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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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캡슐이 열리고 몸에서 떨어지는 기계들을 느끼며 천장의 무늬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몸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팔을 내밀어 캡슐을 잡고 상체를 일으킨 다음 다시 땅을 짚고 캡슐 바깥으로 나왔다. 서늘한 집 안 공기에 식은땀으로 젖어 있던 몸이 싸늘하게 식는 감각은 그리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컴퓨터, 온도를 올려.”

[ ……알겠습니다. ]

곧바로 위이잉 가동되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앉아 있을 때, 컴퓨터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 부재중 화상 전화가 13건 있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

부재중 전화가 열세 건이나 있었다고……?

“확인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거실 쪽에서 이쪽으로 보이는 각도로 홀로그램 화면이 팟 하고 떠올랐다.

[ 1. 15:07:39 :화상: [크란] - 01c 818 4505 ]

[ 2. 15:08:24 :화상: [크란] - 01c 818 4505 ]

[ 3. 15:08:55 :화상: [크란] - 01c 818 4505 ]

[ 4. 15:09:41 :화상: [크란] - 01c 818 4505 ]

[ 5. 16:01:29 :화상: [크란] - 01c 818 4505 ]

…….

‘크란……?’

열세 건 전부 크란의 번호가 찍혀 있는 것에 내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그 목록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때, 갑자기 삐리릿 하는 소리가 컴퓨터 쪽에서 크게 울렸다.

삐리릿, 삐리릿! 삐리릿, 삐리릿!

[ 등록명 [크란] 님에게서 긴급 화상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저도 모르게 큰 숨이 막혔다 터지는 것을 느꼈다.

“하…….”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거실로 나가 화상 전화를 수락하자 곧바로 허공에 징 하고 홀로그램이 펼쳐지면서 크란, 아니 민후의 얼굴이 크게 나타났다.

팟!

[ 카프! 나야, 괜찮은 거야? ]

매우 급했는지 나오자마자 게임 속 이름을 있는 대로 크게 외치면서 화면을 향해 얼굴을 들이미는 민후의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표정을 보자 뜨거운 어떤 것이 내 속에서 끓어넘쳤다.

“너…….”

[ 아까는 그런 부탁이나 해서 정말 미안했어! 그런데 진짜 한 방에 얼려지면서 바로 로그아웃되는데 어찌나 춥던지, 아직까지도 온몸이 다 냉동된 기분이라니까. 앞으로는 집 냉동실에 얼려져 있는 생선들을 보면 눈물이 흘러서 어떻게 먹나 싶다. 아니, 내 말은 이게 아니고……. ]

혈색이 펑펑 돌다 못해 열을 내며 말하느라 상기까지 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방금 전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새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을 겹쳐 떠올렸다. 피로 젖은 갑옷과 망토가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 눈앞에 있는 크란…… 아니, 정민후는 이렇게 멀쩡한 것을 보니 아까의 일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분위기를 띄우려는 밝은 모습과 더불어 오히려 나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는 민후를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 어? 엉? ]

당황한 빛이 역력한 민후를 향해 나는 한 번 더 힘겹게 중얼거렸다.

“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네가 죽은 건 다 나 때문이야.”

시저는 위험인물이니 절대 무작정 마주치지 말고, 피하자고 말했던 녀석에게 나는 나 혼자라도 가겠다고 주장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어이없는 방만한 태도였던가. 크란이 친구를 두고 갈 성격이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억지를 부린 것이다. 내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혹시 나중에 시저가 뒤따라오기 전에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결국 크란은 멍청했던 내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실제로도 내가 죽였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조용하던 홀로그램 너머에서 다정한 부름이 들려왔다.

[ 카프. 아니, 무헌아. ]

전혀 화내는 기색도, 불쾌해하는 기색도 없이 부르는 소리에 쥐고 있던 주먹을 더 꽉 쥐자 민후가 한층 나직하게 불렀다.

