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이잉- 띵!
―탑승형 골렘 정비소 B-301E 가동 시작합니다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고요해진 격납고 내부에 무기질적인 여성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탑승형 골렘 정비소 B-301E 가동 시작합니다
―격납고 내부, 손상된 골렘 세 개체 확인되었습니다
―경고, 시설 내 마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치 음성 생성기 따위로 만든 것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단조로운 목소리. 곧바로 상담원을 연결해 주겠다며 기다려 달라 말할 것 같은 목소리가 마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내뱉고 잠잠해진다.
갑자기 목소리가 흘러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화들짝 놀란 일행들. 귀엽게 움츠러든 그녀들의 어깨가 펴질 즈음에 아이린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다.
“이 부분을 누르니까 갑자기 여성분의 목소리가 나오네요…?”
“입구는 마력을 사용해야 하지만, 내부는 마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나 봅니다.”
아이린의 앞에 있는 것은 수많은 기계 팔에 가려진 넓적한 판때기. 판타지 세상에 사는 NPC로서는 입구를 여는 패널처럼 생겼으니 생각 없이 건드린 것 같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건 빼도 박도 못 하는 모니터거든.
네모 납작한 판때기를 모니터라 가정하고 기계 팔을 밀어내면 좀 더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책상, 사이드 모니터 암으로 고정된 세 개의 모니터, 그리고 책상 주변에 나란히 서 있는 커다란 기계 팔.
골렘의 조종도 수정구로 하고 연료도 마력이다 보니 키보드와 마우스 따위는 없었지만 누가 봐도 사무직의 책상처럼 보이네. 사무직이라기보다는 공학도의 책상이라 해야 좀 더 어울리려나.
“야, 이건 책상 위에 키보드만 있으면 우리 편집자님 책상이라 해도 믿겠다. …아니! 편집자님이 그렇게 더럽게 산다고 돌려 까는 게 아니라 모니터가 세 개나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진짜 사람을 음해하는 일에는 전문가가 따로 없네, 증말.”
-사실 편집자를 돌?려 는 니가 하는 게 아닐까요
-의자 없는거 불편하니까 빨리 의자나 찾아와
-어휴 이게 사람 방이야 골렘 우리야?
-우리 마망 얼음잼민이 돌봐주다가 한 건 또 하셨네요 행운스탯도있나 멀 잘찾네
-마력이 부족하면 수리도 마석으로 하나?
일행들이 대체 뭔지 감도 못 잡는 동안,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자리를 잡는 한세아. 역시 마법사라서 아는구나~ 하는 느낌으로 모두가 기대감 가득한 시선을 그녀에게 보낸다. 인벤토리와 미니맵에 이어 모니터 때문에 한세아 천재 마법사 이론이 한층 더 강화되는 건가.
그런 기대감 가득한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 책상 앞에 서는 그녀. 키보드도 마우스도 없기에 키오스크의 터치스크린을 다루듯 세 개의 모니터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아이린이 우연히 건드렸어도 작동이 시작된 걸 보아 이 녀석은 마력을 담지 않아도 작동을 하긴 하나 보네. 어쩌면 마력을 주입하는 건 일종의 보안 장치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격납고 문을 열 때는 열쇠가 필요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와 사무실 컴퓨터를 켤 땐 그냥 아무나 버튼을 누를 수 있으니까.
“아, 이거 문자는 무슨 상형 문자가 있어. 이세카이가 이집트도 아니고 진짜… 이건 그림으로 대충 때려 맞추라는 뜻이겠지?”
톡톡 두드리자 곧바로 문자가 등장하는 모니터. 물론 매뉴얼이 한국어로 친절하게 적혀 있는 일 따위는 없었다. 한세아의 투덜거림을 듣고 어깨너머로 바라보니 정말 상형 문자 같은 것들이 그림과 함께 잔뜩 그려져 있었다.
상형 문자를 제외하고 그림만 보자면, 커다란 물탱크 같은 것에서 이어진 파이프가 잔뜩 있고 그중 일부가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는 모양새. 문자가 없어도 텅 빈 물탱크에 연료를 채워 넣고 파이프를 수리해야 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저 커다란 통 그림은 마력 연료를 담는 용기겠죠?”
“흐음, 벽면에 파이프가 있는지 찾아야겠군요. 그런데 저 파이프가 벽 안에 있으면 수리할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한세아의 뒤에 옹기종기 모인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략적인 이해를 마쳤다. 중세 판타지 게임이라지만 마도구로 인해 냉·난방 시스템과 상·하수도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알아보는 것 같다.
그렇게 그림을 대충 흩어 본 일행들과 함께 다시 한번 격납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세아는 감에 의존해 그림을 톡톡 터치하기 시작했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들은 책상을 기점 삼아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다.
-세아야 빨리 그 난민 불러서 바닥이나 살펴보자
-니가 지금 그림맞추기 할 나이가 아닌데 머하고있냐 대체
-그 선생님 아무리 거길 터치해도 파이프가 뿅 고쳐질 것 같진 않습니다
-슬슬 짠해좌 나와서 너를 짠하게 느낄 타이밍처럼 보여요
-치과가기 싫으니까 차라리 카메라를 마망에게 붙여줄래?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의 발견을 할 수 없었다. 파이프가 어디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닌데 성직자와 궁수와 검사가 기계공학적, 혹은 건축학과 마도공학적 지식을 가지고 찾아낼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이러면, 한 번 마탑에 방문해야겠네요.”
“…그러면 저 웜의 시체는 어쩌지?”
