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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에서 탈출시켜 줄 히든영웅을 찾습니다-41화 (41/178)

41화

나택은 얼른 테이블 밖으로 기어나가 시종에게 변명을 했다.

“수상한 자가 아닙니다! 믿어 주세요!”

“그럼 왜 거기에 숨어 있었지?!”

“지나가다… 무, 물건을 떨어트려서 그렇습니다. 그걸 주우러 들어간 것뿐입니다.”

“무슨 일이오!”

나택이 변명을 마치기도 전에, 무장을 한 경비 두 명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돌아 버리겠네.

“이자가 테이블 아래에 숨어서 캄비세스 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소!”

경비가 나택을 내려보았다.

“못 보던 얼굴인데. 델람인도 아닌 것 같고. 첩자인가?”

“어떻게 들어온 거지? 일단 수비대장님께 끌고 가자고. 따라와라!”

경비 두 명이 나택의 양팔을 결박하려 했다.

“자, 잠시만요. 저는 첩자 같은 게 아니고 그저 길을 잃어서 지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아까는 물건을 떨어트렸다지 않았소?”

“끌고 가!”

미치겠네, 진짜.

나택이 외치는 잠시만요, 잠깐만, 이란 말은 제압하는 힘에 억압되어 뭉개졌다.

어떡하지. 메데우스를 불러야 하나. 하 씨…. 아무리 꽝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불운을 몰아 주다니.

경비병들의 팔에 꿰어 나택이 한 발자국 정도 끌려갔을 때였다.

끼이익-.

만찬장의 문이 열리며 새어 나오는 조명이 복도에 빛의 길을 드리웠다. 캄비세스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왔다.

“이 무슨 소란이냐!”

우렁찬 불호령에 경비와 시종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캄비세스 님…!”

“귀한 손님이 와 계시니, 소란 피우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네놈들 모두 바닷속에 수장되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두려움에 절은 경비병 하나가 더욱 깊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나 이자가 숨어서 캄비세스 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습니다.”

“뭐라?”

“엿듣고 있던 게 아닙니다!”

나택의 입술이 잇새에 눌리며 하얗게 셌다. 무릎이 꿇려 억울함을 토로하는데 캄비세스의 옆으로 다가오는 메데우스가 보였다. 순둥한 쳐진 눈꼬리가 움찔거렸다.

“첩자가 아니고 내 시종입니다.”

메데우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장군의 시종이요?”

캄비세스가 게슴츠레 나택을 보더니 그제야 정체를 알아보고는 혀를 찼다.

“아니……. 시종은 두고 왔다 하지 않았습니까, 장군.”

“그랬습니다만…….”

가지런한 메데우스의 눈썹이 오르내렸다. 회색 홍채가 나택을 뚫어져라 보더니 품에 들린 천 뭉텅이로 시선을 내렸다. 메데우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이 머저리 같은 놈아 하고.

그렇게 보지 마…. 이건 정말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야…….

“아무래도 나의 시종이 길을 잃은 것 같군요. 옷감에서 불쾌한 향이 나기에 돌아오기 전까지 해결하라 일러 두었거든요.”

메데우스는 가라앉은 어조로 나택을 옹호했다. 꾸깃꾸깃해진 망토에 머물렀던 눈길이 스르륵 자리를 옮겼다. 메데우스는 꼼짝없이 두 경비병 사이에 얽힌 나택의 팔을 노려보았다.

“다 좋은데. 길눈이 어두운 녀석이라 우루크에서도 종종 이런 사달을 내곤 했습니다. 첩자는 아니니 그 손은 놔줬으면 좋겠는데.”

명백히 경고가 서려 있는 말이었다. 경비병이 움찔거리며 캄비세스에게 동의를 구했다.

“허허. 아무리 타국의 궁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길눈이 어두워서야……. 그런 일이라면 이쪽의 시종들에게 맡겨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어서 놓아주거라!”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경비병들이 곧바로 나택을 풀어 주었다.

“장군께서도 시종 관리에 곤혹스러우시겠습니다. 쯧쯧. 이래서 시종들에겐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러게요. 오늘은 정말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 할 것 같네요.”

싸늘한 질책을 받으며 나택은 품에 든 천을 꾹 끌어안았다.

‘아랫놈들을 가르치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즉효를 보이지요.’

