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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172화 (172/189)

〈 172화 〉 뉴페리시니 (2)

* * *

질은 진작에 메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먼저 선수를 친 것은 비델이었어요.

그 말조차도 의외로 찾을 필요 없다는 것이었어요.

어디에 잡혀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민폐라면서요.

“그럼 비델 씨,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돌아갈 곳은….”

“마지막 가족이 잡혀버렸는데, 있을 리가 없잖아.”

“그, 그렇겠죠오…. 그럼 제안이 있는데요! 따라오실래요?”

“왜, 먹여주고 재워주려고?”

“네! 비델 씨랑 같은 사람들을 많이 봐 왔거든요. 저는 사람들을 돕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또! 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요.”

“이상한 녀석이네….”

비델은 말은 이렇게 해도 질을 따라갈 마음이 들었는지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처음에 아무 말도 없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것은 정말로 희망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너…. 그 능력은 뭐야?”

질이 열쇠를 꺼내 든 것을 본 비델이 물어봤어요.

처음 본다면 신기하게 여길 수밖에 없죠.

그저 단순하게 열쇠만 꽂아 넣고 돌리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니, 이런 편리한 마법이 또 어디 있겠어요.

열쇠 구멍이 있는 문이 있어야 된다는 부가 조건이 걸리지만, 특별히 많은 양의 마나를 쓰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쓰는 전이 마법 같은 것들만 하더라도 소비하는 마나가 부담되어 잘 쓰이지 않으니, 비델이 신기해하는 것은 당연해요.

그래서 워프룸에서도 비싸게 돈을 받는걸요.

“다들 물어보니까, 익숙한데….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준 선물이에요.”

“소중한 사람….”

“그보다 걸어도 괜찮은 거예요? 오랫동안 잡혀 계셨으니까, 어딘가 불편하다면 세르디어에게 업혀도 되는데.”

“괜찮아.약간 비틀거리기는 해도, 혼자 못 걸을 정도는 아니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지, 비델은 생각보다 질의 뒤를 잘 따라왔어요.

문을 건너 도착한 곳은 어느 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었죠.

높은 울타리와 마정석이 꽂혀있는 장대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몬스터의 침입을 막아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이곳이 질이 말했던 곳이겠네요.

“몸을 회복하기까지는 이 마을에서 얼마든지 지내셔도 괜찮아요. 제가 만든 마을이니까요.”

“…네가? …저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제가 구해준 사람들이에요. 몸은 다 회복했지만, 이 마을에 남아서 비슷한 처지가 된 사람들을 돕겠다고 하신 분들이에요.”

마을 안쪽에는 농사를 지으며, 빨랫감을 들고 바삐 돌아다니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활도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사냥도 직접 나서서 하는 것 같은데,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마을치고는 상당히 활발하네요.

개중에는 질을 알아보고 인사해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얼마나 반가웠으면 보자마자 달려들어 지르니트를 품 안에 안아버리는 걸까요.

“지르니트 언니! 얼마만이야 이게!”

“어, 언니 아니라고 했잖아요! 저 10살이라니까요!”

“항상 말하지만, 날 구해주기도 했고, 멋지잖아! 멋지면 다 언니지! 근데 그 뒤에 애는? 신입이야?”

“아, 네에…. 갈 곳이 없다고 하셔서 데려왔어요.”

“흐응…. 그런 것 치고는 상태가 꽤 괜찮아 보이네? 잘 부탁해! 난 케이넨 듀네스야. 보시다시피 드라고니안이지!”

잘려나가서 거의 없는 머리쪽의 뿔을 가리키는 케이넨이 건네오는 악수에, 비델은 얼떨결에 손을 내줬어요.

힘차게 흔드는 탓에 비델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을 질이 잡아주기도 했죠.

“그럼 자세한 건 케이넨 씨가 알려줄 테니까, 저는 가볼게요!”

“자, 잠깐! 너, 넌 돌아가는 거야?!”

갑자기 돌아가려는 질의 옷자락을 잡으며 붙잡는 비델이에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요?

“네? 네에, 저는 여기가 집이 아니니까요. 평소에도 여기에 오래 머무는 편은 아닌 데다가, 제가 요즘 일이 있어서 바쁘거든요.”

“그게 아니라, 그게…. 나, 나도 너랑 같이 갈래.”

“…네?”

