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알파의 사정-21화 (21/25)

21.

나는 여운이와 계속 만나면서 이청영 교수와의 관계도 지속할 생각이었다. 마음 따로 몸 따로. 인간이란 이런 짓도 가능한 동물이었으니.

그러나 완벽한 합리화를 마친 게 무색하게도 상황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달리 흘러갔다.

“이제 잘하네.”

내가 몸값 비싼 오메가 마우스에게도 제법 능숙하게 약물을 주사하는 걸 지켜보던 이청영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명백한 칭찬이었으니 이제는 상을 달라고 해야 할 차례인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네, 교수님.”

“논문은 좀 읽고 있어?”

“……예에.”

물론 읽고 있기는 한데요. 제가 이 실험실에서만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강의도 듣고 과제도 하고 쪽지 시험도 치고 그 와중에 데이트도 해야 하다 보니. 말꼬리를 흐리는 것에서 사태를 짐작했는지 이청영 교수가 자비를 베풀었다.

“천천히 봐. 다음 주 월요일에는 나도 시간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으음. 그 말인즉 다음 주는 아예 마주치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마우스 케어하고 약 치는 것도 내가 다 하라는 뉘앙스였고, 둘만의 랩미팅도 없을 예정이라고 하니. 아마 그 다음 주 월요일에나 보게 될 것이었다.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역시 내가 바람을 피우겠노라 결심한 쓰레기라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에야말로 한 판 해야 하는 것 아닐지.

“아, 먼저 들어가 보마. 실험실 문단속 꼼꼼히 하고 들어가.”

“어…… 네.”

그러나 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청영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람처럼 나가 버렸다. 덕분에 나는 기분이 조금 싱숭생숭해졌다.

저 사람… 나는 저 사람과 있으면 달콤한 냄새 때문에 계속 하반신이 심란해지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싶어서. 내가 자자고 하면 번번이 오케이를 하는 걸로 보아 내가 싫은 건 아닐 텐데 너무 쿨하잖아…?

아니, 물론. 물론 여운이를 배신하지 않았으니 너무 다행인 일이긴 한데.

실험실 문단속을 하고 나가면서도 기분이 영 미묘했다. 본능에 기꺼이 따르겠노라 마음먹었던 게 허무할 지경. 얼굴을 안 보면 몸이 달을 일도 없는 건데, 양심을 외면해 가며 합리화를 할 필요조차 없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나의 찜찜한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엄마한테서 타이밍 좋게 연락이 온 것이다!

「차 사러 언제 갈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언짢음이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증발하고 그 자리를 환희가 채웠다. 아니, 내가 조르지도 않았는데 정말로 이렇게 약속을 이행하신다고? 우리 엄마, 너무 멋지잖아?

나는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감사합니다.”

내 입에서는 감사 인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전화 너머 엄마는 피식 웃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오늘은 어때요? 저녁에 바로 가능한데.”

-그래 그럼. 이따가 강의 끝나고 병원으로 와.

“네! 바로 갈게요!”

아, 신난다. 너무 좋다. 우리 엄마가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넘치는 분이시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나는 이여운에게 신나게 자랑을 했고 이여운도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묻더라.

“너 면허는 있어?”

…그래서 그 길로 바로 학원부터 알아봤다.

***

남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면허를 딴다지만 나는 면허가 없었다. 방학이면 데이트하기 바빴고 어차피 차도 없어서 운전면허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이여운은 면허가 있었다. 작년 겨울 방학 때 내가 엄마 치과 휴가에 맞춰 2주간 가족끼리 호주로 여행을 갔었는데 그때 심심하다며 땄었던 것이다.

나도 미리미리 땄어야 했는데 마냥 미루다가 일이 아쉽게 될 뻔했다. 하지만 차를 계약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보험 문제 때문에 어차피 아빠 명의로 구매를 했으므로.

내가 갖게 된 것은 SUV 차량이었다.

처음에는 준중형 세단을 계약하려고 했는데 내 키 때문에 운전석이 너무 좁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엄마를 설득해 줘서 SUV로 결정되었다. 역시 아빠는 천사야. 효심이 절로 커져만 갔다.

차가 나오기까지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그동안 운전면허를 따기로 했다. 바로 운전면허학원에 가서 결제를 갈겼다.

