끼 저거….”

선생님은 입으론 불평했지만 이리 될 줄 알고 있었는지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도발하는 청첩장을 보냈으니 이런 사회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

ㅡ 여기 모이신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저놈을 저렇게 만든 게 저거든요.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걸까?

ㅡ 제가 학창 시절 때 저놈이 쓴 소설이 재밌다고 해버려서 저놈이 소설가가 됐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랬었지.

ㅡ 녀석은 첫 번째 결혼을 말아먹고 19살 연하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죠. 전염병으로 격리된 녀석에게 담배도 사다 줬던 기억이 납니다.

도대체 준범 씨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ㅡ 잘 사려나 싶었는데 둘은 그렇게 난간을 헤쳐 나가 결혼식도 올리고 애도 둘이나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의외로 평범한 사회구나.

ㅡ 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순간까지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며 죽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고자 맹세했습니다.

ㅡ 그런데 그 둘은 죽어서도 서로를 사랑하기로 맹세했습니다.

준범 씨가 그 말을 내뱉자 조금 웅성거리던 예식장이 매우 조용해졌다.

ㅡ 그런 두 사람의 새로운 한 걸음을 박수와 함께 맞아주세요!

그 소리와 함께 커다란 예식장이 좁게 느껴질 정도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자.”

“네.”

나와 선생님은 손을 맞잡고 천천히 예식장을 걸어 나갔다.

나는 그때보다 조금 성숙해진 외모로, 선생님은 그때보다 조금 아니, 많이 어려진 외모로.

그때와 똑같은 풍경이다.

아버지가 없던 나를 배려해준 선생님은 나와 함께 손을 맞잡고 이 길을 걸었다.

요즘은 서로 동반자가 되어 함께 나아가겠다는 뜻을 담아 이렇게 하는 커플도 많다면서.

그 듬직한 손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그때보다 한참이나 어린 외형이지만 선생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듬직했다.

난 선생님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선생님도 그걸 느꼈는지 손에 작게 힘을 주었다.

ㅡ 여러분. 80년간 서로를 사랑한 부부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준범 씨가 그리 말하자 박수 소리가 한층 커져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버진로드가 끝났다.

우리의 앞엔 웃음을 참고 있는 준호 씨가 있었다.

ㅡ 자, 신랑 신부는 서로 맞절하세요.

그 소리에 맞춰 우린 서로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ㅡ 다음은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부부가 되겠다는 혼인 서약이 있겠습니다.

나와 선생님은 각자 준비해온 혼인서약서를 꺼내 들었다.

먼저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나 신랑 김준수는 신부 이수진을 다시 한번 아내로 맞이합니다.”

선생님은 꼭 나에게 들려주겠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 당신과 만난 순간부터 저는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못난 아들이라 마음고생만 시켰던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아들로서 효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거리를 두고 살던 친구들과 다시 한번 예전처럼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들이겠죠.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제가 돌려주고 싶습니다.

이 세상이 끝이 오는 그 순간까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가 끝나도 내일이 기대되게 해주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제 친구들과 지인과 그리고 이곳을 찾아와주신 고마운 독자님들께 맹세합니다.

왜 혼인서약서를 안 보여주나 했는데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구나….

난 선생님을 빤히 바라보며 혼인서약서를 접었다.

그날, 당신과 만난 순간부터 저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어딘가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져 가는 매일이었습니다.

당신과 결혼하기 전까진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분명…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을 느끼진 못했겠죠.

당신은 항상 미안해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청춘을 만끽하지 못했던 일.

주변의 시선에 작게나마 상처받는 일 등등.

하지만 그건 사소한 일입니다.

그것보다 당신과 함께하며 행복했던 순간이 더 크니까요.

그러니 저에게 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당신과 만나 가족이 되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이 있고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당신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고 내일이 기대됩니다.

그러니 당신을 다시 사랑하고 싶습니다.

항상 당신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떠오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과 그리고 이곳에 찾아와주신 분들에게 맹세합니다.

내가 즉흥적으로 맹세를 하자 눈을 끔뻑이며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맹세의 키스를 하라는 말도 없었는데 뜨겁고 달콤하게 나의 입술을 빼앗았다.

ㅡ 어어… 신랑이 마음이 급했는지 멋대로 맹세의 키스를 하고 말았군요.

그러자 예식장에 찾아온 모든 하객분이 손뼉을 치며 웃기 시작했다.

“두 번 하는 건 눈꼴 시리니까 맹세의 키스를 했다고 칩시다!”

준호 씨의 말에 다시 한번 예식장은 웃음바다가 됐고 우린 그렇게 좀 긴 시간 동안 키스를 했다.

“음음. 주례사를 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너무 달아올랐군요. 그래도 하긴 해야겠습니다.”

우리의 결혼식은 이미 결혼식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저는 신랑 김준수의 100년 넘는 친구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서 있는 게 좀 특별한 기분이군요.

결혼에 실패해서 아내가 도망치고 혼자 딸을 키웠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행복하게 새 출발을 한다는 부부를 보니 몹시 화가 나는군요.

처음에 19살 연하인 여고생을 만난다고 했을 때 느꼈던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축복은 해줘야겠죠.

결혼은 쉽지 않습니다.

아마… 이곳에 계신 분들도 다들 공감하시겠죠.

사랑이란 건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죠.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인생이란 예외가 있습니다.

80년이 지나도 서로를 사랑해서 서로가 없으면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연인도 있으니까요.

영원한 사랑 따윈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부를 보면 그 생각도 바뀌는군요.

앞으로도 영원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제법 긴 주례사가 이어졌고 사회자인 준범 씨가 얼른 끝내라고 구박을 했다.

그러자 준호 씨가 “거, 참 야속한 거 아니요?”라고 받아쳤고 또다시 웃음바다가 됐다.

준범 씨는 그 후로 선생님의 사랑을 확인해보겠다며 온갖 지시를 내렸다.

선생님은 오늘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며 그 지시를 전부 이행했다.

결혼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웃음이 나오는 광경이 계속 이어졌다.

ㅡ 자, 이걸로 신랑 김준수와 신부 이수진 양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결혼식이 끝났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고자 하시는 분들은 모두 올라오세요!

그 말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우리의 근처에 섰다.

“선생님.”

“응?”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해.”

우린 그렇게 에덴에서도 부부가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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