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4), After Story
미스트를 시작한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게임 내에서 불건전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의 파편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미스트 속 인생은 언제나 마법을 배우거나, 모험을 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즐겁게 마감되었으니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해도 할 마음도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는 말이다.
“……유완.”
“응.”
나는 현재 희귀 마법석이 있다는 던전을 털기 위해 방문했던 작은 도시의 숙소 방 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문제는 혼자가 아니라 위에 유완이 올라타 있다는 것이었다.
“무거운데… 뭐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접속하기 전에.”
유완이 천천히 어깨를 숙여 시선을 마주했다. 그렇지 않아도 잘생긴 얼굴이 너무 가까운 곳에 있으니 약간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잖아.”
“뭐라고?”
얼굴에 시선이 팔려 뭐라고 하는지 듣지 못했다. 미안함을 담아 반문하자 유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접속하기 전에… 침대에서 날 밀치고 갔잖아.”
“아……. 그랬지.”
윤석호가 공들여 보수해 준 내 집이 완공된 뒤에도 나는 종종 진제환의 작업실에 들렀다. 오늘도 들렀다가 어쩌다 보니 분위기가 그렇게 되었는데, 휩쓸릴 뻔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쩔 수 없었어. 마법석이 나오는 몬스터가 그 타임에만 나온다고 하니까…….”
던전을 털러 가기 위해 예약해 두었던 알람이 힘차게 울려 퍼지는 시간이 되어 있었고, 나는 그 즉시 벌떡 일어나 진제환을 밀치고 휴대용 접속기기를 이용해 미스트에 접속했다.
말없이 따라와서 던전 탐사를 도와주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 나가서 하면 되잖아. 왜 굳이 여기서…….”
“…모르는 건가?”
유완이 푸른 눈동자를 살짝 가늘게 뜬 채 중얼거렸다.
“성인이라면 상호 동의하에 안전한 침실 안에서라면 행위가 가능하다.”
“…….”
음, 상호 동의하에 안전한 침실 안에서라면 가능……. 뭐가 가능하다는 것인가? 나는 내 로브를 반쯤 헤치고 들어온 긴 손가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마 가능하다는 게 그거냐.”
“응.”
유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충격에 빠져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간 허름하지만 두 사람 정도는 충분히 잘 만한 침대가 있고 손과 얼굴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있는 너무나 평범한 여관의 풍경. 여기서… 그걸 할 수 있다고?
‘……게다가 지금은 대낮인데.’
딱히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대낮에 행위를 한다는 것은 밤에 할 때보다 조금 더 사람을 변태 같은 기분으로 만드는 면모가 있었다. 거기다 지금은 미스트 안에 있어서 더더욱 내 자신이 변태처럼 느껴지고 있는 중이었다.
“카프…….”
유완이 노골적으로 목소리를 낮추어 이름을 불렀다.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는 본명으로 불렸었는데 카프로스로 불리려니 무언가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나는 하지 말라고 하기 위해 입을 열려다, 노골적으로 로브 위를 더듬는 손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잠깐. 이건 좀. 변태 같아.”
“벗으면 똑같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무어라 말하기 위해 고개를 든 나는 열기로 붉어져 있는 유완의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까먹고 말았다.
‘…머리색이나 눈 색이 달라서 그런가, 왠지 현실에서보다…… 좀 더…….’
느낌이 아주 이상했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이 앞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붉어진 눈가를 숨길 기색도 없이 나를 끌어안고 머리를 비비는 192cm의 장신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여기서 해야 해?”
“…….”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볼에 닿는 부드러운 키스였다. 노골적으로 허락을 바라고 있는 유완을 보고 있자니 왠지 장소를 가린다고 괴롭게 하는 것이 불쌍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잠시 동정심이 조금 고개를 쳐들고 말았다.
“…그래. 뭐 그렇게까지 하고 싶다면 해야지.”
“정말인가?”
유완이 고개를 들었다. 그 말에 수긍한다는 뜻으로 끄덕이자 갑자기 눈앞에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안내창이 떠올랐다.
띠링!