“누가 들고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놔두고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요?”
“하긴, 저 커다란 걸 누가 들고 도망치겠어.”
※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자유시장보스몬스터기부천사한세아님 10,000원 기부!]
키야 맨날 독식하더니 30층 보스몬스터는 낭낭하게 나누셨네요
[밥숫갈떠먹여주면얼굴에뱉는한세아님 5,000원 기부!]
아니 롤랑 그렇게 쓸 거면 시청자 나?눔 하는 게 어떨까
[히어로즈크로니클을모독하는천재한세아님 10,000원 기부!]
진짜 방송각 수금각 보겠다고 보스를 태우다니 방송 천재긴 해
“아니, 그 큰 걸 누가 들고 나간 거야? 심지어 골렘은 멀쩡히 남아 있잖아!”
통로는 보스 몬스터가 겨우 들어 올 정도로 낮았고, 기사형 골렘의 등에서 남은 마석을 회수했다. 탑에서 돈이 되는 건 마석과 부산물이지 그 커다란 시체가 아니다 보니 안심하고 탑 밖으로 나가 마탑에서 샤를롯 캐번디시를 불러온 건데….
“으음, 한나 양? 이곳에 남부 사막에 자이언트 웜의 사체가 있었다… 라는 거죠?”
“네! 여기 보시면, 바닥에 놈이 기어 다닌 자국이랑 핏자국까지 있는걸요.”
딱 하룻밤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이언트 웜의 시체. 남은 것이라고는 바닥에 진득하게 눌어붙어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끈적한 핏자국과 기사형 골렘에게 얻어맞아 박살 난 껍질과 이빨 조각뿐.
보스 몬스터를 사냥했는데 시체를 도둑맞았다는 초유의 사태에 시청자들이 평소보다 더욱 맹렬하게 한세아를 놀려 먹기 시작했다. 도네이션 터지는 속도가 평소의 배속이라 봐도 좋을 정도.
“확실히 이 바위 갑피는 자이언트 웜의 부산물인 것 같은데… 이 녀석이 동굴에 나타났다는 것도 이상하고, 사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그 커다란 걸 밤새 도둑맞았다는 것도 특이하네요.”
“도둑맞은 걸까요?”
“도둑맞았다기엔 바닥에 이동한 흔적이 전혀 없지 않나요? 으음, 전투의 흔적뿐인 것 같은데.”
“예, 아가씨. 들것 따위로 웜의 사체를 옮긴 흔적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물리적으로 옮겼다면 저기에 고인 핏자국이 난잡하게 흐트러졌을 테니까요.”
샤를롯과 한세아가 기사형 골렘 앞에 서 있을 때, 주변을 샅샅이 뒤진 메이드 마리가 제 주인 아가씨에게 보고를 올린다. 궁수도 도적도 어떠한 흔적도 찾지 못한 상태. 거기에 한세아는 퀘스트 순서까지 꼬여버린 것 같다.
20층의 오크를 상대할 땐 주술사와 전사에 관한 이야기, 숲속 제단에 관한 이야기, 오크 추장에 관한 이야기가 순서대로 힌트처럼 등장했었던 걸 생각해 보면 완전히 대비되는 상황.
‘아무튼, 자이언트 웜을 처치 해버렸으니 중간 단계의 퀘스트가 갱신되지 않는 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면 퀘스트 창에 ‘자이언트 웜을 유인할 방법이 어디에 있다는데~’ 하는 식으로 힌트가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미궁 속에 빠진 한세아를 구원해준 건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를 놀려 먹던 악질 시청자였다.
[이럴거면롤랑좀아주라님 5,000원 기부!]
속보) 김석현 30층 진입 후 웜에 치여 사망
“다른 방송인 언급은… 가능하지! 야, 잠깐만! 그분 지금 벌써 30층이라고?”
-4의 가호를 받아 동료 하나 더 영입했음 걔도 지금 그16임
-그18과 그16의 싸움 실화냐? 나는 8인데 시발
-진입만했고 깝치다 웜에 치여 뒤지긴 함
-아득바득 따라오는데 반 층 차이에서 한 층 차이로 격차가 늘어났네 김서켜니
-사실 웜 시체 버리고 가면 한 층 차이보다 크게 나지?
타 방송인 언급이 가능하다고 말을 해서 그런 걸까, 채팅이 활발해지며 다들 제 지식을 뽐내고 싶어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시청자들. 샤를롯이 의아한 시선으로 한세아를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도 눈치 못 채고 홀로그램 인터넷 창 앞에 멍하니 서 있다.
아무래도 김석현의 방송을 볼 생각인가 본데, 염탐 방송 같은 걸 해도 상관이 없나?
[김석현복부타공전문뿔늑대님 10,000원 기부!]
그냥 한 50만 원 도네하고 퀘스트 창 보여달라고 빌자
“그럴까? 성의 표시 좀 하고 30층에서 웜부터 만나면 퀘스트 창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야겠지?”
시청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우르르 쏟아지는 도네이션과 의견. 그쪽 방도 어지간한 시청자들이 많은지 닉네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의견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남의 방송을 보는 게 불법도 아니고, 애초에 김석현도 한세아의 방송을 본다고 했었으니까.
그렇게 한세아가 정보비를 내기 위해 주섬주섬 같은 방송인에게 도네이션을 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한세아 곁에 있던 샤를롯이 웜의 흔적을 살피다 말고 슬그머니 내게 다가온다.
“저, 롤랑?”
“음?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