학기 중은 운전면허학원의 비수기라서 교육 일정이 재까닥재까닥 잡혔다. 나는 바로 필기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이때부터는 여운이와 데이트를 할 시간도 내지 못하고 면허 취득에 열을 올렸다. 학과 교육을 이수한 뒤 가장 빠른 시험으로 접수해서 바로 합격. 이후에는 장내 기능 교육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기능 교육을 받았을 때의 설렘이란!

물론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로 정해진 트랙을 주행하며 공식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들을 머릿속에 넣기 바빴지만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찾아서 보며 열심히 공부를 했고, 엄마와 함께 공터로 차를 끌고 나가서 운전대를 잡아 보기도 했다.

아직 기능시험도 합격하기 전이라 운전을 하면 안 되지만 엄마는 공터까지 왔으니 상관없다며 쿨하게 연습을 도와 주셨다.

알파기 때문인지 타고난 것인지 나는 운동 신경과 공간 지각력이 좋은 편이었고, 물론 사람 없는 공터에서의 운전이었지만 차를 굴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엄마는 브레이크를 천천히 끊어 밟으라느니, 핸들 좀 확 꺾지 말고 스무스하게 꺾으라느니 하는 잔소리를 했다. 엄격, 근엄, 진지하게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붙잡은 채로.

“그렇게 불안하시면 아빠랑 같이 오지 그러셨어요.”

“송희 생각해야지.”

…아니 도대체 무슨 예상을 하셨던 거야. 송희 생각을 왜 해. 왜 이렇게 어조가 결연한 건데.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일가족 비명횡사 사고라도 일어날 것 같았냐고. 대체 나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낮으셨던 거죠. 아까 쿨한 척을 하지나 마시든가요.

물론 만에 하나 사고를 당하더라도 남편이 당하느니 내가 당하는 게 낫다는 마인드는 본받을 만한 것 같긴 한데요… 예, 좀 그렇네요. 아무튼.

어쨌거나 나의 일상은 바쁘게 흘러갔다. 학교 다니고, 실험실 마우스 돌보고, 학원 다니며 시험 준비하고. 데이트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에는 여운이가 바빴고.

물론 이청영 교수와 밤을 보낸 일도 없었다. 애당초 예상했던 대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나 혼자 케이지를 갈고, 나 혼자 밥을 주고, 나 혼자 약을 치고……. 이젠 모든 것에 능숙해져서 한 시간이면 거의 끝낼 수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실험실에 들어갈 때면 기분이 조금 찜찜해지곤 했다. 아직 받지 못한 학부 연구생 장학금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래서 2주 정도 데이트다운 데이트도 못 하며 바쁘게 살다가 드디어 토요일, 대망의 장내 기능 시험의 날이 도래하였다.

이여운은 MT를 가버렸고 나는 혼자 시험장에 왔다.

생각보다 시험 보는 사람이 많아서 대기실에서 기다리기를 얼마간. 솔직히 별로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연수를 받으면서 내가 운전을 오죽 잘 했어야 말이지. 게다가 동영상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 직각주차에서 고배를 마시는 사람이 많다기에 엄마와 공터에 갔을 때는 어설프지만 선을 그려 놓고 연습도 꽤 해 보았다. 학원에서 가르쳐 준 공식도 완벽히 숙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고.

“내리세요.”

나는 장렬히 탈락했다.

그것도 그토록 연습했던 마의 직각주차, 일명 T주차 구간에서.

직진을 해서 차를 쭉 밀어 넣고 핸들 돌려서 후진을 하는데 삐이이 소리가 들리더라. 당황해서 브레이크인지 액셀인지 모를 것을 확 밟았더니 덜컹하고 차가 흔들렸다. 연석을 밟아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탈락…….

끝까지 완주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내려서 터덜터덜 사람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들어왔고.

-…푸…….

어찌 되었냐고 묻는 이여운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정을 설명했더니.

-푸하하하하하하하!!

박장대소가 돌아왔다. 난 지금 영혼까지 탈곡됐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아, 미친. 너무 웃겨. 탈락하는 사람 있다고 듣긴 했는데, 아 너무 웃겨.

“나 지금 완전 멘탈 박살났거든? 연습 때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는데…!”

