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샤워를 마친 후에는 기력이 완전히 소진됐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영혼이 빠져나가 텅 빈 기분이다. 제대로 몸을 닦아내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비척비척 걸어가 이불 위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누웠다.
나도 모르게 그 상태 그대로 잠에 깊숙이 들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꽤 늦은 시각인 듯 밖이 어두웠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세상에서 혼자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낮에 있었던 그 끔찍한 일이 사실 모두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바람일 뿐이라는 걸 알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껏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가볍지 않고 무거웠다.
옆에선 강태영이 잠들어 있었다. 내 몸 위에 걸쳐 있는 팔을 조심스럽게 거둬내고 나에게 딱 붙어 있는 녀석에게서 떨어져 몸을 일으켰다. 갈증이 일었다. 부엌으로 가 물을 마시는 동안 어둠에 적응한 시야가 뚜렷해졌다. 열린 방문 틈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강태영의 실루엣이 보였다. 볼록하게 솟은 모양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길게 늘여놓은 것 같았다. 컵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일찍부터 잠을 자서인지 다시 졸리지 않았다. 난 침대 옆에 서서 강태영을 관찰했다. 녀석은 잠버릇도 딱히 없었다. 지금도 아까 전에 내가 품에서 빠져나간 자세 그대로 얌전히 누워 있었다. 고요한 덕에 들리는 낮은 숨소리가 아니라면 살아 있는 사람이 맞긴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미동도 없었다.
나는 강태영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한 건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숨결이 느껴졌다. 이번엔 목이었다. 두 손으로 목을 살짝 감쌌다. 뜨거운 살갗 아래로 맥박이 세차게 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모든 걸 끝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있긴 한가? 아니면 역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거야?
응? 말해 봐, 강태영.
강태영의 목에 대고 있는 손을 거두려고 했지만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자석처럼 녀석의 목에 붙어 버린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누군가 내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었다. 분명 내 손으로 강태영의 목을 틀어쥐고 있는데 점점 감각은 희미해졌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저주를 퍼붓듯 속으로 되뇌며 강태영의 목을 계속해서 졸랐다.
“허억.”
희미해졌던 감각이 돌아온 건 한순간이었다. 내가 강태영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어느 정도의 힘으로 강태영의 목을 압박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목을 졸리던 강태영이 꿈틀거리기는 했는지, 숨이 막혀서 괴로워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녀석의 낯빛이 허옇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목엔 졸린 자국이 뚜렷하게 남았다.
죽었나? 진짜 죽었어?
손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까는 목을 조르고 있는 것도 모르겠더니 지금은 녀석의 목을 감쌌던 감각이 손바닥에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강태영.”
떨리는 건 손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목소리로 강태영을 부르고 나서야 나는 온몸이 다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너, 죽…… 아니 자는 거지?”
그 말이 실제가 될까 봐 죽었는지 묻는 말도 감히 입에 담지 못했다. 당연히 목소리도 떨렸다. 들리기나 할지 싶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인데 미친 듯이 떨리기까지 하니 짧은 말임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강태영.”
또다시 강태영의 이름을 불러 봤다. 어려웠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크게 불렀는데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장난치지 마, 너 죽은…… 그거 아니잖아.”
덜컥 겁이 났다. 진짜 죽은 거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현기증이 나고 숨이 가빠 오기 시작했다. 닿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떨어져 놓고 이번에는 떠나겠다는 애인을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태영에게로 다가가 녀석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가, 강태영. 눈 떠…… 일어나! 일어나 봐. 응?”
코 밑에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대 봤다. 1초, 2초, 3초……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태영이 죽었다.
기뻐서 춤이라도 춰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내가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알지 못했다.
“강태영?”
죽었다.
사람을 죽였다.
내가 강태영을 죽였어.
온갖 얼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영 이모와 재준이 형과 몇 년 전에 본 게 마지막인 엄마, 아빠의 얼굴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가 나를 살인자라며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살인마 자식,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내 아들을 잡아먹었다며 하영 이모가 은혜를 이렇게 갚느냐며 울부짖었다.
“태영아, 일어나 봐…….”
단단한 몸을 잡고 흔들다가 그 몸 위로 쓰러졌다. 눈물에 옷이 다 젖어 축축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울면서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어나, 빨리 눈 좀 뜨라고!”
그때 겹쳐진 몸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처음엔 이 와중에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으나 곧 작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쿨럭, 쿨럭 터지는 잔기침이 웃음소리 중간에 섞여 있었다.
머리가 쭈뼛 서는 공포가 느껴졌다. 흠칫 놀라 굳어 있던 나는 강태영의 가슴에 기대고 있던 얼굴을 천천히 일으켰다.
“나 죽이게?”
“…….”
“그러면 하던 거 계속해야지, 왜 울고 있어.”
강태영이 요사스럽게 웃었다.
“참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벌건 목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모습을 넋 놓고 멍하게 바라봤다.
“나 죽으면 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강태영이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더듬더듬 만져 보고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아까는 느껴지지도 않던 숨결이 손끝이 닿았다. 얼굴이 살짝 뜨거운 것도 같았다.
