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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남친-29화 (29/85)

29화

“전학생들. 자기소개.”

무뚝뚝한 인상의 담임은 말투까지 정 없고 딱딱했다. 보아하니 우리의 내막은 전달받은 적이 없는 듯했다.

선생에게 있어 전학생은 일개 학생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담임을 흘겨보는 대신 맞은편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좁디좁은 책상에 조로록 줄지어 앉아 있는- 이제 곧 나와 같은 반 친구들이 될 아이들은 나와 시훈을 무슨 신기한 물건을 보듯 대놓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애기들한테 품평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랬지만 첫날부터 미운털 박히긴 싫어 꾹 참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어른인 내가 이해해야지. 맨날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놈들이랑 똑같은 수업 들으니 어지간히 지겹겠지. 그 와중에 갑자기 뉴페이스가 둘이나 나타났으니 얼마나 신선하겠어.

아주 약간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해 기분이 어… 좀 그렇긴 하지만 괜찮아. 난 어른이니까.

“권시훈이다. 잘 지내보자.”

내가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사이 시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쟤 목소리를 왜 저리 깔아? 인사 두 번 했다가는 누구 한 대 치겠는걸? 거기에 삐딱하게 기울인 고개, 골반이 탈골될 듯한 짝다리까지. 도저히 전학 와서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자기소개하는 모양이 아닌데?

혹시….

문득 아침에 시훈이 일러준 <고딩 권시훈>의 프로필이 떠올랐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소년. 설마 그 컨셉 유지한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사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사춘기가 늦게 온 오글거리는 18살에 빙의한 것처럼 보였지만… 본인이 저리도 심취해 있으니 굳이 말리고 싶진 않았다.

“아, 나보다는 옆에 있는 애한테 더 잘해 줬으면 한다. 보다시피 많이 연약해서.”

시훈의 마지막 한 마디에 몇십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했다. 정숙보다 더한 정적에 휩싸인 건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아, 제발. 민망해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미쳤다. 미쳤어. 컨셉질 할 거면 자기 혼자 하든가. 왜 나까지 끌어들여!

쪽팔림을 이기지 못해 아주 골수까지 다 타버릴 것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당장 교실 문을 박차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내 다리는 벌여 놓은 일을 내팽개칠 만큼 용기 있는 편은 아니어서 자리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 나는….”

목구멍이 바짝 마르고 속이 뒤틀렸다. 웅변대회 나온 초딩도 이보다는 덜 떨었을 테다. 박사 논문 발표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저 시커멓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고딩 놈들 앞에서 자기소개하는 게 뭐 대수라고 이리 긴장이 되는 건지.

이게 다 권시훈 때문이야! 네가 쓸데없이 한마디 덧붙이는 바람에 더 부끄러워졌잖아!

“바, 박윤진이라고 해. 잘 부탁해.”

입술을 꽉 깨물고 터져 나오는 탄식을 참았다. 웅성거림조차 없는 교실이 너무 답답했다.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한 놈은 잔뜩 쫄아서 당장에라도 도망갈 태세고 한 놈은 지독한 컨셉충이라니. 조카뻘인 놈들 앞에서 이 무슨 망신이냐고.

“저기 빈자리에 가서 앉고, 수업 준비해라.”

내가 쥐구멍을 찾건 말건, 제 할 일을 끝낸 담임은 불친절한 한마디를 툭 내뱉고 유유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탁, 교실 문이 닫히자 당연하게도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가 걷는 방향으로 쏠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훈이 지나가면 못 볼 거라도 본 듯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안 봐도 뻔하다. 컨셉 지킨다고 눈에 잔뜩 힘주고 걸으면서 아이들 겁주고 있겠지.

나는 2분단 넷째 줄에 앉았고 시훈은 2분단 맨 끝줄에 앉았다. 과연 컨셉 장인다운 선택이다. 보통 잘나가는 애들이 맨 뒷자리에 앉는 게 국룰 아니겠는가.

당연히 아이들은 전학생이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차마 먼저 말은 걸지 못하겠는지-권시훈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아’ 하며 심각하게 한숨을 쉬고 책상에 엎드려 버려서 그렇다- 자기들 무리끼리 모여 수군대기만 했다.

시훈이 엎드리는 바람에 유일한 대화상대를 잃어버린 나는, 갈 곳 없는 눈을 돌려 천천히 교실을 둘러보았다.

에어컨, 책상, 의자, 칠판… 나 때랑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지. 아득해진 내 진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다 새삼 내 나이가 상기되어 씁쓸하게 책상 속을 뒤적였다.

