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175)

시청자들과 이야기 하는 것도 그렇고, 채팅창과 게시판, 심지어 히어로즈 크로니클 갤러리의 여론도 한세아가 1위로서의 품격을 보여주길 원하는 모양새다. 정확히는 내가 바로 6★ 오너라는 걸 증명하라는 느낌에 가깝긴 한데.

한세아도 10층에서의 보상 뽕 맛을 잊지 못해 몇 번 리셋을 하는 한이 있어도 보스 타임 어택을 시도할 생각처럼 보인다.

원래 게이머라는 건 그런 존재 아니던가. 기본 보상과 추가 보상이 있고, 추가 보상을 얻지 않아도 게임을 클리어할 수는 있다고 치자. 하지만 게이머는 추가 보상이 기본 보상처럼 느껴지고 그걸 못 얻으면 조오온나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모험가가 된 이상, 모험을 포기할 순 없지.”

 “그레이스 양의 말이 맞아요. 저희 앞에 그것들이 등장했다는 건 여신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다는 뜻이죠.”

일행들도 각자의 이유로 기사단의 의뢰를 거절하고 20층의 이변을 해결할 마음이 가득하다. 파티의 의견이 갈려서 우왕좌왕하는 것보다는 만장일치가 되는 게 언제나 좋은 일이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다시 20층의 안전지대로 돌아가 샤를롯과 안테노르의 옆에 착 달라붙게 생겼네. 정보가 나오고 한세아의 퀘스트가 갱신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의뢰도 확인했고, 기사단의 요청은 거절했으니 조금 바삐 움직여야겠는데. 다들 이번에야말로 탑 안에서 오래 머무를 각오를 해 둬.”

 “이제야 거절을 했는데 너무 급하게 구는 거 아니야?”

 “그야 상대가 오크니까 그렇지. 조금 똑똑해 보여도 결국 모험가와 함께 있는 여기사 정도밖에 공격하지 못하는 수준이잖아.”

 “그게 왜?”

 “놈들이 특출나게 강력했다면 고작 여기사 하나를 포로로 잡았겠어? 사냥을 즐기던 귀족들을 냉큼 납치해서 잔뜩 끌고 갔겠지.”

왜냐하면, 오크는 약하고 멍청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굴린답시고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 오크는 오크. 고작해야 20층 수준의 모험가를 전멸시키고 여기사 한 명을 노릴 수준이라면 토벌대가 나서는 순간 뼛조각도 남기지 못하고 박살 날 것이다.

나보다 조금 덜 튼튼하지만 검술은 더 뛰어난 정예 기사들이 수 십 명씩 움직일 테니까. 모험가야 효율을 위해 4~5명이 움직이지, 왕의 명령을 받은 기사들이 그럴 리 있나.

사건이 조금 심각하다 싶으면 눈깔 뒤집힌 4★ 수준의 기사들이 한 50명쯤 몰려와서 20층을 초토화할 거고, 어쩌면 그들을 이끄는 기사단장은 5★일지도 모른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생겨났겠어.

 “아… 그것도 그렇네요. 여기사를 납치할 수준이지만, 딱 그 정도의 수준이구나.”

 “그래. 왕국의 기사단이 아니라 금화에 눈이 먼 모험가들이 모여들기만 해도 곧바로 토벌될 녀석들이야. 그러니 맛있는 부위를 빼앗기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지.”

그러니까 한세아가 이빨을 좀 털어야 할 것 같다.

―한세아 타임 어택 하는 거 보면 마음이 짠해

마법사라면서 마탑을 이용할 생각을 못 해서 슬퍼…

안테노르처럼 관심을 가진 마법사가 많을 텐데

길드랑 기사단 원정대만 생각하는 지능이라 더 슬퍼…

이제는 게시판의 명물이 되어버린 짠해좌. 사소하게는 놓치고 있던 보상 같은 것부터 크게는 퀘스트의 색다른 진행 방향까지 제시하다 보니 게시판을 방문한 시청자들에 의해 일종의 유명인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게시판 기능을 통해 내가 글을 작성했으니 짠해좌가 말한 대로 롤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겠지.

