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
그 순간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오늘의 일들이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버스에서 여느 때와 달리 내 엉덩이를 야하게 주물렀던 녀석이었다. 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고, 고작 30분의 웨이팅을 기다리기 싫어했었다. 왜? 고기를 구워 먹는 건 평소보다 조금 더 식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으니까.
녀석과 내가 마지막으로 관계를 가졌던 것은 중간고사 전이었다. 그 뒤로 오늘까지 참고 있었다면 꽤나 많이 쌓였을 것이다. 중간고사 후에도 내가 몇 번이나 데이트를 파투내고 심지어 만나서는 논문만 읽다가 헤어지기도 했으니까. 녀석의 욕구가 한계에 달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평소라면 어떻게든 한번 하고 싶어서 질척대던 내가 요새는 영 관심이 없다는 듯이 굴었으니.
고작 삼겹살이 맛이 없어서 화가 났던 게 아니라 내 태도가 녀석을 빡치게 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콘돔은 껴야지.”
그리고 당황한 지금 나의 움직임이 녀석에게는 조급함으로 비쳐져 만족감을 주었다는 것까지.
“오랜만이라서 콘돔 끼는 법도 까먹었어?”
상체를 일으키더니 나를 놀리듯이 웃는 얼굴로 녀석이 말했다.
나는 죄책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녀석은 내가 몇 번 빨아 주자마자 토끼처럼 사정을 할 정도로 참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게 아니었어서. 유혹도 도발도 아니었던 토닥임에 이성을 내다 버리고 부정을 저질러 버렸던 더러운 새끼라서.
머리 끝까지 차올랐던 흥분이 삽시간에 재가 되는 기분. 대가리를 박고 사죄하고 싶었다. 이대로 이여운을 안을 수는 없었다. 내 죄를 고하고 녀석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싶어졌다. 나는 그래도 싼 놈이었다. 차라리 이여운이 나를 패 죽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때 이여운이 고개를 숙였다.
“헉…?”
그리고 내 성기 끝을 머금었다. 녀석의 입술이 귀두를 감싸고 있던 콘돔에 닿고.
“아……!”
녀석은 그렇게 입으로 내 성기에 콘돔을 씌워 주었다. 물론 손을 쓰긴 했다지만…….
내 머릿속에 TNT 폭탄이 터졌다. 죄책감이고 나발이고 모든 상념이 싸그리 날아가 버렸다.
미친, 미친! 이여운,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 왔냐고!
죄책감으로 발기가 죽을 것 같았는데 이여운이 입으로 콘돔을 씌워 주는 파괴적인 행동을 한 탓에 그것만으로도 그냥 쌀 뻔했다.
역시 이여운이 짱이야. 최고야. 세상 어떤 오메가도 이여운처럼 야하지는 않을 것이다.
“흐읍-”
나는 그대로 이여운을 뒤로 넘어뜨리며 녀석에게 입을 맞추었다. 거칠게 녀석의 입술 안쪽을 탐하고 혀를 빨며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성기 끝을 자그마한 구멍에 맞추고 밀어 넣었다.
“아, 아…!”
손가락으로 풀어 주었다지만 오랜만인 삽입에 이여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모습이었다. 늘 안타까우면서도 내 성욕에 불을 당기던 야한 얼굴이었다.
조절, 조절을 해야 한다. 조절해 임재희. 상대는 오메가가 아니라고.
나는 극한의 극한까지 인내심을 발휘하며 성기를 반 정도 밀어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이여운은 힘들어했다. 깊은 안쪽은 젖지 않았기 때문에 꽤나 뻑뻑하게 느껴졌다. 조금 아쉽. 아니, 아쉽지 않다. 곧장 성기를 뽑아내 젤이 흐를 정도로 적신 뒤 다시 녀석의 안을 파고들었다.
“흐윽! 아!”
나는 괴로워하는 이여운의 얼굴을 붙잡고 몇 번이나 입을 맞추었다. 신음을 쏟아 내는 입술도, 고통과 쾌감이 뒤섞여 일그러지는 얼굴도, 은은히 풍기는 체취도 모두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여운이었다.
