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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에서 탈출시켜 줄 히든영웅을 찾습니다-7화 (7/178)

7????

메데우스가 나택에게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곧바로 두 사람 사이에 난 골목으로 몸을 틀었다. 메데우스가 나직이 말했다.

“내게 경칭을 붙이지 않는 놈도 없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날 구하겠다고 독사에게 달려드는 놈도 없었거든.”

메데우스의 말을 듣는데 나택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 말은 즉, 그를 죽이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그를 살리려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게 이유의 전부인가? 그래서 날 의심하지 않는다고?

대체….

골목으로 들어가던 메데우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안 오고 뭐 해.”

“아. 예.”

나택이 빠르게 메데우스의 뒤를 따랐다.

대체 얘는 무슨 삶을 살아온 걸까.

메데우스를 따라가는 내내 나택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메데우스는 나택의 몸을 등으로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어깨와 긴 팔다리를 가졌다. 하지만 목 위만을 떼 놓고 보면 처진 눈에 봄 햇살 같은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동양인과 확연히 다른 이목구비를 갖고 있음에도 몹시 앳된 티가 여실히 보였다. 10대 후반? 많이 쳐 줘 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대단한 반전이 있지 않은 한, 일단 나택보다 어린 건 확실했다.

첫인상부터 태도 하나하나를 보면 무뢰한에 맞먹는 싹수없는 애새끼 같은데, 또 조금 전의 말을 곱씹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대체 뭘 어떻게 지내 왔길래, 나택이 아주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 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하여튼 알 수 없는 놈이다. 저 변덕과 기준을 맞출 수가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더는 갈 곳이 없는 골목 끝에 다다랐을 때쯤 메데우스가 멈추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탕탕, 금속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이쿠, 메데우스 님 오셨습니까.”

늙은 대장장이가 인사했다. 그는 검을 두드리는 걸 멈추지 않고 그저 고개를 까딱거릴 뿐이었다. 메데우스 역시 대장장이의 태도에 트집을 잡지 않았다. 메데우스가 검을 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손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오셨습니까.”

“그렇게 됐어.”

메데우스의 말에 대장장이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이 검을 검집에서 꺼내더니 유심히 살폈다.

“보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새 날이 많이 상했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필요하지.”

“첫째, 둘째 주인님들께서 맡겨 두신 게 있긴 한데, 메데우스 님 것을 제일 먼저 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

대장장이는 곧 메데우스의 검을 내려놓고 다시 단조(금속을 두들기거나 눌러서 필요한 형체로 만드는 일) 작업을 이어 갔다.

대장장이 노인은 우루크의 사람들과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비교적 밝은 피부에 옅은 눈, 연갈색 머리카락까지.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메데우스와 비슷했다. 그러나 행색은 시장의 여느 상인들보다 훨씬 허름했다.

대장장이가 쥔 망치가 검을 칠 때마다 탕탕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었다. 나택이 고개를 숙이며 유심히 관찰하는데 뒷덜미가 잡히는가 싶더니 몸이 뒤로 쑥 당겨졌다.

메데우스가 차갑게 말했다.

“단조질이라도 당하고 싶어?”

“…아닙니다.”

나택이 상체를 들며 몸을 곧추세웠다.

“무슨 일을 해야 하냐고 물었었지.”

훅 들어오는 말에 나택이 한참을 가만 있다가 어리바리한 어조로 예, 하고 답했다. 분명 제게 할 일을 언질해 달라고, 그래야 너를 제대로 모실 수 있다고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가서 물건 몇 가지를 사 와.”

메데우스가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나택에게 주었다. 안에는 청동으로 만든 인장이 있었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피막과 망토는 두 개씩. 가죽 수통은 네다섯 개면 충분하고, 그 외에 부피가 작은 마른 과일도 조금씩. 가죽 노끈도 최대한 가볍고 튼튼한 거로 두 개를 구해 와. 거래는 내 인장을 써서 점토판과 물표(점토에 숫자를 새겨 물건을 보내거나 맡긴 것에 대하여 증거로 삼는 표지. ‘수눈키’ 안에서는 오늘날의 영수증, 거래 장부와 비슷하게 사용됨)로 하도록 해.”

“…예.”

“나는 다른 일을 보고 올 테니, 할 일을 마치면 해가 지기 전까지 이곳으로 와.”

나택이 고개를 끄덕이자 메데우스가 앞장서서 먼저 골목을 빠져나갔다.

* * *

홀로 시장을 걸으며 나택은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이건 기회였다. 단서를 찾기 위한 절호의 기회.

나택은 머리를 쥐어짜고 또 쥐어짜서 스킵했던 영상과 내용들을 떠올렸다. 시장에서 무슨 퀘스트를 받았더라….

아마 상인들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우루크의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 그래야 우루크를 함락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상인들에게 우루크에 대한 불만이 있는지를 캐묻고 다니다가…….

어딘가에서 우루크의 미래를 예언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

“…점술사!”

나택이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점술사다!

미래를 점지해 준다는 점술사를 찾아가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었다. 그렇게 얻은 단서가 최종적으로 우루크를 함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택의 심장이 뛰었다. 당장에 점술사를 찾아야만 했다. 메데우스가 시킨 심부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시장통에서 놈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나택은 일단 점술사가 있을 법한 골목부터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성과 없이 골목 하나를 빠져나오려는데 기시감이 들었다. 나택이 몸을 돌려 방금 나온 골목으로 향했다. 망토를 뒤집어쓴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동시에 시스템 안내창이 떴다.

