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93화 (93/189)

〈 93화 〉 마녀 구출 작전 (1)

* * *

“준비는 다 된 거지?”

약속된 날짜가 되어 마법 학원의 의뢰소에 도착한 라피아는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질에게 물어봤어요.

굳이 라피아가 말하지 않더라도 이번에는 평소의 의뢰와는 달리 엄청나게 꼼꼼한 준비가 필요할 거예요.

질에게 있어서도 절대로 놓치면 안 될 일이니까, 스스로 알아서 잘 챙겼겠죠.

그럼에도 착하게 등에 멘 가방을 가슴 앞으로 가져와 내용물을 확인해보는 질이에요.

“포션도 챙겼고, 스태프도 챙겼고, 지도도 챙겼고, 전부 챙겼어요! 어제 미리 의뢰소에서 여러 명을 구해서 파티를 나눈 것도 완벽했잖아요?”

“…응. 그런데, 질…. 나는….”

시작부터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라피아의 표정이에요.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탈리안을 구하게 된다면 그만큼 질의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라피아는 일전에 자신을 믿으라고 했던 말에 책임을 져야 해요.

이렇게 불안해한다면 질에게 신뢰를 얻기도 어려워질 거에요.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질은 오히려 라피아를 위로했어요.

“괜찮아요, 언니를 믿는다고 했잖아요? 저는 언니를 믿어요. 그리고 탈리안 언니는 저의 새로운 가족이에요.”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네. 고마워.”

탈리안은 가족, 라피아는 사랑하는 사람.

마음속으로 이미 딱 선을 나누어뒀나 보네요.

제일 바람직한 모습이에요.

그런데 질은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네요.

“근데 반대 아니에요? 언니가 저를 안심하게 해줘야 하는 거 같은데.”

연장자로서의 태도가 안 되어 있어서, 그게 불만이었나 보네요.

지적당한 라피아는 얼굴을 붉히며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것처럼 큰소리를 냈어요.

“알지! 대신 오늘은 진심 모드니까! 적들하고 싸울 때 멋진 모습을 보여줄게!”

“기대해도 되는 거죠?”

“물론이지! 대신 적이랑 싸우기 전에 흡혈 한 번만 하게….”

“그건 안 돼요! 저번에도 기사단 분들 뒤에서 그래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아무래도 저번에 있었던 일은 질에게 있어서 상당히 놀랄만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야 좋게 말하면 남들 보여주기 힘든 일을 숨어서 폐 끼치지 않도록 하려고 했던 일이지만요.

간단하고 나쁘게 말하면 그저 야외플레이인걸요.

“뭐, 뭐라는 거야!? 나한테 그런 이상한 취미는 없다고! 전력을 내려면 필요한 거라서 그래!”

“…정말이에요? 그럼 그때는 왜 했던 거에요?”

열심히 해명하는 라피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질에게서는 믿음을 얻어내지 못했네요.

그동안 틈만 나면 스킨십을 하려고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는 해요.

이전에 건물 뒤편에서 질이 말했던 것처럼, 아무리 질이 좋더라도 시간과 장소는 가려가면서 해야죠.

“그때 그건 다르지! 그때는 나한테 있어서 중요한 순간이었거든. 어쨌든 준비 다 됐으면 가자!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언니 저번에 작아진 모습도 보여준다고 해놓고 안 보여줬었잖아요!”

“진짜 이번에 갔다 오면 보여줄 테니까! 얼른!”

“꼭 보여줘야 해요!”

끈질기게 약속을 받아내려는 질에는 이기지 못할 것 같았는지, 라피아는 바로 알겠다며 억지로 질의 등을 밀었어요.

슬슬 약속 시각이 다 되어가는 것도 그렇지만 여기서 더 떠들다간 질과 온종일 놀기만 할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워프룸을 통해서 질과 라피아가 도착한 곳은 대륙 북동쪽에 있는 대신전이었어요.

“어어, 언니?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대신전을 처음 와봐서 그런지 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라피아를 불러세웠어요.

앞서가던 라피아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이곳에 워프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돌아가는 것만 있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어봤죠.

예전에 성지로 모여들던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질문인가 보네요.

한참 전에 마을이 무사했을 때는 그런 일도 있었죠.

성지로 가는 모험가는 많은데, 돌아오는 모험가는 없었다는 일이 말이에요.

