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간밤에 꿈에 어른으로 돌아간 시훈이 나와 완전히 잠을 설쳐버려 정신이 몽롱하다. 그래도 오늘은 시연회를 마치면 바로 퇴근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연회에서 우연히 오형석 연구원을 만났다. 아무리 봐도 클럽에서 봉춤을 췄으면 췄지 절대 연구라고는 안 할 것 같이 생긴 얼굴이던데 얼마 전에 선임연구원으로 승진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것까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아 시훈의 치료제에 대한 진행 상황을 물어보니, 연구소에서 방법을 찾아내서 시료 배양 중이라고 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희망은 있다는 거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에~ 애인 겁나 귀여운데? 그냥 애기인 채로 데리고 살지. 왜요?”
아이가 된 시훈의 모습이 궁금하다 해서 사진을 보여 줬더니 오형석은 물개박수를 치며 귀엽다고 아주 난리가 났다. 자기라면 그냥 아들 하나 생겼다, 생각하고 데리고 살겠다며 사진에서 좀처럼 눈을 뗄 줄 몰랐다.
“……얼마 전까지 같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미취학 아동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시죠. 진짜 미치겠어요.”
“그래도. 너무 귀여운데? 심하게 귀여운데? 볼을 그냥 아그작 아그작 깨물어 버리고 싶은데?”
이 인간은 뻔뻔한 걸까. 아니면 조금 눈치가 없는 걸까. 지금 버젓이 그 ‘깨물어 버리고 싶은 애’의 남친이 앞에 앉아 있는데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
내 속마음을 눈치라도 챈 건지 오형석은 나를 흘긋 보더니 한참 동안 떠들어대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허허허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슬쩍 허리를 일으켜 바로 앉았다.
“흠흠. 윤진 씨.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닙니까? 시훈 씨에게 특별히 건강상에 문제가 없으면 천천히 경과보고 치료해도 될 텐데?”
“물론 과학자 관점에서는 그 말이 맞겠지만 같이 생활하는 사람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일단 서류상으로는 없는 사람이 된 셈이니 앞으로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잖습니까. 유치원도 어떻게 겨우 들어간 거지. 등본이라도 달라고 하면 큰일이라고요.”
“흠…… 그건 그렇네요.”
전- 혀 공감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어쨌거나 오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앞뒤 안 맞는 반응에 지쳐버려 고래고래 화를 내는 대신 얼른 이 대화를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하나 물어봅시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치료에 실패하면 이대로 아이인 상태로 계속 살아야 하는 겁니까?”
“성장을 하긴 합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일반적인 성장 속도보다는 훨씬 빠를 거예요.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음. 두 달에 한 살씩 늘어난다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좀 빠른 게 아닌데?”
무슨 대나무도 아니고 그렇게 빨리 커. 내가 인상을 팍 구기고 반문하자 오형석은 또다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위험할 수 있는 거겠죠?”
“이제 보니 형석 씨가 속 편한 소리 할 때가 아니었네요.”
“하하하.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일주일 내로 치료제 샘플 나올 거니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두 달 뒤면 권시훈은 여덟 살이 된다 이거지. 무늬만 애 아빠인 나는 초1과 유치원생의 차이 따위는 절대 알지 못하니 외형상으로 크게 차이가 없다면 이 생활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오, 머리야.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 같으면 애인 커가는 모습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쏠쏠할 것 같은데…….”
“……네?”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람? 어이를 상실한 내가 황당한 얼굴이 되자 오형석은 짓궂게 웃었다.
“자, 생각해 보세요? 두 달에 한 살이면 일 년이면 여섯 살이 더 많아지는 건데 2년만 키우면 갓 성인이 된 애인을 볼 수도 있잖습니까? 그러면 쌩쌩한 남친이랑…….”
“어허이! 진짜 그러다 잡혀갑니다!!”
내가 정색을 하며 소리치자, 농담이라며 꺄르르 웃고 넘어간다.
권시훈. 이건 자기 때문에 이렇게 애인이 고생하는 걸 알려나 몰라. 정말 미치고 팔짝 뛰다 못해 병 걸릴 것 같다고!
* * *
모처럼 유치원으로 직접 시훈을 데리러 갔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매일 유치원 버스 타고 학원까지 혼자 보내는 게 좀 미안해서 오늘은 학원 다 째고 놀러 가자고 할 참이었다. 물론 시훈은 절대 그럴 필요 없다고 학을 떼겠지만 그냥 내가 오늘은 시훈이랑 같이 있고 싶었다.
