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알파의 사정-19화 (19/25)

19.

등교를 하는 게 아주 죽을 맛이었다.

평소에는 늘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탓에 알람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오늘은 알람이 없었으면 일어나지도 못했을 뻔했다. 아주 뼈가 다 녹아 버린 기분이었다.

어제 영혼까지 끌어다가 데이트를 한 탓이었다. 아, 물론 그 전날 네 번이나 했던 원죄가 먼저긴 하다. 만약 어제 여운이와 또 불타는 밤을 보냈다면 아마 오늘은 정말로 눈을 뜨지 못했을지도.

그래도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던 마음은 조금 나아졌다. 어제 여운이와의 데이트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역시나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

여운이의 웃는 낯을 보고 있노라면 피로감을 이겨 낼 수 있었다. 주말인 데다가 날씨가 좋아서 놀이공원이 사람으로 미어터졌지만 오랜 대기 시간도 감내할 수 있었다. 물론 하품이 튀어나오고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잠들 것 같은 순간들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여운이와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충실히 임했다.

물론 이것이 순수한 애정만이 아니라 상당한 무게의 죄책감이 더해져 가능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미안한 만큼 잘해 주고 싶은 것 역시 녀석을 사랑한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이여운이 싸 온 김밥도 세상 다시 없을 진미라도 되는 양 맛있게 먹어 치웠다. 녀석의 정성이 듬뿍 들어갔으니 맛이 없을 리가 없었다. 객관적인 맛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한다. 나에게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아무튼 대기가 길어서 놀이기구를 몇 개 타지도 못하고 아픈 다리와 피로감만 잔뜩 얻었지만 그래도 이여운이 즐거워했으니 충분했다. 알차게 야간 퍼레이드까지 보고 놀이공원을 빠져나왔다.

완벽한 데이트의 마무리는 역시 침대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할 수가 없었다. 더 설 것 같지도 않았고 세우는 데 성공한다 해도 발기도 죽고 나도 죽었을 테지.

사실은 퍼레이드를 보고 있었을 때부터 이미 그로기 상태였다. 더는 체력 고갈을 숨기질 못해서 그렇지 않아도 퀭한 얼굴이 더욱 썩어들어 갔다. 여운이는 자비롭게도 나를 걱정해 주며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마무리가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만회할 날을 만들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나는 이여운과 헤어지지 않을 거니까.

그것이 나의 최종적인 결론이었다. 여운이를 보고 있노라면 헤어질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몽글몽글 애정이 피어오르는데 어떻게 헤어져.

이여운만 모르면 된다. 그를 속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만 버리면 연애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그 죄책감은 헌신으로 갚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이렇게나 합리적인 쓰레기다.

나는 공강 시간에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진료가 없는지 이청영 교수 역시 실험실에 있었다.

그 역시 몹시 피곤해 보이는 몰골이라 내가 좀 미안해지긴 했다.

“이렇게 꼬리를 잡아서 들어 올려.”

그런 와중에도 마우스를 다루는 그의 손놀림은 대단히 프로페셔널했다.

나는 지금 마우스에게 주사로 복강 투여 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일단 마우스의 꼬리를 붙잡아 케이지에서 꺼내 그 위에 덮어 둔 철망에 올린다. 다른 손으로 마우스의 뒷덜미를 한쪽 볼과 함께 강하게 쥐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엉덩이와 꼬리 부분을 쥐어 홀랑 뒤집는다. 그리고 마우스의 머리가 약간 아래쪽을 향하도록 손을 기울이고 몇 차례 흔들어 복강 내 장기가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게 만들어 공간을 확보한다. 이제 적당한 각도로 니들을 찔러 넣어 스킨과 복막을 두 번에 걸쳐 뚫는다. 살짝 음압을 주어 혈액이나 다른 체액이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약물을 주사하면 끝.

그 외에도 마우스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은 미정맥 투여, 피하 투여, 경구 투여 등이 있다며 설명을 들었다. 몇 가지 방법은 시범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실습. 그간 먹이를 주고 케이지를 갈아 주며 핸들링을 해 왔기에 마우스를 만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명색이 영장류 알파란 말이지. 이깟 설치류 오메가에게 겁을 집어먹을 리가 있겠는가.