- ‘유완’님과의 관계에 동의하십니까?
yes / no
“…….”
뭘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가. 상호동의란 것이 그냥 말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었나? 나는 조금 당황했으나 일단 yes를 눌렀다. 그러자마자 유완이 급히 내 로브를 벗기기 시작했다.
“잠깐…… 읏.”
평소에는 고작해야 얇은 셔츠나 바지 정도만 벗겨질 뿐이었는데, 두께부터 남다른 마법사 로브가 벗겨지는 감각은 대체 왜 이렇게 이상한 것인가. 적응이 되지 않아 고개를 저었지만 유완은 순식간에 솜씨 좋게 두꺼운 로브를 벗기고 아래로 떨어트려 버렸다.
“음…….”
그것을 바라보려 고개를 돌린 순간, 턱을 붙잡은 손가락이 방향을 돌려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이건 현실과 정말 다를 바 없군.’
나는 그런 묘한 감상을 느끼며 유완의 키스를 평소처럼 받아들였다. 몇 번이나 이어진 깊은 키스 끝에 숨을 삼키며 고개를 틀자, 건틀릿을 벗어 던지고 드러난 긴 손가락이 거침없이 내 상의를 마저 벗기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 유완은 갑옷을 전부 의자 위에 벗어서 올려 둔 상태였기에 안은 상대적으로 얇고 편안한 소재의 검은 튜닉과 바지로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저런 판타지 속 의상을 직접 벗겨보는 경험을 얼마나 할까.’
어쩌면 이것도 남들은 하지 못할 독특한 경험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약간 의욕이 솟는 듯도 했다. 나는 유완의 목을 끌어안고 그가 내게 퍼붓는 열정적인 키스와 몸을 어루만지는 입술, 손길을 느꼈다.
“하아…….”
바깥에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티가 나는 여관 안에서, 유완과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니.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던전에서 몬스터들의 체액과 피범벅이 되어 즐겁게 쓸고 다녔던 것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했던 행위이지만 장소와 상황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감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으로 깨달았다.
“날 봐. 집중해 줘.”
잠깐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을 눈치챘는지 이마 위에 입술이 떨어졌다.
“응…….”
나는 예민한 다리 사이로 파고든 손의 움직임에 입술을 깨물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몹시 낯설었던 스스로를 제어하기 힘든 육체적 쾌감 속에 갇히는 기분도 익숙해지고 나니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상대방이 나를 절대로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마 내가 다른 누군가와 또 이런 것을 할 일도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하아…… 윽.”
유완은 한참 동안 공을 들여 내 몸 구석구석을 건드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스위치를 켜 둔 후에야 몸에서 입술을 떼었다. 이 녀석과 하다 보면 발끝까지 전부 삼키고 싶어 하는 기세라서 가끔은 이 과정이 좀 두렵기도 했는데, 이제는 전부 그러려니 싶었다.
유완이 제 것과 내 것을 겹쳐 잡는 감각에 숨을 헐떡이자 또다시 키스가 이어졌다. 머리가 너무 뜨거워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손을 뻗어 유완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쳤다. 본능에 몸을 맡긴 채 흔들어 한 번씩 사정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아…하아…….”
나는 사정 후의 나른함을 느끼며 몸에 힘을 풀고 드러누웠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유완의 것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이런 것까지 현실과 이렇게 똑같을 필요가 과연 있을까. 현실과 다른 점은 내 오른 다리가 아주 잘 움직이고 있으며, 현실의 강무헌보다 상대적으로 넘쳐나는 체력과 마력 덕분에 한 번 사정했음에도 몸 상태가 아주 쌩쌩하다는 것뿐이었다.
배와 다리 사이를 적신 액체를 내려다보며 아무래도 이대로 끝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완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뚜껑을 여는 것이 보였다.
“…뭐냐, 그건.”
“아까 던전에서 얻은 달맞이슬라임의 점액.”
“…….”
나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점액이 병 안에서 유완의 손안으로 끈적끈적하게 쏟아지는 것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심경으로 지켜보았다. 저런 걸 보려고 수집해 온 아이템이 아닐 텐데 말이다.
