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175)

-그레이스롤랑한세아 삼각관계 아침드라마가 새 컨텐츠인가여?

-남자랑 잘 되게 해준다던 친구가 그 남자랑 이챠이챠 아이고 우리 눈나 어쩌냐

[잘못된만남에진심이되어버린한세아님 10,000원 기부!]

다음 컨텐츠가 롤랑센세와의 우결인가요, 그레이스눈나와의 사랑과전쟁인가요

 “으느르그…. 흐즈믈르그….”

일행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채로 이를 악문 채 중얼거리는 그녀. 골렘에 정신이 팔린 케이티야 둘째 치고, 마음씨 고운 그레이스와 아이린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한세아를 달래준다.

그리고 케이티는―

 “그, 한나 양? 골렘 수리 시설에 골렘 정비 기능은 아직일까?”

조금씩 부피가 줄어드는 자이언트 웜의 시체를 확인하더니,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처럼 한세아와 골렘 격납고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캐릭터 퀘스트 때문에 북부에 갈 일이 생기면 꼭 태워줘야겠는데.

한세아의 급발진 트롤링으로 인해 잔소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은 명확했다. 바위 골렘의 마석 또한 자이언트 웜의 시체로 만들었는지 놈들이 마석이 부서지며 흘러나오는 마력에 환장하고 달려든다는 것.

정석적인 플레이라면 골렘의 마석을 마탑 따위에서 연구해 유인 향 같은 걸 만들어야 할 것 같지만, 우리에겐 그런 귀찮은 일 정도는 넘길 수 있는 마석이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었다.

 ‘탑승형 골렘의 연료니까 비싸게 되팔려고 했는데, 다 써먹게 생겼네.’

문제가 있다면 마석으로 유인 향을 만들 시간이 아까워 마석을 부수다 보니, 생각보다는 빠르게 마석이 소모된다는 점? 마력을 담고 있는 마석을 단순무식하게 부숴서 바깥으로 마력을 빼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진도를 여기까지 뺐는데, 마석으로 유인 향을 만들겠다며 또 연구실에 며칠 넘게 처박혀 있을 순 없잖아. 그런 답답한 플레이는 한국인 게이머로서도 불가능한 일이고, 방송인으로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 더 온다!”

 “알겠어!”

그렇게 되어 시작된 반복 사냥.

입구에서 마석을 맨손으로 으스러트리며 돌아다니다 보면 자이언트 웜이 내게 달려들고, 그렇게 나를 쫓아온 자이언트 웜은 기사형 골렘과 일행들의 협공에 목숨이 끊긴다.

머리가 약점이란 걸 알게 된 이상 내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자이언트 웜의 움직임을 기사형 골렘에 탑승한 케이티가 막아서고, 껍질을 한세아가 녹여버린 뒤 그레이스가 폭발 화살로 머리만 날려버리면 되니까.

그 와중 몸부림치는 자이언트 웜 때문에 날아드는 바위 껍질 산탄은 아이린의 보호막에 가볍게 막히니 완벽한 모험가식 분업이라 할 수 있지.

-그 와중에 우리 잼민이 말투 가벼워진 거 존나 커여운데

-생긴건 말도 없는 냉미녀인데 입만 열면 잼민이ㅋㅋ

-슬슬 궁수형 골렘 해금되면 폭발화살 없이 자이언트웜 잡겠는데

-근데 통로가 저렇게 좁으면 진짜 기어나가야됨?

-골렘 엎드려서 나가면 높이는 몰라도 어깨가 낄 것 같은디

그 속 시원한 모습에 환호하는 시청자들. 몇몇 시청자들, 특히 메카물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온 외국인 시청자들은 인간과 골렘의 협업에 불쾌함을 토해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는 전투만 화끈하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잔뜩 들떠서 채팅을 쳤다.

기사형 골렘이 자이언트 웜을 막아 세우기만 한다면, 플레이어 마법사와 태생 3★ 궁수로도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시청자들 대다수가 평균 2★의 동료를 맞이했다고 징징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이면서도 하한선. 게임에 진심이 되어 30층까지 올라올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리셋 버튼을 통해 최소 3★의 동료를 뽑아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리셋 버튼을 누르면 게임 데이터의 저장 없이 그날의 아침으로 되돌아가는 걸 사용한 게이머 특유의 리세마라가 시작된 것이다.

저녁에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에게 동료 모집을 부탁한 다음, 다음 날 아침 일찍 찾아가 최소 3★ 동료가 등장할 때까지 리셋 버튼을 눌러 아침을 반복하는 노가다였나. 물론 현실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가상 현실 게임인 만큼 여관에서 일어나 길드로 향하는 시간이 길어 무한대로 노가다를 하는 건 힘들다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결국 5★ 눈나랑 게임 시작한다

[5★ ‘서리마녀’ 옥사나의 상태창.JPG]

[푸른 로브 차림의 미녀 마법사 옥사나.JPG]

시발년들아내가이겼다타협하고그냥4★으로시작하라고어림도없지

전에4★리셋했다고비웃었던새끼들아내가이긴거다시발년들아

┗이게 뜨네 시발 ㅋㅋㅋ

┗리세마라 딱 대라 하루에 얼마나 했냐

 ┗퇴근하고 잠잘때까지 하루 6시간씩 여관런만했다

 ┗여관런이 먼데?

┗길드가서 동료 이야기 듣고 여관으로 뛰어가서 얼굴보고 4언더면 리셋버튼

┗와 시발 5★이라 그런가 로브 아래 몸매가 쉬발 ㅗㅜㅑ

┗게임이 나온지가 3개월인데 이제 겜을 시작하네 무친련 ㅋㅋㅋㅋㅋ

모바일 가챠 게임 히로인즈 크로니클에서도 3 대장이니 인권 캐릭터니 풀로 들고 시작하겠다며 프로그램까지 써서 한 달 내내 매크로로 리세마라를 뛰는 게 게이머라는 족속이다.