단번에 깊숙이 처박고 싶었다. 사실 몇 번 정도 그런 섹스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거칠게 처박아 아랫배가 들썩거리는 꼴을 본 적이 있어서.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몸은 펄펄 끓듯이 뜨거웠지만 머릿속은 얼음물을 쏟아부은 듯이 차가워졌다. 이여운은 그 오메가와는 다르다.
좁고 뜨거운 안을 한껏 벌리며 박아 넣으면 물론 뿌리까지 조이는 어마어마한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보다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조금씩 하지 않으면 녀석이 너무 힘들어진다. 물론 이여운은 내가 거칠게 처박는다 해도 받아 줄 녀석이지만…….
사랑한다. 사랑하니까 내 욕심만 채우는 섹스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오늘따라 적당히 조절하는 게 빌어먹게 힘들다.
“으, 으응, 흐읏…….”
깊게 안으로 짓쳐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허리를 놀렸다. 감질나게 전해 오는 쾌감에 입이 말라와 몇 번이나 혀로 입술을 축여야 했지만 나는 최대한 내 욕구를 참고 조절했다. 대신 적당한 깊이의 삽입에 이여운의 입에서 흐르는 신음에는 달콤한 비음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아앗, 으응…!”
그렇게 몇 번을 성기를 절반쯤 박은 채 움직이자 여운이는 쾌감에 덜덜 떨며 다시 사정했다. 아까보다는 점도가 낮아졌지만 여전히 진했다. 나는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있는 녀석을 끌어안으며 부지런히 허리를 움직였다. 오래 참았을 녀석을 더 즐겁게, 더 기분 좋게 해 주고 싶었다.
“여운아, 여운아…….”
신음처럼 그의 이름을 속삭이며 땀에 젖은 뺨에 입을 맞추고 내 뺨을 문질렀다. 마른 등을 껴안아 빈틈없이 몸을 맞대었다.
그러지 않으면 강제로 좆을 전부 다 처박아 버릴 것만 같아서. 비록 내 쾌감은 미진한 수준이었지만 나는 녀석을 향한 사랑으로 내 욕구를 억눌렀다.
“여운아, 사랑해.”
그러니 내 고백은 진심 중의 진심.
내가 어떤 죄악을 저질렀건, 변하지 않은 진실이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죄책감도 없었을 것이다. 이만한 죄책감을 느낌에도 이여운을 잃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녀석을 사랑한다.
“으응-”
이여운은 쾌감 어린 신음을 내뱉으며 내 허리에 다리를 감아 나를 조금 더 당겨 안았다. 더 깊게 박아도 괜찮다는 허락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사랑해.”
빌어먹을.
나는 이여운 모르게 이를 악물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주워섬겼다. 감히 이여운을 사랑한다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자살 충동을 동반한 죄의식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아래가 벌떡 선 지금 상태로는 자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남자가 현자가 되는 것은 욕구를 해소한 뒤에나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아, 앗!”
비명처럼 신음을 내지르는 이여운에게 입을 맞추며 나는 조금 더 깊게 녀석의 안을 파고들었다. 늘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던 몸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입으로 콘돔을 씌워 주던 녀석을 떠올렸다. 그 누구보다 야한 나의 연인.
다시는 그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내 품 안의 이여운을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
토요일. 나는 의학관 앞에 서 있었다.
원래라면 시험 기간이 아니라면 주말에는 학교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오늘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지난 데이트에서 화끈한 밤을 보낸 뒤 여운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여운이가 바빠서 그 이후로 며칠 데이트를 하지 못했지만 연락을 끊임없이 주고받고 밤에는 전화 통화도 했다. 온갖 과제로 바쁘니 학회를 줄이든가 동아리나 봉사활동을 안 하면 좋으련만.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으며 고작 2학년인데도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녀석은 그래도 정부원 형 덕분에 편해졌다며 좋아라 했다.
녀석은 어젯밤 전화 통화를 하다가 놀이동산에 가자는 제안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왜 지금 놀이동산이 아닌 학교에 와 있느냐하면.
주말에도 쥐들 밥은 먹어야 하잖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출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로 정해져 있었다. 명목상은 그러했지만 이청영 교수는 강의가 없는 시간에 연구실에 반드시 붙어 있을 필요는 없다고 내 편의를 봐 주었다. 그저 한 번씩 와서 사육 상자를 갈고 밥을 주는 일만 하면 그만이었다.
