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175)

 “다들, 여기에, 후우― 계셨군요.”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달려와서는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도 중급 모험가 수준의 검사가 이렇게 숨이 찰 정도면 엄청나게 뛰어다닌 모양인데 무슨 일이지.

길 가던 미녀들, 그것도 수녀가 포함된 일행을 용감하게 막아 세운 남자. 뭐 그런 느낌으로 온갖 시선을 다 받기 시작하지만, 일행들이 다 같이 아는 척을 해 주니 금세 시선이 흩어졌다.

하마터면 길 가던 모험가 하나가 ‘거기, 여자들이 싫다잖냐!’ 따위의 대사를 외치며 끼어드는 일이 벌어질 뻔했네.

 “엄청 급해 보이는데 무슨 일이에요?”

 “골렘, 흐… 골렘과 관련된 제보가 들어와서 엘리스 양이 전해달랍니다.”

딱히 연락 수단이 없으니 한세아와 그레이스의 숙소 주변과 우리가 자주 가는 식당, 여관 주변을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닌 모양. 케이든이 숨을 고르는 걸 기다리고 있으니 좀 더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검술 연습을 하려고 길드 공터에 되돌아갔는데, 엘리스 양이 전해줄 게 있다며 알려주더군요. 어느 모험가 파티가 부상을 입은 채 조금 다르게 생긴 골렘의 마석을 챙겨서 돌아왔다고.”

그렇게 말하며 모험가 벨트의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마석을 꺼내 든 케이든. 케이든이 레베카와 롤랑의 인맥 고리에 껴 있는 일원이라 그런지 믿고 마석을 건네준 모양이다.

원래 골렘의 마석이 둥근 마석이지만 색만 연한 붉은색이라면, 케이든이 꺼내 든 마석은 명백하게 각이 진 모양새. 둥근 조약돌 모양의 마석과 확연히 다른 육각 수정 모양은 마치 인위적으로 다듬은 것처럼 생긴 모양새였다.

 “색도 진하고, 생긴 것도 누군가가 마석을 다듬은 것처럼 생겼네.”

 “어떻게 이 마석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은 못 들었어?”

 “마석을 건네준 모험가가 그대로 길드에서 기절한 모양입니다. 응급 처치는 했지만 깨우려면 급히 신전에 가야 할 것 같다네요.”

설명을 듣고 있다 보니 신전이라는 단어에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엘리스가 급하게 우리에게 소식을 전한 이유를 알 것 같네.

신전이라는 곳이 아무리 청렴결백하고 여신의 뜻에 따라 모험가들도 치료해 주는 곳이라 하지만, 중세 판타지 세상인 만큼 정치와 얽혀 있기도 하다. 의식을 잃었을 뿐이지 상처가 엄청나게 위급하지도 않은 모험가 때문에 늦은 저녁에 신전 문을 두드리기 어렵다는 뜻이지.

하지만 그 모험가들을 데리고 온 게 수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예비 성녀의 타이틀을 지닌 데다, 이 도시의 신전에서 나고 자란 아이린이 데려왔다면 더더욱. 물론 가장 좋은 건 아이린이 직접 고치는 것이지만….

 “지금 이 시각이라면 아직 장 사제님께서 계실 거예요. 제가 신전으로 향할 테니 여러분들은 길드의 환자를 데리고 와 주세요.”

 “네, 언니. 바로 가 보는 게 좋겠어요.”

안타깝게도 아이린은 보호막 특화 때문에 회복이 감소하는 특성이 있었다. 기억하기로 보호와 정화 특화, 치유 감소, 강화는 불가능 하다고 했던가.

수녀복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꼭 쥔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가는 아이린의 뒷모습을 한 번 바라본 뒤 우리는 길드로 향했다. 귀신같이 녹화를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든 한세아와 함께.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볼 수 있는 기믹이 있다.

RPG 게임의 던전에서든, 모바일 게임의 재화 획득용 던전이든, 아니면 FPS나 서바이벌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은근히 자주 보이는 기믹. 바로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며 일정 시간을 버텨내는 던전이다.