“…몸에 아무 이상도 없을까.”
“괜찮아.”
그야 나도 그냥 해서 아픈 것보다는 뭐라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슬라임의 점액이라…….
‘…깊이 생각하지 말자.’
곧 점액에 젖은 손가락이 벌려진 다리 사이를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 안으로 파고들어 오는 손가락의 감각마저 너무나 선명하다는 것에 약간의 놀라움과 그보다 조금 더한 당혹스러운 쾌감을 느꼈다.
“아…….”
이상하다. 현실에서보다 훨씬 통증이 적었다. 본래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뭔가가 들어오면 통증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압박감이 한창 느껴지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야 쾌감이 제대로 느껴졌었는데, 이건…….
‘…그 슬라임 점액 때문인가?’
정답을 알고 싶지 않은 의문과 함께 유완이 능숙하게 내 안을 푸는 감각에 목을 젖혔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 대신 들어온 훨씬 큰 것이 한계까지 빠듯하게 안을 넓히며 삽입되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손가락이 들어왔을 때 느꼈던 것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정말 삽입했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면서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통증이 적었다. 몇 번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당혹스러울 정도의 쾌감이 벌써 치고 올라와 숨이 가빴다.
“으…읏. 하앗.”
“카프…….”
쾌감을 견디려 유완의 어깨를 긁자 열기에 들떠 붉어진 눈가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픈 건가?”
아프지 않아서 문제다, 이 자식아.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젓자 유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상황임에도 그 미소만은 너무나 뇌리에 각인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만큼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내 오른쪽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릎 아래 허벅지를 조심스럽게 잡고 있는 유완을 보며 기운을 그러모아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는데.”
막 움직이려던 유완이 의아한 시선을 내게 돌렸다.
“그렇게, 흣, 안 해도 되잖아. 여기서는.”
다리가 안 아프니까.
그 말에 허벅지를 붙잡았던 손이 잠시 멈칫했다. 내 말을 듣고서야 유완 또한 이곳에서는 내가 다리가 아주 멀쩡하다는 것을 떠올린 듯했다.
“괜찮, 으니까, 놓고, 후우, 그냥 해.”
둘이 했을 때에 내 다리를 신경 쓰지 않고 하자는 말을 한 것도,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완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허벅지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시트 위로 내려간 오른쪽 다리에서는 그 어떤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아프다면 말해 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완이 곧 조금 더 넓게 벌려진 다리 사이에서 등을 수그리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릿했던 젖은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빨라졌고, 나중에는 몸이 밀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빨라졌다.
“흐읏, 하아, 으, 읏……!”
압박감은 있어도 고통은 없는 섹스란 약간 이성이 흐려질 정도로 쾌감만이 확연했다. 한참 동안 배 속이 찔리며 뇌까지 저리는 듯한 감각에 신음하다 보니, 어느새 또다시 한계가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아! 윽…… 아……!”
최대한 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삼키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나는 양손에 깍지를 껴 얼굴을 가리지 못하도록 하는 유완의 몸을 감싸고 욕망에 충실한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면서 파정했다.
“흣……!”
파정의 순간 배 안쪽이 뜨거워지며 젖는 감각만은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
“헉, 헉. 하아…….”
힘든 마법을 연속으로 썼을 때처럼 피곤했다. 나는 멍하니 누워 숨을 헐떡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상태창을 켜 보았다. 이루미네의 제자, 슈페리어의 제자, 세계의 구원자, 9서클을 사용한 대마법사 등의 거창한 칭호들이 줄줄이 쓰여 있는 상태창 아래쪽에 위치한 내 체력 게이지는 분명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거의 다 차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훅 줄어들어 있는 상태였다.
“…몰랐어.”
내 말에 유완이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체력을 엄청나게 깎아먹는 행동이었구나.”
“……아.”
유완이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듯 살짝 웃었다.
“포션 줄까.”