표정을 굳힌 강태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녀석의 다리 위에 앉아 강태영을 마주 보고 있었다. 녀석은 낮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뭘 하나 싶어서 가만히 둬 봤더니.”
짜악!
“……아!”
고개가 순식간에 돌아가고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눈앞에서 하얀 불꽃이 번쩍 튀었다. 뒤늦게 따귀를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코에서 뭔가 주르륵 흘렀다. 들이켜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앞은 보이지 않는데 까드득 어금니를 씹는 소리만 들렸다.
“응? 말해 봐, 백하민. 나 죽으면 너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머리가 툭툭 밀렸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밀어내는 손가락을 잡아 쳐내려고 했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으윽, 큭.”
이번에는 내 목이 졸렸다. 몸이 뒤로 확 쏠리더니 이불 위로 눕혀졌다. 강태영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바닥으로 이불을 밀며 몸을 비틀었다. 끈적한 코피가 목구멍 뒤로 넘어와서 컥컥거리자 강태영이 목을 쥔 그대로 나를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 힘에 상체만 일으켜졌다. 목을 조르고 있는 손을 꼬집고 때렸지만 옥죄어 오는 손아귀 힘은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그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앞은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입 안으로 비리고 짠 쇠 맛이 나는 피가 흘러들어 왔다.
“헉, 커윽……!”
“나 죽으면 너도 죽어.”
“크읏, 아.”
“절대 나 혼자 안 죽어, 물론 너도 혼자는 못 죽어.”
눈이 시릴 정도로 강태영을 노려봤다. 손을 뻗어 나를 쳐다보는 눈알을 파내려고 했지만 팔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강태영의 팔뚝을 툭툭 쳐대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또렷해졌던 시야가 다시 가물가물해지더니 기어코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
천천히 눈을 떴다.
천천히 정신을 잃기 전 기억이 돌아왔다. 목을 조르던 손의 감촉이 생생했다.
“아아, 아.”
작게 목소리를 내 보려고 했지만 다 쉬어빠진 목에선 쇳소리만 나왔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살펴봤다.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강태영의 목을 조르던 느낌도 아직 선명했다. 마치 손바닥에 그때의 감각이 박제라도 된 것 같았다.
강태영의 목을 조르던 감각, 강태영이 죽은 줄 알았을 때의 끔찍함, 모든 걸 본 하영 이모의 표정,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은 재준이 형.
썰물처럼 밀려드는 기억에 나는 몸을 말았다. 그 모든 게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갑자기 호흡하기가 어려워졌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숨을 쉬어도 들이마신 산소가 폐 끝까지 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입까지 이용해 숨을 쉬었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금방 달리기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숨소리는 커져만 가는데 역시 호흡은 답답했다. 덜컥 이렇게 죽는 건가 하는 공포심이 엄습했다. 가슴을 긁고 쥐어뜯으며 침대 위를 굴렀다. 입에서 턱턱 숨이 막히는 기괴한 소리가 나왔다.
“어윽, 허억.”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침대 위를 굴러다니고 있는 나를 보고도 당황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은 강태영이 다가왔다.
녀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려 달라는 무언의 몸짓이었다. 강태영이 자신에게로 뻗친 내 손을 살포시 잡아 주더니 침대 위로 올라와 나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 나는 강태영의 어깨 위에 턱을 올린 채 녀석의 가슴에 축 늘어져 기댔다.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숨 쉬어 봐.”
귀신처럼 내 몸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호흡이 조금씩 편해졌다. 당장 숨통이 틀어막혀 질식사할 것 같은 공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괜찮다며 등을 쓸어 주는 손길에 무슨 힘이라도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얌전히 강태영의 품에 안겨 있었다. 강태영도 굳이 나를 내치지는 않았다. 이 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도 나를 먼저 놓지 않는 강태영의 행동에 나는 믿기지 않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을 죽이기까지 하려고 했던 나를 강태영이 버리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우습게도 그 사실이 살면서 그 어디에서도 느껴 본 적 없는 안도감을 선사했다.
•••
“허억.”
아래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느낌에 놀라 눈을 떴다. 더듬더듬 아래에 손을 댔다. 다행히 느낌처럼 아래가 젖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이불을 들치고 샅샅이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어깨부터 힘이 쭉 빠졌다. 자다가 지금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다리 사이로 뜨끈한 물이 흐르는 감각이 느껴질 때면 화들짝 놀라 아래를 확인해야만 괜찮아졌다.
일련의 일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요즘은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자다가도 이런 이상 감각으로 화들짝 깨어나는 일이 부쩍 늘었다.
강태영이 죽음에서 다시 돌아온 후 나는 강태영을 죽인다는 선택지는 완전히 지워 버렸다. 잠깐 맛봤던 녀석의 죽음이 너무나 끔찍해서였다.
그를 죽이고 나면 모든 게 끝일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홀가분하게 내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때 느낀 감정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강태영이 숨을 쉬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의 그, 끔찍한 블랙홀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던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건 홀가분한 것도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더 빠져나갈 수 없는 진창으로 처박혀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나에겐 그걸 다시 겪을 용기가 없었다.
자신을 죽이고 나보고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었던 강태영의 목소리가 연방 머릿속을 울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잘못을 빌었다.