“안녕?”

그때,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놈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붙여왔다.

“어…?”

나는 대답도 잊고 내 앞의 아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낯가림 끝판왕인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자리에 앉은 지 5초도 안 되었는데 누군가와 말을 트게 된다고?

“지금 나, 나 부른 거 맞아?”

“내 눈이 널 보고 있는데 누굴 부르는 거겠어.”

“아… 그러네.”

그러게.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날 보고 있는 게 맞긴 하구나. 머쓱해져 입을 슬쩍 벌리고 멍청한 웃음소리를 냈다.

“너 아까 옆에 애랑 아는 사이야? 같은 날에 같은 학년 같은 반으로 전학 오는 일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딱 들어맞는 것 같은데.”

“어…?”

요새 애들은 자기소개 이런 것도 안 하고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하는 게 트렌드인가? 훅 들어온 물음에 당황해 천천히 눈을 돌려 앞자리 그놈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런데…

히야아. 고놈 참으로 잘생겼도다. 게임 캐릭터를 혼신의 힘을 다해 커스터마이징하면 흉내는 낼 수 있으려나.

제 주장 확실한 티존과 상하좌우가 평균은 훌쩍 넘을 것 같은 큰 눈, 묘하게 홀릴 것 같은 삼백안. 진짜 한국인이 맞을까. 아니, 이 세계에 실존하는 인물이 맞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돋보이는 외모였다.

“야.”

그리고 꼭 그려놓은 것 같이 결 좋고 또렷한 눈썹, 아랫입술에 희미하게 남은 점, 남자다운 하관 아래로 뻗은 목덜미는 곧고 강해 보였고, 어깨 또한 넓고 두터웠다.

“야!”

“어, 어어어?”

“넌 왜 물어본 말에 대답을 안 하고 ‘어’라고만 해? 내 말 제대로 들은 건 맞아?”

“드, 들었지.”

“그럼 대답해야지.”

너무 대놓고 본 게 들통나 버린 것 같아 다급히 눈을 떨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 눈동자가 위를 향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름다운 것에 자연스레 시선이 가는 본능.

“미안. 질문이 뭐였지?”

“에이. 똑같은 말 또 하게 하네. 너 오늘 같이 전학 온 쟤랑 아는 사이냐고.”

얼굴 생김새와 목소리 또한 상관관계가 있는 게 분명하다. 아이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 속처럼 깊었고, 진한 에스프레소 위의 거품처럼 씁쓸하고 부드러웠다.

아, 이러면 안 되지. 팬질하는 덕후도 아니고 처음 본 남자애 앞에 두고 헤벌레하는 꼴이라니. 이건 어른으로서도, 저기 엎드려 있는 내 남친에게도 못 볼 꼴을 보이는 거라고.

“아. 응. 아는 사이… 맞아.”

속에서 꾸물꾸물 올라오려는 덕심을 억지로 눌러 담으며 겨우 대답했다. 다행히 아이는 내 시꺼먼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러잖아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와, 진짜? 그래서 같이 전학 온 거?”

“으응. 같이 살아. 부산에서 같이 올라왔거든.”

약간 TMI일까. 말을 마치고 나서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오, 진짜? 나 부산사람 처음 봐.”

아이는 ‘부산’이라는 단어에 눈을 반짝 빛내며 의자를 바짝 끌어와 내 책상에 팔을 걸치고 몸을 앞으로 가까이 기울였다.

“…부산사람이… 그렇게 드물지는 않을 텐데?”

“그래? 그런데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없더라고.”

“시, 신기하네….”

“그러면 너 약간 사투리 같은 것도 잘 쓰겠네??”

“응… 근데 나도 안 쓴 지 오래돼서 많이 까먹었는데.”

“오래됐다고?”

“어….”

“너 서울 온 지 얼마나 됐는데? 그럼 그동안 학교는 어떻게 하고? 그냥 놀았어? 아니면 자퇴했거나, 홈스쿨링 뭐 그런 건가?”

말하면 말할수록 말리는 것 같은데 이거 망한 거 맞지? 봐, 이래서 안 된다고 했잖아. 나 연기도 못하고 거짓말도 못 한다니까.

“그냥… 요새 부산도 사투리 잘 안 쓰고. 여기 서울인데 부산에서 온 거 티 내는 것도 좀 그렇잖아.”

“아, 뭐 그렇긴 하네.”

“…….”