다만 주사기 니들을 넣을 때는 꺼림칙한 기분에 속이 조금 메슥거렸다. 피부에 포를 뜨듯 니들을 넣는 것도 너무 이상하고 복막을 푹 뚫을 때의 기분도 너무 별로야! 마우스가 불쌍해서 마음이 다 아플 뻔했다.

하지만 이청영 교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얼굴로 실습을 감독하고 마우스 경정맥 채혈까지 가르쳐 주고 실습을 시킨 뒤에야 연습용으로 준비된 마우스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래 봐야 케이지 속의 자유일 뿐이지만.

그다음에는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었다.

매일매일 우리 오메가 마우스들이 투여받고 있는 약물이 오메가 페로몬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연구였다.

내가 지난주 내내 읽었던 논문들은 이와 유사한 목표로 진행된 여러 연구들의 논문이었고 여태까지의 결과들은 사실 썩 신통치 않았다.

내가 아무리 화학과 생물학 강의를 들었다고는 하지만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이었다. 마우스를 하도 잡아서 그런가, 머리에도 쥐가. 이따위 것밖에 안 나는 것은 내 뇌가 더 이상의 생각을 거부하기 때문이리라.

특히나 페로몬의 생합성 경로와 이에 관여하는 효소들에 대한 설명이 이청영 교수의 입에서 물 흐르듯이 줄줄 흘러나왔을 때는 영혼이 탈출을 해 버렸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는데 하나도 모르겠다. 원래 지식이라는 건 시험지에 옮겨 적고 나면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거잖아요?

“하, 그냥 대충 하자.”

놀랍게도 저것은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피곤을 눈 아래 덕지덕지 묻히고 있어도 아름다운 얼굴임을 부인할 수 없는 오메가, 아니 이청영 교수가 내뱉은 소리였다.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던 그는 본인도 이 상황이 귀찮고 짜증이 난다는 기색이었다.

그 피로감에 내가 크게 일조한 바가 있는 것 같아 양심이 따끔따끔했다. 엉덩이가 불편한지 앉은 자세를 자꾸 고치는 것도 그렇고.

“적당히 키워서 발정기 관찰하고 채혈해서 데이터 뽑고 페로몬샘 채취해서 변화 여부를 보면 된다고만 알아 둬라.”

“네…….”

“그래도 읽어 두면 좋을 논문들은 추려서 메일로 보낼 테니까 틈틈이 읽어 보고.”

아니 대충 하자면서요.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일주일에 논문 일곱 개 읽는 게 대충인가요?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할 때 하루는 쉬게 해 주셨는데 인간적으로 여섯 개 이하로 보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일까지 읽고 오라는 건 아니니까 오버하지 말고.”

“아, 네.”

그것 참 자비롭기도 하셔라……. 그런데 오늘 정작 그 논문들을 쭉 리뷰해 주는 걸 봐서는 내가 논문을 읽어 오지 않았다 해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했다. 학부 연구생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로 느슨하게 풀어 줄 모양이었다. 미리 읽으나 마나 그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기도 하고.

이청영 교수는 안경을 벗고 눈가를 문질렀다. 지쳐 보이는 탓에 그에게서는 어떤 처연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더 청초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 아니, 감히 하늘 같은 교수님을 상대로 감히 내가 무슨 생각을.

“질문 있나?”

“어… 페로몬샘에서 합성되는 페로몬은 여러 종류잖아요. 꼭 성페로몬만 합성되는 게 아닌데 페로몬샘 자체의 성장을 억제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문제가 많지. 유사한 연구 중 몇몇은 페로몬샘의 악성 종양이 발생된 케이스도 있었어. 아직 갈 길이 먼 분야고 사실 나도 이런 연구에는 좀 회의적이야. 물론 페로몬 없이도 베타들은 잘 사니까 페로몬샘 자체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교수님은 그럼 왜 이번 연구 주제를 이렇게 잡으신 거죠?”