아니, 나도 너 없인 살 수 없어.
강태영이 주는 대로 먹고 입으라는 대로 입고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이 없는 삶을 살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했다.
편한 삶이었다.
이제는 등을 덮듯 감싸 안는 단단한 가슴에서 곧잘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언젠가 강태영이 자기 옆에만 있는 게 어렵냐고 물었다. 그때는 싫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런 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불안정한 정신세계가 꿈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지 얼마 전에는 강태영에게까지 버림받는 꿈을 꾸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나를 데려간 강태영이 애원하는 나를 차 밖으로 자비 없이 밀어내고 떠나는 꿈이었다. 빠르게 사라지는 자동차의 뒤꽁무니를 따라 맨발바닥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꿈에서 깼을 땐 온통 땀범벅이었다. 꿈일 뿐인데도 발바닥이 아팠다. 그 꿈을 꾼 뒤로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꿈에 대해서는 강태영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진짜 재미있겠다면서 나를 버릴까 봐.
내가 방에 혼자 있을 때는 보통 방문이 열려 있었다. 악몽을 꾸거나 이상 반응을 보일 것을 대비해 잘 지켜보기 위함이라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은 강태영을 찾고 있었다. 그렇지만 닿는 시야 안에서는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해져서 급하게 침대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강태영이 나타났다.
“어디 가?”
“……없어서.”
“뭐가?”
“네가 안 보여서.”
내 말에 다가오던 강태영이 살짝 멈칫했다. 녀석의 행동 하나에도 부쩍 크게 신경 쓰이기 시작한 뒤로 덩달아 눈치를 많이 보게 됐다. 잠깐 강태영이 멈칫한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곱씹기에 바빴다.
강태영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내 턱을 잡아 올렸다. 내가 만든 생채기 난 목이 보였고 그다음에 녀석의 잘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매를 매만지는 손길이 부드럽다. 나는 점점 더 침대 안쪽으로 밀렸고 강태영은 침대 위로 올라왔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뜨겁네.”
허벅지를 쓰다듬던 손이 금세 더 안쪽을 파고들었다. 다리를 오므리고 강태영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이미 그의 손은 가장 안쪽까지 닿아 있었다.
“오늘은 안 쌌어? 너 요즘에 자다가도 싸는 느낌 든다고 깨잖아.”
“안 쌌, 아…… 흐읏.”
마른 구멍과 회음부를 꾹 누르며 미끄러지듯 움직인 손가락이 성기를 감싸고 느리게 주물렀다. 반쯤 발기한 성기 끝을 엄지로 막듯 문지르자 요의가 차올랐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엉덩이쯤 닿아 있는 발이 마구잡이로 흩어졌다. 자세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강태영의 손안에서 발기하고 사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강태영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덜덜 떨며 흰 정액을 쏘아대고 있었다.
“으으읏.”
아래로 내려간 녀석이 허벅지 안쪽 살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살갗을 빨자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허벅지부터 사타구니까지 이어진 애무에 점점 아래로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성기가 다시 윤곽을 갖춰 가는 것이 느껴졌다. 빨아들이는 강태영의 입 안으로 음낭이 들어갔다. 강태영은 손으로 기둥을 훑으면서 음낭을 입 안에서 사탕처럼 굴렸다. 빨아들이는 힘이 강할수록 헐떡이는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눈이 저절로 까뒤집어졌다.
“하읏, 아, 아으윽.”
허공으로 붕 뜬 발가락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연신 꼼지락거렸다. 쿠퍼액이 새고 있는 성기를 뱉어낸 강태영이 그런 발가락을 한입에 넣었다. 따뜻하고 축축하고 물컹한 것이 발가락을 가득 감쌌다.
“하읏, 뭐……!”
놀라 일으킨 상체 위로 커다란 손바닥이 올라왔다. 강태영은 다시 누우라는 듯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꾹 눌렀다. 춉, 춉. 발가락을 빨면서도 그의 눈은 내 얼굴을 향해 있었다. 강태영은 내 눈을 집요하게 바라보면서 혀를 움직였다. 빨간 혀가 벌어진 틈 사이로 보일 때마다 배가 간지러웠다.
“조아?”
불분명한 발음이었지만 의미 전달엔 문제가 없었다. 녀석이 좋은지 물을 땐 싫다거나 고개를 내젓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됐다. 몇 번의 잊고 싶은 경험을 통해 어렵게 체득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대답도 고갯짓도 하지 않고 손등으로 입과 코 부분을 가렸다.
뜨거운 숨결이 닿는 것과 동시에 피식, 웃는 소리가 낮게 들렸다. 입을 가리고 있던 손가락 사이사이로 다른 손가락이 파고들어 깍지를 꼈다. 기껏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이 치워지고 순식간에 입술이 닿았다. 질펀한 키스가 이어졌다. 녀석의 혀에서는 짭조름하고 비릿한 맛이 났다.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이미 잔뜩 성이 나 젖은 자신의 성기에 좀 전에 내가 뿜어낸 정액을 문질렀다. 녀석의 기둥과 귀두에서 흰 액이 치덕치덕 발렸다.