 ‘시발, 죽이는 게 아니었구나.’

이번에 21층에서부터 나온 골렘도 그렇다.

미로에서 바위 골렘을 마주한 뒤 십 분을 버티면 조금 더 커다란 강철 골렘이, 강철 골렘을 상대로 또 십 분을 버티면 더욱 커다란 황금 골렘이 등장하는 시스템이었다.

 “그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하필이면 탐색을 끝내고 되돌아오는 길에 그걸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수녀님. 이야기를 듣자니 다른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주 천천히 골렘을 잡을 생각이었는데….”

엘리스의 응급처치를 받은 뒤, 아이린의 인맥으로 늦은 저녁에 신전으로 호송된 모험가들이 눈을 뜨자 숨기는 것 하나 없이 술술 정보를 내뱉는다. 돈도 받지 않고 신전 내부까지 직행시켜 준 수녀에게 감히 뻗댈 순 없을 테니 당연한 반응.

단단하기만 하고 느려터진 골렘인지라 천천히 상대할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뒤편에서 강철 골렘이 나타났다고 한다.

아무리 골렘이 느리다 해도 무시했다간 후열의 마법사가 피떡이 될 상황. 한 명이 새로 등장한 강철 골렘의 시선을 끌고, 나머지 일행들이 바위 골렘을 파괴했다. 그러나 강철 골렘을 또다시 제시간에 처치하지 못해 더욱 커다란 황금 골렘이 등장하게 되어서 그만―

 “미로에서는, 어떻게 나오셨죠?”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놈들의 행동을 유도한 뒤 도망쳤습니다. 혹시라도 그 황금색 골렘 이후에 더욱 강한 골렘이 하나라도 더 나온다면, 도망치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요.”

 “아, 그리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덤덤하게 설명하는 중년의 남성 모험가. 상처를 입었다지만 후유증은 없고, 장비가 망가지거나 크게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무덤덤한 남자와 달리 잔뜩 흥분한 앳된 청년 모험가. 중년의 남성이 탱커였다면 이쪽은 궁수나 도적 쪽인지 가벼운 장비 차림이었는데 팔을 팔딱대며 일행의 설명에 살을 덧붙이며 경험담을 풀기 시작한다.

 “황금색 골렘이 나왔을 때, 미로의 벽면에 변화가 생겼었어요!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처음 미로에 입장할 때 봤던 것처럼 마력 회로 같은 게 황금 골렘이 등장한 곳에서부터 막 뻗어 나가더라고요.”

모험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부류인지 미지의 발견에 대한 흥분으로 양 뺨이 벌게진 청년의 말에 한세아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 모험가들의 증언은 전부 카메라에 담겼으나 일단 시청자들에게 아는 척을 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중이 아닐까.

바위 골렘과 만난 뒤 10분을 버티면 강철 골렘이 등장한다. 강철 골렘을 상대로 또 10분을 버티면 황금 골렘이 등장한다. 황금 골렘이 등장함과 동시에 미로에는 변화가 생기며 이후의 공략은 직접 겪어봐야겠네.

탑에서 나온 몬스터니 당연히 처리해야 할 줄 알고 곧바로 죽였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하기야 게임 밸런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게 맞지.

 “흐음, 내일 아침 곧바로 21층에 가 봐야겠는걸.”

 “황금색 골렘이라니, 탑은 왜 그런 걸 만들었을까요.”

 “그러면 다들, 내일 아침 동틀 무렵에 모험가 길드에서 봐요.”

밤이 늦어 술자리는 다음을 기약한 뒤 숙소로 흩어지며 대충 계산을 해 봤다.

내가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파티는 평균적인 플레이어들의 파티보다 훨씬 강하다. 4★ 검사와 4★ 궁수와 마법사 플레이어가 딜을 꼬라박아도 뚫리지 않는 방어력. 한세아가 마법으로 방어력을 약화했다지만, 그건 마법사가 강제되는 상황이지.

4★ 이하에겐 뚫리지 않는 스펙, 마법사가 없으면 수행할 수 없는 기믹.