“아, 성지 순례를 이름만 들어봤구나?”

“아쉽지만 마을에는 성지에 관련된 책이 없었거든요.”

“그래? 어쨌든 이 대신전에 태초신 헤브니아가 딱 한 번 강림했던 일이 있었어.”

“근데 그렇게 막, 태초신의 이름을 막 불러도 되는 거예요? 하다못해 뒤에 님이라도 붙이는 게….”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질이 조심스러운 건 이해하겠지만, 라피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어요.

오죽하면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게다가 나는 태초신이 꽤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이라며 어깨를 한번 들썩이며 말하기도 했죠.

“강림했던 게 대략 25년쯤 전이었나? 그 전부터도 태초신은 50년간 꾸준히 사제들의 꿈속에 나타났었다고 해. 지금은 어째서인지 모습을 감춰버려서 소식이 아예 없다고 하지만….”

“그래서 책임감이 없다고 하기에는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질, 근 100년간 태초신이 분명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준 건 맞는데 말이야? 결국, 재앙이 일어났을 때는 머리털조차 안 보인 존재야. 나 말고도 욕하는 사람은 많아.”

그야 태초신의 존재를 알고 있던 존재라면 재앙이 일어난 뒤로 원망하게 된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동안 여러 조언과 축복 같은 것으로 잘만 도와주다가 재앙이 일어나기 직전이 돼서 돌연 모습을 감춰버렸다면, 그만큼 배신감이 드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헤브니아도 꽤 억울하기는 할 거예요.

정말, 정말 많은 도움을 줬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더니 세계가 대처할 시간도 없이 찾아온 멸망을 한번 견뎌냈다니 말이죠.

멋대로 버텨내고 멋대로 원망 중이니 골치 아프겠죠.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요.

“아,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여기가 모험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그래. 워프룸 말고 다른 곳에서 이런 말을 했다간 설교만 하루 종일 듣게 될걸?”

“아하하…. 그런데 듣기로는 태초신의 세 딸이 남아있다고 하던….”

“어이! 다른 녀석들은 다 모였다고!”

지루한 신화 공부 시간이 연장되려고 할 즘, 워프룸의 문을 열고 들어와선 질의 파티를 부르는 이가 있었어요.

질과 라피아가 너무 시간을 끌었던 것인지 동료가 먼저 찾으러 왔던 거였어요.

동료의 길 안내에 이끌려 둘이 도착한 넓은 광장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인원이 모여있었어요.

최소한 100명이 넘어가는 수를 봐서는 전쟁이라도 일으키려는 줄 알겠죠.

사실 전쟁과 다를 게 없기는 합니다.

알마의 정보에 의하면 저번의 거점은 작은 경매장을 겸한 순환 거점이었을 뿐이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중앙 거점 중 하나를 습격하는 일이 되니, 그 난이도는 저번 의뢰에 비교해 더 어려울 거예요.

어쨌든, 미리 약속했던 사람들이 전부 모여있는 걸 확인한 라피아는 질의 앞으로 몇 걸음 앞으로 나가서 모두에게 소리쳤어요.

“아아! 주목! 며칠 전에 만나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아스티엘 라피아라고 합니다. 오늘은 모두 모여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목적은 슬리브스터의 거점 구축과 잡혀있는 노예들의 해방입니다!”

광장이 울릴 정도의 목소리를 내자 모두가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주변의 지인과 떠들던 이들도, 아무 상관 없이 광장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시선을 돌리게 할 큰 소리였죠.

게다가 평소의 제복 차림이나 헤프게 보이는 사복 차림이 아니라, 가볍지만 단단한 옷감과 활동성을 감안한 경장비인걸요.

누가 보더라도 필요한 것만 딱, 딱 갖추고 온 라피아를 보면 ‘아, 어디서 굴러먹다 온 실력 좋은 모험가인가보다!’라고 생각할 거예요.

이렇게 철저히 준비한 건 물론 질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 봐야 답답하다고 라피아같은 경장비는 아니지만 적어도 활동하기 편한 옷에, 가벼운 갑주를 껴입는 것으로 타협을 봤죠.

“크게 주의할 점은 파란색의 긴 장발을 한 소녀를 본다면 절대로 놓치지 마시길 바라며, 발견한다면 그 즉시 사전에 배부한 마도구로 연락해서 저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이를 제외한 모든 것은 여러분의 판단에….”

