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두드리는 듯 두개골이 욱신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열이 나는 건 아닌데 그냥 온몸이 축 처지고 힘들었다.
학부모 상담 이후 기력이 다 빠져버려 며칠을 골골대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기껏해야 30분 마주 앉아 이야기한 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지만, 천성이 소심하고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운 나로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 1:1로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너무 고된 일이었다.
“자기야. 많이 힘들어?”
“으응……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가네.”
“그러지 말고 같이 병원 가 보자. 얼굴색이 다 썩어가.”
“……넌 애인의 낯빛을 꼭 그딴 식으로 표현해야겠니?”
“걱정돼서 그러지…….”
이쯤 긁었으면 버럭 성질을 낼 법도 한데, 내 컨디션 난조가 본인 잘못이라 생각하는지 별말 없이 꼬리를 내린다.
“이것도 적응해야지. 언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뭐…… 그렇지. 기약이 없기는 하지.”
서른 살 권시훈이 일곱 살 유치원생이 된 지도 꽤 지났다. 하루는 느리게 가는데 돌이켜보면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가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고 일어나면 기적처럼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시훈은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권시훈은 하루아침에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네 일이잖아. 남 일 말하듯 하면 어떻게 하니.”
“자기야. 나는 지금 이대로도 좋다니까? 유치원에서도 1등, 학원에서도 1등, 동네 아줌마들이 나만 보면 천재라고 하는데 얼마나 자존감 상승하는 줄 알아?”
“언젠 1등 못 해 본 것처럼 그러네?”
“응! 나 공부로는 1등 해 본 적 없는데?”
“…자랑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처럼 똑똑하진 않아.”
난 네가 하도 말을 잘하길래 어렸을 때도 한 공부 하는 줄 알았지. 나는 말발이 영 딸리는지라 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막연히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것도 결국에는 내 편견이었구나.
“그럼…… 넌 언제까지고 이렇게 노는 게 목표야?”
“그건 아니지!”
“오, 계획이라는 게 있긴 하구나?”
“으응?”
동공이 흔들리는 거 보니 계획 따위는 애당초 없던 게 분명하다.
“아이고…… 그럴 줄 알았다. 대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한 건지 희대의 미스터리다. 정말.”
“자기야. 사회가 생각보다 그렇게 각박하지는 않아.”
“네가 아는 사회랑 내가 아는 사회는 좀 다른가 보다.”
“다 하기 나름이라니까. 할 때는 빡세게 하고 한가한 것 같으면 적당히 요령 피우며 놀 줄도 알아야지. 맨날 열심히 하면 힘들어서 어떻게 살아.”
유딩과 초딩 사이의 얼굴을 하고 현대 사회의 각박함과 효율적인 직장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는 게 좀…… 어울리지 않는데 틀린 말은 아닌지라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튼, 조만간 오형석 박사 만나서 멱살을 틀어쥐는 한이 있더라도 결판을 지어야겠다. 며칠 사이에 몸이 이렇게 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도 모르는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몸이 변하는 건데 걱정해야지.”
“당사자가 이상 없다고 느껴도?”
“죽을 때가 다 돼서도 아픈 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거 몰라?”
시훈은 애써 모른 척하던 불편한 현실이 새삼 상기되었는지 작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쪼그만 게 세상 고민은 다 안고 있는 것같이 뚱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보는 내 속도 영 편치 않아 쓴 입 속을 가라앉히려 냉수를 들이켰다.
머리 아파.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잡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버려 집중하기는 그른 것 같아 결국에 눈으로만 들여다보던 책을 덮고 안경을 벗었다. 미간이 욱신거려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니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윤진아. 내 걱정하느라 힘든 거야?”
슬쩍 눈을 떠 시선을 내리니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시훈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새까맣고 커다란 동공, 올망졸망한 이목구비, 보드라워 보이는 피부. 그사이에 훌쩍 커 이젠 제법 어린이티가 나는 걸 기뻐해야 할지 심란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뱅뱅 도는 와중에도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허, 웃네? 괜찮은가 봐?”
“그건 아닌데, 좀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다는 말에 시훈의 눈썹이 팍 구겨진다. 그런데 나는 이 아이의 기분을 맞추려 거짓말하고 싶진 않았다.
“있잖아. 너 보고 있으면 이젠 남친 같지가 않고 꼭 자식 같아.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
“……자식이라고?”
“네가 내 입장이 되었으면 어떨 거 같아. 아마 너도 나랑 똑같을걸?”
“…….”
“모르겠다. 이걸 좋다 싫다 할 건 아닌데, 좀 무섭다.”
내가 널 더 이상 남자, 내 남자친구로 보지 못하게 될까 봐.
차마 저 꼬맹이에게 말할 수 없는 마지막 한마디를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내 속마음을 눈치라도 챈 건지 시훈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자리를 뜨긴 뭣해서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윤진아. 내가 있는데 뭐가 겁나.”
“…….”
“들어가서 좀 눕자. 자기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보다.”
작고 따뜻한 손이 내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다정한 목소리. 차분한 말투. 내 심란한 속을 다 안다는 듯 부드럽게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손에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그렇게 봐.”
“왜. 내 건데 내가 마음대로 보지도 못해?”
“…….”
더 말하기도 지쳐 침대에 눕자마자 머리를 바로 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그 멘트도 어른이었을 때나 설레지, 7세의 모습으로는 설레긴커녕 귀엽기만 하다.
“자기는 열이 이렇게 날 때까지 책을 읽고 싶어?”
“몰랐어.”
“몰랐다고?”
“네가 말하기 전까지만 해도 좀 불편하다였지,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고.”
