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75)

머릿속에 스쳐 가는 다양한 트롤러들을 정리했다.

활 쏘는 게 자신 있다며 속성별 애로우만 잔뜩 배운 다음 부무장으로 석궁을 고른 놈은 늘 마력 고갈로 허덕이다 결국 파티에서 방출되었지. 마검사가 되겠다며 검 들고 공격 마법을 배우지 않은 놈은 아예 파티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하나의 마법으로 최강이 되겠다며 마법을 딱 하나만 배운 놈도 있었는데 역 속성 몬스터가 나오는 계층에서 모험가로서의 성장이 막혔고, 아군을 지키겠다며 쉴드와 프로텍션류 스킬만 배워온 놈은 사제에게 밀려 쓸모가 없었지.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비스듬히 앉아 한세아와 눈을 마주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끔 마법사에 대해 오해를 하는 초보 모험가들이 있거든. 궁수가 화살을 쏘듯 마법사가 마법을 계속해서 쏴 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녀석들.”

내 말에 슬그머니 아래를 향하는 그녀의 눈동자. 이런 오해는 시청자도 한세아도 똑같이 했기 때문인지 조금 뜨끔한 모양새다. 분명 방송국 게시판에서 딜 스킬 5개 들고 리볼버 쏘듯 탕탕탕 쏘자는 의견이 있었거든.

 “하지만 마법사는 궁수와 전혀 달라.”

내 말에 대꾸도 없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그녀.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조용히 내 말에 귀 기울이자 주변 테이블의 초보 모험가들도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낮아진다. 한세아는 시작부터 나를 만나고 장비도 다 갖춘 채 마법사로 시작해서 모르겠지만, 초보 모험가 파티는 생각보다 열악하니까.

마법사는커녕 전사 네 다섯 명이 모여 몸으로 때우며 의뢰를 하는 게 그들의 현실. 그러니 마법사에 대한 지식은 이렇게 선배 모험가들로부터 귀동냥해 들어야 한다.

 “호신을 위해 쉴드 마법 정도야 유지할 수 있다지만 그것도 실력 좋은 마법사 이야기. 아무리 마법사가 대단해도 초보 때는 공격 마법 두세 개 정도에 허덕일 수밖에 없어.”

고화력 유리 대포 캐릭터의 특징이라 해야겠지. 10년 전 게임을 플레이 한 기억을 되살려보면 대부분의 마법사 캐릭터들은 그랬다. 스킬 쿨타임이 2배 정도 길고, 스킬 코스트도 3배 정도 많이 들어가는 대신 데미지와 범위가 5배쯤 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대명사.

이 세상 마법사들에겐 매직 미사일 같은 걸 푝푝푝 날리며 무호흡 딜링 머신이 되는 길 따위는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게임 시스템의 버프를 받은 플레이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건 이쪽 세상의 상식뿐. 훗날 한세아가 무슨 다중 캐스팅 마법 머신건 같은 거로 진화하면 어화둥둥 칭찬해주며 버스를 타면 되겠지.

 “그러니까 초보 모험가가 기초 마법을 배운다면 가장 먼저 배울 건 쉴드. 전에 말했던 것처럼 후열에 몬스터가 오는 경우를 대비하는 거지.”

 “네, 그러면 나머지 네 개는요?”

 “공격 마법 하나에 파티원을 보조해 줄 수 있는 마법 세 개가 적당하지. 어차피 탑의 아래쪽에서 마법을 맞고 버티는 터프한 놈은 없거든. 자신을 보호할 쉴드 마법 하나, 평소 파티원들을 도와줄 보조형 마법 셋, 예상하지 못한 강적에게 화력을 투사할 공격형 마법 하나.”

내 말에 에에, 호오~ 하는 감탄성이 주변의 테이블에서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고개가 조금 올라가며 으쓱한 얼굴이 된 한세아.

 “저도 쉴드 마법 다음에 공격 마법은 매직 미사일 하나만 배웠어요. 나머지 세 개는 라이트, 스파크, 워터 마법이에요.”

 “왜 그렇게 골랐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어?”

 “음, 일단 매직 미사일은 속성의 상성이 없어서 좋아 보였어요. 파괴력은 다른 마법이 강하다지만 공격 마법을 하나만 골라야 하는데 불리한 상성의 적이 등장하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마법은?”

 “일단 라이트는 야간의 시야 확보가 중요할 것 같아서 골랐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탑의 고층으로 향할 땐 탑에서 꽤 오래 머무르는 것 같으니 밤에 활동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요. 스파크는 조금 고민을 많이 했는데… 부싯돌 대용으로 쓸 수도 있고, 상대를 흐트러트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골랐죠. 워터는 숙박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좋네. 아주 훌륭해.”

사실 공격 마법을 하나만 배웠다는 점에서 이미 합격이다. 나머지 마법들은 파티원의 조합이나 활동 장소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거든. 동굴에서는 라이트가 선호되고 설원에서는 스파크가 선호되는 식으로.

다른 방송인을 커닝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뭐 어떠랴, 내가 진짜 과외 선생도 아닌데.

 “앞으로는 저층에서 활동하면서 경험을 쌓고, 돈을 벌어 편의성을 위한 마법을 몇 개 더 배우면 된다. 새로운 공격 마법은 위로 올라가서 매직 미사일이 통하지 않을 즈음 바꾸면 되니까.”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마법 주문의 폭을 넓히는 게 우선이라는 거죠?”

 “정확해. 파티의 마법사는 막강한 일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손재주 따위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역할이 더 막중하거든. 예를 들자면 횃불을 사용할 수 없는 밀실에서의 라이트 마법, 식수를 구할 수 없는 오염된 늪지에서의 워터 마법처럼.”