라피아의 연설은 한동안 이어졌어요.

연설은 정말로 이번 의뢰의 중요한 목표인 탈리안의 구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재량에 맞춰 슬리브스터의 거점을 구축하라는 것이 전부였어요.

약간은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는 ‘죽지 마라.’, ‘무운을 빈다.’, ‘기대하겠다.’ 같은 말을 늘어놓을 뿐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환호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어요.

몇 달간 어마어마한 세력이 갑자기 생겨나, 자신의 지인이나 가족을 잡아가서 돈으로 거래를 하는 데 좋아하지 않는 게 이상하죠.

여기 모인 사람들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연 있는 사람이 꽤 있었어요.

아니, 용병이나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그런 사람이라고 봐도 되겠죠.

“…이상으로, 지금부터는 각자의 방식대로 슬리브스터의 거점에 향해 잠입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산!”

라피아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광장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어요.

하지만 단 하나의 파티만은 자리에 남아, 질과 라피아를 기다리고 있었죠.

뻔하긴 하지만, 네, 알마의 파티였어요.

“이야~ 멋진 연설이었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박수를 치며 다가오는 알마를 본 라피아는 코웃음을 치며 칭찬을 거부했어요.

그리고는 알마 뒤를 따라오던 파티원들을 눈으로 쓱 훑어봤죠.

파티원은 라피아와 질까지 모두 포함해 6명, 특이한 점으로는 전원이 여자라는 점이 있겠네요.

게다가 하나같이 준수한 외모를 하고 있어서 얼굴만 본다면 미인계로 적을 속이려 드는 파티인 줄 알겠는걸요.

“다시 확인차 본거지만, 다들 한 얼굴 하네. 내가 따로 준비해둔 이동 수단이 있으니까 거기로 가자.”

“네? 원래 계획이랑 다르지 않아요? 원래라면 분명 근처까지 가서 2층이나 3층으로 진입을….”

“이게 더 확실한 방법이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갑작스런 계획 변경에 항의하려는 알마였지만 뜻을 굽히지 않는 덕에 불만을 중얼거리면서도 뒤의 파티원들을 이끌어야 했어요.

계획 변경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알마뿐만이 아니라 질도 갖고 있었지만, 더 좋은 수단이 있다면 따르는 게 낫죠.

“생각해봐, 미리 계획을 짜놨다고? 좋지. 그런데 알마, 우리가 정말 엄격하게 파티원을 골라서 짰다지만…. 그게 스파이가 아닐 가능성은?”

“조심스러운 건 좋은데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만큼은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되니까 조금 오버스러워도 어쩔 수 없어, 그렇지?”

다른 파티원들을 대변하는 알마의 모습에 라피아는 질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으며 물어봤어요.

질이 찜찜한 느낌을 받는 것과 수긍의 대답밖에 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요.

“네? 아, 네! 알마 언니랑 비슷한 생각이긴 한데…. 절대,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되니까요!”

“그래 믿고 따라와. 질도 알마도 너희 전부.”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준다고는 했지만, 꽤 과격한 모습이에요.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 테지만요.

이러나저러나 파티원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는 했어요.

그곳에는 커다란 구식 마차와 함께 3명의 남자가 질의 파티를 기다리고 있었죠.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천천히 다가오는 그들은 라피아에게 바로 말을 걸어왔어요.

노예상들 대부분이 그렇듯, 아주 사악한 표정을 지으면서요.

“크흐흐, 오늘은 사냥복이 넘쳐나는 것 같지 않나!”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이동 수단이 있기는커녕 적만 마주친 상황에 파티원 모두가 당황했어요.

오죽했으면 알마는 라피아를 믿는 게 아니었다며 중얼거리다가 무기까지 뽑아 들었죠.

“알마, 침착을 되찾는 게 좋을걸?”

적을 견제할 생각조차 없는지 오히려 앞으로 나서려는 알마를 막아버리는 라피아의 팔이에요.

이 상황만 본다면 라피아가 배신했다고 확신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죠.

알마나 질은 그동안의 관계가 있으니 그렇게 쉽게 의심하진 않지만, 뒤따라오던 파티원들은 전혀 달랐어요.