“나도 있으니까 됐어.”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손가락에 끼워진 채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저장의 반지를 잘 보이게 흔든 뒤 포션을 불러내어 뚜껑을 따고 입 안에 털어넣었다. 청량한 맛이 목 안을 시원하게 넘어가는 것과 동시에 곧 체력이 쑥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괜찮아?”
유완이 내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부드럽게 훔쳐 주었다. 나는 반쯤 줄어든 상태에서도 아직 내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약간 힘을 주어 조여 보았다. 유완이 그것을 느낀 듯 눈을 깜박였다. 순수하게 의아해하는 것 같은 얼굴과는 달리 아래쪽은 곧바로 자극에 응답해 훌쩍 고개를 쳐들고 딱딱하게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껏 내가 워낙 진제환에 비해 체력이 부족하고 몸이 좋지 않다 보니 몇 번이나 격정적인 섹스를 즐기기보다는 최대한 부드러우면서도 끈적끈적하게 이어지는 방식으로 해 왔었지만, 그 문제가 둘 다 없는 이곳이라면 어떠한가. 굳이 현실과 똑같이 할 필요가 있을까?
처음에는 꺼렸던 주제에 나는 어느새 이 상황에 대해 대단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한번 그것도 해 볼까.’
회복되어 기운이 넘치는 팔로 유완의 가슴을 밀고 넘어뜨리면서 올라타자 유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카프?”
“윽…….”
상대의 몸 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바닥을 딛고 지탱하는 양다리가 멀쩡해야만 한다. 나는 조금의 고통도 없는 다리와 몸무게 때문에 더 깊이 들어와 배 속을 뚫는 것의 선연한 감각을 동시에 느끼면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유완의 검푸른 눈동자 속의 내 얼굴은 옷이 전부 벗겨져 있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새로운 마법의 희열에 들떠 있을 때와도 비슷했다.
“생각해 보니 다리가 멀쩡하다는 건… 이런 것도 가능하단 거지.”
그 말에 유완이 바닥을 디딘 내 무릎과 삽입된 부분을 번갈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은 건가? 혹시 나갔을 때에 싱크로 문제로 영향이라도 있게 되면…….”
“네가 먼저 시작해 놓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나는 유완의 단단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내리누르며 말을 막았다. 이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얼굴은 처음이라 그런지 대단한 흥분이 느껴졌다.
“하아…. 후우.”
나는 잠시 몸 상태를 가늠해본 뒤 유완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허리를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쾌감이 저릿하게 허리를 울렸다. 이어서 다시 한번, 또 다시 한번 허리를 움직이던 것이 마침내는 규칙적인 빠른 소리를 자아내기 시작했고 나는 난생처음 느끼는 새로운 쾌감에 입술을 깨물며 그것을 겨우 버텨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혹시나 내가 고꾸라질까 걱정이 되었는지 허리를 양손으로 아프지 않게 잡고 있는 유완도, 그러면서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쾌감만을 전해 주는 아래쪽도, 그리고 열기에 젖어 흐트러진 조각 같은 얼굴도. 모두.
“하앗…….”
한참 뒤 나는 또다시 사정했다. 지쳐 유완의 가슴 위로 눕자 올라온 두 손이 등을 감싸 안고 부드럽게 매만져 주었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아 헐떡이고 있는 두 개의 가슴이 맞닿으니 쿵쿵대는 심장소리가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하아, 하…. 후우.”
지치기는 했지만 현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유완 또한 이것으로 만족하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하긴, 저 녀석은 더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할 녀석이고 미스트 속에서는 남아도는 것이 힘과 체력인 다크 나이트였다.
“…이거 말고 또 무릎이 멀쩡할 때 할 만한 게 뭐가 있지.”
“그거라면…….”
유완이 삽입된 것을 빼내고 내 위로 도로 올라갔다. 잠시 후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들어 올린 엉덩이 사이로 또다시 들어오는 굵은 것의 감각을 느끼며 시트를 붙잡았다.
“으……읏.”