곧 젖은 귀두 끝이 구멍 주변부 주름을 문질렀다. 삽입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내 의지와 달리 뻐끔거리는 구멍에 한 번씩 귀두가 들어왔다가 빠져나갈 때마다 그냥 박아 달라고 녀석을 조르고 싶은 생각이 드문드문 들었다.
“그…… 아으.”
감칠맛에 입 안이 다 말라 갈 때 아래가 벌어지고 뭉툭한 귀두부터 천천히 녀석이 들어왔다.
“하윽!”
단단한 성기가 밀고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 욱…… 윽.”
기다리고 있었으면서도 삽입되는 성기가 끝도 없이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자 덜컥 겁이 나서 강태영의 단단한 어깨를 바짝 끌어안았다. 자신에게 안기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강태영이 웃으면서 내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 가며 피해 봐도 소용없었다. 턱이 붙잡히고 혀가 들어왔다. 강태영은 아예 얼굴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숨도 못 쉴 정도로 몰아붙이는 키스를 이어 갔다.
“우읍, 우.”
강태영이 내 양 손목을 결박한 후 잡아 올렸다. 내 몸 위로 길게 누운 자세가 된 강태영의 상체가 내 가슴 위를 완전히 덮었다. 옭아매는 혀가 여전했고, 입 안 점막이 모두 빨렸다. 츠으읏, 츕. 혀가 닿고 빨리는 자리마다 소리가 흐트러졌다.
“아, 윽…… 하으, 아.”
길고 굵은 기둥이 끝까지 들어왔다 느리게 빠져나가면 입에서 달뜬 신음이 터졌다. 내벽이 젖은 성기에 달라붙어 떨어졌다가 도로 달라붙는 느낌이 선연했다. 윗입술을 핥던 혀가 다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후흡, 츳.”
한참 후에야 혀가 빠져나갔다. 강태영은 턱과 쇄골을 지나 가슴을 빨아댔다. 강태영의 입에서 뱉어진 유두가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이상하게 흐린 시야로 보이는 유두가 전보다 좀 더 커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 윽.”
강태영의 움직임이 점차 거세어졌다. 음낭이 구멍을 쳐댈 정도로 강한 힘에 아래가 맞닿으면 그 반동에 몸이 뒤로 밀렸다.
“후으.”
강태영이 결박하고 있던 손목을 풀고는 양 허벅지를 단단하게 잡고 박아대는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치받고 들어오는 굵은 성기를 피할 수가 없었다. 허리와 배가 위쪽으로 살짝 들린 채 평균을 크게 웃도는 성기가 퍽, 퍽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움찔거리며 빠듯하게 벌어지던 내벽 안쪽에서 완전히 젖은 소리가 났다. 들어오는 길이 미끄덩한 게 느껴졌다. 처음보다 훨씬 빠르고 수월하게 쑤욱, 쑥 삽입되는 성기가 특정 부분을 비벼대고 찔러 오자 아랫배부터 성기와 회음부, 구멍까지 퉁퉁 붓는 느낌과 함께 열이 올랐다.
“아으으, 우븝.”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연신 쏟아졌다.
“아, 아아.”
강태영이 옆으로 내 몸을 돌려 눕혔다. 성기가 내벽에 그대로 박힌 채 반쯤 빙글 돌게 된 나는 모로 누워 아랫배를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비죽 솟는 것 같은 쾌감이 순식간에 전신을 강타했다. 요란하게 몸을 떨며 이불 위로 정액을 질질 흘렸다.
“후, 아아, 씨이발.”
뒤로 움직였다가 그대로 깊게 쑤셔 넣던 강태영의 자세가 순간 흐트러졌다. 깊게 박혀 있던 성기 각도가 살짝 달라지며 내벽 안쪽을 찧는 순간 또다시 전신을 울리는 감각이 찾아왔다.
“아아아아!”
짙은 쾌감에 몸을 떨면서 이불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무엇이든 잡고 싶었다. 꺾인 목구멍에서 꺼억, 꺽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쳐들린 턱이 덜덜 떨렸고 정수리는 강태영의 어깨에 짓이겨지고 있는 듯했다.
“하아, 이번엔 드라이로 간 거야?”
잠시 숨을 몰아쉬던 강태영이 내 다리를 잡고 다시 움직였다. 관자놀이에 강태영의 뜨거운 입술과 함께 숨결이 닿았다.
녀석의 성기가 출입할 때마다 구멍에서 꿀렁이며 삐져나온 진득한 액이 엉덩이를 타고 흘렀다.
뜨거운 손이 내 아랫배를 강하게 감쌌다. 내 몸을 뒤로 당기는 힘에 땀에 젖은 등이 강태영의 단단한 가슴에 완전히 맞닿았다. 등으로 쿵쿵 녀석의 심장 박동이 전해졌다.
“……흐으으.”
아래쪽 다리마저 강태영의 허벅지에 눌려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에서 녀석의 좆이 기둥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터져 나올 것 같은 신음을 참느라 어금니가 앙, 다물렸다. 턱이 터질 것 같았다. 강태영은 느리게 앞섶을 내 엉덩이에 대고 비볐다.
그 움직임에 안에서 흘러나온 체액이 치덕치덕 발리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 깊게 박힌 좆이 그대로 내벽을 이리저리 뭉갰다. 앞, 뒤로 움직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쾌감이었다.
