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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에서 탈출시켜 줄 히든영웅을 찾습니다-10화 (10/178)

10화

“알아야 했거든. 그래야 구별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메데우스는 또 다른 잎을 꺼내 들었다. 강아지 같은 순한 눈매를 하고서는 비밀스럽게 독초를 공부하는 귀족이라니….

눈앞에서 메데우스가 손가락 두 개를 비볐다. 그사이에 껴 있는 나뭇잎이 휘리릭 돌았다.

“…우루크에서는 이런 것도 배워야 합니까?”

“글쎄. 다른 놈들은 배울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

툭 뱉는 말은 마치 지나가는 개미라도 감상한 듯한 어조였다. 나택이 나뭇잎을 응시하는데 메데우스가 잎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두 이파리는 똑같은 모양과 색이었다.

메데우스가 말했다.

“어때 보여?”

“어때 보이다뇨? 똑같은 잎 같은데요.”

“그렇지? 하지만 하나는 약으로 쓰이는 약초고, 다른 하나는 맹독을 가진 독초야. 뜨거운 물에 끓이면 독성이 올라오지.”

아무리 봐도 한 가지에서 자란 것처럼 똑같이 생겼는데.

“구별은 어떻게 합니까.”

나택의 말에 메데우스가 잎 하나를 내려놓더니 손을 뻗어 왔다. 기다란 검지 끝이 나택의 턱 아래를 톡톡 두드렸다.

“입 벌려.”

“네?”

“벌리라고.”

당황한 나택의 입술에 오히려 바짝 힘이 들어갔다. 메데우스가 나택의 턱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말을 못 알아들어?”

우악스러운 힘이 턱과 뺨을 움켜쥐었다. 자연스럽게 나택의 입이 벌어졌다. 메데우스가 반대쪽 검지를 조금 전 독초라고 말한 잎으로 감쌌다.

“움직이지 마.”

메데우스의 손가락이 벌어진 나택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검지를 감싼 잎의 윗면이 혓바닥에 닿았다. 나택은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눈만 껌뻑거렸다. 손가락이 혀를 꾹꾹 누르며 쓸어 대는 감촉이 이상했다.

잎이 혀 위를 문지를수록 신기하게도 단맛이 퍼졌다. 사탕을 먹는 기분이었다. 나택의 눈이 커지자 메데우스가 손가락을 빼냈다.

“독성이 있는 풀은 잎 윗면을 이런 식으로 맛볼 때 단맛이 나. 대추야자나 과육 위에 이 독초를 끓인 물을 식혀서 발라 두면 속이기 쉬워지지.”

그러고는 이번엔 다른 잎으로 손가락을 감쌌다.

“벌려 봐.”

나택이 이번에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메데우스의 손가락이 혓바닥 위를 긁었다. 잎이 몸을 비벼 대기를 두어 번 반복했을까. 입 안에서 떫고 쓴 맛이 확 퍼졌다. 놀란 나택이 메데우스의 손을 잡아 뺐다.

“으….”

마른침을 퉤퉤 뱉는 나택을 보며 메데우스가 잎을 내려놓았다.

“이게 약초로 쓰이는 쪽이야. 끓여도 이 쓴맛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챌 수 있어.”

이걸 굳이 맛을 보여 줘야 아나? 쓰다고 얘기만 해 줘도 될 것 같은데.

메데우스가 이번에는 작은 병에든 기름을 흔들어 보였다.

“이건 환각을 보게 하는 독초의 기름이야. 이집트에서 어렵게 들여온 기름이지. 그곳에서는 환각제로도 사용한다던데, 많은 양을 투여하면 정력제의 효능도 있어. 하지만 하룻밤 재미를 보자고 쓰기엔 득보다 실이 많은 놈이지.”

메데우스가 병의 뚜껑을 열어 나택의 코 밑에 가져다 댔다. 메데우스가 병을 살짝살짝 흔들 때마다 처음 맡는 기묘한 향이 솔솔 피어올랐다.

“밤일할 때 시원찮다고 이런 거 쓸 생각하지 마.”

이 자식이 뭔 소릴 하는 거야.

괜히 자존심을 밟힌 기분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걸 왜 제게 설명해 주고 있는 걸까.

또 다른 잎을 꺼내 드는 메데우스에게 나택이 물었다.

“근데 이걸 왜 제게 알려 주시는 겁니까?”

“최소한의 장치는 해 두어야 할 거 같아서.”

“무슨 장치요?”

“네놈이 이렇게나 무식하고 아는 것이 없으면, 악의가 없어도 저번처럼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깔아 놔야지.”

“무….”

무식?

“그러니까 알려 주는 것들은 다 기억해 놔.”

“천천히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안 돼.”

“…….”