애초에 마법은 배워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한 명의 마법사가 몇 개의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제한 따위는 없다. 이 때문에 라이트 마법의 최강자가 되기 위해 반복 사용을 하는 일 따위는 없이 유틸성을 위한 마법은 마법서를 구매할 돈이 되는 대로 잔뜩 익혀두고 상황에 따라 바꿔 쓰는 게 보편적이다. 이 부분 만큼은 게임과 닮지 않아서 다행이지.

게임 캐릭터처럼 사람마다 패시브 하나, 스킬 두 개, 궁극기 하나 사용하도록 강제되지 않으니 얼마나 좋아.

 “마법사는 단순히 공격적이기만 한 건 아니군요.”

 “그러니까 마법사지.”

마법은 과학 대신 발달한 기술이지 단순히 총이나 폭탄의 대체재가 아니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세아가 다시 한번 내게 묻는다.

 “그러면…, 이제 뭘 할까요?”

 “마법, 배우고 나서 써본 적은 없지? 몇 번 써보고 다시 탑에 들어가 보자.”

그녀의 질문에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당연히 연습뿐. 마법을 배운다는 일정이 생략되었으니 연습을 조금 시킨 다음 실전에 투입해야지. 그 뒤 나와서 엘리스가 말해줬던 카페나 들러야겠다.

어디에 있는 카페라고 콕 찝어 말해줬는데 후딱 다녀오지 않으면 삐질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테이블에서 일어나자 주변에서 들리는 아쉬움 듬뿍 담긴 한숨들. 그런 반응을 무시하고 그대로 길드 뒤편의 공터로 향하자 한세아도 곧바로 따라온다. 그래도 개념은 박혀 있는지 대놓고 공터까지 오진 않네.

가끔 무식하면 용감한 애들이 나한테 들이받는 경우도 있으니까.

 “일단, 쉴드 마법부터 써 볼래?”

 “네, …쉴드!”

스태프를 양손으로 꼭 쥔 채 마법을 사용하는 그녀. 스킬명을 입 밖으로 내는 게 조금 창피한지 슬쩍 숙어진 고개. 그래도 스킬은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흐릿한 반구가 그녀를 감싼다. 그 모습에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자 느껴지는 미약한 반탄력.

이 정도면 고블린 돌팔매 정도는 가볍게 막아낼 수 있겠네.

 “좋네. 이 정도면 저층 부분에서 어지간한 공격은 막아낼 수 있겠어.”

 “저기, 금이 간 것 같은데요… 저 마법 제대로 쓴 거 맞죠?”

 “아, 이건 내가 힘 조절 실수를 한 거야. 마법은 제대로 된 거 맞아.”

집게손가락이 파고든 자리에서 시작된 균열을 보고 한세아가 화들짝 놀라는 일이 있었지만 내 손가락이 고블린 돌팔매보다 강하니 상관없었다. 쉴드에 금이 가자 화들짝 놀란 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인지 바삐 움직이는 그녀의 눈동자.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뭔가 힘자랑처럼 되어버렸네.

 “그러면….”

 “저기, 롤랑 님?”

 “음?”

다음은 공격 마법을 볼까 싶었는데 먼저 입을 여는 그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 이야기해보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내게 묻는다.

 “롤랑 님은 상급 모험가 중에서도 꽤 강하신 편인데… 탑의 몇 층까지 가보셨나요?”

한세아가 궁금한 건 나의 전적. 6★의 스탯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중급 모험가들이 고개를 넙죽넙죽 숙일 정도의 NPC. 모험가로서의 명성이 어마어마하니 그 업적이 대단하리라 생각하는 눈빛이다.

무슨 상상을 하는진 알겠지만, 조금 미안하네….

 “일단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탑을 그렇게 높게 오르지 않았어.”

 “네? 상급 모험가시잖아요.”

 “이건 능력이랑 조금 다른 이야기거든.”

이제는 한세아와 만났으니 강제로라도 탑에 들어가게 생겼지만, 과거의 나는 탑의 등반 대신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일반적인 모험가들에게는 게이머와 같은 편의성 기능이 전혀 없으니까.

텔레포트도 미니맵도 인벤토리도, 세이브와 로드 따위의 기능 하나 없는 리얼리티 넘치는 삶.

 “탑의 최상층을 노리는 파티는 지금 43층에 있어. 나는 37층쯤에서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왔고.”

 “37층… 어째서죠?”

 “그야 40층 위로 올라서려면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니까.”

 “……네?!”

37층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는 36개의 필드를 통과했다는 이야기다. 모험가 패 쪼가리와 손수 만든 지도 따위에 의존해 초원을 넘고 숲을 지나 늪지를 통과하고 동굴을 돌파해야 하는 게 현실.

그쯤 되면 탑의 최상층이 왕국을 왕복하는 것보다 멀어진다.

마도 문명이 만들어 낸 온수 샤워와 맛 좋은 여관 아주머니의 음식과 푹신한 침대 따위를 전부 포기한 채 텐트에서 침낭을 깔고 미지의 필드를 돌파해야 하는 게 최상위 모험가의 숙명.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이 황금마차를 기다리듯 모험가 길드의 대규모 보급 행렬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풀뿌리를 질겅질겅 씹는 노숙자에 가까운 삶.

나는 그런 끔찍한 삶을 감내하지 못하고 안락함을 위해 지상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지내는 중이다.

 “어제의 그 넓은 초원을 생각해 봐. 그 넓은 곳 어딘가에 있는 상층으로의 문을 찾아 헤매는 게 최상위 모험가의 삶이야. 심지어 초원도 아니고 독물이 가득한 늪지 따위에서 오롯이 운에 의지해 어딘가에 있을 문을 찾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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