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권-#(1) (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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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것은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난 밤 시간이었다.

자는 내내 질척거리는 악몽을 계속해서 꾸었지만 일어났을 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왜 이 시간까지 자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낮에 온몸의 근육통과 다리의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먹고 잠들었던 것을 기억해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덮지 않고 바로 쓰러져 잤기 때문인지 몸이 조금 으슬으슬했다. 부슬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을 보니 바깥에서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불 켜.”

컴퓨터에게 명령을 하기 위해 연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듣기 싫게 푹 쉬어 칼칼해져 있었다.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 집 안의 불이 켜지자 눈이 약간 부셨다.

앉은 채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니 근육통은 여전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심하게 운동을 한 다음 날 정도의 통증이니 아마 하루 이틀 지나면 나아질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다리를 멍하게 내려다보며 일어서는 걸 시도해 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혹시나 싶어 살짝 붙잡고 움직여 본 오른쪽 다리에서는 평소처럼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벽을 붙잡고 힘을 주어 일어서자 낮의 통증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별문제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긴장한 채 절뚝거리며 몇 발짝 더 걸어 보았지만 역시 아프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만 살짝 들어 흔들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다리는 언제 아팠었냐는 듯이 아침 이전의 상태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그게 꿈은 아니었을 테고…….’

나는 몇 분간 더 천천히 침대 주변을 맴돌다가 걸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거실로 나갔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진통제 통과 흩어진 알약 몇 알이 낮의 일이 현실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떨어진 약들을 줍고 있는데, 내가 일어난 것을 인식한 컴퓨터의 부재중 메시지 알림 소리가 기계적으로 귀를 파고들었다.

[ 사용자님의 수면 중, 메일 1통이 등록명 ‘Y대 부속병원’에서 도착해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

평소처럼 스팸 메시지나 사부님, 혹은 부모님이 보낸 연락이겠거니 하고 신경을 끄려던 나는 방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메일이라고? 그것도 병원에서?

Y대 부속병원은 바로 집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내가 예전에 1년간 입원해 있었던 곳이기도 하며 며칠 전 정승조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갔었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몇 개월에 한 번씩 집에서 컴퓨터로 간단하게 실시한 정기검진 결과를 메일로 보내고 확인받는 정도의 연락만 주고받는데 갑자기 거기서 내게 메일을 왜 보낸 것일까?

방금 막 고통에서 해방된 터라 신경이 상당히 예민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느낌이 영 이상했다.

“확인…한다.”

약간 망설이다 대답하자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에 글씨가 가득 퍼져 나타났다.

[ 강무헌 님께 지난 17일 받으셨던 검사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

17일…? 그때라면….

‘아… 입원했던 날이었군.’

첫 문장을 보고 나서야 내가 입원해 있었던 동안 병원 측의 권유로 간단하게 다리 검사를 받았었던 것이 기억났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집으로 보내 준다고 해서 잊고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오늘 날아온 모양이었다.

괜히 걱정했다고 생각하며 밑쪽을 계속 읽어 내려가던 나는 끝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글을 발견하고 딱딱하게 굳었다.

[ -마지막으로 동일한 검사를 받으셨던 때와 달리 다소 근육이상이 의심됩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방문해 주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검사 결과와 관련된 상담 및 재검사는 강무헌 님의 담당의사 신정석과 예약해 주십시오.

재활의학과 담당의 신정석 : 03p-342-d8951t~8952t

문의가능시간 : AM 9:00 ~ PM 6:00 / 예약가능시간 : 24시간 VT넷으로 가능합니다.

예약 VT코드 : YH8893으로 접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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