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코드 네임 192B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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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멜티아와 헤스티니아가 마왕성으로 복귀하자마자 시작된 간부 회의.
각자의 위치에서 부지런히 업무를 보고 있었던 간부들은 모두 스토니 포트리스의 연회장으로 소집되었다.
공석(??)으로써의 엄숙한 분위기와 위엄을 위해 어느 정도 예를 갖출 필요가 있는 상황이었고, 그에 걸맞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일품인 스토니 포트리스의 연회장이 회의장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식량 생산을 위한 농경지 관리를 위해 언더 바르커스로 시찰을 나가 있었던 크로포드도 시간에 맞춰 신속히 연회장에 도착했고, 오크군의 전술 훈련을 지휘하기 위해 태고의 숲에 나가 있었던 베리베리도 가까스로 제시간에 도착했다.
이토록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던 이들도 마왕의 부름에 어김없이 응했건만, 그럼에도 연회장에는 빈자리가 둘이나 있는 상황이었다.
마왕군 간부의 자리를 거절하고 권속의 계약조차 거절한 리겐하르트.
애초에 그는 마왕의 벗으로서 동등한 입장이었기에 마왕이 명령을 내릴 수도 없는 터라 그의 불참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려 마왕의 유일한 전속 비서관인 러스테리아가 불참한 것이었다.
“면목 없습니다, 주군. 당연히 온천에 계실 거라 생각해 함께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가 봤으나, 비서관님은 외출하셨다는 전언만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으음. 그럼 러스는 호출 자체를 못 받았다는 이야기네? 어쩔 수 없지, 괜찮아.”
언더 바르커스의 농경지에 있었던 크로포드는 복귀하는 김에 언더 바르커스의 온천에서 비밀리에 작업을 하고 있는 러스테리아를 데리고 함께 갈 셈이었다.
그러나 러스테리아의 외출로 인해 길이 엇갈려 서로 만나지 못했고, 지각을 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자신 혼자만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가 자신의 명을 어기고 회의에 불참했다면 따끔하게 혼을 내려 했었으나, 애초에 소식을 듣지 못한 상황으로 보이니 러스테리아를 탓할 수 없어 조용히 넘어가려 했다.
“회의를 시작하지. 헤스티니아.”
“네에~ 마왕님~ 지금부터 보고 시작하겠습니다아~”
예스러운 검은 정장에 길고 가느다란 렌즈의 안경을 착용한 헤스티니아가 특유의 나른하고 늘어지는 말투로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무척이나 이지적이고 사무적으로 보여야 할 의상이었으나, 착용자의 특징으로 인해 오히려 농염하고 야릇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장의 안에 입은 드레스 셔츠는 커다란 젖가슴의 크기 탓에 잠기지 않아 단추를 네 개나 풀어헤친 모습이었고, 한껏 벌어진 칼라의 사이로 여성의 감춰야 할 은밀한 부분이 상당량 드러나고 있었다.
뽀얗고 도톰한 윗가슴이 훤히 노출되는 것을 넘어 자주빛의 야릇한 브래지어가 일부 드러나 있기까지 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착용한 정장 스커트는 상당히 짧은 기장을 지니고 있어 탄력적인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조금만 다리를 움직이면 그 너머의 속옷마저 노출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공식적인 자리를 위한 예복으로써라기보다는 섹스어필을 위해 제작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던 정장 스커트는 무척이나 타이트한 형태를 띠고 있어, 둥글고 두툼한 엉덩이의 외곽선이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저기 헤스티니아…”
“네에? 무슨일이시죠, 마왕님?”
“… 아니야. 계속해.”
눈 둘 곳을 잃게 만드는 헤스티니아의 의상에 네로멜티아는 잠시 지적을 할까 생각했으나, 이미 모두의 앞에서 선보여진 뒤였기에 굳이 지적해서 이목을 더 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침묵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전, 마왕님과 저는 휴미안군 북부 전초기지에 다녀왔습니다.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얼마 전에 사로잡은 휴미안 포로들을 고문해 얻어내었던 정보의 그 장소, 그들의 본거지였습니다.”
헤스티니아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허공에 마법으로 생성된 풍경이 하나가 떠올랐다.
철저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버린 성.
막대한 돌무더기의 산이 허물어지기 전의 성벽이 얼마나 웅장하고 거대했을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성의 내부에 흐르는 진홍빛의 강이 얼마나 많은 휴미안들이 살해당했는지를 예상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이로써 아스타리스 대륙 북부의 휴미안은 완벽히 박멸되었습니다. 휴미안의 다른 거점이 존재한다면 모르겠으나, 현재로써 그럴 확률은 희박하지요. 이제 마왕성의 성벽 너머로, 카보니 숲과 태고의 숲 인근의 평원까지. 아스타리스 대륙의 북부 지역 전체에 헤모니겐트의 깃발을 꽂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오오!! 마왕 폐하 만세!!!”
“헤모니겐트 만세!!”
“루이나의 여신을 찬양합니다!!!”
헤스티니아가 전한 것은 명백한 희소식이었다.
평화로운 헤모니겐트의 재건을 이룰 희망의 도약이었다.
베리베리와 오운 그리고 아티스는 격한 환희에 휩싸여 함성을 질렀고, 굳이 소리를 높이지 않은 이들 또한 벅차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해 갈채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카디스텔라님이 운영하는 마도 공학 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희망하는 바입니다.”
“후후후후.”