아이가 되기 전에는 한 뼘 넘게 컸던 남친이 내 반절만 한 꼬맹이로 변하고 나니 측은지심이랄까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있고, 오형석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속이 시끄러운 이유도 있을 것이다.
“휴…….”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가짜 아빠 노릇도 하다 보니 할만한 것도 같은데, 치료하지 않으면 권시훈 아버지의 역할로 몇 년을 허비해야 한다는 게 막막하다.
이게 진짜 화나는 점이 뭐냐면 몸은 아이이지만 정신은 어른이니까 권시훈이 자연스럽게 남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꼬맹이가 어른행세 하는 것 같아서 꼴같잖다가도 문득문득 어른스러움이 튀어나오면 도저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처럼 품에 파고들 수도, 모른 척 받아 줄 수도 없는데 권시훈은 여전히 한결같다. 졸지에 나는 남친을 키우면서 독수공방하는 과부가 된 셈이지.
이래서야 결혼은 근처에도 못 가 볼 게 뻔했다. 권시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물어보고 싶지만 유치원생에게 ‘너 나랑 결혼할 거야?’라고 물어볼 만큼 철면피는 아니라 그저 속으로 삼킬 뿐이다.
작년 이맘때쯤. 시훈이 결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뼛속까지 대한민국 국민인 나에게 결혼 따위는 평생 하지 못하는 미지의 어떤 것이었는데,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시훈은 미국에 가면 혼인신고도 할 수 있고 결혼식도 할 수 있다며 참 오래도 나를 꼬드겼다.
‘결혼? 시훈아. 너 진심이야?’
‘자기는 결혼이 장난이야?’
‘물론 아니지!’
‘나도 장난 아니야. 오래 생각하고 알아봤어. 준비도 어느 정도 되어 있고.’
‘뭐? 준비라니?’
‘미국 갈 준비.’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다.
‘우리 엄마 나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난 한국 떠나 못 살아.’
‘정 안되면 어머님도 모셔가면 되잖아.’
‘나 하나 때문에 엄마 인생을 포기하라 할 수는 없잖아.’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로 옥신각신했지만 결국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은 채 시간만 갔다.
애석하게도 그해 가을, 연구소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큰 문제가 터졌고 시훈도 신작 크랭크인에 들어가는 바람에 결혼 이야기는 무기한 연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때는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는데, 기약 없이 어린 남친 수발이나 들어주게 생긴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지난날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정말, 혹시 이러다 영원히 어른 권시훈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니겠지. 이러나저러나 권시훈은 나의 세상이고, 우주인데 네가 영영 없어져 버리면 난 누굴 믿고 살라고. 난 정말 너뿐인데.
“짜증 나.”
소심하게 속마음을 내뱉어 본다. 그래봤자 혼잣말이 될 테지만 이렇게라도 끓는 속이 달래진다면 좋겠다. 정말로.
근처에 차를 세우고 터덜터덜 유치원 정문으로 걸어갔다. 정규 하원 시간에는 처음 와보는 유치원이라 주변에 사람이 드글거리는 게 좀 불편해서 최대한 걸음을 늦춰 동태를 살펴보니 정문 근처에 아이들의 하원을 기다리는 어머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흠… 그냥 버스 타라고 할걸.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딱 봐도 고급스럽게 차려입고 다른 무리를 곁눈질하고 있는 게, 잘 못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고 털릴 각이었다.
속으로 후회하며 아주 느린 걸음으로 ‘최대한 내가 왔다고 티 안 나게’ 유치원 담벼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섰다.
“어머! 시훈 아버님?”
젠장. 어떻게 알았지.
“아, 하… 하하 안녕하십니까.”
나는 낯을 아주 많이 가린다. 그래서 일을 제외한 사적인 모임은 물론이요, 사소한 약속까지도 일단 피하고 본다. 어쩌다가 끌려 나가게 되면 그 자리에 무조건 시훈이 있어야 했다. 묵언 수행하는 나 대신 시훈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해 주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홀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와, 이렇게 만나네! 너무너무 반갑다아.”
“네에. 저, 저도 반갑네요. 하.하.”
