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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에서 탈출시켜 줄 히든영웅을 찾습니다-14화 (14/178)

14화

얘는 이런 델 어떻게 찾아낸 걸까.

메데우스가 나택을 데려간 곳은 성곽 근처였다. 성곽을 사이로 안쪽에는 나택과 메데우스가 있었고, 바깥쪽으로는 강물이 성곽에 붙어 흐르고 있었다.

강물 일부가 지형의 높낮이 차이로 성곽 안까지 흐르고 있었는데, 메데우스는 망설임 없이 정확하게 그 자리를 찾았다.

물을 도시 안으로 끌어오기 위한 수차들이 성곽에 띄엄띄엄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삐져나온 물들이 메데우스의 앞으로 쫄쫄쫄 흘러왔다. 물이 흐르는 모양새를 보니 마치 계곡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나택이 여길 보며 제일 먼저 한 생각은 하나였다. 이걸 메데우스의 처소로 옮겨 놓는다면 매일 밤 목욕물을 받아야 하는 노가다는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

“정찰하러 다니면서 발견한 자리야. 구티족 때문에 다들 성곽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서 아마 아는 사람이 없을 거야.”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나택이 짐을 들고 멀뚱멀뚱 서 있는데 메데우스가 작은 노천탕을 눈짓했다.

“들어가.”

“제가요?”

“그럼. 내가 들어가?”

“저는… 괜찮습니다.”

“잔말 말고 들어가. 더는 못 맡아 주겠으니까.”

메데우스가 팔짱을 끼고는 짝다리를 짚고 섰다. 흘긋 본 물은 흘러들어 오는 물줄기 때문인지 이물질 하나 떠 있지 않고 깨끗했다. 귀족 나리께서도 사용하신다는 곳이니 어련할까. 하지만 수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택의 손바닥에 축축한 땀이 모여들었다. 이건 물리적인 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였다.

“그럼… 잠깐 자리를 비워 주시면 얼른 씻겠습니다.”

“지금 내게 명령하는 거야?”

“아뇨. 그런 게 아니고요,”

“남한테 보여선 안 되는 몸인가? 신관이라도 돼? 무슨 자리를 비워. 전에도 한번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육감적이고 부드러운 몸을 더 선호해.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들어가.”

“그….”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나택이 옷을 벗을 수 없는 이유는 10년 넘게 가슴속에 품고 있던 털 없는 몸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나택이 무성한 밀림이나 야생미 넘치는 풍성함을 선호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택은 현대사회에서 제 매끈한 몸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을 종종 받아 왔다. 이런 경험이 중첩되다 보니,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결론은 메데우스가 보는 데서 옷을 벗고 싶지 않았다.

“뭘 이렇게 꾸물거려. 빨리 씻어야 돌아갈 것 아냐.”

나택이 들고 있는 짐을 꾹 쥐었다. 목숨을 위협받을 때보다 더욱 빨리 두뇌를 회전시켜 회피 스킬을 시전했다.

“어떻게 미천한 노예가 감히 주인 되시는 분을 기다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인지 알았으니 처소로 돌아가서 제 일을 다 마치고 씻으러 오겠습니다.”

“이미 여기까지 왔잖아. 나는 전쟁에 나갈 때도 수확 없이는 돌아가지 않아.”

그래서… 저 고집과 성깔 때문에 무패 신화를 기록할 수 있었나 보다.

나택이 눈을 질끈 감고 다음 꾀를 생각해 내려는데 뒤에서 천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흘긋 돌아본 뒤에서 메데우스가 허리띠와 검집을 푸르고는 옷을 벗고 있었다.

나신이 된 메데우스가 다가와 나택의 짐을 뺏어 내려놓았다.

“제가 알아서 하겠,”

“잔말 말고 들어가.”

메데우스가 그대로 나택의 등허리를 발로 찼다.

풍덩-.

나택이 그대로 옷을 입은 채 앞으로 엎어졌다.

“말단 병사들도 이렇게까지 손이 가게 하진 않는데.”

메데우스가 들으라는 듯 나직이 말하며 물속으로 들어왔다. 야속하게도 물의 깊이는 겨우 두 사람의 가랑이 높이에서 찰랑거릴 정도였다. 부끄럽다며 주저앉지 않는 한 몸을 온전하게 가릴 수 없었다. 나택이 메데우스에게서 등을 돌린 채 일어섰다.

“테레시. 더 이상 내게서 같은 말이 나오게 하지 마.”

“…예.”

하는 수 없었다. 여기서 버티는 게 오히려 메데우스의 의심, 호기심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나택은 돌아선 채로 옷을 벗었다. 그러고는 괜히 빨래하는 척 몸을 숙여 제 옷을 문질렀다.

아닌 밤중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메데우스가 나택의 뒤쪽으로 다가왔다. 몸을 숙여 물속에 손을 넣는 동작이 보고 있지 않아도 느껴졌다. 바닥을 몇 번 휘젓던 메데우스가 뭔가를 꺼내 나택에게 내밀었다.

“여길 나가고도 시카르 냄새가 나기만 해 봐. 너도 비누로 만들어 줄 테니까.”

