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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에서 탈출시켜 줄 히든영웅을 찾습니다-18화 (18/178)

18화

나택이 메데우스를 찾아 다급하게 눈알을 굴렸다. 그때, 한턱 높게 솟은 풀숲 너머에서 메데우스가 일어서는 게 보였다. 메데우스의 앞에는 덩치 큰 구티족 두 놈이 있었다. 나택도 큰 키였고, 메데우스는 그보다도 훨씬 큰 키였지만 놀랍게도 구티족 놈들은 메데우스보다 정수리가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종족 자체가 다른 놈들 같았다.

놈들이 메데우스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그러나 메데우스는 그걸 가뿐한 몸놀림으로 춤을 추듯 피했다. 한 놈이 치면 메데우스가 한 바퀴를 돌며 피하고, 또 한 놈이 몽둥이를 내리치면 이번엔 반대쪽으로 돌면서 피했다.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막힘없는 몸짓은 마치 장애물 피하기를 하는 보더콜리 영상을 느린 속도로 보는 것과 비슷했다. 그만큼 메데우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한 놈이 성질이 났는지 철퇴를 버리고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씩씩거리며 양손으로 검을 쥐고 메데우스를 노려보았다. 나무 옆에 서서 구티족 두 놈을 보던 메데우스가 갑자기 팔을 들어 손끝을 까딱거렸다.

“이리 와.”

부드러운 어투로 개를 부르듯 거인 둘을 불렀다. 코뿔소처럼 한 놈이 달려들자 메데우스가 검을 위로 올려 쳤다. 놈이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옆으로 기울어졌다.

저 무거운 놈이 반격 한방에 넘어졌다. 나택의 머릿속에 귀족 회의를 했던 그날이 스쳐 갔다.

‘메데우스 장군은 지금의 우루크가 있기까지 수많은 전쟁터에서 오직 승리만을 쟁취했습니다. 장군이 처음 전쟁터에 나선 때부터 우리 우루크 도시는 무패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구티족이 서슴없이 약탈을 자행하면서도 쉽게 우루크 성내로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 역시, 메데우스 장군이 있기 때문 아닙니까.’

‘맞습니다, 엔시. 귀족으로서의 품위 이전에 그는 우루크의 장군으로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누가 메데우스를 대신해 이 우루크를 이만큼이나 견고하게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야만족의 피가 흐르는 이방인 출신. 혈족을 중시하는 신분제 사회에서 매우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게다가 서슴없이 거친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메데우스가 제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저것이었다.

쿵-.

또 한 놈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런데 그때 나택의 시야에 안내창이 떴다.

HP 1% 감소

…뭐지.

나택이 눈을 껌뻑거리며 제 손과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다친 데가 없는데.

그때, 또다시 눈앞이 밝게 빛났다.

HP 2% 감소

……빌어먹을. 메데우스!

나택이 획 고개를 들어 메데우스 쪽을 보았다. 삼나무숲이 울릴 정도로 격렬하게 금속의 마찰음이 울렸다. 검이 부딪히는 횟수가 쌓일 때마다 시스템이 경고문을 날렸다.

HP 3.2% 감소

그래. 아무리 저놈이 무패 신화를 기록한다고 해도, 놈은 인간이다. 전투가 길어지면 체력이 떨어질 것이고, 이는 곧 나택에게도 영향을 준다. 여기서 나택마저 타격 몇 방을 맞는다면 연동된 피 통이 닳는 속도 역시 가속화될 것이다. 그게 메데우스의 전투력에 영향을 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있었다.

이 빌어먹을 게임. 나택이 수눈키를 할 때 이런 포션은 없었다. 모든 게 나택을 엿 먹이기 위해 시스템이 맞춤형으로 만든 퀘스트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 진짜 이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해?

꼭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주인공들이 하지 말라는 짓을 굳이 굳이 해서 일을 크게 벌인다. 그래서 나택은 더욱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했다.

…뭐라도 거들어야 하나? 아니면 메데우스의 말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나택이 입술을 악물며 고심에 빠질 때였다.

‘삼나무 숲’에서 정체 모를 소리가 들립니다.

“…….”

나택이 귀를 덮고 있던 잔머리를 재빨리 쓸어 넘겼다. 귀를 기울이자,

읍, 읍!

희미하게 사람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메데우스가 싸우고 있는 자리의 근처였다.

“……가? 지금 가라고? 나보고 가라는 거지?”

