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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남친-66화 (66/85)

66화

“…윤진이야?”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고 목이 탁 막히는 것 같아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달려가 안기고 싶었는데 고장 나 버린 내 다리는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그 자리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

등 뒤로 시훈의 체온이 느껴지며 허리로 단단한 팔이 둘러졌다. 너무도 익숙해서 너무 그리웠던 체향과 감촉에 그만 이성을 잃고 엉엉 울어버릴 뻔했다.

“실험 마칠 때까지 너 못 본다고 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

“아… 윤진아. 정말 보고 싶었어.”

목덜미를 덥히는 뜨거운 숨, 시훈은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며 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조금의 틈도 없이 맞붙은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울지 말아야 하는데, 시간 없는데. 눈치 없고 멍청한 몸뚱이는 자제라는 것을 몰랐다.

“흐어엉… 시훈아….”

아무리 참아보려 해도 도저히 범람하는 그리움을 이길 수 없었다. 나는 청승맞게도 오랜만에 만난 연인 앞에서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시훈아아. 시훈아.”

“응. 윤진아. 나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왜 연락 안 해. 왜 얼굴 안 보여 줘. 나 정말 죽을 것 같았어. 너 없어서 죽을 것 같았다고.”

“미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연구니까, 일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권시훈의 치료가 먼저였으니까 모두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권시훈의 연인인 박윤진에게는 무리였나보다.

울다 지쳐 앞으로 무너지려 했다. 시훈은 목이 막혀 숨을 할딱이는 나를 앞으로 돌려 안았다.

커다란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뿌연 시야 너머로 시훈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자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 줄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왜 울고 그래.”

온몸이 붕 뜨고 아릿한 느낌에 눈을 질끈 감고 더욱더 새게 시훈을 붙잡았다. 멈출 줄 모르는 슬픔을 시훈은 말없이 안아주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이미 약속된 시간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오형석은 연락이 없었다.

사실 연락이 왔더라도 그냥 무시했겠지만, 어쨌거나 연인의 재회에 대한 예우는 지켜 주는 것 같아 내심 고마웠다.

“대체 왜 연락이… 흡. 안 됐던 거야. 휴대폰도 멀쩡히 있는데.”

내 물음에 시훈은 등을 쓰다듬던 손을 잠시 멈추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 통화한 다음 날부터 약물 주입 실험을 했는데 그게 꽤 문제가 많았어. 갑자기 의식을 잃기도 하고, 며칠씩 잠들어 버리기도 하고. 그러다 갑자기 아이로 돌아갔다가, 어른이 되었다가… 아무튼 정상적으로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뭐? 치료제 개발 막바지라면서? 그런데 갑자기 부작용이 터진다고?”

“나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긴 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해 주지 않아서. 여튼 계속 회복실에 격리되어 있다가 제대로 의식 찾고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오늘 오후였고, 바로 검진받고 돌아오는 길이었지.”

“아아….”

갑작스러운 실신과 상태변화.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분명 권시훈의 몸은 큰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YOUNG’ 프로젝트에 속해있는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연구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래서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시훈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절대 막판에 나올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수상해.”

“뭐가?”

“다.”

수상해. 결과공유도 투명하지 않고 자문 연구원인 나까지 출입을 금지하다니. 외부 인력이 알아서는 안 되는 지저분한 무언가를 숨기려는 게 분명했다.

“안 되겠다. 당장 임상 빼달라고 하고 여기서 나가자.”

“지금?”

“당연하지! 여기서 더 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다른 것도 아니고 네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인데 그것만은 네 애인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어.”

“그럼 다들 곤란해지는 거 아닌가….”

“뭐? 지금 다른 연구원들 곤란한 것까지 따질 형편이야? 정말 시훈이 네 신변이 위험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흐음.”

내 설득에도 시훈은 영 내키지 않는 듯 미간을 찡그린 채로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이 나는 또 마음에 안 들어 덩달아 미간을 구겼다.

“난 치료 끝까지 받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이대로 있다간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윤진아.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던 거 기억 안 나? 이대로 임상 중단하고 나가면 치료도 끝나 버리는 건데 또 쓰러지거나 다른 부작용이 아예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물론 기억이야 나지. 그때의 충격을 어떻게 잊겠어.