“너 되게 똑똑하다.”

“…?”

아이는 얼굴값 하는 목소리를 가졌지만 영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생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사투리 잘 못 씀 -> 똑똑하다. 로 이어질 수 있는 거지.

“너… 넌 이름이 뭐야?”

뭔가 이대로 가다간 내 신상이 다 털려 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억지로 말을 돌렸다.

“나?”

내가 질문하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자기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들어 보였다. 김규하.

“아, 그래. 규하야. 난….”

“박윤진. 이름 예뻐.”

“…고마워.”

“생긴 거랑 되게 잘 어울린다. 예쁘고 귀엽고, 뭔가 지켜 주고 싶은 이름인걸.”

이름이 예쁘다는 말은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들었는데, 생긴 거랑 연관 지어서 칭찬받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대체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기에 지켜 주고 싶다 하는 거니.

“고마워….”

하지만 고맙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대답할 말이 없어 그냥 웃었다. 그러자 규하도 싱긋 웃었다.

“아무튼, 잘 지내보자.”

“나야말로 잘 부탁해. 내가 고등학교는 오랜만… 아니, 서울은 어색해서.”

“부산이나 서울이나 학교가 다 똑같지. 뭐 다르겠어.”

“그렇긴 하지.”

“아무튼 예쁜 애가 잘 부탁한다니 내가 또 특.별.히 잘해 줘야지.”

규하는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씨익 웃어 보였다. 커다란 눈이 예쁜 달 모양이 되며 세상 시크한 냉미남이 순둥순둥 곰돌이가 되는 매직이 일어났다. 그런데 웃는 낯을 보면 마음이 풀어져야 하는데 왜 긴장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떨려서 그런가.

그나저나 진짜 겁나 너무 잘생겼다. 저런 애가 연예인을 해야 TV 볼 맛이 나는데 데뷔할 마음 없냐고 물어나 볼까? 우리 청순 미남 시훈이랑 함께 데뷔하면 모르긴 몰라도 K팝 스타 어쩌구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으응.”

끓어오르는 덕심을 침과 함께 한번 꿀꺽 삼켜버리곤 짧게 대답했다.

“고맙긴. 예쁜 애가 고맙다고 하니 내가 잘해 줄 마음이 마구마구 생기는걸.”

자리에 앉자마자 처음 본 남자애한테 플러팅당할 줄은 또 몰랐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런데 면역력이 좀 약한지라 뭐라 이야기할지 모르겠어서 입을 떡 벌렸다.

“…응?”

“너 귀엽다고. 은근 대놓고 내 타입.”

어벙하게 되물었더니 찡긋 윙크를 날린다.

헉,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덕분에 전학 첫날에 턱 빠져서 조퇴하는 병약 미소년 타이틀은 피할 수 있었다.

쟤 왜 저래. 미친 거 아냐? 윙크라니. 돌았어? 본인 타입이라고? 아니, 지금 진심인가? 그냥 가볍게 던지는 말인데 내가 오해하는 건가?

“야.”

음, 아쉽지만 존잘남의 플러팅으로 자존감을 올리려는 행위는 시작조차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야. 너.”

언제 일어난 건지 칼날이 서린 듯 시리고 시린 시훈의 목소리가 뒤에서 날아와 꽂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백 리 밖의 개미 새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 내 뒤통수는 불이 난 것처럼 따갑고 뜨거워졌다.

언제 일어난 거야. 아, 애초에 자는 척이었던 걸까. 그러면 우리 대화 내용을 다 듣고 있었던 걸까?

미쳤어. 나는 이제 죽었다….

“뭐야. 자는 줄 알았는데 척이었냐?”

하지만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 리 없는 규하는 아마도 눈에 불을 활활 불태우고 있을 시훈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왜? 기껏 사람 불렀으면 용건을 말해.”

규하의 달 모양 눈이 다시 형형한 삼백안으로 돌아왔다. 나는 졸지에 앞으로는 규하의 섬찟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한 갈색의 눈을 정면에서 바라봐야 했고, 뒤로는 그야말로 용암이 터져 나오고 있는 시훈의 눈빛을 받아내야 했다.

“너, 뭔데.”

“나? 김규하.”

“…네 이름이 뭔지는 알고 싶지 않고, 뭐 하는 새끼길래 박윤진 보자마자 수작질이야.”

“수작? 너 그 약간 수작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하는 거 아닐까?”