시스템을 향해 나택이 조용히 물었다. 당연하게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시스템은 오로지 전진만을 제안한다. 세이브 포인트로 가서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한, 퀘스트에는 오로지 전진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소리를 따라가라는 안내 역시 숲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필수 절차일 것이다.

나택이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쿤가의 고삐를 나뭇가지에 한 번 더 감았다.

가 보자.

메데우스가 마주 보고 구티족이 등을 지고 있는 자리, 그 어딘가에서 계속 앓는 소리가 들렸다. 나택은 몸을 최대한 웅크리며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다가갔다. 싸움이 한창인 탓에 나택이 다가가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읍, 읍!”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수풀에 가려져 있는 삼나무의 밑동이었다. 나택이 수풀을 헤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곳에서 웬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체격을 보니 초등학생? 아니, 중학생 정도는 되어 보였다. 아이는 손발이 앞으로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채 쿤가들처럼 나무에 묶여 있었다. 분명 하크라는 아이일 것이다.

다행히 아이에게 큰 상처는 없었다. 꼴도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나택이 빠르게 다가갔다.

“쉿, 조용히 해요. 풀어 줄 테니까.”

여자아이가 큰 눈망울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택은 메데우스가 주었던 단검을 꺼내 우선 양다리를 묶은 끈부터 썰었다. 슥슥, 끈이 금속과 마찰하는 소리가 자꾸만 거슬렸다. 혹시나 놈들이 눈치챌까 싶어 손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가죽 줄이 거의 다 잘려 갈 때였다. 메데우스가 싸우고 있는 방향에서 번쩍 빛이 났다. 놀란 나택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마자 그 빛이 나택에게 날아들었다.

“헉…!”

나택이 얼른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정확하게 나택의 머리가 있던 자리, 그 뒤에 있던 삼나무 밑동에 금속이 박혔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또 빛이 날아왔다. 나택의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몸을 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택이 엎드려 있던 바닥에 금속이 박혔다.

구티족이 화살처럼 쓰는 부메랑을 닮은 날붙이였다.

이걸 내가 어떻게 피했지?

자신의 움직임에 놀라는 동시에 의문이 해결됐다.

민첩성 +50의 효과가 발동되었습니다.

행운 +50의 효과가 발동되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걸 위한… 포션이었나? 시스템 너는 다 생각이 있구나.

애써 상황을 객관적으로 넘겨 보려 했지만, 물에 옷감이 젖어 들듯 점점 화가 났다. 하지만 꾸물거릴 여유가 없었다. 나택이 더욱 다급하게 아이의 손에 묶인 끈을 썰었다.

그때, 메데우스와 교전을 벌이던 놈 하나가 나택을 발견하고는 성난 황소처럼 뛰어왔다. 정말 성난 황소 같았다. 처음 정면으로 맞닥뜨린 구티족 전사의 머리에는 황소의 뿔과 가죽으로 만든 가죽 투구가 씌워져 있었으니까.

“돌겠네, 진짜. 왜 이렇게 안 끊어져!”

“읍, 읍!”

나택의 손이 미친 듯이 빨라졌다. 조금만 더 썰면 되는데, 역청을 묻혀 꼬고 꼬아 만든 가죽 줄은 잘 끊어지지 않았다.

“테레시! 뭐 하는 거야!”

메데우스가 소리쳤다. 그가 싸우고 있던 놈의 허벅지에 검을 쑤셔 넣으며 나택에게 달려왔다. 동시에 성난 황소가 거대한 둔기를 하늘 높이 쳐들었다. 올려다본 나택의 시야에 삼나무 숲 사이로 가려졌던 밤하늘이 보였다. 별이 가득 떠 있는 하늘이.

황소가 그 사이에서 둔기를 힘차게 내리치려 했다. 나택이 순간적으로 긴 다리를 뻗어 놈의 무릎을 걷어찼다.

퍽-!

“으아아악!”

황소가 둔기를 떨어트리며 포효했다. 투박한 무기가 나택의 옆으로 떨어지고, 황소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런데 황소가 뒹구는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저는 발길질을 했을 뿐인데.

놀란 나택이 눈알을 굴려 핏물의 근원지를 찾았다. 황소의 아킬레스건에 부메랑 같은 구티족의 날붙이가 박혀 있었다. 두툼한 종아리에는 단검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나택이 재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보아하니 나택에게 달려드는 황소를 보고 메데우스가 곧바로 떨어져 있던 날붙이를 발꿈치 힘줄에 날린 듯했다. 그리고 놈의 종아리에 검을 쑤셔 넣은 건….

“하크! 그 머저리 데리고 물러나 있어!”

