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175)

그 즉시 웅성거리는 모험가들이 게시판 앞으로 달려든다. 엘리스에게 설명을 들음으로서 저 인파 사이에 섞이지 않는 것도 그녀에게 디저트를 바치고 얻는 사소한 혜택이지.

소란스러운 모험가들을 뒤로한 채 길드 밖으로 떠나려 하니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우리 일행에게 끼어든다.

 “…무슨 일이죠, 샤를롯 양?”

 “모험가 한나 파티에게 의뢰를 하고 싶어서요.”

방긋 웃고 있는 샤를롯과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뒤따라오는 메이드 마리였다. 의뢰를 하고 싶다는 뜬금없는 이야기가 진심이었는지 내가 아니라 한세아에게 향하는 그녀. 뒤를 향해 손바닥을 뻗자 메이드 마리가 품 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든다.

치마가 긴 메이드복 차림에 벨트 따위가 주렁주렁 매달린, 메이드 모험가라는 특이한 복장. 옆구리의 어딘가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들자 시청자들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다.

-주머니삽니다 얼마주면되냐

-지금 돈주머니를 어디서꺼낸거야

-누가보면 가슴사이에서꺼낸줄알겠다

-가슴사이에공간있어요

-저 메이드복은 명백히 이상. 엉뚱한 곳에서 주머니가 나오는

 “20층으로 갈 생각이죠, 한나 양? 합류해서 관찰하고 싶은데. 굳이 따지자면 제 호위 의뢰가 되겠네요. 저는 따라다닐 뿐이지만.”

귀족 아가씨 겸 마법사 겸 모험가인 샤를롯 캐번디시는 야심가다.

어중간한 귀족의 딸로서 정략결혼에 팔려가는 미래 대신 마법사로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여자. 그리하여 샤를롯 부인의 삶이 아닌 샤를롯 마법사님의 삶을 원하는 거지. 따라서 그녀에게 있어 한나 파티는 아주 매력적인 동아줄처럼 보일 것이다.

상급 모험가가 흥미를 느낄 정도의 재능을 가진 마법사 후배. 이에 증명하듯 모험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월 늑대를 추적하여 처리하였고 빠르게 20층을 돌파. 거기에 20층의 이상 현상도 최초로 보고했으니까.

 “저는 모험가로서의 명성보다는 마법사로서의 명성을 원하거든요. 한나 양은 마탑에 논문을 제출할 생각이 없죠?”

 “예, 당연하죠.”

그러나 한나라는 여자는 마법사로서의 활동보다는 모험가로서의 활동에 중시하기 때문에 만월 늑대와 관련된 연구 주제를 선점하지 않은 상황. 어찌 보면 연구 거리가 새록새록 솟아나는 요술 항아리 같은 게 플레이어 아니겠는가.

 “평균적인 의뢰비보다는 조금 더 쳐 줄게요. 마법사로서 일행을 도울 생각도 있구요. 잡일은 제 메이드가 할 거예요. 그 대가로 오크 부락에 대한 연구 권리는 제가….”

 “네, 그렇게 하세요. 저는 마탑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서.”

 “어머, 모험에 대한 의지가 생각보다 굳건하시네요.”

절대로 마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한세아의 선언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샤를롯. 재능이 출중한 평민 출신 마법사라면 모험가로 구르는 것보다는 마탑에 들어가는 게 신분 상승에 도움이 될 테니 신기하게 느껴지겠지.

플레이어인 한세아로서는 랭킹 1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게임사를 먹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는 것이지만, 샤를롯이 보기에는 모험을 위해 신분 상승의 권리를 버리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렇게 일행에 관찰 담당 샤를롯과 식사 담당 마리가 참가하게 되었다.

 “…도울 생각이 있다고 했지만, 그다지 제 도움이 필요하진 않네요.”

 “상급 모험가가 일행에 있으니까요.”