“난 네가 여기서 같이 지낼 줄 알았어. 그러니까, 그, 같이 데려가 줘….”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 질은 얼빠진 얼굴로 케이넨과 흑기사의 표정을 살폈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도움을 구하는 그 시선에도 케이넨은 멋쩍은 미소만 보여줄 뿐이었죠.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지 않는 것은 흑기사도 마찬가지였어요.

“아, 끄응…. 잠시만 기다려보실래요? 혼자 있기 힘들면 제가 다른 사람한테….”

“이, 이 멍청아! 네가 구해줬잖아! 네 옆이 아니면 불안하다고!”

“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잖아요오….”

갑자기 큰소리를 치는 비델 덕분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쏠렸지만, 정작 본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에요.

오히려 더욱 간절한 눈빛을 하고는 질만을 바라보고 있었죠.

이에 케이넨까지 비델의 편을 들고 나섰어요.

“아무래도 질, 네가 당분간 맡아야겠는데? 지금까지는 마을이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서로 돌봐주는 게 가능했는데, 점점 일이 늘어나다 보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금 바빠, 한 명만 전담해서 봐주기 어렵거든.”

사람이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면 마을에 자발적으로 남아준 사람들이 힘들 테니까요.

돈도 받지 않고 은혜를 입었다는 것만으로 질을 도와주는 사람들인걸요.

질도 이 사람들에게 무리를 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비델을 맡아달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고민에 잠기는 질이었죠.

비델은 그저 숨죽인 채로 질의 말을 기다릴 뿐이었어요.

속으로 간절한 기도라고 하고 있었을까요?

그 기도가 통했을지도 몰라요.

“아아~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잠깐뿐이니까요!”

안 그래도 바쁘다는 질이 비델을 직접 데려가기로 했으니까요.

“잘됐네! 그럼 나는 마저 일하러 가볼 테니까, 언니도 나중에 또 찾아와! 마을이 많이 안정돼서 사람들 대부분이 활기를 찾아가고 있거든!”

“고, 고마워….”

“하아아~ 아오이 언니한테 뭐라고 말하지…. 집에 빈방이 남아있긴 할 텐데….”

“미안…. 억지 부려서….”

곤란해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풀이 죽은 비델을 보았기 때문인지, 질은 그 손을 잡아줬어요.

“비델 씨를 구한 건 제 책임이니까요! 그 책임을 져야죠! 괜찮아요!”

“책임…. 10살이라서 성인식도 안 한 주제에 책임은 무슨….”

바로 안심이 되었는지 비델은 바로 질을 비꼬았어요.

이렇게 태세 전환이 빨라서야, 다시 두고 가게 될지도 모르는데요.

괜찮은 걸까요?

“저 다 컸거든요?! 그리고 6년만 있으면 저도…! 아아! 진짜아! 계속 그렇게 툴툴대면 다시 두고 갈 거예요?!”

“입 다물게. 어디든 네 옆이라면 데려가 줘.”

비델은 상당히 뻔뻔한 사람이었네요.

“으윽~! 알았어요…. 일단 언니들한테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자꾸 언니들이라고 하는데, 네 소환수….”

“세르디어다.”

“어, 어어…. 세르디어한테 듣기로는 가족이 없다던데.”

생각보다 민감한 주제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꺼내버리네요.

비델도 가족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남의 상처를 단번에 파고드는 것은 좋지 못할 텐데요.

질이 문을 여는 손을 잠깐 멈춘 것을 보면 분명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

“비델 씨도 대재앙을 직접 겪어봐서 알겠지만, 그 사건으로 마기노에게 제 가족은 전부 죽어버렸어요. 위기의 순간에 구해준 게 아오이 언니예요. 무심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기는 한데, 속은 정말 따뜻하구요. 저를 구해준 걸로 모자라서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주기까지 했으니까요.”

“내 생각보다 더 소중한 사람인가 보네, …조금 걸려.”

아오이에 대해 언급을 할 기회가 생기자마자 바로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네요.

질의 아오이에 대한 사랑을 누가 말리겠어요.

“네? 잘 안 들렸는데, 어쨌든 아오이 언니는 정말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에요. 아, 라피아라는 언니도 있어요. 아오이 언니가 실수해서 제 옆에 있어 주지 못할 때, 옆에서 저를 지탱해주던 고마운 언니예요.”

“언니가 한 명이 아니야?”