뒤로 고개를 돌리자 유완이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그렇군……. 엎드려서 해야 하는 후배위야말로 무릎이 멀쩡해야만 할 수 있는 자세의 전형이 아닌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세로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등 뒤로 겹쳐진 체온과 내 손 위로 겹쳐진 손을 보고 느낄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체력을 회복시키는 포션의 힘을 빌려 다리가 멀쩡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몇 개의 자세를 더 즐겼다.
하나같이 생경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남들은 전부 평소에 이런 기분을 느끼며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마치 현실에서 처음으로 몸을 섞고 나서부터 진제환과 내 사이에 오가는 접촉이 단순한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듯이 미스트를 할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 보니 참 곤란하다니까. 안 그래, 카프?”
“…….”
“카프?”
나는 옆에서 무어라 말을 거는 크란을 보고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무심코 마주쳤던 유완과의 시선을 먼저 떼지 못한 상태로 서로 낱낱이 몸을 살피고 있다 보니 다른 이들의 말에 미처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미안. 뭐라고 했어?”
“선 대륙으로 넘어갈 준비를 위해 배를 찾고 있는데 사람들이 전부 내 얼굴을 알아봐서 곤란하다고 했어.”
크란이 친절히 다시 한번 설명해준 뒤 뭔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보았다.
“요즘 이상하게 정신을 좀 빼놓고 있는 것 같아, 카프. 혹시 마법 배우던 게 막혀 있기라도 해?”
음……. 그런 건전한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이유라는 걸 절대 말할 수 없겠군. 나는 이 순간에도 내 귀 아래쪽을, 로브 사이로 드러난 목줄기를, 그 아래 숨겨진 몸을 노골적으로 훑고 있는 유완의 시선을 느끼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니.”
여태까지 내가 미스트에서 하는 일이란 슈페리어가 남기고 간 토렐리트 탑에서 마법서를 읽고 수련하거나, 드디어 유저들 앞에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엘프, 드워프족 사람들을 만나거나, 사냥을 하러 가거나, 그도 아니면 오늘처럼 신대륙으로 향할 방법을 논의하며 모험욕에 불타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지난번 전쟁으로 인해 다들 너무 유명인사가 된 탓에 얼굴이 대놓고 많이 알려진 크란이나 키온 형은 전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다 보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간혹 알아보는 사람들이 난리를 피우면 난감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나보다 옆의 유완을 보고 난리를 피웠으므로 내게 큰 영향은 없었다.
충실하게 미스트 속의 생활을 즐기는 시간들. 그런데 거기에 섹슈얼한 느낌이 하나 추가된 것만으로 이렇게나 모든 것이 달라질 일인가? 그러나 사실 더 안 좋은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내 몸을 안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한 저 시선에 반응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침대 위에 유완을 눕히고 올라타고 싶은 나의 욕망이었다.
그렇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우리는 요즘 미스트에서 몸을 섞는 데에 푹 빠져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관까지 매번 찾아가는 것도 불만스러워진 유완이 운오처럼 집이라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전쟁 이후 파괴된 집을 근성으로 다시 만들어낸 운오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유완이라도 단순히 게임 내에서 섹스를 하기 위해서란 이유만으로 집을 만들지는 않겠지. 설마…….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이곳은 이전에 세이버스 길드의 길드하우스였던 곳이었는데, 길드 해체 후 그냥 놀려두기가 뭐해 지금은 우리끼리만 사용하는 공동 아지트 숙소 같은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들어올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된 이들뿐이었다.
“아~ 정말!”
떡 벌어진 사제복 가슴을 펄럭이며 들어온 키온 형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르야! 또 왔어, 그 새끼!”
“……누구?”
“누구긴 누구겠냐.”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를 갈았다.
“시저 그 새끼지.”
“…….”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 나는 순식간에 영도 이하로 내려가는 방 안의 분위기를 느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전쟁이 끝난 후 현실에서 다시 만나 진제환과 정승조를 대면시키고 셋이서 술을 마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승조가 훌쩍 변해 버렸다. 이전처럼 나를 멀리하려 하지 않고 틈만 나면 찾아와 이런 식으로 길드하우스 앞이나 토렐리트 탑 앞에서 기다리는 시저라니. 처음에는 얼마나 놀랐었던가.