아랫배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 강태영의 손등을 긁다 못해 손가락을 하나하나 잡고 뜯으려고 해 봤지만 내 손에 그만큼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강태영의 손가락 하나도 떼어낼 수 없었다. 한 마디 정도만 겨우 한 번씩 들춰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강태영은 자신의 손등 위에 내려앉은 내 손에 오히려 깍지를 꼈다. 배 속 깊숙하게 품은 녀석의 성기에 볼록하게 솟은 뱃가죽이 강태영의 손바닥 위로도 느껴졌다.
“하윽, 하……아욱, 흐으윽.”
단단한 좆 기둥이 내벽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아래를 뭉개면서 움직이던 강태영이 한 번씩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녀석의 숨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다.
찰퍽, 철퍽.
꽤 오랜 시간 동안 넣은 채 비벼대기만 하던 강태영이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허억, 하아. 아…… 아흑!”
내벽의 살이 빠져나가는 성기를 따라 모조리 삐져나갈 것 같다가 다시 밀려 들어왔다. 강태영이 한쪽 팔로는 내 상체를 꽉 끌어안고 다른 팔로는 골반 쪽을 끌어안았다. 뼈가 다 으스러질 것 같은 힘이었다. 도망갈 수도 없는 상태에서 아래만 빠르게 떨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했다.
“으으, 앗……! 학, 하욱!”
“하아, 하.”
단단한 성기가 꽉 박힐 때마다 몸이 비틀렸다. 배가 올록볼록 치솟고 허리가 제멋대로 튕겼다. 그런데도 강태영은 내 몸을 놓지 않았다.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아래는 멋대로 조였다 풀리며 박혀대는 좆을 잘도 받았다. 오히려 몸보다 정신이 쾌감을 따라가지 못했다.
얼굴 근육도 다 풀렸는지 눈꺼풀이며 입가 근육이 벌벌 떨렸다. 살짝 삐져나온 혀가 벌어진 입가로 늘어져 흔들렸다. 눈동자가 자꾸만 뒤로 넘어갔다. 앞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했다.
콰득.
“아악!”
잇자국대로 피가 고일 것 같은 강한 힘으로 내 어깨를 꽉 깨문 강태영에 쉰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강태영 역시 참을 수 없다는 듯 신음을 흘려댔다. 골반을 잡고 있던 손이 그 아래로 옮겨 갔다. 좆을 받아들이고 있는 입구를 꾹꾹 눌렀다. 주름 하나 없이 팽창한 입구 사이로 녀석이 손가락을 넣어 틈을 벌리려고 했다. 여기서 더 벌어질 순 없었다. 찢어진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충격에 몸부림치며 손으로 강태영의 팔뚝을 치고 팔을 뒤로 뻗어 붙어 있는 몸을 쳤다.
“하지마, 하윽…… 하지, 아.”
굳은 혀로 어렵게 말했지만 뒤에서 들리는 건 정신 나간 신음뿐이었다. 강태영이 아래를 억지로 벌려 나가며 이미 끝까지 박힌 성기를 더 밀어 넣으려고 했다. 주름에 고환이 비벼졌다. 강태영은 그것까지 처넣을 생각인 거다.
“제발요…… 안, 흐윽. 돼…… 우븝, 븝!”
소름 끼치게도 억지로 벌어진 틈새 안으로 강태영은 몇 번이고 기둥이 아닌 아래 살덩이를 밀어 넣으려는 시도를 했다.
“하으윽, 커억.”
강태영에게 잡혀 허공으로 들춰진 오른 다리가 맥없이 흔들리다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열 발가락이 부채처럼 펼쳐졌다. 몸이 잘게 경련했다. 경련은 꽤 길게 이어졌다.
“웃, 후으.”
경련과 동시에 아래 또한 강하게 수축했다. 내 몸을 끌어안은 강태영 역시 굳은 몸을 살짝 떨었다.
“지금 너 진짜 잘 어울리는 거 알아?”
씹던 귓바퀴를 입에 넣고 빨던 강태영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의 떨리는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넌 역시 이런 게 어울려, 예뻐.”
아랫배가 뚫릴 것처럼 강하게 꽂아 넣은 강태영이 몸부림치듯 떠는 내 등을 양손으로 잡고 꾹 눌러 결박하며 배 깊숙이 사정했다. 틈도 없이 녀석의 성기에 달라붙은 내벽을 통해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졌다.
•••
몸이 이상했다. 따뜻하고 축축한 벌레가 내 위를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야 할 부위가 간지러웠다.
벌레 떼가 온몸을 갉아 먹는다. 으으으. 더럽게 징그럽고 끔찍했다. 발버둥을 치고 몸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떼어내기 위해 상체를 흔들어 보기도 했지만 그 징그러운 감각은 도무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종내에는 포기해 버렸다. 깨달은 탓이었다. 온몸을 갉아 먹고 있는 벌레를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아프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몸이 다 먹히고 있는데도 아프기는커녕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체념한 채 모든 걸 내어 주었다. 마지막 손톱이 먹힐 때까지도. 형상조차 남지 않은 나를 또 다른 내가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야금야금 모조리 잡아먹은 벌레가 시선을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모든 것을 모조리 집어삼켰으면서도 모자란다는 얼굴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올려다보는 얼굴은 벌레가 아니라…….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겁다. 이젠 환청까지 들렸다. 입에서 나오는 숨결은 달군 쇳덩어리처럼 뜨거웠다. 철근을 올려놓은 듯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반쯤 정신이 들었다. 기절하듯 잠든 동안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었다.