“네, 아오이 언니는 말이 잘 없으면서도 챙겨줄 건 다 챙겨주는 이미지라면…. 라피아 언니는 듬직한 맏언니 느낌? 뱀파이어라서 첫인상이 약간 무서워 보인다고들 하는데요. 친해지면 장난기도 많고, 친구처럼 대해주지만…. 가끔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해요.”

“짓궂은?”

“조금, 부끄러운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기분은 좋은데요. 그런 게 있어요. 어쨌든 두 분 다 멋진 언니들이에요! 분명 비델 씨도 같이 지내다 보면 마음에 들 거예요! 얼마나 멋지냐면 말이죠!”

질의 아오이와 라피아에 대한 칭찬은 끊이질 않았어요.

본래의 목적인 집에 돌아간다는 것도 잊은 채로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떠들어댔죠.

비델이 먼저 물어봤다고는 하지만, 끝날 생각을 않는 이야기에 점점 지쳐가기만 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두 언니의 도움이 있어서 이렇게 사람들을 돕고 다닐 수 있게 된 거예요!”

“어, 어어….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로니아 이야기도…! 응? 세르디어?”

“하늘 좀 봐, 벌써 해가 다 졌다.”

질의 언니 자랑에서 비델을 구해준 것은 흑기사였어요.

몇 시간을 언니 자랑에 낭비한 것인지 몰라도,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푸르렀던 하늘이 이렇게 깜깜해진 걸 보면 비델이 고생 좀 했네요.

마을 근처라지만 아직 날이 조금은 쌀쌀할 시기라서 제대로 된 옷이 없는 비델이 불쌍해 보이기는 했어요.

그래도 이번에야말로 진짜 문을 집과 연결했으니 다행인 거 아닐까요.

“계속 봐도 신기하기만 하네….”

“그래요? 들어오세요.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집이라기에는 현관부터 저택의 느낌이 났기 때문일까요.

비델은 고급스러운 조명이 새어 나오는 것에 위축되어 문 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너, 잘 사는 애야?”

“언니 집이 좀 크긴 한데, 적응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돼요.”

“옷이 비싸 보일 때부터 알아보긴 했는데…. 근데 무슨 소리 안 들려?”

“소리요? 어떤 소리?”

“숨찬 소리…? 너무 작아서 아직 잘 모르겠는데, 들리긴 들려.”

“모르겠는데, 라피아 언니인가? 들어가 보면 알겠죠.”

그렇지만 질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어요.

느려지다 못해 완전히 멈춰 서서 문 하나를 두고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죠.

정말로 비델이 들었다던 숨찬 소리가 들려오는 건 당연했지만, 그 소리의 주인공이 아오이였기 때문이에요.

그저 소리를 내는 것뿐이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 소리를 벽에 몰려 라피아의 품에 안긴 상태로 내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죠.

질을 따라오던 비델 역시 벽 뒤에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데, 이는 질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이었어요.

“하아, 하읏…. 라피아, 슬슬 그만….”

아오이의 부탁에도 라피아는 쉽게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손가락으로 아오이의 어깨를 톡톡, 두 번 치고는 하던 것을 계속했죠.

비델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질의 눈치를 살피며 저 둘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질에게 물어봤어요.

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피를, 마시는 거예요…. 가끔 라피아 언니가, 저한테 하던 일인데…. 왜 아오이 언니가….”

“저런,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 피를 빨린다고?”

“라피아 언니가 송곳니를 박아넣으면, 그것만으로 몸이 달아오르거든요…. 그렇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요, 우리….”

질은 둘이 저렇게 얽혀있는 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네요.

하기야, 질은 아오이와 라피아가 투덕거리는 장면만 봐 왔으니까요.

언제 한 번이라도 저런 사이가 좋은 장면을 본 적이 있기나 했던가요.

그저, 소리를 줄이고 집 밖으로 비델과 함께 나가 벤치에 앉아 둘의 행위가 끝나길 기다릴 뿐이었죠.

“괜찮아? 표정이 안 좋은데.”

“네? 아, 괜찮, 아요. 언니들이 저런다고 해서 제가 뭐라 할 수 있는 자격은 없으니까….”

“미안한데, 너하고 저 사람들하고 무슨 관계야? 그냥 의자매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괜찮아요?”

“괜찮아, 궁금하기도 하고.”

이곳에 오기 직전에 그렇게 시달렸으면서, 또다시 자신의 발로 지옥에 뛰어드는 비델이에요.

뭐, 궁금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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