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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그 후. 2 (9/57)

#외전, 그 후. 2

“카르. 너도 번호 불러 줘야지.”

크란에게 번호를 받아낸 키온 형이 드디어 이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나는 팔튼의 말로 인한 가벼운 충격에 잠긴 채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여기. 미스트가 아니라도 현실이 있었다. 그 당연하고도 간단한 사실이 왜 이리 내 머리를 두들기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물론 나였다.

사실 그동안 나는 줄곧 겁을 내고 있었다.

타인과 마주치기 싫다. 관계되고 싶지 않다. 그 두 가지만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물리쳤고, 그것은 이 미스트에서도 변한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키온 형이 떠날 때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유완이나 크란과 함께 다니면서도 서로의 현실에 대해서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지금 유완을 잃었다.

솔직히 말해서 앓아누웠던 일주일간 가장 뼈아프게 생각했던 것은 이제 퀘스트로 연결된 것도 끊겼을 유완과는 아예 연락의 고리 자체가 없어졌으리라는 사실이었다.

마음속에는 두 가지의 상반된 생각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나는 유완과의 이별을 지금까지처럼 받아들이고 묻어버리려는 쪽.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런 식으로 포기하고 받아들여 버린다면, 다음에 또 잃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초조함이었다.

어쩌면 유완은 시작일지도 모른다. 크란도 죽을 수 있고, 키온 형이나 팔튼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 나도 까딱 잘못하면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미스트에는 현재 게임 내에서 직접 쓴 편지나 전서조 이외에는 유저들 사이의 통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건 일부러 구현하지 않았다는 게 새턴 측의 설명이었다. 그래도 그 부분을 오히려 현실성 넘치는 몰입이 가능하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유저들이 더 많았기에 큰 반발이 나온 적은 아직 없었다. 미스트의 재미는 그 정도로 덮어 버리기에는 너무나 컸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매우 짜증스러웠다. 만약 그런 기능까지 전부 구현되어 있었다면, 나도 그들과 연결되는 데 있어서 지금보다는 덜 반발심을 느꼈을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해봤자 별 소용이 없군.’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키온 형은 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크란이나 팔튼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았으면 급한 성격에 몇 번은 재촉했을 사람들이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나는 지금 유완의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얼마든지 갑자기 연락이 끊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카프로스란 놈은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솔직하게 생각해 보는 거다.

답은…….

‘답은…….’

싫다.

이제 그딴 건 나도 진력난다.

‘그리고 이왕이면…….’

미스트에서 만난 그들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

알고 싶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흠칫 놀라 표정을 굳혔다.

‘알고 싶다……? 알고 싶다고 생각했나, 내가?’

“하…….”

“카르?”

눈을 가늘게 내리깔고 있던 내가 갑자기 한숨처럼 웃음을 터뜨리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그게 답이다. 현실에서의 나에 대한 거부감과 반발 같은 모든 것을 제쳐 놓고 순수하게 눈앞에 있는 이들에 대한 나의 마음을 생각해 보자면, 나는 이들과 좀 더 오래 같이 다녔으면 좋겠다. 좀 더 잘 알고 싶고, 그리고…… 내가 만약 멀쩡한 놈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만났을 것이었다.

내가 멀쩡했다면…….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카프, 너무 그러면 연락처 꼭 알려 주지는 않아도… 도… ㄷ…… 흐흑, 제길. 알고 싶어!”

“……빌어먹을. 나도 마찬가지다!”

“오. 네가 남자 연락처를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기는 처음인걸.”

“찢어진 입으로 말하면 다 말인 줄 아냐!”

“어. 난 잘생겼잖냐? 크하하하!”

“씨발…….”

내쳐질 것에 먼저 겁을 내며 사람을 밀치는 것은 이들에겐 필요 없을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나직이 입을 열었다.

“03B-348-S267KA.”

“이 새……! ……어?”

“카프?!”

“허?”

“03B-348-S267KA. 내 번호.”

기쁘게 흘러나오는 내 연락처는 사실 내가 말하면서도 꽤 낯설었지만 이제부터는 익숙해져야겠지.

“03B-348-S267KA! 외웠어! 나 다 외웠어!”

“카르. ……짜식!”

감격하는 크란과 내 머리를 힘차게 흐트러뜨리는 키온 형, 그리고 왠지 뒷일이 좋지 않을 듯한 눈빛의 미소를 짓고 있는 팔튼. 셋 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후회는 되지 않았다. 다만 축제의 도가니 같은 셋에게 한마디는 분명히 해두었을 뿐이었다.

“단지…… 나중에 놀라지는 마.”

“응? 뭐라고? 크흐흐흐!”

“깜장검사 불쌍한 놈……. 죽어서 이것도 못 보고 가는구나. 흐흐흐흣.”

“…….”