[ 무헌아. 나 좀 봐봐. ]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자, 민후는 정말 기분 좋은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

[ 만약 그때 네가 내 말에 따라 도로 돌아갔더라도, 아마 시저는 언제고 다시 우리를 쫓아오지 않았을까? 그것도 엄청 높은 확률로 말이야.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면 그렇잖아.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오늘 마주쳐서 큰 타격을 입힌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것일 수도 있어. 적어도 앞으로는 우리를 건드리기 전에 좀 조심성을 키워서 올 거 아냐? ]

“그렇다고 해도…….”

[ 지금 내가 기분이 약간이라도 안 좋아 보여? 아니지? 게다가 애초에 난 성사 스킬의 효과를 너한테 제대로 말도 안 했었고……. 네가 그렇게 놀란 건 처음 봤다니까. 그러니 오히려 네가 나를 두드려 패도 될 일이지. ]

그 말은 맞다. 진작 내가 그 성사 스킬의 효과를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크란이 나에게 그 스킬을 걸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내 얼굴에 드러났는지, 민후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 으하하핫. 그래도 난 그 스킬 이번 일로 아주 마음에 들었어. 진짜 네가 찔려서 죽었다면 난 다 때려치우고 PK하러 갔을걸. 침착한 너니까 그 와중에 수습도 하고 날 처리도 해 준 거지. 안 그래? ]

사실은 민후가 나보다 더 침착하고 시야 넓은 녀석임을 안다. 그런 녀석이 자신을 깎아내리면서까지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결국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그 스킬을 나한테 쓰지 마. 한 번만 더 나에게 그 스킬을 쓰면 아예 나랑 얼굴 안 볼 각오를 해라.”

진심을 담아 싸늘하게 내뱉자 잠깐 머리를 긁적이던 민후가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 어…… 물론이지. 앞으로는 절대 오늘 같은 일은 없을 거야. 두 번 다시는 죽을 일도 없을 정도로 강해질 테니까. ]

그 확답을 듣고서야 나는 간신히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앉아 있던 소파 뒤로 깊숙이 몸을 묻으면서 물었다.

“접속 불가 기간은 며칠이냐?”

[ 아…… 그건 일반 페널티 기간밖에 안 돼. 현실 시간으로 3일. ]

3일이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자 민후가 약간 가라앉은 표정을 지었다.

[ 응. 그러니까 3일 동안 너도 조심해. 시저가 또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그리고 돌아갔을 때는……. ]

[ 민……! 당장……와! ]

민후가 점점 가라앉는 눈으로 말하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자신의 뒤쪽을 돌아보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으…… 이 이상 통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그럼 무헌아, 3일 후에 보자! ]

그 말에 막 그러마 마주 인사하려던 찰나, 갑자기 민후가 퍼뜩 눈을 부릅뜨고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더니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그런데 요즘 너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안색이 왜 그렇게 안 좋아? ]

“뭐?”

그 말에 나는 뭔가 싶어 얼굴을 만져 보다 고개를 저었다.

“별로.”

[ 아닌데…… 진짜 좀 어디 아픈 것 같단 말이야. ]

[ 막둥아! 10초 내로 안 끊으면 큰누나랑 면담 좀 하자! ]

민후의 걱정스러운 말과 동시에 아까부터 시끌시끌하던 소리 중 한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내가 약간 놀라 눈을 크게 뜨자, 민후의 표정이 두려운 듯한 표정으로 구겨지며 뒤로 고개를 돌리고 소리를 쳤다.

[ 끄…… 끊을게요, 누나! ……그래. 그럼 이만 끊을게. 몸조심하고 3일 후에 보자. ]

“너도…….”

뚝!

좀 더 제대로 된 인사를 하기도 전에 서둘러 뚝 끊겨버린 화상 전화는 올 때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흰 빛만 새어 나오는 홀로그램 화면을 보다 무심코 이마를 훔친 손에 땀이 배어나오는 것을 보고 갑작스럽게 더위의 진득함을 느꼈다. 목욕이 간절히 하고 싶어졌다.