“내가 정한 게 아닌데?”

이청영 교수는 본인도 짜증이 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전에 말한 적 없던가? 이거 내가 억지로 떠맡게 된 연구라고.”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형질의학과 노상운 교수님이 휴직하신 것도 모르나?”

“병원 교수님들 일은 제가 잘…….”

“아아. 그분이 병환으로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야. 원래라면 조희철 교수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게 맞긴 해. 조 교수가 롱펠로우 하면서 교수 임용만 보고 있었으니… 그런데 조 교수는 조금, 인망을 잃었다고 할까. 사생활에도 문제가 있는 편이었고. 그래서 결국 내가 낙하산으로 오게 된 거지.”

본인은 낙하산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대학교에서 정식 교수 임용은 어차피 공채로 진행된다. 그러니 이청영 교수가 별다른 경력이 없는데 채용된 것은 아닐 터. 오히려 공채로 뽑아도 아무런 잡음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게 아닐까.

“그랬더니 조 교수가… 흠. 자신은 여력이 안 되어서 노 교수님이 하던 연구를 맡을 수 없다고 나오더군. 스태프도 한 명도 줄 수 없고 아무튼 다 싫다고 뻗대서 이 사달이 난 거고.”

조희철이라는 이름은 나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우리 병원에 인턴 지원을 할 거면 주의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아주 유명했다. 예과생까지 알 정도로 악명이 높은 건 대체 무슨 짓을 해야 가능한가 싶었는데, 일단 성격 자체가 옹졸한 모양이었다.

물론 교수 임용만 바라보고 노예나 다름없는 펠로우 생활을 오랫동안 했으며 어렵게 임상조교수가 되었는데 난데없이 낙하산이 내려와 자신을 앞지르면 화가 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텃세를 부리는 건 어른스러운가? 그 인간 때문에 결국 지금 내가 팔자에도 없는 학부 연구생이 된 거 아니냐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데 벌써부터 조희철이가 싫어졌다. 제길, 내가 노예가 되지 않았다면 이청영 교수와 다시 얽힐 일조차 없었을 거 아니냐고.

“지금 이 연구는 노상운 교수님이 주관하시던 거야. 1차 데이터는 이미 나왔고 막 2차를 하려는데 내가 맡게 된 거지. 나도 그냥 데이터 뽑는 것까지만 하면 끝이다. 분석하고 논문 쓰는 건 노 교수님이 하셔야지. 아니면 그냥 조희철이가 해도 되고.”

“기껏 실험해서 얻은 자료를 조희철이… 교수님한테 주신다고요?”

“어차피 난 이 주제로는 줘도 안 써. 내 전문분야는 성호르몬과 성페로몬 사이의 양성 피드백 차단 쪽이니까.”

“교수님은 그럼 여기 부임하시기 전까지 하시던 연구가 따로 있었던 건가요?”

“엄밀히 말해서 나는 어드바이저로서 연구 데이터를 리뷰하는 정도였지만 꽤나 신경을 썼던 신약 개발이 있긴 했지.”

어드바이저는 대체 무슨 직책일까. 의대를 졸업하면 수련의 과정을 거치고 펠로우를 하며 술기를 쌓아 교수 임용을 기다리거나 봉직의, 혹은 개원의가 되는 정도의 미래만을 생각하던 나에게는 생소한 단어였다. 그렇다고 물어보자니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보일 것 같아서 자존심이 조금.

아니, 물론 내가 그보다 열 살 이상 어린 데다가 아직 본과 진입조차 못한 햇병아리기는 하지만서도.

“어드바이저는 뭐예요?”

결국 호기심에 묻고 말았다. 알파란 자존심도 강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심이 강한 족속들이라고.

“제약회사에서 일할 때 맡은 직책. R&D보다는 신약 허가나 약가 보험을 받고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 위한 의학적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등 보다 마케팅에 관련된 일들을 하지.”

아, 저게 그 제약 의사인가 뭔가 하는 직업이구나. 그런데 제약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어떻게 하면 대학병원 교수로 올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물론 교수 쪽이 더 명예로운 지위인 것 같기는 한데.