하지만 여기에 남아 있다가는 이 극악무도한 새끼들이 내 애인을 얼마나 씹고 뜯고 발라먹을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나 몰라라 등 돌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 일 있을 때마다 따로 치료받으면 되잖아. 제대로 된 성장만 가능하다면.”

“그 성장이 불가능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기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윤진아. 자기야. 나도 여기 싫어. 당장에라도 나가고 싶은데, 이대로 영영 열여덟 살로 살 수는 없잖아. 이 상태로는 새로운 신분증도 만들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우리 결혼도 해야 하는데 서류상에 올릴 수도 없는, 심지어 운전면허 갱신도 못 하는 남편으로 남고 싶지는 않아.”

아, 맞다.

현재 권시훈은 주민등록상으로는 서른 살, 외견상 나이는 열여덟인 상태이니, 어딘가에서 신분을 증명할 일이 생긴다면 곤란함을 겪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많게 보려고 해도 지금 현재 권시훈의 외모는 청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작게는 운전면허 갱신이나, 부동산 계약 따위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고, 길게 보면 점점 커지는 실제 나이와 성장 나이의 갭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도 따라올 것이다.

내 스스로가 너무 쪽팔리고 비참해져 어금니를 악물고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왜 더 신중하게 고려하지 못했을까. 꼴에 과학자라는 놈이 순간적인 화 때문에 이성을 잃고 피실험자인 일반인에게 비상식적인 억지나 부렸다니.

“…조금만 참아보자. 한 달 안에 결론 날 거라 했으니 한 번만 더 믿어보자.”

“…….”

“한 달 뒤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으면 자기 뜻대로 해. 연구소를 뒤집어엎건, 소송을 걸든. 나는 이의 없으니까.”

“…….”

“알았지?”

당사자가 믿어달라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쌍심지를 켜고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알았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니 그제야 조금 풀어진 얼굴로 내 이마에 입 맞춘다.

“고마워. 윤진아.”

푸스스 웃는 얼굴이 또 너무도 사랑스러워 품에 파고들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는 손길은 서른 살 권시훈인데…. 소년의 얼굴에서 전혀 변하지 않은 그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모르고 멍청하게 기다리고만 있었던 내가 너무 한심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어. 어떻게든 연구자료를 캐내서 이 프로젝트의 진상을 알아야겠다. 단순히 노화 방지 차원의 개발이라면 진작 끝났어야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한 사람을 실험 쥐처럼 부리며 아이로 만들었다가 어른으로 만들었다가 장난질을 반복하는 놈들의 행태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너는?”

“…응?”

“너는 어땠어. 윤진아.”

어떻게 저 녀석들을 부려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불현듯 시훈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던지라 무의식적으로 되묻고 말았다. 멍청아. 여기에 나 말고 또 누가 있다고.

“내 이야기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난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내 이야기라고 해 봤자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등교하고 하교하고… 별 특별할 것이 없는데 내 연인은 무엇이 알고 싶은 걸까.

아, 별일이 있기는 했었구나.

정말 이야기할만한 일은 없었다고 대답하려다가 김태준과 김규하가 머릿속에 떠올라 어설프게 웃어 보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안 좋은 일 있었구나.”

“으응? 아, 아니야.”

“…아니라고? 그런 것치곤 표정이 별론데?”

“내 얼굴이 원래 좀 어두운 편이잖아.”

누가 들어도 대충 둘러대려는 개소리였다. 역시나 박윤진 개소리 전용 감별기인 권시훈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솔직하게 말해. 무슨 일이야.”

“…응?”

“자기 지금 본인이 무슨 표정 짓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

“모르지….”

“말하긴 곤란한데 말 안 하면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야.”

이젠 기분 파악을 뛰어넘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이쯤이면 개소리 감별기에서 독심술사 타이틀을 줘도 모자라지 않겠다.

“그게….”

하지만 속내를 들킨 것과 속내를 직접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니라고 얼버무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린지라 어떻게든 말을 해야 하긴 하겠는데 막상 멍석이 깔리고 나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머뭇머뭇. 시훈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시간이 늘어갔다. 나는 초조해 미치겠는데 청자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쟤도 정말 독하다. 상대방이 이토록 곤란해하면 모른 척 넘어가 줄 수도 있을 법한데, 제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답을 얻고야 말겠다는 심산일 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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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남친

한가린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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