물론 4★ 4★ 5★ 6★ 사이에 2★ 하나가 끼어든다 해서 활약을 할 수 있을 리 없지. 무리를 지어 달려드는 오크 전사를 가볍게 처리하자 진심으로 놀랐는지 목소리가 떨리는 샤를롯. 방패를 들고 있으면 오크 전사들이 알아서 바닥에 누워버리는 장면이 상상과는 많이 다른가 보다.

햇볕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숲길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소란 때문에 자리를 피했는지 투구사슴과 이끼늑대는 보이지 않는 상황.

안전지대에서 통로 반대쪽으로, 오크 전사의 무리를 세 번 정도 만나고 나니 숲이 끝나고 공터가 보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제로 공터가 되어버린 장소가 눈앞에 드러났다. 허리가 처참히 부러진 나무들과 바닥을 나뒹구는 오크의 마석.

 “이것도 이상 현상일까요?”

 “우와, 이게 다 뭐지?”

바닥에 있는 팔찌는 오크 전사들의 부산물. 이를 알아본 샤를롯과 한세아가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본다. 이 처참한 광경은 마치 오크 전사를 상대로 거인형 몬스터가 날뛴 것 같은 모양새였으니까.

물론 새로운 보스 몬스터나 거대 몬스터가 등장한 건 아니다. 익숙한 흔적인지 케이든도 부러진 나무를 스윽 쓸어 보이며 이야기를 꺼낸다.

 “아뇨. 이상 현상이 아니라 레베카 님이 이쪽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게 사람이 남긴 흔적이라구요?”

케이든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샤를롯. 아직 상급 모험가가 미쳐 날뛰는 꼴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사람이 공터를 만들었다는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뜬다.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푹 패인 흙바닥, 자갈을 걷어차듯 허공을 날아 나무를 분질러버린 바위의 잔해, 밀쳐지고 박살이 나며 도미노처럼 차례대로 넘어진 아름드리나무. 사람이 만든 흔적이라고 믿기 힘들기는 하겠지.

하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도시에 등장한 뿔늑대를 상대로 바닥을 박살 내며 뛰어오르거나, 만월 늑대를 상대로 일격에 초원을 박살을 내는 장면을 목격했으니까.

 “하긴, 롤랑을 보면….”

 “이 방향은 레베카에게 선점당했고, 보니까 부산물도 안 챙기고 빠르게 이동하는 것 같네. 우리는 아예 20층의 통로 너머로 가보는 게 어떨까.”

 “아예 반대로 가자는 거야? 나쁘지 않네.”

이렇게 보니까 무슨 괴수 영화의 등장인물이 된 기분인데. 길바닥에 나뒹구는 돈을 버릴 순 없으니 부산물과 마석을 주섬주섬 챙겨 담은 뒤 그대로 뒤돌아섰다. 분노로 미쳐 날뛰는 레베카가 직진만 할 리 없으니 아예 반대쪽으로 가기 위해서.

메이드 마리는 도적답게 그레이스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고, 샤를롯은 한세아의 옆에 자리잡았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 안전지대를 지나쳐 남쪽으로.

 “…이 앞에, 인위적으로 묶인 덩굴이 있습니다.”

 “그러네, 오크 사냥꾼도 그 너머에 잠복해있어. 이쪽을 관찰하는 것 같은데.”

 “사냥꾼은 무시하고 그냥 간다.”

 “잠시, 해제를…?”

그래도 별이 하나는 붙은 도적이라는 걸까, 흙더미 사이에 있는 부산물을 쓱쓱 잘 챙겨오더니 오크 사냥꾼의 함정도 찾아내는 메이드 마리. 물론 오크 사냥꾼의 함정 정도야 내가 몸으로 막아버릴 수 있지만 알고 막는 것과 모르고 처맞는 건 기분이 다르다.