“학교로 오기 전에는 계속 제약 회사에서 일하셨어요?”

“처음에는 국립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했었지. 거기서는 연구하고 논문만 써도 먹고 살 수 있었고, 성과를 내면 외부 업체와 협력을 맺어서 신약 개발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까 일하는 게 나쁘지 않았거든. 성과도 있었고.”

국립의학연구소 연구원이라니. 역시 대단한 커리어였다. 임상이 아니라 거의 연구만을 하는 의사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는 의미인데, 개원의로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메리트는 충분했는데, 국립 연구소인 만큼 국가적인 지원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내과 봉직의 정도의 급여를 받으면서 연구에 따라 인센티브도 상당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연구에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갖은 연구가 진행되니 그 성과에 따라 대단한 명예를 얻을 수도 있었고, 실제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논문도 여러 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노벨 의학상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만큼 국립의학연구소에 입사할 수 있는 것은 애당초 어지간한 석학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제약 회사 쪽에서 너무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이직을 하긴 했는데… R&D보다는 마케팅 관련된 일이 많아서 다시 연구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네.”

R&D면 Research and Development인가 그건가. 얼마나 연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조금 질리는 기분이었다. 리포트를 쓰고 논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벌써 논문에 질려서 나는 벌써 사양인데 말이다.

“임상은 오랜만에 하시는 건데 괜찮으신가요?”

“이형질의학과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 해 봤자 약 처방 정도니까. 이형질에게 처방되는 약들의 기전을 나만큼 정확하게 알고 처방하는 의사도 많지 않지.”

어, 조금 재수 없긴 한데 멋있기도 했다. 내용은 분명 자기 자랑인데 자랑이 아니라 팩트를 나열할 뿐이라는 저 태도가. 이게 근거 있는 자부심 그런 건가?

“또 질문은?”

그래서 내 입에서는 얼빠진 질문이 튀어 나갔다.

“교수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 서른다섯.”

35… 나와는 열네 살 차이.

“내 나이는 왜?”

“그… 굉장히 많은 일을 하신 것 같은데 그게 대단해서요.”

“연구를 좀 많이 진행하긴 했지.”

갑자기 나는 그가 발표한 논문이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그 수가 범상치 않으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 임상에서 한동안 떠나 있었던 사람이 일반 개원가(街)도 아닌 대학병원 교수로 돌아올 수 있었으리라.

그 와중에 연애도 하고 애도 낳아서 길렀단 말이지?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기 분야에 보이는 자기 확신을 보면 상당히 멋있기도 했다.

“학부 시절부터 이형질의학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뭐, 그런 편이지. 보다 완벽한 억제제를 만들고 싶었달까.”

“완벽한 억제제요?”

“억제제로 발정기를 컨트롤할 수는 있지만 억지로 억누르는 것보다는 그냥 섹스를 해 버리는 게 효과가 좋잖아? 억제제 부작용으로 발정기에 두통이나 체력 저하를 호소하는 케이스가 종종 있어. 특히 오메가는 알파보다 발정기가 자주 오다 보니 사는 게 피곤한 경우가 많지.”

알파인 나로서는 처음 알았다. 러트가 자주 오는 편이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기도 했고, 애당초 오메가와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오메가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했나 보다.

“그러면 음, 교수님이 말씀하신 페로몬 조절이 잘 안 된다는 것도… 발정… 아니, 히트 사이클이셔서…?”

“아니, 그건 아닌데.”

이청영 교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짧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개발에 참여했던 속효성 억제제를 실험해 봤거든.”

“…네?”

“전임상 실험을 곧 통과할 예정이라 1상은 무난히 진행될 것 같은데 궁금하잖아?”

전임상은 동물실험. 1상부터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 아니, 아직 고작 동물 실험이 끝났을 뿐, 통과한 것도 아니고, 인간을 대상으로는 안정성도 평가되지 않은 약물을 호기심 때문에 해 봤다고??

나는 이청영 교수가 대단하다는 평가를 즉시 폐기했다.

이 사람 역시 제정신이 아닌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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