목욕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걸 지금 다 외우라니, 게릴라전도 이렇게는 안 한다. 그때, 나택의 머리에 낮의 기억이 스쳐 갔다. 상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떴던 시스템 알림창.

“이건 청금초라고 해.”

메데우스가 파란 잎을 들었다. 나택이 메데우스의 회색 홍채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띠링-.

그러자 낮에 그랬던 것처럼 청금초를 설명하는 시스템 창이 떴다.

역시…. 아무래도 신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아이 컨택 같았다. NPC를 클릭하듯, 정보를 주는 상대의 눈을 마주 보면 신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수눈키에서는 한번 습득한 정보를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기본적인 시스템 구조는 똑같이 돌아갈 것이다. 정보 습득의 원리를 확인한 나택은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빤히 쳐다봤다간 또 무슨 트집이 잡힐지 모른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이렇게 또 살아갈 구멍을 찾아냈다. 나택은 반은 안도하는 마음으로, 반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는 마음으로 계속 메데우스와 눈을 맞췄다. 무식한 놈이라고 부르면서 하루아침에 이 많은 풀을 다 외우라니. 경우도 재수도 없는 놈이 틀림없다.

* * *

그렇게 한밤중이 될 때까지 나택은 메데우스가 건네는 지식을 모조리 흡수했다.

“다 외웠지?”

“…예.”

정확하게는 시스템 창이 외운 거지만.

“좋아.”

메데우스가 약초 상자를 닫고는 구석에 있는 커다란 청동 항아리로 다가갔다. 그 안에 상자를 넣더니 불을 붙였다.

나택이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그걸 왜 태웁니까.”

어렵게 모은 귀한 거라며. 집 몇 채는 거뜬히 살 수 있을 상자를 통째로 태워 버리다니.

메데우스가 느리게 돌아섰다.

“네가 이걸 내게 쓰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

저 하나 살겠다고 제게 예고 없이 혹독한 수업을 하더니, 이제는 죽임을 당할까 봐 저 비싼 것들을 태워 버린단다. 도대체 저를 신뢰하는지 신뢰하지 않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저는… 사람 죽이고 그런….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에 충분하지.”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처소 안으로 퍼졌다. 나택은 메데우스와 연기가 흘러나오는 청동 항아리를 보면서 심란한 마음을 가까스로 숨겼다.

* * *

어김없이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새 하루가 밝았다.

새벽같이 일어난 나택은 찌뿌둥한 몸을 운동으로 풀었다. 갑작스러운 약초학 수업 덕분에 잠을 거의 못 잔 탓인지 머리가 멍했다.

나택은 팔굽혀펴기에 물구나무서기, 윗몸일으키기까지 끝내고 나서야 처소 밖으로 나왔다. 두두가 일러 준 대로 메데우스의 아침 세숫물을 위해 물을 길으러 가는 길이었다. 부엌을 지나는데 시종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루크의 귀족들이 죄다 모이는 거야?”

“그렇겠지. 저번 회의 때도 그랬잖아.”

“에휴. 오늘도 허리가 부서지라 일하게 생겼네.”

…우르크의 귀족들이 다 모여?

제가 모시는 메데우스 역시 귀족이다. 하지만 나택은 따로 전달받은 게 없었다.

“이번에는 큰 사고 없이 지나가야 할 텐데…. 저번 회의에서는 셋째 주인님 때문에 아주 난리도 아니었잖아. 어휴.”

느려지던 나택의 걸음이 멈추었다.

메데우스…. 이 새끼는 아무래도 어디서든 요주의 인물인 것 같았다. 다들 놈을 이렇게나 싫어하는데, 어떻게 아직도 목숨 부지하고 살 수 있는 건지 이제는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나저나 저 귀족 회의가 오늘 있다는 얘기 같은데. 그렇다면 시종으로서 저도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걸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까. 메데우스? 아니면… 다른 시종에게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던 나택이 대화를 나누는 시종 쪽으로 다가갔다. 제 주인보다는 놈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시종 둘은 나택이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제 셋째 주인의 욕을 했다.

“저…….”

그때, 누군가 나택의 팔을 붙잡았다.

“테레시 님.”

두두였다. 두두가 검지를 제 입에 가져다 대며 창고 쪽을 눈짓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나택은 두두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 창고의 모퉁이를 돌아 벽 뒤로 숨었다.

왜 하필 여기로 오는가 했더니, 근처에서 가장 높이가 큰 풀과 나무를 키우고 있는 자리였다. 두 성인 남자의 몸을 가려 줄 정도로 풀이 무성했고 대추야자 나무의 몸통도 굵었다.

“아무것도 전달받은 게 없으신 거죠?”

두두가 묻자 나택이 끄덕였다. 아무래도 나택과 메데우스의 상황을 잘 아는 건 당사자인 나택이 아니라 두두인 것 같다.

“귀족 회의가 있다던데. 그건 뭐 하는 거야? 난 들어 본 적 없는데.”