눈을 뜨는 순간 눈꺼풀이 갈라져 찢어지는 느낌이 났다. 눈물이라도 말라붙은 건지 위, 아래 눈썹이 겹겹이 겹쳐 붙어 버린 탓이었다.
“으윽.”
몸을 일으켰다가 아래가 아직도 꽤 부어 있는 건지 앉는 게 불편해서 다시 누웠다. 그대로 다시 누웠을 뿐인데 저절로 신음이 흘렀다.
시선이 느껴져 고개만 돌렸다가 문밖에 서 있던 강태영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강태영이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내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엎드려.”
“왜, 왜?”
설마 일어나자마자 또 바로 섹스를 하려는 건가 싶어 경계하며 묻자 강태영이 연고를 들어 보였다.
“뭘 그렇게 경계해, 무안하게.”
조금도 무안해하지 않았으면서 강태영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했다.
“……내가, 내가 바를게.”
눈을 피하며 말하자 강태영이 “그러든가.” 하고는 연고를 건넸다.
“……안 나가?”
“어.”
강태영은 아예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엉덩이를 다 까고 약을 바르는 것을 다 지켜보기라도 할 건지 오히려 얼른 바르라며 나를 재촉하기까지 했다.
“너, 나가야 바를 거야.”
내 말을 듣고 있던 강태영이 웃으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미 너 정신도 못 차릴 때 내가 다 발라 줬는데, 이러는 게 더 웃긴 거 알지?”
“…….”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강태영이 삽시간에 연고를 다시 빼앗아 갔다.
“엎드려.”
원래부터 내가 혼자 바르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 더 고집부리지 않고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밤새 얻어맞은 듯 근육통이 일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는데도 끙끙거리는 소리가 목구멍을 울렸다.
이불이 내려가고 무엇도 걸치지 않은 맨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얼굴을 베개에 처박았다. 정신이 없었을 때야 모르겠지만 맨정신 상태로는 아무래도 수치스러운 자세였다. 강태영과 몸을 섞은 게 수십 번도 더 된다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허리 들어 봐.”
강태영의 말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베개를 더 강하게 잡았다. 곧이어 큰 손이 둔덕을 잡아 벌렸다.
“윽.”
아직 예민한 입구를 파고들고 꽤 깊게 손가락이 들어왔다. 손가락이 앞, 뒤로 움직이며 내벽에 약을 바를 때마다 나는 숨을 참았다. 얼굴에 터질 것처럼 피가 쏠렸다. 퉁퉁 부어 주름도 펴졌을 입구까지 꼼꼼하게 약을 바르고서야 집요한 손길이 사라졌다.
강태영이 다시 상체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주고 나서도 한동안 나는 계속 엎드린 자세로 얼굴을 묻고 있었다.
원하는 바를 이뤘으면 그만 자리를 비워 줄 만도 하건만 웬일인지 방을 나서는 기척이 없다.
왜 안 나가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뒷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나는 헙,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손길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녀석이 나가기까지 기다리려고 했으나 참지 못하고 베개에 묻었던 얼굴을 든 건 숨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강태영은 그때까지도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턱을 베개에 괸 채 침대 헤드를 노려봤다. 강태영의 손이 떨어질 줄 몰랐다.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작게 한숨을 쉬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눈알에 힘을 주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강태영의 손을 피하고자 아닌 척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그러나 손길은 떨어질 줄 몰랐다.
“……그만 좀 해.”
“예뻐해 줄 때 뻗대지 마.”
역시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그 말에 무슨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결국 승자는 강태영이었다.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힘을 뺐다.
예뻐해 줄 때 뻗대지 마.
강태영이 한 말을 소리 내지 않고 따라 하다가 부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만큼 우리 관계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대화가 또 있을까 싶었다. 이러고 있으니 꼭 녀석의 반려견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하긴, 그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좋은 상황도 아니긴 했다.
별안간 내가 웃자 강태영의 잘생긴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순간 겁이 났지만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그랬지? 넌 지금 이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 그러니까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네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강태영이 짐짓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나는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옆으로 기울여 녀석을 바라봤다.
“기생.”
“…….”
“너 그거 잘하잖아, 남한테 기생하는 거. 숙주만 달라졌지.”
강태영이 별생각도 없는 것처럼 가벼이 내뱉은 한 단어에 남아 있지도 않을 자존감이 짓이겨지는 기분이었다. 인생 자체가 폄하당하는 기분에 울컥 올라온 감정은 어떻게 삼켜냈지만 눈가로 몰리는 열은 참지 못했다. 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져서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꼭 기생충이라도 된 것 같았다. 악몽 속에서 보았던 벌레가 떠올랐다. 강태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일지도 몰랐다.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생각해 보면 자아가 단단하게 확립되던 시기부터 나는 항상 어딘가에 기생하는 삶을 살아왔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숙주만 달라졌을 뿐 기생하며 삶을 이어 가는 건 여전했다.