설마하니 그 매일이 주말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그렇다고 주말에는 안 해도 된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 일요일로 약속을 미루었다. 토요일에는 봐서 만나기로 정하고 보니 금요일 늦은 밤이라 감히 교수님께 연락을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문자를 보냈었다.
「교수님 주말에도 마우스 밥 줘야 할까요?」
그러나 답은 없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전화를 해 보았으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물론 아 몰라 하고 모르쇠로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귀하디귀한 오메가 마우스의 몸값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온 상황.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한숨이 나왔다.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청영 교수가 와 있으리라. 실험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어떤 잔향을 맡을 수 있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향기가 은은하게 쥐방까지 이어져 있었다.
도대체 이 인간은 왜 이렇게 페로몬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거야. 억제제를 안 먹는 건 본인 아닐까?
잠시 그냥 이대로 가 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왕 학교에 와 버리기도 했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유교보이는 여기까지 온 이상 교수님 혼자서 일을 하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쉬고 쥐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을 때.
“문 닫아!”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 후다닥 안으로 들어와서 등 뒤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꼿꼿하게 굳어지고야 말았다.
“……교수님?”
이청영 교수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손과 양 무릎으로 바닥을 딛은 채. 그가 천천히 구석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엉덩이를 내 쪽으로 향한 채로.
“아, 아니…….”
아니, 왜. 대체 왜 이런 자세를. 너무나 후배위 자세 아닌가. 아니, 갑자기 무슨 후배위야.
물론 그는 옷을 입고 가운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 실루엣이 돋보였다. 네발짐승처럼 움직이는 탓에 그의 엉덩이가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책상에 엎어 놓고 박기는 했는데, 저런 자세로는 안 해 봤다. 저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고 뒤에 붙어서 뒤치기 하고 싶다. 버티지 못하고 상체가 무너지면 제대로 대라며 엉덩이를 찰싹찰… 아니, 아니 지금 또 뭔 망상이란 말인가! 빌어먹을, 정신 차려 임재희, 이 미친놈아!
“마우스가 탈출했어. 이리 와서 길 좀 막아 봐.”
“아.”
자다가 찬물 한 바가지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제길, 내가 대체 무슨 추잡한 망상을.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가 이 세상에 없어서 너무 다행이다. 이청영 교수가 그런 능력자라면? 나가서 한강에 입수해야지, 뭐.
나는 곧 탈주한 마우스를 발견했고 이청영 교수와 다른 방향에서 엎드려 쥐를 구석으로 몰았다. 쥐방에는 쥐가 숨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없었기에 곧 마우스를 잡을 수 있었다.
직접 마우스를 붙잡은 것은 이청영 교수가 아닌 나였다.
으, 뜨뜻하고 물컹하고 단단하고 꿈틀거린다. 하지만 한 손으로 잡기에 충분히 작은 마우스가 처음처럼 징그럽지는 않았다.
“여기에 넣을까요?”
“아, 그래.”
오랫동안 마우스와 사투를 벌였던 것인지 이청영 교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래 엎드려 있는 건 물론 힘든 일이긴 하지. 그러니까 후배위… 아니, 진짜로 그만!
나는 마우스를 얼른 그가 가리키는 케이지에 넣었다. 그도 막 도착을 한 참인지 새로 간 상자는 하나뿐이었다. 머릿속을 멋대로 점유하려 드는 살색 망상을 애써 지워 내며 마우스에게 집중했다.
내게 강같은 평화. 내가 강같은 평화.
이몸의 마음은 명경지수와도 같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여운 사랑해. 내가 박는 대로 사정하던 이여운. 입술로 콘돔을 씌워 주던 이여운. 응, 역시 이여운이 짱이야.
“잘 잡는다? 이젠 안 무섭나 보네?”
“밥 주면서 핸들링 연습했어요. 처음에도 무서웠던 건 아니고, 좀 놀랐을 뿐인데…….”
“그래, 잘했어. 보정도 해 봤고?”
“그건 아직.”
“해 봐.”