다른 RPG 게임에서 이딴 게 나왔으면 개 쌍욕을 먹고 커뮤니티에서 게임 디렉터의 어머니가 언급되기 시작할 게 확실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있는 유저들의 동료NPC 평균 ★은 2★에서 시작하니까 21층에 도착할 즈음에는 평균 3★.

특정 몬스터가 쓰러지지 않는다고 뉴비가 물어볼 때, ‘현질 처박아서 태생 5★ 풀 파티 데려가면 오토로도 깰 수 있어요^^’ 라고 대답할 순 없잖아. 그딴 건 기만질, 비틱질이지 따라 할 수 있는 공략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일은 명확하다.

―한세아 골렘 사냥하는 거 보면 마음이 짠해

몬스터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일차원적인 발상이 슬퍼…

마력을 주입해서 숨겨진 미로가 등장하는 특수 기믹이 있는데

골렘에게는 그런 기믹이 있다는 상상도 못하는 지능이라 슬퍼…

 “아니, 얘는 뭐 하는 놈인데 이렇게 귀신같이 맞추지? 사실 비비게임즈가 날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게 아닐까?”

-먼데 짠해좌로 뱅송 시작을 함?

-이쯤되면 출연료를 줘라 시발 ㅋㅋ

-짠해좌 말대로 기믹이라도 발견했음? 방송 끄고 몰겜을 하네

-동료들이랑 존나 친한것만 봐도 방송 끄고 안에서 존나 노는거지 머

-밤에 눈나랑 마망데리고 머했냐고 대체 나도 보여달라고

아침, 길드로 향하기도 전에 빠르게 울리는 한세아의 방송 시작 알림. 샤워하며 시야 한구석에 그녀의 방송을 켜 두었다. 가죽 갑옷과 로브 대용의 망토를 걸치며 카메라 드론에 인터넷 홀로그램을 들이미는 그녀.

그 안에는 내가 어젯밤 길을 걸으며 빠르게 두드린 짠해좌의 글이 있었다. 아무래도 골렘 사냥이 반복되니 특별 기믹이 있을 거라는 짐작은 다들 하고 있었는지 짠해좌로서의 유명세와 함께 공감을 받아 빠르게 추천을 긁어모은 글.

하지만 한세아가 놀란 것은 ‘기믹’ 부분이 아니라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일차원적 발상’ 부분일 것이다.

 “어제 방송 끄고 잠시 일행들이랑 사이버 음주가무를 즐기려 했거든? 그런데 모험가 길드를 통해서 막 다른 모험가들이 뭘 발견했다고 연락이 오는 거야.”

-치팅데이를 가상현실에서 즐기네

-방송 감 다 뒤졌네 그걸 방송 안하고 혼자 즐기려 했다고?

-술취한눈나마망왜너혼자만봐카메라가꺼지면세상이어둡고추운데나는여기혼자남아서

-채팅창 난리나서 이야기 삼천포 가기전에 빨리 결론부터 말해라

-그래서 뭘 발견했는데 수금 유도하지말고 말해라 진짜

 “아, 거 참 성미가 급하기는. 사람이 말을 하고 있으면 어련히 순서대로 정리해서 말해 주겠지. 무슨 수금 유도야 수금 유도는.”

[한세아어사전번역전문가님 5,000원 기부!]

정보 : 여기서 때가 되었다는 건 도네이션이 터졌다는 뜻이다

-팩트)다

-저 봐 그냥 설명하면 될걸 중간에 굳이 핑계한번대면서 수금땡기는거

-여기서 답답해서 한 마디 던지면 그게 수금박사지 금수련아

-빨리 돈 더 내라 아니면 또 엉뚱한 말 하면서 유도패턴 이어진다

-오천원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라 한번 더 유도할 듯

마지막으로 지팡이를 챙겨 든 채 숙소 밖으로 나서는 그녀를 열심히 채팅으로 쪼아대는 시청자들. 그 매서운 질타를 이기지 못한 한세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짠해좌의 글 대신 어제 녹화를 해 둔 모험가의 증언을 재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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