-아이고, 그러셨어요? 근데 탈락이네?

이여운은 아주 대놓고 낄낄거렸다. 진짜 너무해…….

-하아, 덕분에 크게 웃었다. 너 아주 자신감 넘쳐하던 게 생각나가지고.

“…….”

누가 이렇게 떨어질 줄 알았냐고……. 이래서 인생은 실전이라는 소리가 있는 건가. 여운이는 실컷 놀려먹은 주제에 뒤늦게 나를 달래며 부드럽게 말했다.

-다음 시험 접수하고 가. 돌아가서 내가 같이 연습해 줄게.

“응……. 오늘 오지?”

-어. 근데 아마 뒤풀이할 것 같아. 내일 만날까?

“응. 술병 날 정도로 마시진 말고. 얼른 와서 위로해 줘.”

-그래, 그래. 내일 봐. 내가 아주 끝장나게 위로해 줄게.

으음. 내가 말한 위로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끝장나는 위로라고 하니 19금스러운 게 생각나는 건 내 안의 마귀 때문일까. 하지만 또 위로 중 최고는 몸으로 하는 위로가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운전면허 시험에 미쳐서 꽤 오랫동안 안 했었고……. 또 이청영 교수하고 할 일도 없었으니까, 음.

-어, 나 가야겠다. 끊을게.

“응. 보고 싶다. 사랑해.”

-나도.

여운이는 키득키득 웃으며 답을 해 주곤 전화를 끊었다. 하아, 역시 나의 천사. 물론 시험에 떨어졌다는 소리에 너무 웃어서 좀 상처 받긴 했지만, 오히려 여운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어 주니까 털어 버릴 수 있는 것 같기도…… 는 개뿔.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욱 시궁창에 처박힌다.

온 가족이 다 오늘 나 시험 보는 거 알고 있고, 붙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는데… 가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임송희는 이여운보다 더 신나게 나를 놀려 댈 테고, 엄마는 한심해할 테지. 아빠는 나를 위로해 줄 텐데 솔직히 그게 더 서글플 것 같아.

흑흑, 안 봐도 뻔해서 너무 집에 가기 싫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진짜로 운 건 아니지만 다음주 시험을 또 접수하려니 돈이 아까워서 피눈물이 난다고.

나는 결국 핸드폰을 꺼내서 아빠한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떨어졌어요. 속상하니까 친구 만나고 들어갈게요.」

이 정도면 아빠가 엄마하고 송희를 좀 단속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아, 오늘 나 너무 찌질한 것 같다. 괜찮은 척하고 싶은데 내가 너무 바보처럼 느껴져서 기분을 전환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걸 떨어져?

나 임재희. 어릴 때부터 모든 시험에서 우수한 결과를 받았던 남자. 하지만 오늘로서 뭔가 크게 망한 것 같다. 살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건 아는데 좌절감이 생각보다 컸다. 이것이 바로 처음으로 맛본 실패의 맛…? 아주 아리다, 아려.

집에도 들어가기 싫고 여운이도 없고. 어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물론 나도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친하던 놈들과도 한번씩 만나서 놀곤 했고 대학교 동기들도 있었다. 그리고 또,

“…….”

……이청영 교수님도 있고.

핸드폰의 연락처 목록을 넘기던 도중 내 손가락이 굳어 움직이질 않았다.

으음. 토요일에 실험실 관련된 일도 아닌데 교수님한테 연락을 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그럴 사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적으로 연락해서는 안 되는 사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음. 위로 중 최고는 역시 몸으로 하는 위로…….

고민하던 사이, 내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는 정말로 그럴 의지가 없었는데 또다시 사령탑의 명령을 거부하고 손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헉, 하는 사이 신호음이 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전화를 끊었어야 했으나…….

-여보세요?

그가 전화를 받아 버렸다.

-여보세요? 임재희?

“…어, 그.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지? 실험실에 문제라도?

교수님이 그렇게 질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일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으니까, 내가 전화할 용건은 공적인 것이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교수님.”

나 지금.

“혹시 오늘 시간 되시나요?”

엄청나게 위로 받고 싶은 걸.