제대로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은 했으니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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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에서 이변이 끼어들었던 길드전이 일어난 후, 더 미스트 공식 홈페이지는 그 이변의 주인공들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맨 처음으로 올라온 동영상에서는 자그레브에서 두려울 정도로 강한 고렙 유저로 암암리에 인식되어 있던 페일 나이츠 길드마스터 시저가 어느 유저들을 쫓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쫓기는 이들은 전혀 그에게 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중 하나는 땅에서 엄청난 크기의 기둥을 뽑아내는 믿을 수 없는 대규모 마법까지 쏟아내어 유저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동영상의 마법사 유저가 사용한 마법이 틀림없는 5서클의 스톤 엣지라는 것이 밝혀진 것 또한 얼마 되지 않아서였고, 게임 최초의 5서클 구현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그와 그 일행들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수많은 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 반응은 그야말로 열화와도 같았다.

줄줄이 올라오는 길드전 때의 여러 스크린샷이나 동영상들에서도 부분적으로 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맨 처음 유저들의 관심이 쏟아진 검은 후드의 마법사 유저 말고도 그를 호위하듯 선 두 명의 검사 유저들도 각광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현재까지 비견될 이가 없다고 예상해왔던 시저의 상급 오러와 거의 비슷한 오러 소드를 든 모습이 확인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많은 유저들이 엉켜 있던 난전에서도 잠깐의 등장만으로 완벽하게 시선을 끌어버린 그 세 명의 정체를 알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었지만, 추측만 이리저리 난무할 뿐 제대로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었다. 그들 중 마법사 유저는 애초부터 후드로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두 명조차 가까이에서 찍힌 영상이나 스크린샷이 전혀 없었다는 점은 그들의 얼굴을 신비 속에 남기기에 충분했다.

일부에서는 예전에 한 번 올라와 뭇 여성 유저들의 호응을 받았던 토렐리트 미남 검사들의 듀얼 영상 속 인물들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와 또다시 일부 유저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 방향으로만 받아들여졌을 뿐이었다.

또 다른 의문점은 그들이 모습을 최초로 드러냈던 것이 길드전임에도 정작 속한 길드는 없었다는 사실이었는데, 덕분에 또 한 번 그들의 정체에 대한 수많은 추측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인 자이언트 길드마스터가 입단속을 통해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시키고, 약소 길드인 매직토피아 길드 같은 경우 처음부터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더불어 난전 중 그들을 쫓아간 페일 나이츠 길드마스터 시저 또한 이후 그 셋처럼 모습을 감추었으므로 진실은 밝혀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후 미스트 유저들 사이에서는 그 세 명의 유저들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생겨났고, 별칭까지 생길 정도로 유명세를 탔으나, 정작 그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많은 아쉬움을 낳았다.

“이번에 화제가 된 세 명이 바로 H-Zero, 히어로즈 제로 퀘스트의 일원들입니다.”

더 미스트의 한국 지사 지부장 윤석호는 한 사내의 앞에 선 채 느긋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윤석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는 날카로운 눈으로 앞에 펼쳐진 더 미스트 홈페이지 내에 올라와 엄청난 리플로 반응을 얻고 있는 화제의 동영상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화면 옆에는 전에 윤석호가 가져왔던 HR-02 유저의 마법 시전 광경이 비교화면으로 함께 돌아가는 중이었다.

날카로운 눈빛 덕에 제법 인기가 있을 법한 사내의 시선이 두 영상 사이를 휙휙 오갔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알겠어. ReL 프로젝트의 마지막 L-10 유저가 이 사람인가?”

“그리고 H-Z 퀘스트의 HR-02이기도 하지요.”

“음.”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 보였다.

“저 동영상 때문에 유저들 사이에서는 FM이라고 불리더군요. First Five Magic Master의 준말이라던가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라디오 채널도 아니고 말이죠. 아마 그 주인공이 들었다면 제법 어이없어했을 겁니다.”

윤석호는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가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사내는 전혀 분위기의 변화 없이 비교 영상을 끝까지 확인한 다음 화면을 리모컨으로 끄면서 의자를 빙글 돌렸다. 방 안이 순식간에 소름 끼치도록 적막해졌다.

사내는 그 자세에서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윤석호를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며 내뱉듯 입을 열었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우리 측에서도 대충 차단시킨 것은 현명했어.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H-Zero보다는 ReL이라는 것을 잊지 마. 이 이후에 있었던 HS-04 퀘스트 도중에 L-10이 잠시 문제를 일으켰었다고 들었는데, 한 번 더 그런 비슷한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큰일일 테지.”

윤석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내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다른 어떤 실험군보다도 L-10은 변수의 요소가 많아. 원래대로라면 그에게서 H-Zero를 취소시키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두 개가 겹치면서도 이런 능력을 발휘해 주는 실험군은 특별한 경우이기에 좀 더 지켜보는 거야. 애초에 네 변덕으로 끌어들인 사람이니만큼, 처리는 확실히 해 줘야 해.”

사내의 표정을 지켜보던 윤석호는 잠시 후 곧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였다.

“네. 주의하지요, 장명진 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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