이번에 작성한 글 또한 그렇게 추천을 받고 입소문을 타서 채팅창에 올라갔다. 언제나 잘난 척을 하고 싶은 녀석은 있기 마련이고 남의 아이디어를 제 것인 마냥 이야기하는 놈도 잔뜩 있다.

[게시판에서롤랑야짤만모으는한세아님 5,000원 기부!]

짠해좌 말대로 마법사들 잔뜩 모아서 수색해보자

 “뭐야, 짠해좌 글 또 올라왔어? 마법사들을 잔뜩 모아? 샤를롯한테 연구 독점권 줬잖아. 부산물을 아예 공개 경매처럼 까버리자고? 이게 무슨 돗떼기 수산시장도 아니고, 음… 근데 될 것 같기도 하고?”

-안테노르좌 수다만 견뎌내면 가능하지 않냐?

-갈거면 방송 끄고 가서 혼자 듣고와

-이번 원정대 길드가 보낸거라며 마탑은 아직 안낀거아님?

-그르네 마탑이 아직이었네

-비비게임즈 먹기전에 예행연습으로 마탑도 먹자

그리고 한세아 또한 일종의 관심종자. 애초에 만 단위의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방송을 한다는 것부터 약간의 기질이 있다는 뜻이다. 지난번에도 로그아웃했던 한세아가 짠해좌의 의견을 자기 의견인 것처럼 나에게 제안하지 않았던가?

짠해좌로 글을 쓰면 시청자들이 보고 한세아에게 제 생각인 것처럼 훈수를 둔다. 그러면 시청자에게 훈수를 빙자한 잔소리를 들은 한세아 또한 제 생각인 것처럼 내게 의견을 낸다. 꾸준히 게시판에 글을 작성한 결실이 맺어진 것이다.

 “롤랑,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의견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

말을 꺼내면서도 한세아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바쁘게 움직인다. 이번에는 말을 더듬진 않았지만, 눈동자 굴러가는 건 변하질 않네. 채팅창의 훈수를 베끼는지 열심히 움직이는 그녀의 까맣고 깨끗한 눈동자.

 “모험가 길드가 용병들을 고용했다며? 그러면 아직 마탑이 끼어들기 전이니까, 경쟁자가 늘어나기 전에 우리가 마탑과 거래를 하자. 안테노르 님이 고위 마법사라며. 주술사를 생포해 온 대가로 안테노르 님과 샤를롯 양을 필두로 해서 탐색에 대한 지원을 받으면 어떨까?”

20층의 안전지대를 향해 숲을 걷는 동안 열심히 말을 정리했는지 더듬지 않고 줄줄 의견을 표출한 그녀. 한세아의 말을 곁에서 들은 일행들도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만월 늑대의 경우 도시에 피해가 있어 마탑과 길드가 손을 잡았다지만, 20층 오크의 경우 마탑과 길드가 연합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길드는 불똥이 튈까 봐 급히 용병들을 끌어모았고 마법사들은 개개인이 관심을 가졌지 마탑 차원에서 나서지는 않았다.

 “확실히, 안테노르 영감의 이름이라면 마탑의 마법사들을 모을 수 있겠지. 하지만 한나,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는데.”

 “간과했다니, 뭘?”

 “그러면 안테노르는 네가 설득해야 해.”

 “…어, 그렇게 되네…?”

내 말에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는 한세아의 얼굴을 보니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지난번 시청자들의 질문을 도네이션을 통해 대리로 질문했다가 마법사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가?

늙은 마법사들 사이에 껴서 두, 세 시간씩 알아듣기도 힘든 마법 이론에 대한 수다를 들으며 맞장구를 쳐야 했었지. 그 때문에 채팅창 민심은 나락으로 갔고 시청자도 무슨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갔었다.

[실력은없어도눈치는빨라야지님 10,000원 기부!]

안테노르 설득 파트는 알아서 방송 끄고… 알지?

 “아니, 니들 진짜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소외된 독거노인에게 그렇게 냉정하게 구니까 우리 사회가 이웃에 관한 관심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는 거잖아. 취약노인 보호를 위한 사업이 몇 개인데 너희가 그르면 안 되지!”