시훈의 차갑고 날 선 목소리에 반해, 규하는 꼭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느긋하게 대답했다. 다소 기분 나쁠 법한 시훈의 말에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이상하네. 보통 열여덟 살이면 쉽게 흥분하고 화내고 그러지 않나?

“너야말로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 같은데, 네가 지금 박윤진한테 하는 게 수작질이거든?”

“예쁜 걸 예쁘다고 하는 거고 내 타입인 걸 내 타입이라고 하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조마조마해 가슴을 부여잡았다. 설마 전학 첫날에 권시훈이 ‘박윤진 내 거야. 아무도 건들지 마!’라고 질러버리진 않겠지. 유딩이 아빠 내 거야 하는 거랑은 아예 결이 다르잖아.

제발. 나는 조용한 학교생활을 원해. 전교에 게이 커플이 전학 왔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단 말이야!

“넌… 쟤가 예쁘기만 하냐?”

“응. 윤진이 예쁘지.”

“하, 너 눈깔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나 시력 좋은데?”

“시력 말고 병신아. 섹시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왜 빼는데.”

“그건 나도 알지.”

“그러면 건들지 마.”

“왜?”

“내 거니까.”

신이시여….

또다시 내 두 눈은 권시훈의 주접으로 인해 질끈 감기고 말았다. 반면 규하는 여전히 별 동요 없는 덤덤한 말투로 시훈의 말을 되받아쳤다.

“사람인데 내 거 네 거가 어디 있어.”

“말귀 못 알아듣냐? 박윤진은 내가 찍었고, 원래부터 내 거니까 손대지 말라고.”

“흐음, 그러면 네가 이제부터 내 거 하면 되겠네.”

“…뭐?”

“너도 예뻐. 너도 내 타입이야. 그러니까 너 내 거 해. 그러면 내가 윤진이랑 너 다 가질 수 있으니까 공평하겠다. 그치?”

쟤가 지금 뭐라는 거야? 되도 않는 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규하를 바라보니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물론 둘 다 귀엽고 예쁜 건 똑같은데, 좀 이제 다른 점은 있지. 윤진이는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고, 쪼그매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고, 너는 옆에 같이 다니면서 엉덩이 두드리고 싶은 귀여운 거?”

“야, 뭐. 너 지금 누구더러 귀엽대.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냐??”

시훈이 얼굴을 붉히며 씩씩대도 규하는 태연했다. 본인이 이 세상에 다시없을 상남자라 굳게 믿고 있는 권시훈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귀엽다.’라는 것을 알 리 없을 테니 당연하겠지.

그런데 시훈아. 쟤 말처럼 너 진짜 귀여워. 토끼 같은 앞니도 귀엽고, 동글동글한 눈도 귀엽고, 둥근 코끝도 귀엽고, 하는 짓도 귀엽잖아. 너 뭐 하다 잘 안되면 나한테 ‘아아아! 혀어어엉!’ 하면서 앙탈도 부리고 그러잖아.

너 귀엽고 예쁘고 섹시하고 웅냥웅냥 하고 싶고 그래. 물론 다른 사람들은 너를 보고 잘생겼다고 감탄하지만, 내 눈에는 권시훈만큼 귀여운 놈이 없다고.

“아무튼, 완전 너희 둘 다 내 타입이야. 그러니까 내 시력은 걱정 말고.”

“…….”

“너 이름이 권시훈이었지? 윤진이랑 같이 산다며.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내가 잘해 줄게. 내가 잘해 주는 거 진짜 잘하거든.”

완전히 어이가 털려버린 시훈은 그 자리에 굳어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규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타이밍 좋게 수업 종이 울렸다.

“이따 보자. 내 거야.”

규하는 얼뜬 시훈에게 에어 뽀뽀를 날려주고선 유유히 몸을 돌려 자기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입꼬리가 요동친다. 나는 어깨를 최대한 움츠리고 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며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권시훈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안 봐도 훤하다. 권시훈 삼십 년 인생사 중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일 것이리라.

“윤진아. 시간표 봤어? 첫 시간 문학이야.”

“아, 응. 아까 들어올 때 받았어.”

“교과서는 있지?”

“응.”

“다행이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규하는 세심히 나를 챙겨주고선 다시 앞으로 몸을 돌렸다. 하복 셔츠를 가득 메운 고등학생답지 않은 넓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문득, 뭐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알 것만 같은 규하의 기괴한 화법과 꿀 발라 놓은 것 같은 낮은 미성의 상관관계가 궁금해졌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닐 것 같아 금방 관둬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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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남친

한가린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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