나는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저 사람은 나를 알고 있는 것만큼 민망한 일이 또 있을까.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웃으며 누군가의 어머님으로 추정되는 여자들에게 가볍게 묵례했다. 고급이라고 온몸에 도배해 놓은 듯한 사모님 무리였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와, 정말 시훈이랑 딴판이네.”
“그러게! 난 처음에 대학생이 하원 도우미 아르바이트하는 줄 알았잖아요.”
굉장히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리고 안 닮은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인데.
“와, 시훈 아빠라고 말하기 전에는 전혀 못 알아보겠다. 애기가 엄마를 많이 닮았나 봐요.”
“아… 네. 뭐 그런가 보죠.”
“엄마가 엄청 미인인가 봐. 하기야 아빠가 이렇게 예쁘장한데 엄마가 안 예쁘면 말이 안 되지.”
시훈 어머님. 장모님. 여기 이분들이 어머님 칭찬하는데 와서 좀 들어보세요. 예쁘다는 말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시잖아요.
“언니! 지금 싱글 대디 앞에서 왜 자꾸 엄마 이야기를 해! 실례잖아.”
“어머어머!! 내 정신 좀 봐. 죄송해요. 아무리 봐도 애 아빠처럼 안 보이니까 자꾸 헛소리가 튀어나오네.”
머쓱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놈의 설정. 나도 다 못 외웠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미 일파만파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어느새 내 주변으로 학부모들이 몇 명 모여들었다. 다 시훈이랑 같은 반 학부모인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숨길 일도 아닌데요. 뭐.”
“어우. 뒤끝 없어서 좋네. 역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달라도 달라.”
“근데 너무 어려 보인다. 시훈 아빠 대체 몇 살이에요?”
“네? 저 서른둘….”
“어머어머!! 애기를 엄청 일찍 낳았나 보네!! 키운다고 고생 좀 했겠다아.”
“언니. 애기 일찍 낳으면 좋지. 이제 삼십 대 초반인데 내년이면 애가 초딩이잖아~ 우리보다 십 년을 벌었네. 좋겠다.”
“어휴 어린 나이에 애 키운다고 공부도 제대로 못 했겠네….”
“그러게. 시훈 아빠는 무슨 일 해요?”
남이사. 내가 미혼부던 뭐건 지들이 뭔 상관이람.
보아하니 지금 이 사람들은 단순한 호구조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으니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이나 할 수 있겠냐-정확히 말하면 이런 고.급 사립 유치원에 애를 보낼 능력이 되냐-는 비웃음이 깔려 있었다.
“어, 저는 연구소 다닙니….”
“연구소요? 그럼 과학자 뭐 그런 건가? 아인슈타인 같은?”
“네? 아뇨. 저는 그냥 일개 연구원입니다.”
“그게 그거지 뭐!”
“…….”
“그런데 과학자? 연구원 그것도 공부 많이 해야 하지 않아요? 이야기 들어보니까 학교도 오래 다닌다고 하던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들어오는 분들도 계시고 석사도 있고, 박사도 있고….”
“시훈 아빠는요? 학위가 뭐예요? 석사? 박사? 아니면 아직 대학생?”
“바, 박사….”
“어머! 박사님이셨구나!!”
“네…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언니! 상은 언니! 이리 와봐! 시훈이 아버님 오셨어~ 연구소 박사님이래!”
박사라는 한마디에 연민 반, 하대 반이던 주변의 눈빛이 순식간에 흥미와 호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이게 뭔 일이래. 조용히 권시훈만 데려가려고 했던 내 계획과는 다르게, 나는 순식간에 학부모들에게 둘러싸여 신상을 털리고 있었다.
그들은 일단 내가 타고 온 차에 관심을 보였고, 내 옷차림과 가방을 탐색했다. 이어서 대학교는 어디서 나왔는지, 고향은 어디인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어쩌다가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되었는지… 등등의 정보를 10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캐물어 댔다.
“여기 뒤쪽 아파트 살죠?”
“어떻게… 아셨어요?”
“오다가다 봤으니 알지~! 우리 같은 동네 살잖아.”
“아.”
“그 단지 요새 집값 많이 올랐던데, 시세차익 좀 봤어요?”
“아뇨. 잘 모르는데….”
“어머! 그런 중요한 걸 모르면 어떻게 해!”
모를 수밖에 없지. 집주인은 권시훈이고, 나는 일 원 한 푼 보태지 않고 몸만 들어갔단 말야.