헤스티니아는 회의장에 조용히 앉아 있었던 카디스텔라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카디스텔라는 팔짱을 끼고서 눈을 감은 채,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의 웃음에는 드높은 자긍심이 한껏 배어있었기에, 회의장에 참석한 간부들은 모두 설레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분명 뭔가 대단한 위업을 이룬 상황이기에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슈르르르륵!
순간 카디스텔라가 검은 안개의 형상이 되어 사라졌고, 회의장의 앞에서 회의를 진행하던 헤스티니아의 옆에 나타났다.
흩어져 사라진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모여들어 카디스텔라로 변한 것이었다.
뱀파이어가 지닌 초현실적인 능력 중의 하나였고, 밤의 귀족이 지닌 환상과도 같은 능력을 처음 접한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거대한 입이 쩍 벌어진 오운이나 눈을 크게 뜨고서 뒤로 넘어갈 듯 고개가 젖혀진 아티스, 자신의 입을 가린 채 눈을 떼지 못하는 넬라넬라가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카디스텔라는 자신의 능력에 놀란 이들이 보이는 극적인 반응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고,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능력을 과시한 보람이 있다 생각해서 흥이 잔뜩 오른 모습을 보였다.
“헤스티니아가 설계한 유전 구성을 나의 마도 공학 장치로 창조한 합성 생물. 실험체 ‘키메라 192B’를 소개하겠다!”
퍼엉!
순간 카디스텔라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탁자의 위로 검은 안개가 불현듯 터져 나왔고, 검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본래 없었던 물체 하나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끈적한 피부를 지녔고 물컹거렸으며 뼈가 없는 듯 마구 꿈틀대고 있었다.
“으…….”
네로멜티아는 깊은 혐오감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미간이 좁혀지고 고개가 뒤로 물러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갈색의 살점으로 이루어진 둥그런 생물체.
표면에는 푸른빛의 굵은 혈관이 거미줄이나 그물처럼 잔뜩 퍼져 도드라져 있었고, 하단에는 배발이 형성되어 테이블에 흡착된 채 그것이 물결치듯 움직이며 조금씩 전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헐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전신이 꿈틀대고 있었는데, 수축할 때면 잔뜩 돋아 얽혀있는 혈관들이 더욱 도드라져 혐오감을 부풀리고 있었다.
“이, 이건 어디다 쓰실 것… 생물인지요…?”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신의 흐트러진 탑 햇(Top Hat)을 고쳐 쓰던 베리베리는 순수한 의문을 카디스텔라에게 전했다.
물건을 지칭하는 명사를 쓰다가 생물이라 고쳐 말을 하는 조심스러움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 해괴한 존재의 쓰임새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헤스티니아와 카디스텔라의 노력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키메라 192B. 씨 스쿼트나 머드 슬러그 등의 생물 수십 종을 합성한 다중 복합 키메라입니다. 아직 이름을 짓지 않아서 실험체의 임시 코드로 부르고 있지만, 이 녀석은 무려 완성품이에요. 어디다 쓰냐 하면… 마왕님께서 계획하신 정화 작업에 이용할 거랍니다? 후후후!”
회의장은 순식간에 적막이 감돌았다.
너무도 놀라운 소식에 모두가 할 말을 잊은 것이었고, 다음의 내용을 듣기 위해 집중하며 경청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소개를 마친 헤스티니아는 품안에서 작은 시험관 하나를 꺼냈다.
시커멓고 끈적한 점성을 지닌 무언가가 시험관의 내부에 들어 있었고, 헤스티니아가 시험관의 코르크 뚜껑을 열자 회의장 내에 고약한 악취가 은근히 감돌기 시작했다.
“이건 바르커스 화산 앞의 레드 오션에서 채취한 오염 물질의 원액이에요.”
투두두둑
헤스티니아는 그 오염 물질을 여지없이 탁자 위에 부어 버렸다.
분명 액체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었으나 점성이 너무나 강해 마치 고형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걸쭉한 오염 물질.
현재의 회의장은 본래 연회장으로 쓰이는 것이었기에 탁자에는 새하얀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는데, 오염 물질이 쏟아지자 테이블보에 검은 얼룩이 기분 나쁘게 번지기 시작했다.
이곳 연회장의 주인이었던 스토니 포트리스의 영주 베리베리는 귀중한 테이블보가 더럽고 고약한 얼룩으로 더럽혀지는 모습에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아무리 중요한 공무의 보고를 위해서라지만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소중한 물건을 더럽히다니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소 찌푸려진 베리베리의 눈살은 머지 않아 팽팽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쮸륵꾹! 쮸륵꾹! 쮸륵꾹! 쮸륵꾹!
탁자 위에서 꿈틀대기에 바빴던 키메라가 오염 물질을 향해 기어가더니 그것을 빨아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점액 투성이의 살덩이가 흡착하며 내는 소리와 무언가를 꿀렁이며 넘기는 소리가 무척 괴상하였으나, 키메라가 지나간 자리에는 끈적이는 투명한 점액질이 남았을 뿐 시커먼 얼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테라리스에 존재하는 오염 물질은 모두 192종입니다. 생명체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특정 사물의 풍화를 유발하는 물질을 모두 오염 물질이라 규정하고 192종이죠. 이 녀석은 그 오염 물질들이 주식이랍니다. 그리고 먹이가 있는 이상 이 녀석은 끊임없이 번식해서 개체 수를 늘려갈 거예요.”
“그렇기에 코드 네임이 ‘키메라 192B’인 거다. 오염 물질이 많으면 많을수록 끝없이 번식해 늘어나는 오염 물질 포식자. 매우 이상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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