“생각해 봐, 지금 넌 어차피 누구 없이 혼자 살기 어려워. 발작하고 악몽 꾸고 옷도 제대로 못 입지, 좁은 공간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워하잖아.”
조곤조곤 이어지는 목소리는 내가 얼마나 온전하지 못한지에 대해 떠들고 있었지만 왜인지 자장가처럼 듣기 편안했다.
“난 크게 바라는 거 없어.”
생각해 보면 뻔뻔하기도 한 삶이었다. 물에 잔뜩 젖은 솜을 먹은 옷을 입은 것처럼 몸이 무거워졌다.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너랑 나 둘이서.”
자장가처럼 편안하게 들리는 걸 넘어 이렇게 둘이서 살자는 말이 달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한테 기생해, 나한테만.”
강태영의 한마디에 내 존재가 무척이나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너 그거 잘 하잖아,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어.
비단 강태영뿐일까? 모두가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정말 그래.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야. 각자의 생존 방식이 있는 거지.”
속으로 자조하는 내 머리를 강태영이 아프지 않게 툭툭 두드렸다.
“이젠 힘들게 뭐 안 해도 돼, 돈도 안 벌어도 되고. 생각해 봐, 지금까지 네가 혼자서 뭐 하려고 했을 때 잘된 적이나 있어? 병신처럼. 사람 좋아하는 것도 그래. 하필 왜 강재준을 좋아해?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강태영도 싫고 나를 하영 이모의 집에서 살게 한 상황도 싫고 부모도 싫었다. 돌이켜 보면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내가 싫어하는 것밖에 없었다. 나를 싫어하는 게 나를 이때까지 살게 했다.
이 아이러니함이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졌다.
그렇게 산 건 내 결코 내 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그랬다. 부모님도, 하영 이모의 집에 들어간 것도, 재준이 형을 좋아했던 것도, 그리고 그걸 강태영에게 고스란히 들켰던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만 모든 게 결국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자괴감이 일었다.
내가 더 잘했으면, 조금 더 빨리 이모의 집에서 나올 생각을 했다면, 재준이 형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강태영의 말에 틀린 것도 없었다.
나는 기생하고 싶었다. 그게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는 것도 솔직히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모든 걸 강태영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나는 강태영을 혐오한다. 하지만 또한 그에게 기생하며 살려고 했다. 강태영에게 버림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어제까지의 내가 떠올랐다. 강태영이 나를 두고 했던 모든 말이 수긍되는 순간이었다.
감은 눈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베개에 비벼 닦아냈다. 눈가에 닿은 베개 커버가 뜨끈하고 축축하게 젖어 갔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이제는 작게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뒷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 빙빙 돌리며 만지기도 했다.
“……어떻게 믿어.”
코맹맹이 소리로 웅얼거렸다. 네가 날 버리면 끝인데. 내가 뭘 믿고 네 옆에 있을 수 있겠어. 똑같은 짓이라면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감정을 억누른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다가 뒷말은 삼켰다. 지난번 가게에서 일하면서 돈을 갚을 때 홧김에 너한테도 파는 몸을 다른 사람한테는 못 팔겠냐고 했다가 강태영이 회까닥 돌아 버린 것처럼 굴었던 일이 떠올라서였다. 뒷머리를 매만지던 손길이 잠시 멈칫했다.
“뭐, 너 좋아하는 계약서라도 다시 쓰든가.”
희한하게도 그 말이 전처럼 절망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
나는 결국 내 손으로 다시 계약서에 사인했다. 강태영이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마지막 조항만 쓰여 있는 백지 계약서였다. 내가 뭘 해야 할지는 몰랐다. 강태영이 나를 버리지 않는 조건으로 뭘 적어 넣을지도. 그런데 이상하게 두려움보다 안도감이 더 컸다.
그 종이 한 장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왠지 모르게 그냥 웃음이 나왔다.
“웃기는.”
내가 사인한 백지 계약서를 든 강태영이 손가락 끝으로 볼을 툭 치며 말했다. 예전엔 이런 행동에도 자존심이 상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어쩐 일인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무슨 생각 해?”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강태영이 물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이번에는 강태영이 웃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상황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라고도 했다.
“네가 나를 좋아했으면 이렇게 어렵게 오지도 않았을 텐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강태영을 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강태영의 말대로 이딴 몸으로 어딜 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만 점점 커졌다.
무엇 하나 가진 것도 없는 내게 쓸 만한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온전하지 않았다. 강태영이 무엇을 원하든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이미 몸이라면 셀 수도 없이 바쳐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강태영이 나에게서 무엇을 취하려고 할지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녀석의 말대로 쓸데없는 생각은 상황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깊게 생각하는 일은 도움 되지 않았다. 나는 상념에 빠져들려고 하는 흐름을 의식적으로 차단했다.
•••
내게 일어난 일들만 봤을 때는 당장 지구가 멈춘다고 해도 이상할 것 같지가 않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알아서 흘러갔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아무 일도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 같았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분명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데 세상이 너무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오히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구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하영 이모의 방문이 몇 번 더 있었다. 내가 혼자 있을 때도 있었고 강태영과 함께 있을 때도 있었다.