내 말에 시훈은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짜증 난 듯 미간은 구겨져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열감을 가라앉히려 자그마한 손으로 차갑게 식힌 물수건을 꼭꼭 짜서는 내 이마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시원한 기운이 닿자, 끊어질 것 같은 시신경에 긴장이 풀려버려 자연스럽게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이렇게 침대에 가만 누워 병간호를 받고 있으니 불현듯 예전 일이 생각났다.
“시훈아. 너 예전에 기억나? 우리 집에 인사드리고 나서 나 골병 났던 거.”
“……그 일은 왜 갑자기.”
“그때 우리 엄마가 소금 뿌리면서 다 나가라고 소리 질렀었잖아, 나도 너도 다 꼴 보기 싫다고.”
내 나이 딱 서른이었다. 그해 봄, 시훈이 첫 감독을 맡은 영화가 대 흥행을 하며 온갖 매체에 불려 다니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배우보다 잘생긴 젊은 감독의 등장에 열광했고 종국에는 팬클럽까지 생겼었다.
우리 엄마도 시훈의 열혈팬 중 한 명이었다. 단정하고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몸을 가졌는데 겸손하기까지 하다며 사윗감으로 삼고 싶다 했었다.
무슨 용기에서였을까. 돌이켜보면 약간 미쳤던 것도 같다.
지금에야말로 30년 내내 ‘여자 앞에서 숙맥이지만 착한 아들’에서 벗어나 ‘남자를 좋아해서 여자 앞에서 숙맥일 수밖에 없었던 착한 아들’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엄마.’
‘왜.’
‘내가 저 남자 사위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뭐? 얘가 나이 먹더니 뇌도 늙어 버렸나. 딸도 없는데 무슨 사위.’
‘진짜라니까? 사위 삼고 싶으면 말만 해. 당장이라도 가능하니까.’
‘어휴. 됐다. 됐어. 굳이 엄마 위로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윤진이만 있어도 되니까. 나중에 예쁜 색시나 데려와.’
‘엄마. 엄마 아들은 색시 못 데려와. 대신 사위는 데려올 수 있어.’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진짜라고!’
‘미쳤네. 미쳤어.’
엄마는 처음에는 내 말이 농담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었다. 하지만 내가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고 사실 엄마의 하나뿐인 자식인 박윤진은 남자를 좋아하고, TV에 나오는 저 권시훈이라는 남자와 무려 5년을 사귀고 있고, 지금 한집에 살고 있다 폭로해 버리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상황 파악을 마친 엄마는 그 길로 빗자루를 손에 쥐고 당장 시훈이와 내가 사는 집으로 뛰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내 연락을 받고 급하게 우리 집에 찾아온 시훈이에 의해 실패하고 말았다.
‘어머님. 저 윤진이 많이 사랑합니다. 윤진이 행복하게 해 줄 자신 있습니다.’
‘어머! 이 사람이 생긴 것만 멀쩡하지 완전 미쳤네! 지금 누구 아들을 데려다가 고생시키려고 이러는 거야!’
‘부탁드립니다. 윤진이랑 사랑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아이고, 세상에나…….’
난데없이 눈앞에 나타난 꿈에 그리던 그 대존잘 미남이 당신 아들을 달라며 무릎 꿇고 버티는 모양은 엄마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을 테다.
불같은 우리 엄마 성격이라면 냅다 매타작하는 걸로 모자라 바지까지 홀딱 벗겨 집 밖으로 쫓아버리고 남았을 테지만, 그런 비인륜적인 짓을 하기에는 시훈의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주방에서 소금을 가져와 시훈이에게 냅다 뿌려버렸다.
‘엄마! 미쳤어? 얘 얼굴 상하면 어쩌려고 그랫!!’
내가 다급히 시훈을 감싸 안고 대신 소금 세례를 받아내자 엄마는 더욱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자기 예쁜 얼굴에 소금 묻었다.’
‘시훈아…….’
‘이리 와. 털어줄게.’
시훈은 무거운 표정으로 내 얼굴과 몸에 묻은 소금을 털어주었다. 엄마는 처연한 손길로 내 뺨을 쓸어내리는 시훈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되도 않는 신파극에 질려 자리를 피했다. 시훈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몇 시간 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부탁을 듣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엄마는 거실 한복판에 왕덩치가 버티고 있는 게 좀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아들이 남자 복은 있다며 내심 뿌듯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시훈은 매일 본가에 얼굴을 비추었다. 센스 있게도 꽃다발, 화분, 손수건, 초콜릿 등 우리 엄마가 평소에 좋아했지만 돈 아까워서 사지 못했던 것들을 귀신같이 골라 선물했다. 나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구구절절하게 담은 편지는 덤이었다.
처음에는 차갑게 문전박대하던 엄마도 그 정성에는 이기지 못했는지 결국 백기를 들고 무려 3주 만에 시훈을 집 안에 들였다.
지금은 우리 엄마는 나보다 시훈을 더 찾을 정도로 시훈을 의지하고 있다. 나이만 먹었지 비실비실한 아들보다는 듬직하고 잘생긴 사위가 낫다며.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 당신 사위가 미취학 아동이 된 걸 알면 뒷목 잡고 넘어가시겠네. 그 덩치가 다 쪼그라들었으니 또 문전박대하는 건 아닌가 몰라.
“우리 사이 허락받고 돌아왔을 때 네가 나 이렇게 간호해 줬잖아.”
“네가 병원 안 간다고 버티는데 별수 있나.”
“한창 바빴을 때였잖아.”
“감독이 행사 몇 개 안 간다고 영화가 망하진 않아.”
“…….”
“예전부터 말했지. 나는 언제나 자기가 최우선이야.”
그렇지. 너는 언제나 내가 먼저였지.
“나도.”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네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
(다음 편에서 계속)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8)============================================================
금쪽같은 내 남친
한가린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