“하하. 제가 부동산에는 좀 어두워서.”
어물어물 넘어가려고 대충 대답했다. 그 이후 한참 동안 이 동네의 부동산 시장 이야기가 오갔다. 방금 말했던 대로 부동산이나 재테크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별세계의 이야기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고개를 주욱 빼고 하염없이 유치원 정문만 노려보았다.
대체 이놈의 수업은 왜 이리 안 끝나는 거야.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휴~ 시훈 아빠는 시훈이 똑똑해서 좋겠어요. 내가 누구 부러워 한 적이 없는데 시훈이네는 진짜 질투 나더라니까?”
언제 화제가 공부로 넘어갔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권시훈의 학업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또 초면인 이야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훈이가 똑똑해요?”
“어머, 아빠가 되어서 아들내미 똘똘한 것도 몰라요?”
“일하느라… 제가 신경을 잘 못 써서….”
신경을 잘 못 쓴다는 내 말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똑똑하다고? 머리 좋은 거야 진작 알긴 알았지만 그거야 어른일 때 이야기고, 유치원생 수준에 비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몇 번, 시훈이 바닥에 엎드려 숙제랍시고 끄적이던 걸 보긴 봤는데 그래봤자 유딩 숙제려니 하고 쳐다도 안 봤다. 시훈도 유치원에서 뭘 배웠는지에 관해서는 말한 적이 없었으니… 아, 글씨 너무 잘 쓰면 티 난다고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고는 했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시험 있었던 것도 몰랐겠네. 그럼?”
“시훈이가 말을 안 해서… 몰랐네요.”
“세상에. 시훈이 그날 영어 시험 만점 받고, 한글 시험, 수학 시험, 체육 시험까지 싹 다 1등 했는데! 그걸 말 안 했다고?”
“아….”
서른 살이 일곱 살 시험에서 일등을 못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라고 고래고래 외치고 싶었지만, 그냥 바보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시훈 아빠 애 잘 키웠네. 어디 센터 같은 데 가서 지능검사 받아봐. 꼭. 유치원에서도 천재 아니냐고 난리 났는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욕심이 많아서 뭐든 열심인 것뿐이에요. 시훈이가 그런 성격인 걸 아니까, 두면 알아서 잘하겠지 싶어서.”
어째서 하면 말을 할수록 나는 일에 치여 아이에게 1도 신경 쓰지 않는 불쌍하고 무지한 싱글 대디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 버려 멍청하게 웃었다.
“…대단하다. 아빠가 이렇게 무심한데 애가 1등을 싹쓸이한다고? 혹시 뭐 따로 하는 거라도 있어요?”
“네? 그냥 뭐 원 생활하고, 학원 몇 개 다니는 것 말고는 따로 하는 건 없는데.”
학원이라는 말에 학부모들의 눈이 순간 광기로 반짝였다.
“학원? 에이! 시훈 아빠! 애가 학원을 다녔으면 진작 말을 해 줬어야지.”
“네? 아… 죄송합니다.”
“그 학원 어디야? 아니- 우리 애가 시훈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시훈이 워낙 활발하고 주변에 친구가 많다고 다가가기 무섭다고 하더라고. 학원이라도 같이 다니면 좀 친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저야 상관없는데, 당장 학원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럼 좀 알아보고 알려줄래요? 아 그리고 시훈이한테도 지호랑 같이 다니는 거 어떻냐고 꼭 좀 물어봐 줘요. 네?”
“어머! 안나도요! 안나가 시훈이가 그렇게~ 잘생겼다고 남친 삼고 싶다고 했는데 학원 같이 다니면 너무 좋겠다.”
미안합니다. 시훈이 게이예요. 그리고 남친이 저인데요.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난리가 났다. 그 짧은 사이에 시훈이랑 식장 들어가는 애도 생겼다. 우리 시훈이 일부다처제 해도 되겠네. 의자왕이 울고 가겠어…….
자식이 잘나가면 부모가 이렇게 골치 아파지는 거였구나. 갑자기 피로감이 물밀듯 몰려왔다. 불필요한 긴 대화는 안 그래도 기력 없는 편인 나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다.
아, 집에 가서 반신욕하고 맥주나 한 캔하고 뻗고 싶다. 도망가고 싶어! 제발 그만 떠드세요. 좀!
“아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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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남친
한가린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