원하는 동료가 등장할 때까지 게임을 리셋시킨다 해서 리셋 마라톤, 줄여서 리세마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인간이 있듯 리세마라에 도전하는 인간도 있는 법.

리세마라라는 단어가 일본 가챠겜에서 시작되었듯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심지어 일본과 한국의 가챠 게임에 익숙해진 서양 사람들까지 리세마라를 뛴다는 걸 게임 관련 언론사 덕분에 알게 되었지.

…물론, 심심해서 찾아본 건 아니고 또 다른 태생 6★ 캐릭터가 등장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롤랑! 잠시 유인을 멈춰도 될 것 같아! 골렘 수리를 시작하겠다는 음성이 나왔어!”

경험을 쌓으라는 명목으로 전투를 일행들에게 맡긴 뒤 마석을 들고 자이언트 웜을 유인하며 인터넷 창을 뒤지길 한참.

통로 저편에서 그레이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궁수 특유의 가볍고 민첩한 발놀림으로 탁탁 뛰어온 그녀가 내 팔에 매달리듯 착 달라붙는다. 아무래도 기계 팔이 멋대로 움직여 골렘을 지잉 징 수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나 보네.

그리고 그 수리하는 골렘이, 그녀가 탑승하게 될 궁수형 골렘이니 더욱더.

골렘의 마석으로 자이언트 웜을 유인하고, 기사형 골렘으로 자이언트 웜을 쓰러트린다. 자이언트 웜을 쓰러트릴수록 격납고에는 마력이 모이고 점차 시설이 활성화된다. 그렇게 여러 번의 전투에 조금씩 노후되는 기사형 골렘도 수리하고, 완전히 망가져 있던 궁수형 골렘도 깨어난 상황.

이 부분만 떼놓고 보면 판타지가 아니라 SF 메카닉 게임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30층에서 이러면 위에서는 뭘 보여주려는거지?

-우리는비비게임즈의시대에살고있다우리는비비게임즈의시대에살고있다

-엄마난커서메카조종사가될래요

-그래서 메카닉 조종사용 쫄쫄이슈트 ㅇㄷ?

-잼민이는 몰라도 우리눈나 쫄쫄이슈트좀 입혀주세요 제발

앞에서 든든하게 막아서는 기사형 골렘과 덩치에 걸맞게 화살보다는 공성 병기에 가까운 쇠말뚝을 쏘아내는 궁수형 골렘. 폭탄 화살촉 대신 길이만 3m쯤 되어 보이는 강철 말뚝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이언트 웜의 아가리를 꿰뚫어버리니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

이제는 슬슬 내가 유인을 하는 속도보다 자이언트 웜이 죽어 나가는 속도가 빨라 공터의 구석에 기분 나쁘게 줄어들고 있는 시체가 쌓일 지경.

 “저 두 골렘은 마법사 골렘과 사제 골렘일까요?”

 “하지만, 골렘으로 그런 걸 만드는 게 가능할까?”

 “다른 세상의 물건이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바위 골렘 마석 소비량이 두 배로 늘었다지만, 그 덕에 할 일이 사라진 한세아와 아이린이 아직 고쳐지지 않은 두 개의 골렘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격납고 앞의 공터에 자이언트 웜의 시체가 늘어나며, 그만큼 악취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벽 하나를 두고 있는 정비소 안으로 들어와 있어야 놈들의 끔찍한 체액 냄새를 피할 수 있으니까.

인터넷을 보며 웜을 유인하는 나, 골렘에 탑승해 웜을 처리하는 그레이스와 케이티, 아이린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들을 상대하는 한세아.

 “이건, 좀 크긴 한데 비율을 생각해보면 단검이겠죠?”

 “이 골렘은 방패밖에 없네. 마법사와 사제 골렘은 역시 무리였나.”

10골드짜리 마석을 허공에 뿌리듯 펑펑 써댄 결과 수리된 네 개의 골렘은 다음과 같았다.

롱소드를 들고 있는 기사형 골렘, 커다란 강철 장궁을 든 궁수형 골렘, 쌍수 단검을 들고 있는 도적형 골렘, 격납고 문 같은 커다란 방패를 든 탱커형 골렘. 아무래도 사제와 마법사의 스킬을 사용하는 골렘은 이세계에서도 못 만든 모양.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무기질적인 여성의 음성.

―탑승형 골렘 정비소 B-301F로부터의 연락입니다

―경고, 탑승형 골렘 정비소 B-301F에서의 이상 현상 감지

―B-301F로부터의 비정상적인 마력 누수가 확인되었습니다

명백하게 퀘스트가 진행되는 것 같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 네 구의 골렘에 탑승해 저마다 몸을 움직여보던 일행들이 고개를 돌려 격납고 안쪽을 바라본다.

―경고, 비정상적인 마력 누수로 인한 폭발 위협

―경고, 마력 폭발로 인한 격납고 지지 기반 붕괴 위험

―속히 문제를 해결할 것을 골렘 파일럿에게 요청합니다

골렘이 걸어서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비밀 문이 드드드득- 열리고 있었으니까.

미녀 파일럿, 탑승형 골렘, 거대한 괴물, 폭발의 위기, 비밀 통로.

남자의 로망이 가득 담긴 퀘스트 스토리에 시청자들이 다시 한번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휴화산이 활화산이 되어가듯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채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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