메데우스가 뒤에서 달려드는 또 다른 구티족을 상대하며 소리쳤다. 나택이 들고 있던 단검은 어느새 아이의 손에 있었다. 작은 날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아이가 신경질적으로 제 다리의 끈을 썰며 재갈이 물린 채로 말했다.

“이 머더리. 옹작이 글케 궁떠서 엉따 어머거여?”

“뭐?”

나택이 황당한 표정으로 아이를 응시했다. 황소의 종아리를 찌른 건 아이였다. 다 큰 성인도 쉽게 하지 못할 공격을, 아이는 여린 몸으로 거침없이 해냈다.

아이가 반쯤 누워 제 다리를 쳐들고 발에 묶은 끈을 썰었다. 힘은 누가 봐도 나택이 훨씬 셀 텐데. 역시 저 끈을 자르는 건 힘보다 요령이었나 보다. 아이는 검을 이상한 각도로 비틀더니 나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리 끈을 끊어 냈다. 물론 나택이 거의 다 잘라 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손을 묶은 끈에는 역청이 묻어 있지 않아 훨씬 빠르게 썰어 낼 수 있었다. 자유를 얻은 아이가 입에 물린 재갈을 스스로 획 끌어 내렸다.

“이 머저리! 동작이 그렇게 굼떠서 어디다 써먹냐고요!”

아이가 버럭 나택에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끊어 낸 줄의 긴 쪽으로 황소를 묶으려 했다. 그러자 메데우스가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를 향해 다시 소리쳤다.

“허튼짓하지 말고 어서 물러나! 쿤가를 타고 돌아가!”

“메데우스 님! 하지만,”

“이건 명령이야. 당장 떠나!”

하지만 아이는 메데우스의 말에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분하다는 듯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었다.

아이가 나택을 노려보았다.

“머저리.”

이게 버릇없이 어디 어른한테.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급소를 날려요.”

아이가 바닥을 뒹구는 황소를 턱짓했다.

저런 덩치를 상대할 때는 도구를 써야 했다. 무술 종목에 체급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객기부리며 맨몸으로 나섰다가는 역공당하기 십상이었다. 나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놈을 기절시킬 무기를 찾을 때였다. 갑자기 이 대화에 기시감이 들었다. 처음 보는 아이일 텐데 입이 뚫리자마자 뱉는 일련의 언사가 어디서 많이 본 기분을 느끼게 했다.

어디서 봤더라.

“아, 빨리요. 빨리!”

쉼 없이 움직이던 나택의 눈이 네모처럼 게슴츠레 감겼다.

그래.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아이의 말투는 메데우스와 아주 흡사했다. 메데우스가 하크라는 아이에 대해 평가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크는 기량이 뛰어난 아이야. 지금은 성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기회만 된다면 우루크의 멍청한 놈들보다 크게 성장할 거야.’

‘이대로 잃기엔 아까워.’

“…….”

알 만했다. 이 패기, 싹수, 호전적인 모습이 물씬 풍기는 자세. 모든 게 메데우스와 아닌 듯 매우 닮아 있었다. 낮에 아이의 부모를 보지 않았다면 메데우스의 숨겨 둔 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으으으…. 가만두지 않겠어, 윽, 끄윽….”

쓰러져 있던 황소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놈이 제 뒤꿈치에 꽂힌 날붙이를 빼내려는 때였다.

퍽-!

하크가 단검에 온 힘을 실어 황소의 목뒤를 찍었다. 황소는 그대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붉은 피가 하크의 손을 흥건하게 적셨다. 어린아이의 서슴없는 공격에 나택은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머저리가 메데우스 님의 곁에 있다니. 어이가 없네.”

그때, 눈이 뒤통수에 달린 건지, 메데우스가 하크에게 소리쳤다.

“하크! 어서 돌아가라고 했지. 말 안 들으면 다시는 검술 알려 주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해!”

“메데우스 님, 저도 도울 수 있어요!”

동시에 또 시스템 문구가 떴다.

HP 5.7% 감소

뭐야. 두 놈을 쓰러트렸는데 왜 또 피가 닳아?

그제야 나택이 메데우스 쪽을 보았다. 분명 방금 두 놈을 쓰러트렸는데, 몬스터가 불어난 것처럼 메데우스가 또 두 명의 황소 투구 구티족을 상대하고 있었다.

나택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세히 보니 접전을 벌이는 뒤쪽에서 껴들 틈을 보고 있는 한 놈이 더 있었다. 메데우스가 새로 상대하고 있는 놈은 총 세 명이었다.

대체 몇 놈이 있는 거지?