이청영 교수님은 내게 시간을 내 주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른 곳에서 만났고, 방에서 만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나를 부른 곳은 한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온갖 살색 욕구로 가득 차서 온 나로서는 조금 당황할 수밖엔 없었다. 물론 식사를 하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사복을 입은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늘 정장 차림에 가운을 입은 모습만 봐 왔던 것이다.

사실 가운과 넥타이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남색 셔츠에 검정색 슬렉스라는 무난하고 평범한 차림이었다. 그럼에도 가운과 넥타이의 부재로 그는 더 어려 보였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 역시 오메가 외모는 사기 중의 사기다.

내가 사복 차림의 그를 관찰하는 동안 이청영 교수는 적당히 치킨텐더 샐러드, 설로인 스테이크, 파스타를 하나씩 시켰다. 나는 뭐든지 잘 먹어서 다 좋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친절한 서버가 음료 선택을 물었다. 마침 일정 금액을 내면 맥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시험에 탈락한 패배자가 입맛을 다시고 있노라니 이청영 교수가 물었다.

“맥주 마실래?”

“교수님은요?”

“나는 딸기 에이드. 맥주랑 딸기 에이드 주세요.”

아니… 나는 교수님 안 마시면 나도 괜찮다고 하려고 했는데 그는 시원시원하게 주문을 해 버리셨다. 어찌나 시원한지 추울 지경이야.

일단 빵이 나와서 나이프로 빵을 조각조각 잘랐다. 시간은 네 시로 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각이었지만 아점을 먹었던 탓에 배가 고팠다. 빵부터 허겁지겁 먹고 있노라니 이청영 교수도 전에 한정식 집에 갔을 때보다 복스럽게 먹고 있었다.

“식사 언제 하셨어요?”

“음…….”

빵 다음으로 나온 샐러드를 우물우물 삼키며 그가 대답했다.

“어제 저녁에.”

그럼 오늘은 이게 첫 끼란 말이냐. 내 눈이 동공지진을 일으키자 이청영 교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혼자 챙겨 먹으려니 조금 귀찮더라고.”

음. 아이는 어디에 갔기에 혼자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을까.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내밀한 부분이었으니까. 또 결혼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있다는 오메가의 사정이 얼마나 무거울지 알 수가 없어 궁금하면서도 묻기가 저어되었다.

“그래도 잘 챙겨 드세요. 너무 마르신 것 같아요.”

“그러고 싶은데 살이 잘 안 쪄. 억지로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운동을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운동을 하면서 식단을 하면 소화 기능이 개선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라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는데, 음……. 침대에서 하는 운동이라면 내가 많이 도와 줄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 버렸다. 게다가 너무 말라서 깊게 박아 들어가면 볼록볼록 올라오는 아랫배가 또…….

“……무슨 생각 하냐?”

세상 경멸한다는 눈초리가 나를 난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이다. 마침 서버가 맥주를 가져다주어 나는 그것을 벌컥벌컥 마셨다. 목이 탄다, 목이 타. 지금 내가 밥을 앞에 두고, 밥 사 주시는 분을 대상으로 대체 무슨 생각이래.

“너는.”

“네?”

“무슨 일인데?”

“저요?”

“목소리가 안 좋던데. 지금은 좀 나아 보이긴 한다마는.”

“아…….”

이 사람 설마. 내가 전화했을 때 우울한 목소리여서 지금 밥을 사주는 거란 말인가. 물론 혼자 먹기는 귀찮다는 이유로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으니 본인도 뭔가 먹기 위해서였겠지만. 나 조금 착각해 버릴 것 같다고.

“…아니, 별건 아닌데요.”

“뭔데?”

“……저…….”

아 씨, 입에 담으려니 갑자기 너무 쪽팔린데.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얼굴이며 목덜미가 후끈해졌다. 민망해 죽겠다. 하지만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별일 아니었음을 당연히 말해 줘야 했다.

“……저 오늘 면허 시험 봤는데 떨어졌어요.”

“…의사 면허는 아니겠고. 운전면허?”

“……네.”

“…….”

아니… 저도 저 한심하다는 거 알거든요? 떨어진 것도 한심하고 고작 그거 떨어졌다고 세상 망한 것처럼 절망하는 것도 웃기다는 거 알거든요? 그래도 그 같잖다는 눈은 좀 너무한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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