지난번 사건 이후로 도어 록을 바꾸었기 때문에 이모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카드 키를 가지고는 마음대로 집에 들어올 수 없었다. 강태영은 이모가 올 때마다 거의 발작하듯 까무러치는 나를 두고 절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이모는 강태영을 이기지 못했다. 충격에 흐트러졌던 얼굴은 이제 더 이상 일그러지지 않았다. 인터폰 너머로 보이는 얼굴이 확고했다. 가끔은 강태영에게로 전화가 오기도 했는데 옆에서 듣기로는 항상 이모의 패배였다.
마지막으로 왔던 이모의 연락에서 휴대폰 너머로 희미하게 들리던 목소리는 체념을 담고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나가지 않고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씻고 밥을 먹고 자는 행위가 아니라면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나 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아주 가끔 지겹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렇다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이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고 강태영이 하자는 대로만 한 뒤로 녀석은 내게 꽤 유해졌다.
나는 모든 것을 강태영의 손을 빌려 해결했다. 강태영이 사 주는 음식을 먹고 입으라는 옷을 입고 때로는 녀석이 씻겨 주는 대로 가만히 그 손길을 받고 있을 때도 있었다.
강태영이 말했던 대로 나는 기생하는 게 천직인 삶인지도 몰랐다.
강태영이 외출을 할 때면 나는 적막한 집에 홀로 남는다. 밥을 먹고 비타민을 먹은 뒤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낮잠 아닌 낮잠을 잔다. 다시 일어나면 어느덧 시간은 오후가 되어 있고 그때부턴 강태영을 기다리며 녀석이 끊어 준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죽였다. 멍하게 움직이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보면 시간은 잘도 갔다.
일과를 마친 강태영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나로서는 가장 생기가 돋는 시간이었다. 녀석이 오면 함께 저녁을 먹고 강태영이 일과를 물으면 나는 매일 거의 똑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실 나라면 매번 반복되기만 하는 일상 이야기를 듣는 게 지겨울 만도 할 것 같은데 내 이야기를 듣는 강태영에게서는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거 재미있었어?”
강태영이 내 앞으로 물 잔을 밀어 주면서 물었다. 오늘 새로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 시리즈에 대해 가만히 듣던 녀석의 첫 물음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주말에 봐야겠네.”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진짜로 즐거워 보였다. 눈까지 접으며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어두운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거짓도.
강태영의 웃는 얼굴을 따라 나도 미소 지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웃는 얼굴을 따라 하는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강태영의 웃는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온 것은 진심이었다.
“오늘 성지후한테 연락이 왔는데.”
강태영이 운을 띄웠다. 그에게서 나온 이름이 반가웠지만 그 감정과 어울리지 않게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공부는 잘돼 가고 있는지 묻던데, 괜찮으면 얼굴 좀 보자고.”
강태영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관찰하는 시선은 익숙했지만 낯설었다.
“……잘하고 있다고 해, 수능 끝나면 보자고.”
“네가 연락해 볼래?”
강태영이 휴대폰을 넘겨주려고 해서 손을 휘저으며 말렸다.
“싫어. 그냥 네, 네가 해.”
“연락하고 싶지 않아?”
“……나중에.”
“나중에 언제.”
“그냥 나중에…….”
성지후가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평화로움을 깨트리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지금이 좋았다. 강태영이 저렇게 다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고 내 얘기를 들어 주는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기억을 도려내고 싶었다. 어차피 녀석의 옆에서 평생을 함께할 거라면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 따위는 없는 게 나았으므로.
그래서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가끔 과거에 내가 했던 짓을 후회하기도 했다.
나를 가만히 보던 강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강태영은 성지후에게 연락하지 말라거나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나는 살짝 놀란 채 그 말이 진심인지 확인하기 위해 강태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나는 곧 그것이 녀석의 진심임을 깨달았다.
내 삶을 온전히 강태영에게 맡기기로 마음먹은 뒤 얻은 대가는 충만했다.
“좋아.”
나는 좋다고 대답한다.
식탁을 치운 강태영이 과일 쟁반을 들고 내 손을 잡았다.
소파에 앉은 후 나를 자신의 옆에 앉힌 강태영이 내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순순히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툭 머리가 옆으로 기울고 단단한 어깨가 관자놀이쯤에 닿았다.
TV를 틀자 뉴스가 나왔다. 강태영은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볼만한 게 없다면서 나에게 뭐가 보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지금 틀어져 있는 채널을 보겠다고 대답했고 강태영은 그제야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사과 조각을 찍은 포크를 건네는 녀석의 행동이 부쩍 다정하게 느껴졌다. 아삭아삭 소리와 함께 입 안에서 과즙이 흘렀다. 달콤한 과일 냄새가 우리 사이를 메웠고 나는 그저 억지로 기워낸 이 달콤함이 깨지지 않기를 빌었다.
•••
태영은 자신의 어깨에서 움직이는 작은 머리통을 내려다봤다. 드디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토록 소망하던 완벽한 기생(寄生)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