나택이 처음 본 굴러떨어진 놈 하나.

나택의 앞에 방금 쓰러진 하나.

그리고 메데우스가 새로 상대하고 있는 놈 셋까지.

삼나무숲에 있는 구티족은 총 다섯 명이었다. 메데우스는 적극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세 놈이 나택과 하크 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방어만 하고 있었다. 희한하게 생긴 부메랑이 나택 쪽으로 날아오려는 게 몇 번이고 저지됐다.

메데우스가 하크에게 소리쳤다.

“다섯까지만 센다.”

“메데우스 님!”

“5.”

“저도 도울 수 있다니까요!”

“4.”

“진짜 도울게요!”

“3.”

“아이씨….”

“뭐? 아이씨?”

“이럴 거면 뭐 하러 가르쳤냐고요!”

메데우스의 입에서 허, 하는 기가 찬 웃음소리가 터졌다. 하크의 맛깔스러운 추임새에 도리어 놀란 건 나택이었다. 몸집은 나택의 반도 안 되는 아이가 성깔이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 패기가 넘치다 못해 간땡이가 부었다. 청소년은 용감했다. 이렇게 살아야 이 시대에서 생존할 수 있는 건가.

하크가 축구공을 차듯 흙바닥을 발로 툭 차며 온몸으로 짜증을 냈다. 그러더니 쿤가에게로 가려다 말고 획 나택을 돌아보았다.

“머저리 아저씨. 메데우스 님 방해하지 말고 나무에라도 올라가 있어요.”

얼빠진 표정을 한 나택의 입이 벌어졌다.

아저씨라니. 아직 20대인 나보고 아저씨라니.

살면서 동안 소리만 듣고 살았던 나택에게는 충격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이해는 했다. 중학생 나이의 아이에게 저는 아저씨가 맞겠지. 하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아저씨라고 불릴 만한 노안은 아닌데.

아이는 나택의 속을 다 뒤집어 놓고 날쌔게 쿤가에게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마치 뜀틀이라도 뛰듯 펄쩍 뛰어 쿤가 한 마리의 등에 올라탔다.

“이랴!”

하크가 고삐를 철썩 내리치자 쿤가가 앞발을 허공에 들며 히힝 소리를 냈다. 역동적인 말의 자세, 그리고 그 위에 안정감 있게 타고 있는 어린아이. 그걸 보는데 언젠가 보았던 나폴레옹의 초상화가 떠올랐다.

힘차게 발을 구르며 하크를 태운 쿤가가 멀리 달려갔다. 메데우스의 말대로 정말 크게 될 아이가 맞는 것 같았다.

그때, 또 시스템이 경고음을 울렸다.

HP 6.9% 감소

나택이 메데우스를 돌아보았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러다가 곧 -10%를 찍게 생겼는데. 이 포션이 제게 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공격력50, 방어력 50, 게다가 민첩과 행운까지 50씩 플러스시켜 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란 말이다.

나택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시스템에게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라고.

대체 수눈키에 있지도 않았던 이 퀘스트를 내게 왜 준 걸까? 이유가 있을 텐데….

불안감과 걱정, 그리고 초조함이 밀려왔다. 부정적인 심리가 온몸을 압박하자 본능이라는 감각이 예민해졌다.

나택은 직감했다. 지금 나택이 내리는 순간의 선택이 이 퀘스트에서 얻게 될 결과의 분기점이 될 거라고 말이다.

하크가 말했던 것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까. 아니면 메데우스가 제일 처음 말했던 것처럼 쿤가를 지키며 구석에 짜져 있어야 할까. 어떤 게 지금 상황에서 메데우스에게 도움이 될까.

나택이 삼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목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졌다. 화들짝 놀란 나택이 재빨리 발을 빼려 했다. 그러나 본드를 붙인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택의 몸이 그대로 기울어지며 바닥에 엎어졌다.

HP 10% 감소

황소 뿔을 단 투구가 발밑에서 제게로 기어 왔다.

“죽여 버릴 거야….”

방금 하크가 쓰러트렸던 놈이 아직 살아 있었다. 메데우스는 상대하던 구티족 세 명 중 두 명을 처치한 참이었다.

나택은 황소에게 발이 붙들린 채 절망했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고 민폐만 끼치는 캐릭터 1이 되다니…. 혹시 이것도 시스템의 계산인 거냐.

황소의 손에는 제 아킬레스건에서 스스로 뽑아낸 날붙이가 들려 있었다. 황소가 나택을 향해 사납게 소리쳤다.

“죽여 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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