“컴퓨터. 욕실 활성화 좀 시켜 줘.”

[ 활성화하겠습니다. ]

곧바로 욕실 안쪽에서 탁 하고 불이 켜지며 물 받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아 밖이 꽤 밝았다. 목욕하고 나서 나가기보다는 지금 밖에 나가 맥주라도 몇 캔 사 오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았지만 물보다 좀 더 속까지 시원하게 뚫는 것이 마시고 싶을 때는 맥주를 조금씩 마시고는 했는데, 말 그대로 아주 가끔씩이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사러 나가야 하는 것을 아는데도 왠지 지금 굉장히 갈증이 느껴져 몹시 마시고 싶었다.

갈증이 나는 목을 어루만지며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대충 청바지를 하나 꺼내 갈아입고 외투를 걸쳤다. 하지만 지팡이가 있는 현관문으로 가기 위해 몇 걸음 걷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런…….’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잘 맞았던 바지가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헐렁해져 흘러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들어가 벨트를 꿰고 나오면서 나는 꽤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마트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있었다. 어렵지 않게 맥주를 세 캔 사서 봉지에 담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큰길 앞쪽에서 빙글빙글 돌며 배회하고 있는 바이크 한 대를 보았다. 마트를 다녀오는 잠깐 사이에 해가 금세 거의 져버려 어두워진 길에서 검은 바이크와 그 주인은 주변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아니었다면 알아보기도 힘들었을 정도로 온통 검은색을 두르고 있었다.

‘저러다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조심성이 없군…….’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느린 발을 좀 더 빠르게 움직이려 노력해 그 바이크의 근처까지 다가갔을 때, 나는 왠지 바이크의 뒤꽁무니가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보았었나?’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다가가자 이번에는 어렴풋이 보이는 헬멧을 쓰고 있는 바이크 주인의 뒷모습까지도 어디서 본 것 같았다. 두 번이나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세히 뜯어보니 그 뒷모습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내가 아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심히 닮아 있었다.

‘설마…….’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유…….”

무심코 게임 내 이름을 말하려다가 입을 다문 내 쪽으로, 배회하던 바이크가 불빛을 비추며 멈추었다. 너무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는데, 규칙적으로 부릉거리던 엔진 소리가 순간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부아아앙!

바이크가 내 앞에서 급하게 멈추느라 바퀴가 아스팔트에 마찰되는 시끄러운 소리가 조용한 도로에 사정없이 울려 퍼졌다. 내가 당황하든 말든 그 자리에 멈추자마자 머리에 쓰고 있던 헬멧을 집어던지듯 벗은 바이크 주인은 제대로 세우지도 않아 기우뚱거리는 바이크도 신경 쓰지 않고 달려와 나를 팍하고 끌어당겨 안았다.

“카프……!”

“유완.”

놈도 나를 카프라고 불렀겠다, 그냥 익숙한 이름대로 불러버리자 잠시 그렇게 있는 힘껏 껴안고 있던 제환의 팔이 간신히 숨을 고른 뒤에야 떨어져 나갔다. 그러고 나서 제대로 마주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놈답지 않게 흥분한 듯 약간 붉어져 있는 얼굴이 보였다.

‘이 녀석이 이런 녀석이었나? 아닌데…….’

진제환, 즉 유완은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고 해서 크란처럼 사람을 포옹하거나 하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왠지 안심한 듯한 눈을 보고서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도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냐?”

“전에 너를 데려다줬을 때…….”

아…… 전에 만났을 때 여기쯤까지 데려다주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여기까지는 대체 왜 온 거지? 만약 내가 맥주를 마시고 싶어 밖에 나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우연찮게 만날 일도 없이 돌아가야 했을 텐데.

미리 연락하지도 않고 여기서 계속 방황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왜?”

아무리 생각해도 제환이 여기까지 그렇게 급하게 찾아왔어야 할 이유로 짐작 가는 것이 없어 묻자, 제환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어졌다.

“나는 네가…….”

“어?”

“……영상을 봤다.”