“주기적으로 열리는 회의입니다. 무역, 전쟁, 기타 여러 가지 우루크의 제반 전체를 이야기 나누는 자리이지요. 원래는 저택의 시종들이 이런 일정들을 각 귀족의 시종에게 미리 전달해 주는 것이 맞는데….”

두두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원래는 그게 맞지만, 메데우스의 시종에게는 이 일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아니, 아무리 사람이 싫어도 일을 시키려면 제대로 전달은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주먹구구식이라고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니누르타 저택 내의 잘 잡힌 체계가 오직 나택만을 비껴갔다.

두두가 마저 말을 이었다.

“회의에는 시종이 한 명씩 함께 참여하게 되어있어요. 메데우스 님의 시종은 테레시 님뿐이니까, 선택의 여지 없이 테레시 님이 함께 가야 합니다.”

메데우스 이 새끼…. 이걸 당일까지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했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화만 내고 있을 순 없었다. 나택이 황당한 마음을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식혔다.

“가 보시면 알겠지만…. 그곳에서도 아마… 테레시 님이 제일 가시방석 같으실 겁니다.”

“왜 가시방석인데.”

“가 보시면 알 겁니다. 메데우스 님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감이 좀 오실 테고….”

“…감은 지금도 확실하게 와.”

저에 대한 처우부터 메데우스를 볼 때마다 경악하는 사람들까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뇌물을 먹이든 회유를 하든 제게 소식을 물어다 줄 안전망 하나를 구축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적합한 사람은 두두밖에 없는 것 같았다.

“두두. 내가 부탁할 게 하나 있는…….”

“쉿-!”

나택이 말을 꺼내는 동시에 두두가 또다시 입을 다물라는 제스처를 했다. 나택이 눈을 껌뻑거리며 두두를 따라 바깥쪽에 귀를 기울였다. 시종 둘이 창고 쪽으로 바구니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나택과 두두가 벽에 바짝 몸을 붙이며 쪼그리고 앉았다.

“침구랑 화병들은 잘 정리해 놨어?”

“진작에 다 했지. 또 저번처럼 미리 안 해 놨다고 매질 당할 일 있어?”

“첫째 주인님도 참 너무해. 그건 우리가 미리 안 해 둔 게 아니라 손님들께서 일찍 오신 건데.”

“그런 게 중요하겠어. 게다가 그날은 분명 셋째 주인님 때문에 화풀이를 하신 걸 거야.”

“메데우스 님은 왜 그렇게 망나니처럼 구실까?”

“왜긴. 야만족의 피가 어디 가겠어? 이번 회의에서도 깽판이나 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망나니가 잘도 얌전히 있겠다. 망아지랑 같이 묶어서 우루크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자꾸 우리한테까지 괜한 불똥이 튀잖아.”

가만히 듣고 있던 나택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또, 또 메데우스의 험담이었다.

나택 역시 놈을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제가 모시는 주인이 이렇게까지 오만 곳에서 욕만 듣고 있는 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야만족의 피라는 게 그렇게 미움받을 이유인가.

물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가끔은 주인이고 나발이고, 차라리 전쟁터에서 숨통 끊어지는 게 오히려 낫겠다 싶기도 해.”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한다고?

이건 나택의 상식으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아무리 뒷말이라지만… 선 넘네.

쥐새끼처럼 듣고 있는 건 나택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악평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 피해가 나택에게도 고스란히 온다.

한마디 정도는 해야겠다 싶어 나택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는 때였다. 나무 덤불 밖이 보일 정도로만 허리를 폈는데, 맞은편에 있는 마구간 구석에서 덩치 큰 짐승을 쓰다듬는 사람이 보였다.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눈에 띄는 연갈색 머리는… 메데우스였다.

저 새끼가 이 아침부터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시종들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수군거리느라 나택도, 건너편의 마구간도 보질 못했다. 어정쩡하게 몸을 숨기고 있는 나택과 메데우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메데우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

지금 나한테 인사를 하는 건가?

나택 역시 얼떨떨한 자세로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그런데 나택이 고개를 움직이자마자 메데우스가 가축의 안장에 얹어 놓았던 활과 화살을 꺼내 쥐었다.

메데우스의 제스처는 인사가 아니었다. 비키라는 일종의 신호였다.

나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지금 날 쏘려는 건가? 뭘 쏘려는 거야? 진짜 쏘려고 저러고 있는 거야? 혹시 놈들의 대화를 들은 건가?

메데우스는 정말로 저를 쏘고도 남을 놈이다.

잠시 굳어 있던 나택이 빠르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진짭니다. 진짜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일단 제가 헛수작을 부리고자 여기에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알려야 했다. 메데우스는 나택의 입 모양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택의 시야로 메데우스의 입 모양이 들어왔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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