바로 장비를 빼 들어 라피아에게로 향했죠.

“뭐 하자는 거에요!? 지금 우릴 배신한 거예요?! 항상 저보고 배신자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자기가!!”

“푸흣, 우흐흣! …아하하핫!”

“뭐가 웃겨!!”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적이 자신을 비웃는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을 거예요.

보통의 의뢰로 만나는 적이라도 비웃음당하면 기분이 나쁜 게 당연한데, 자신의 파티가 분열되고 배신당하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면 말 다 했죠.

그런데 갑자기 노예상의 말투가 바뀌었어요.

점잖고 차분하게.

경박하던 목소리가 무게감과 기품이 섞인 목소리로요.

“아~아, 아니….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죄송합니다. 그렇게 감쪽같았나요?”

남자의 목소리에서 여자의 목소리로 바뀌니 알마와 파티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겠죠.

그런데 질은 여자로 바뀐 목소리를 듣자마자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뭔가 떠올린 듯 ‘앗!’하는 소리를 냈어요.

파티원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라피아는 여전히 노예상과 친근하게 굴었어요.

“응, 진짜 네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사람이 맞긴 해?”

“설마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아가씨, 읏…! 후우…. 아가씨도 가주님께 훈련만 받으시면 아가씨도 이런 일쯤이야 간단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노예상이 말하는 도중 자신의 왼쪽 턱살을 잡더니 그대로 위로 피부를 잡아 뜯었어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 때문에 파티원 중 한두 명은 비명을 지르기도 했죠.

그런데 찢어져 나간 피부 가죽 안에서 나타난건 흉측한 몰골의 속살이 아니라, 곱상하면서도 날카로운 얼굴은 언젠가 질이 본 적 있던 메이드, 플랑이었어요.

“어흠! 여러분, 당황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크롬웰 가문의 메이드장 플랑이라고 합니다. 여기, 라피아 아가씨의 전속 시녀이기도 하죠.”

“…아무리 보안을 위해서라지만 라피아 씨, 이런! 모두가 놀랄만한 일은 하지 말아달라고요!”

“너무 아가씨를 질타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의뢰를 도와주는 대신에 제가 내건 조건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제 뒤의 두 분은 여러분을 도와주실 크롬웰 가문의 기사분들이십니다.”

플랑이 말하던 도중에 알마가 끼어들었지만, 라피아는 대충대충 사과하며 넘어가 버렸죠.

알마나 다른 파티원 입장에서는 분명 화날 법도 한 일인데 너무 쉽게 넘어가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알마는 항상 화내고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알마를 놔두고 플랑은 기사에게 명령하더니, 구식 마차에서 물건을 꺼내왔어요.

“자, 여러분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옷을 벗어주세요.”

“…네? 저기, 플랑?! 갑자기 벗으라니, 이 숲속 한복판에서요?!”

이번에는 지금까지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던 질이 플랑에게 처음으로 소리쳤어요.

모두의 앞에서 옷을 벗으라니 라피아의 앞에서도 불가능할 일을 요구해오니 당연해요.

이번에는 역시 설명을 해야 하겠다 싶었는지, 플랑은 벗어두었던 얼굴 가죽을 다시 뒤집어쓰며 설명을 시작했어요.

“여러분, 나체로 이동하자는 게 아닙니다. 변장해야죠. 노예로.”

기사들이 가져온 것은 누더기 같은 복장의 노예복과 노예상들을 상대하면서 몇 번이고 봐왔던 새빨간 목걸이였어요.

당연하지만, 노예복은 걸레짝과 다름없고 속옷도 없었어요.

뭐, 그래요.

백번 양보해서 노예복을 모두가 입을 수 있다고 해도, 새빨간 목걸이까지는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야 저 목걸이는 어떻게 보더라도 노예상이 명령 한번 하면 거역하지 못하는 물건과 너무나도 똑같아 보였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목걸이는 모양만 따라 한 모조품입니다. 명령을 따르게 하는 기능은 없습니다.”

“하, 하지만! 거점 안에 들어가서 명령이라도 받았다간 반드시 따라 해야 하잖아요!”

이번에는 뒤에 있던 파티원이 소리쳤어요.

시작부터 어렵네요.

분명 어떤 일이든 각오하고 온 사람들이었을 텐데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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