“영상이라고?”

무슨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제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못 봤나 보군. 혹시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그거야 뭐…….”

이 근처가 바로 우리 집이니…….

“그런데.”

막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하려던 찰나,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제환이 문득 양미간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가?”

“뭐?”

오늘 들어 두 번째 듣는 비슷한 말에 나는 눈을 약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전에 비해서 얼굴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려던 제환이 마주 쳐다보고 있는 내 시선을 알아차린 듯, 손을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괜찮다면 상관없지만.”

“난 멀쩡한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군. 어쨌든 이 근처가 바로 우리 집이니까 그쪽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제환은 내가 집으로 가자고 하자 퍼뜩 정신이 든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쓰러져 있는 바이크와 널브러져 굴러다니고 있는 헬멧을 발견하고 싸늘하게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고 나서 전처럼 나를 뒤에 태워 준 제환 덕에 나는 걷는 것보다 편하게 집까지 올 수 있었다.

문 앞에 서서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삑 하고 인증되는 소리와 함께 철컥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지팡이를 현관에 놓으니 제환이 뒤따라오며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이 보였다. 흘끗 욕실을 보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물을 다 받아놓고 목욕할 준비를 마쳐놓은 모양이었다. 지금 바로 들어갔으면 소원이 없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난 일단 맥주 캔이 든 비닐봉지를 탁자 위에 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컴퓨터, 웹 페이지로 연결해.”

[ 연결하겠습니다. ]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위잉 부팅하는 소리와 함께 팟 하고 크게 떠오른 홀로그램 안에서 VT넷 웹 페이지의 메인 화면이 나타났다. 그러고 나서 내가 뒤를 돌아보자, 제환이 약간 어색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 앉든가…….”

괜히 나까지 어색해져 눈을 내리깔며 말하자, 제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있던 소파에 앉았다. 나도 그 옆에 가서 앉으려고 할 때, 갑자기 손을 뻗은 제환이 내 팔을 단단하게 잡아 앉는 것을 부축해 주었다.

“괜찮은데.”

다른 곳도 아니고 내 집 내 소파에서 부축을 받다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생각하며 말하자, 제환도 그렇게 생각한 듯 약간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미안.”

“아니…….”

그러고 보면 참으로 오랜만에 집 안에 나 아닌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이라 불편할 것 같았는데, 막상 옆에 앉아 본 진제환은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럼 그 영상이란 게 뭔지 이제 네가 보여 줘.”

서로 아까의 갑작스러운 당혹감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돌아온 상태에서 생긴 약간의 어색함 속에서 조용히 말하자, 제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키보드’ 하고 말해 키 입력 상태를 음성인식에서 수동으로 바꾸었다.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 아주 익숙해 보이는 태도였다. 저 녀석이 운동계였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설마 컴퓨터를 잘 다룰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해 무척 낯선 기분을 느꼈다.

내가 생경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제환은 어딘가의 웹 페이지 주소를 빠르게 입력한 다음 엔터를 쳤다. 이동한 웹 페이지는 내가 처음 보는 곳이었지만, 무엇을 다루는 곳인지는 즉시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메뉴들에 공통적으로 쓰인 하나의 단어, THE MIST에 의해서였다.

‘더 미스트의 다른 커뮤니티 웹 페이지인가…….’

제환은 다른 메뉴는 돌아보지도 않고 곧바로 동영상 란을 클릭해 들어가더니 그중 하나를 선택해 게시글의 내용이 나타나게 만들었다.

[ ★!!!실시간!!!★ 비스탈레 붕괴영상!! 한방에 절반 날림(시저 확실) ] [388]

바로 10분 전에 있었던 비스탈레의 상징,

콜로세움이 붕괴되었을 때 어렵게 찍은 영상입니다.

부순 사람은 시저가 확실하고요.

솔직히 이쯤되면 밸런스 붕괴네요.

지금까지 자기 강하다고 인증영상 올렸던 놈들 전부 짜져야겠음. 저게 스킬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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