수상한 자를 발견했습니다. 정체 모를 기운이 수상한 자에게서 흘러나옵니다.

저놈이다!

나택이 빠르게 골목 안 남자를 쫓아 들어갔다.

“저기요.”

나택이 놈을 불렀다. 그러자 걷던 놈이 우뚝 멈추어 섰다.

“뭐 하나만 여쭤볼게요.”

나택이 말하는 순간, 망토를 쓴 놈이 갑자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저기! 잠깐만요!”

아, 이런 미친…!

놈은 바람처럼 날쌨다. 나택은 학창 시절 계주 에이스였을 정도로 달리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나택이 전속력으로 질주해도 놈이 손에 닿질 않았다.

알라딘이 누비고 다녔을 것 같은 골목에서 숨 막힌 추격전이 벌어졌다. 얼마나 뛰었을까. 막다른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놈이 멈추어 섰다. 나택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 미친…. 후우…. 잠깐, 잠깐만요.”

놈은 안절부절못하며 다른 탈출구를 찾았다. 나택이 성큼성큼 다가가 놈의 망토 후드를 잡아당겼다.

“잡아먹겠다는 것도 아닌데, 얘기 좀 합시다. 왜 자꾸 도망을…. 어? 당신…?!”

돌아본 남자가 침을 꼴깍 삼켰다. 남자는 나택도 아는 얼굴이었다.

“… 당신, 나한테… 특전 넘긴 사람 맞지?”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수눈키라는 게임과 관련해서 아는 얼굴이었다.

나택의 기억이 순식간에 과거로 끌려갔다.

.

.

.

고대 문명에서 눈을 뜨기 전, 나택은 낯선 사람에게 한정판 특전을 양도받았었다. 수눈키는 발매된 지도 오래된 데다 솔플만 지원되는 일인용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그래서 이 게임을 하는 유저 자체가 많지 않았다.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때문에 게임의 공략법 또한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런 수눈키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올려 주는 블로그가 딱 하나 있었다. 항상 마지막 도시를 정복하지 못해 실패를 거듭하던 나택에게 그 블로그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블로그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혹은 나택이 이미 다 깨 버린 도시에 대한 공략만 적혀 있었다. 그래도 마이너한 게임을 함께한다는 동질감이 들어 나택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라는 댓글을 적었었다. 그게 남자와의 첫 인연이었다.

> 와. 수눈키 공략에 답글 달아 주는 사람 처음 봐요^^ 반갑습니다. 혹시 게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 얼마 안 됐어요. 두세 달 정도?

> 그럼 한정판 특전 없이 하시겠네요?

> 수눈키에 한정판 특전이 있어요?

> 아 모르셨구나. 발매 첫날에 구매한 사람들한테만 한정 수량으로 줬어요. 특전 CD에 공식 모드랑 dlc랑 한정판 아이템까지 있는데. 이게 있어야 마지막 도시 깰 때 좀 수월해요.

나택은 그제야 무릎을 쳤다. 항상 마지막 도시에서 말아먹었던 게 그 때문이었구나, 하면서.

> 잘됐다. 이거 계정당 하나씩밖에 못 쓰는데 저한테 두 개 있거든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하나 드리고 싶어요^^ 어디 사세요?

그렇게 해서 만난 남자에게 나택은 특전 CD를 받았다. 나택이 답례로 밥 한 끼라도 사겠다고 말했지만, 남자는 극구 사양했었다. 어차피 팔리지도 않아서 갖고 있던 애물단지를 처분하는 거니 부담 갖지 말라면서.

집으로 돌아온 나택은 모드와 추가 dlc 버전을 설치했다. CD 케이스 속 커버에 있던 코드 번호도 입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 내에서 바뀌는 게 없었다. 한정판이라는 아이템도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오래돼서 적용이 안 되나,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나오려나? 그런 의문을 가지며 나택은 다시 처음부터 수눈키를 플레이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눈을 떠보니 메소포타미아 도시에 있었다.

얼빠진 표정을 하던 나택이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나 기억하지?”

“왜, 왜 이러십니까! 내가 그쪽을 어떻게 알아요!”

“나 만난 적 있잖아!”

“몰라요! 난 당신 처음 본다고!”

그때, 시스템 문구가 나택의 눈앞에 경고를 울렸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 골목 안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택이 뒤쪽을 획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싸움이 났나?”

“싸움? 어디 어디, 무슨 싸움?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게 없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다가왔다.

“망할…….”

나택이 다시 남자를 보았다.

“정말 나 몰라요?”

“몰라. 모른다고 진짜!”

하…. 미치겠네…….

나택이 길게 한숨을 뱉었다. 남자의 멱살을 쥐고 있는 손등 근처에서 보랏빛 기운이 맴돌았다. 제게 특전을 줬던 사람이든 아니든, 일단은 놈에게 확인해야만 하는 게 있었다. 나택이 남자를 사납게 쏘아보았다.

“점술사 맞죠.”

대뜸 묻는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점 좀 봐줘요.”

나택이 남자를 번쩍 들어 가로막힌 담장 위로 던졌다. 그러고는 저도 펄쩍 뛰어올라 담장을 넘어갔다.

싸움 구경을 하러 사람들이 모였을 때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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