밧줄을 풀어버리려는 듯 수풀로 들어가려는 마리를 막아 세운 뒤 앞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쉐엑-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팍으로 날아드는 탄력 좋은 나뭇가지. 어디서 똑같은 함정 교실이라도 다녔는지 나뭇가지에 돌멩이 박아둔 건 똑같네.

거인의 발차기도 막아내는 게임 기본 스킨 갑옷이 고작해야 돌멩이에게 타격을 입을 리 없다.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메이드의 시선을 받으며 앞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걸 몸으로….”

 “원래 오크 사냥꾼의 함정은 전위가 몸으로 받아내는 게 제일 편해.”

자기가 모시는 샤를롯 아가씨도 상급 모험가를 모르는데, 고작 메이드가 알 리 있나.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이상한 놈 취급하면서 바라보면 마음이 아픈데.

함정을 몸으로 들이받아 버리는 모습에서 위협을 느꼈는지 그레이스가 인기척을 느낄 수 있는 범위 밖으로 후다닥 도망쳐버린 오크 사냥꾼. 시끄러운 오크 전사들은 내게 달려들고, 조금 똑똑한 오크 사냥꾼은 함정이 박살 나는 순간 조용히 사라진다.

 “확실히 이상하네요.”

 “그렇지? 오크 사냥꾼도 영향을 받았나 봐.”

그 모습에 아이린 곁에 착 달라붙어 있던 샤를롯이 눈을 빛낸다. 하지만 한세아는 예전에 나눴던 오크 사냥꾼 이야기에 대해 조금 까먹은 모양. 그런 한세아를 일깨워주는 건 후열을 호위하던 케이든의 설명이었다.

 “오크 사냥꾼은 상대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붙어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놈들입니다.”

 “…아아, 그랬었지! 케이든의 용병단도 대규모 인원인데 함정을 설치하며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고 했던가.”

-센세센세 하지만 말은 귓등으로듣쥬?

-지 방송 때문에 공략까지 생겼는데 지가모르네

-그 혹시 IQ가 얼마입니꺼?

-이러니까 영츠하이머, 청년치매라는 단어가 생기지

-그 옆집 김씨는 이틀동안 추격당하더라

그러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시청자들. 분명 저기서 한세아를 놀리는 시청자들도 대부분 까먹고 있지 않았을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동안 샤를롯의 혼잣말이 마치 시청자를 위한 설명처럼 울려 퍼진다.

 “오크 주술사들이 목책을 세우고, 전사들이 무리를 지어 순찰하며 사냥꾼들은 강적을 보면 곧바로 몸을 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저 오크 사냥꾼들은 우리를 보고 도망칠 때 부락으로 도망칠까요? 아니면 그저 몸을 숨기는 걸까요.”

 “그러게요? 오크 사냥꾼들이 도망친 곳에 부락이 세워져 있으려나?”

 “추적해 볼 가치는 있겠네. 다음번에 오크 사냥꾼이 등장하면 그 녀석을 따라가자.”

모험가로서의 샤를롯은 그다지 재능이 없지만, 연구에 대한 자질은 충분한지 샤를롯의 말에 한세아가 놀라는 척 동의를 한다. 그녀의 말이 그럴 듯하기도 했지만 방송 화면에 보이는 그녀의 퀘스트 창이 곧바로 갱신되기도 했고.

[20층에 등장하기 시작한 오크 주술사와 부락에 대한 단서를 찾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오크 사냥꾼을 확인해 보자]

명백하게 퀘스트가 진행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문구. 마법사 두 명의 의견이 일치했으니 별다른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되겠네.

숲길을 계속 걸으며 투구사슴 하나를 가볍게 해치우고 고블린 들을 뻥뻥 걷어차 치워버리자 그제야 다시 등장한 오크 사냥꾼. 그레이스가 오크 사냥꾼을 색적함과 동시에 메이드 마리가 구덩이 함정을 발견해냈다.

 “롤랑, 오른쪽에 있는, 바위에 뿌리가 얽힌 나무 보여? 나무둥치 뒤쪽에 엎드려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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