‘…1대1 대결을 다시 신청해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었지.’
그의 모습을 본 모두가 기겁하고 싫어했지만 시저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페일 나이츠의 길드마스터도 때려치웠으니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 녀석이 또 여기에 왔다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일 테니 나가서 얼굴을 보긴 해야겠군. 탁자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크란과 키온 형, 그리고 유완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보지 않아도 나가지 말라는 기색이 똑같은 모습들이었다.
“…아무리 너랑 그 새끼가 예전에 알던 사이였다고 해도 형은 역시 그 새끼가 별로다, 카르야. 그렇게 자꾸 만나 주면 저놈이 자기가 잘한 줄 안다고.”
전쟁이 끝난 이후 시저가 나를 처음 찾아오기 시작했을 무렵, 저놈을 죽여 버리겠다고 날뛰는 형을 막기 위해 했던 옛날이야기가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불러 버렸다. 키온 형도, 크란도, 다른 이들도 모두 시저를 이전보다 더욱 대놓고 싫어하기 시작한 탓에 나는 그 이야기를 한 것을 약간 후회했을 정도였다.
‘시저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게 이 점에서는 다행인가.’
“미안.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졌어. 원래부터 그런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결국 미안한 마음으로 한마디를 보탰으나, 크란의 격렬한 반항에 부딪혔다.
“원래부터 그런 녀석이 아니긴 무슨! 네가 너 없을 때의 모습을 못 봐서 그래. 시저 저 자식의 쓰레기 같은 성격은 그냥 타고났어! 너만 모르는 거라구, 카프!”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승조를 봐 온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들 너무나 동의하는 기색이라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시저가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이래 나아진 긍정적인 점 하나라면, 그 덕분에 모두가 유완을 다시 보고 비교적 든든한 놈이라 인정하기 시작해 주었다는 점뿐이었다.
그나마 그런 장점이라도 있으니 다행인가……. 나는 결국 만류에 부딪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시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중에 봐야 할 듯했다.
크란은 이전보다 훨씬 격렬하게 신대륙으로 넘어갈 방법과 시저의 욕을 반씩 섞어 떠들기 시작했다. 키온 형이 거기에 몹시 동의를 해 주면서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길드하우스에 온 루크레이신과 팔튼 형, 운오도 그 대화에 합류하면서 마지막에는 나 이외에 모두가 시저의 욕으로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이젠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후우.”
모두가 접속을 해제한 뒤 나는 텅 빈 길드하우스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다 망설이기를 반복했다. 여기서 해제하려면 물론 해제할 수 있지만…… 혹시 시저가 아직 밖에 있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그 녀석이라도 내내 밖에 있지는 않았겠거니 싶지만…….
그때, 곁으로 다가온 유완이 내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 돌렸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듯한 눈동자를 보자 어쩐지 나도 모르게 약간 변명 같은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음, 아니. 그냥. 아직 밖에 있을까 싶어서…….”
“없어.”
유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가 어떻게 알아?”
“기척을 느끼는 건 기본 스킬이다.”
그러냐.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고개를 기울인 순간 허리를 끌어당긴 유완이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키스했다. 나는 순식간에 덮쳐진 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혀를 느끼며 당혹했으나, 익숙하게 휘저어 오는 감각 속에서 저릿한 쾌감의 불씨를 느낀 순간 그 당혹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텅 빈 머릿속만이 남았다.
“……하아.”
한참 뒤 떨어져 나간 유완의 눈동자가 방 안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선명한 욕망의 빛을 띠고 빛났다. 그것을 본 순간 내 안에도 아까 전의 일들로 인해 잊었던 욕망이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
하겠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이 길드하우스 안에 체력 회복용 침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조용히 유완의 망토 자락을 꾹 붙잡자, 유완이 그대로 나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아들었다. 나는 계단을 순식간에 오르는 발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눈앞에 떠오르는 안내창을 보았다.
띠링!
- ‘유완’ 님과의 관계에 동의하십니까?
yes /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