이청영 교수는 마우스 보정을 내 눈앞에서 천천히 보여 주었다. 뒷덜미를 붙잡아 뺨까지 당길 기세로 모아 쥐어 움직이지 못하게 손에 쥐어 배를 드러나게 했다. 몹시 쉬워 보였지만 처음에 나는 쥐한테 물릴까 봐 뒷덜미에 손을 대는 것조차 하기 힘들었었다.
지난 며칠 동안 혼자 와서 밥 줄 때마다 조금씩 엉덩이도 만져 보고 등도 쓰다듬어 보고 정수리께를 문질러 보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의외로 마우스는 얌전하고 순했다. 고민하다가 들어서 손에 올려 두니 처음에는 얼어서 꼼짝도 못 하던 녀석이 조금씩 움직이며 손바닥 위를 기어다니는 게 약간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몸값이 비싸서 그런지 오메가 쥐라서 그런지 조금 더 정감이 가는 것 같기도…….
그 와중에 볼따구 살까지 당겨서 뒷덜미를 강하게 그러쥐는 건 다소 미안하고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나는 단번에 마우스 보정에 성공했다. 처음에 꼴사납게 나동그라졌던 게 부끄러울 정도로 녀석들은 작고 약했다.
크큭. 역시 나는 짱센 알파. 마우스 따위는 한낱 미물에 불과할지니.
“잘하네.”
내친김에 이청영 교수는 약물 주사까지 그 자리에서 시행했다. 나는 옆에서 실린지에 약을 채워 주사기를 준비했다. 이청영 교수가 손이 빨라서 수십 마리에게 약을 치는 작업은 빠르게 끝이 났다.
“근데 주말에 왜 나왔지?”
“음, 말씀은 없으셨지만 매일 밥을 줘야 할 텐데 혹시 나와야 하는 걸까 봐서요.”
이청영 교수는 잠시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밖엔 보이지 않았는데 그가 조금 놀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 진짜 성실하구나.”
그럼 누굴 양아치로 아셨나.
“근데 어차피 너 약 칠 줄 몰라서 내가 나와야 하는 거였는데.”
“아.”
멍청한 놈은 맞는 것 같다. 민망해서 얼굴이 좀 뜨뜻해졌다.
쥐방에서 나와 이청영 교수는 마스크를 벗으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내 성실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학부생한테 주말에까지 나오라고 할 생각은 없어. 내가 못 나올 때는 부탁할 테니 그때만 좀 해 줘라.”
“네, 교수님.”
확실히 사람은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법이었다. 미약하게나마 분홍빛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눈매가 부드럽게 이지러지는 모습은 오메가인 그의 얼굴을 한층 아름다워 보이게 했다. 웃을 때 향기가 더 진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던가. 아니,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
“들어가 봐. 주말인데 데이트 해야지.”
“아, 네.”
“탈취제 있나? 없으면 사서 뿌리고 가. 쥐방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옷에 냄새가 배니까.”
“네, 사물함에 있어요.”
“그래, 잘 가라.”
“교수님은요?”
“나는 잠깐 사무실에 들러야 해서.”
“예,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교수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먼저 실험실을 나왔다. 아마 실험실에서 더 할 일이 있는 모양인데 나에게 시킬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확실히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혹은 내가 별로 쓸모가 없거나.
일이 빨리 끝나서 좋긴 한데 조금 복잡 미묘한 기분이었다. 나 은근히 노예 체질이었던 걸까?
나 그래도 쥐도 이제 잘 잡는데. 도망친 쥐를 포획했던 게 떠올랐다. 마우스가 케이지를 탈출하는 일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이청영 교수가 그렇게 엎드린 자세를 볼 줄은 몰랐다. 쥐를 잡겠다고 몸을 낮추고 엉덩이만 조금 더 치켜든 모습이…… 음.
의학관 출입구쯤을 걷던 내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몸이 180도로 돌아갔다. 다리가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걷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다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실험실에 들어갔다. 여전히 그곳에 있던 이청영 교수가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두고 갔어?”
예. 뭔가 두고 간 것 같아요.
“교수님.”
“어?”
“그래도 오늘 저 잘했죠? 주말인데도 마우스 밥 주러 학교 온 거요.”
“어, 그래. 뭐… 잘했어. 고맙다.”
딱히 진심처럼 들리는 말은 아니었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내가 듣길 원한 대답이었다.
내 입이 멋대로 떠들었다.
“그럼 저 상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