메데우스가 내민 것은 산양 기름과 목탄 가루를 섞어 만든 비누였다. 이곳에 얼마나 자주 오길래. 비누는 역청을 발라 방수 처리한 가죽 주머니에 담겨 강물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택은 하는 수 없이 팔만 뻗어 비누를 받았다.

찰박, 찰박-.

빨래 소리가 달밤 아래 울렸다. 비누로 옷을 벅벅 문지르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만 가득 찼다. 이 자리에서 다행인 사실은 오늘 밤은 나택이 목욕물을 채우기 위해 똥개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한 가지뿐이었다.

달빛을 받은 나택의 몸이 매끈하게 빛났다. 뒤에 서서 나택을 가만 지켜보던 메데우스가 다가왔다. 나택은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죄 없는 옷만 움켜쥐었다.

“빨래하러 왔어?”

메데우스가 손을 뻗어 나택의 팔을 움켜쥐더니 확 뒤로 잡아당겼다. 풍덩 소리와 함께 나택이 그대로 물속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결에 잠긴 얼굴 구멍으로 물이 들어왔다.

“몸을 씻으라고 데려온 거야.”

나택이 어푸, 입에 들어간 물을 뱉으며 일어섰다.

“씻을 겁니다. 씻고 있는 중이…….”

나택이 젖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으려는데 바로 앞에 메데우스가 있었다. 메데우스가 기이하다는 듯한 낯빛을 하며 나택을 위아래로 훑었다.

“……뭐야?”

메데우스의 관심이 정확히 나택의 약점 포인트를 집어냈다. 박살 난 나택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병이라도 있어?”

수눈키의 설정이 어땠더라. 무모증이 병으로 치부될 정도로 심각한 시대였던가?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에서도 비슷한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적지 않기 때문에 메데우스의 반응이 낯설진 않았다. 그저….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그저 수치스러울 뿐이었다. 메데우스의 표정에 장난기나 비웃음 따위가 없다는 게 더욱 그랬다. 메데우스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온갖 나라를 다니면서 사내놈들 몸은 수없이 봤지만 너 같은 건 처음 봐.”

“…우루크 내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직접 보지 못하셨을 뿐이지, 저 같은 사람은 얼마든지 또 있을 겁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메데우스가 기지개를 켰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치부를 헤집어 놓고 메데우스는 약이 오를 정도로 금세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구름이 거두어진 달빛이 메데우스의 어깨 위로 앉았다. 그 순간 나택이 품었던 불만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기지개를 켜느라 드러난 메데우스의 옆구리 위쪽에 여러 개의 흉터가 있었다. 마치 칼로 십여 차례를 난도질한 듯한 흉터.

그사이에 어떤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글자 같아 보이기도 하고, 그림 같아 보이기도 한 기묘한 문양이었다.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문양의 위로 작은 빛의 점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반짝였다.

저건… 시스템 문구와 똑같은 밝기의 빛이었다. 나택이 눈을 비볐다. 찰나에 나타났다 사라진 빛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시스템 안내창도 조용했다.

달빛 때문인가. 아니면… 헛것을 봤나?

나택의 시선을 눈치챈 메데우스가 제 옆구리를 내려보았다.

“왜. 아는 문양이야?”

“……아뇨. 처음 봅니다.”

“그래?”

오래전에 아물었을 흉인데 보는 나택이 아픈 착각이 들 정도로 선명했다. 메데우스가 팔을 내렸다.

“누가 그렇게 보는 거 싫어해. 차라리 말로 해.”

“물어봐도 됩니까?”

“이제껏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물어봤었잖아.”

“…….”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지만, 그걸 따지고 들 생각은 없었다. 허락이 떨어졌을 때 물어보지 않으면 언제 또 입이 막힐지 알 수 없다. 나택은 주저 없이 질문했다.

“무슨 문양이에요?”

“내 수호신이었던 놈의 문양.”

메데우스의 말은 과거형이었다.

“수호신이 바뀌기도 합니까?”

“신이 나를 저버린다면.”

수호신이라는 말에 망할 점술사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 수호신이 여기 생활을 하는 데 힌트를 주는 것 같아.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사건이 터질 때 이 수호신이랑 관련된 물건이나 사람이 길잡이 역할을 해 주더라고.’

유저에게 수호신은 그저 한낱 등대지기에 불과했다. 수호신이라는 말에 어떤 무게감이 있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나택은 말을 고르고 고르다 결국 메데우스의 과거에 집중해 질문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무슨 일이었길래 신이 저버렸다는 말까지 쓰십니까.”

“내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이 신을 믿었거든. 그런데 같은 피를 나눈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나뿐이야. 그 결과만 놓고 봐도 신이 나를 저버렸다고 말하기에 충분하지 않아?”

메데우스가 니누르타 가문의 혈족이 아니라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나택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알게 됐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거 일종의 네 치부 아냐? 시종한테 이런 식으로 막 얘기해 줘도 되는 건가.

하지만 메데우스라면 이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무슨 일을 당했는지 구태여 상처를 헤집어 낼 필요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택은 다시 문양에 질문을 집중했다.

“신의 이름이 뭐였습니까.”

“그건 왜 궁금해.”

“그냥… 저도 그 신은 피해 갈까 하고요.”

“피해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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