-진짜 에지간히 혼자 뒤지기 싫으신가봐요

-취약노인(5★, 고위마법사)한테 1:1 개처발리면서

-저저저 어차피 겪을 수다 돈까지 알차게 빨아먹으려고

-보기 싫으면 돈을 내라, 이말이야

-요즘 방송은 스킵하는데 돈을 쓰네 무슨 구독권도 아니고

정말 어지간히 수다를 겪기 싫은지 시청자들을 상대로 거품을 물 정도로 열변을 토하는 한세아 때문에 헛기침하듯 웃음을 삼켜야 했다. 하긴 나도 케이든도 안테노르를 피해 도망 다녔으니 이해는 가네.

 “아, 알겠어. 그런데 그건 친분이 있는 롤랑이 하는 게…?”

 “마탑의 일이니까 마법사가 해야지, 리더. 외부인이 마탑에게 움직이자고 말하면 마법사들은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거절하거든. 하지만 만월 늑대를 사냥한 유망한 루키가 제안하면 너를 마음에 들어 한 원로 마법사들이 움직여 줄 거야.”

마차에서 시청자들의 질문을 도네이션 받고 던진 게 가장 큰 잘못이란다. 그리 생각하며 선을 긋자 울상이 되는 한세아. 미녀인 샤를롯의 수다도 감당하기 힘든데, 늙다리 마법사의 수다를 내가 들어줄 이유는 없다.

아무리 별이 붙으며 주름살이 가시고 영감 냄새가 사라진, 노년 간지의 멋진 마법사라 해도 결국 늙은 남자잖아.

-롤랑 손절 속도가 그냥 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딜 플레이어 따위가 6★한테 짬을 때리려 함?

-시청자 QnA 타임이 이렇게 업보가 되어 돌아온다고?

-20층 도착해서 연구실 들어가면 카메라는 눈나에게 맡기고가렴

-슬슬 도착일텐데 방종각 나오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내 거절에 시청자들이 한세아를 놀리며 해맑게 웃는다.

저렇게 놀리면 한세아가 성격상 방송을 안 끌 것 같은데.

샤를롯 또한 마법사답게 지식에 대한 탐욕이 남달랐기 때문일까? 고위 마법사 안테노르가 샤를롯의 연구실 입구를 탕탕 두들기며 제발 주술사 좀 같이 관찰하자고 애걸복걸해도 계약에 따라 생포한 놈이라며 외면을 한 모양이다.

안전지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얼굴을 알아본 경비병이 구세주를 만난 표정으로 황급히 문을 열어주는 걸 보니 영감님이 어지간히 꼬장을 부린 모양. 고작 하루 만에 마법사부터 경비들까지 안색이 퀭한 게 안쓰러울 지경이다.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산제물이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서글프게 안으로 끌려들어 간다. 물론, 방송을 끄지 않은 채 시청자들의 원망을 등으로 받아내는 뚝심을 보여주면서.

 “잘 왔네, 한나 양! 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아!”

 “아, 그런가요…?”

마지막까지 내 쪽을 바라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애원의 눈길을 보내는 한세아를 외면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안테노르보다는 샤를롯이 상대하기 훨씬 편하거든. 수다의 양으로 치면 0.2 안테노르 정도인 데다, 샤를롯은 눈을 즐겁게 해 주는 미녀였으니까.

 “그래서, 롤랑. 제안할 게 있다구요?”

 “우리 리더가 안테노르 영감에게도 제안하러 갔어. 왕실 기사단이 우리에게 20층의 길잡이가 되어 달라고 의뢰를 했거든. 일단 거절하긴 했지만, 녀석들이 우리 파티에만 의뢰할 리 없지.”

 “왕실 기사단이라… 그것뿐만이 아니죠?”

 “수도의 귀족들이 개입할까 봐 모험가 길드와 도시의 귀족들이 용병들을 대규모로 고용했어. 아직 마탑은 손을 뻗지 않았지만….”

 “마탑이라면 곧 관심을 가지겠죠. 제가 변종 주술사를 조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곧바로 전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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