‘그렇게 효과가 좋은 방법이라니. 조만간 저도 가르치는 법을 바꿔 봐야겠군요.’

자비 없이 휘두르는 채찍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만 같았다. 스토리고 나발이고 이 자리에서 도망부터 치고 싶었다.

경비들이 한발 물러서고, 메데우스가 나택의 곁으로 다가왔다. 커다란 그림자가 위압적으로 나택을 가두었다.

“하실 말씀은 다 하신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장군. 피곤하실 분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즐거운 식사였습니다. 그럼 이만.”

메데우스가 나택을 지나치며 작게 말을 흘렸다.

“따라와.”

“…….”

메데우스를 따라 걷는 나택의 뒤로 캄비세스가 호쾌한 한마디를 던졌다.

“장군의 긍정적인 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복도를 걷는 내내 메데우스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게 더 숨이 막혀 나택 역시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쓸모도 없는 포션만 더욱 가슴 깊이 품을 뿐이었다. 메데우스는 따라잡기가 버거울 정도로 긴 다리를 성큼성큼 떼며 빠르게 걸었다. 덕분에 처소에는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메데우스가 문을 열며 명령했다.

“들어가.”

입을 벌린 문이 마치 호랑이 굴의 입구 같았다. 제가 그렇게 실수를 해도 딱히 화를 내지 않던 메데우스의 표정이 이번만큼은 전과 다르게 굳어 있었다.

나택이 느릿느릿 방 안으로 들어갔다.

쿵-.

곧바로 처소의 문이 신경질적으로 닫혔다. 나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방 한가운데 어정쩡하게 섰다.

“죄송합니다…….”

“왜 거기 있었어. 내가 방 안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

나택이 침묵하자 메데우스가 찬 공기를 풀풀 날리며 다가왔다.

“여긴 캄비세스의 궁전이야. 놈의 손바닥 안이나 마찬가지라고. 스메나피쉬팀마저 소리소문없이 숨겨 버린 놈인데,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야?”

“…….”

루할자게시와 캄비세스의 암거래를 알게 된 탓인지 메데우스는 날카로운 어조로 나택을 책문했다. 메데우스의 말이 맞다. 나택이 이곳에 얌전히 있어야 했던 게 맞긴 했다. 하지만 나택은 억울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시스템이 하필 그때 단서를 주는데, 어떡하냐. 퀘스트는 깨야 할 거 아냐.

맞는 길로 가서, 이 쓸모없는 해석 포션이 아니라 결정적인 단서나 스토리 전개의 실마리를 찾았다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대로 놈들에게 끌려갔을지도 몰라. 캄비세스는 비열하게 허점을 파고드는 놈이야. 놈이 너를 빌미로,”

말을 쏟아 내던 메데우스가 돌연 입을 꾹 다물었다. 나택이 바닥만 응시하던 고개를 들었다. 긴 정적이 흘렀다. 상황이 상황이지만 자신의 안위와 관련된 서술이 막혀 버린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저를 빌미로 뭘……?”

“……어째서 그렇게 부주의하게 행동을 하지?”

메데우스는 마치 가운데 말을 묵음 처리 한 것처럼 잘라 먹은 문장을 매듭지었다. 누가 들어도 뒤에 좋은 말이 붙을 흐름이 아니었다.

캄비세스가 일개 노예인 이난나 테레시를 빌미로-.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거지. 빌미로……. 설마 메데우스를 협박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나택이 코를 찡그렸다. 말도 안 되지. 설사 캄비세스가 정말 그렇게 한다 한들, 고작 노예 한 명에 불과한 나택은 메데우스에게 협박 거리가 될 수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메데우스의 묵음이 더 찝찝했다. 나택의 표정이 무의식중에 구겨졌다.

“테레시. 네 행동이 옳지 않았던 건 사실인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들다니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메데우스가 성큼 나택에게 다가왔다. 흘긋 본 메데우스의 표정은 더욱 살벌하게 굳어 있었다. 그 기세에 짓눌려 나택이 저도 모르게 걸음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메데우스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주춤, 주춤. 또다시 두 사람의 몸이 밀착되기 시작했다. 뒷걸음질 치던 나택의 허벅지 뒤쪽에 테이블이 닿았다. 메데우스의 몸이 나택에게로 기울자 나택의 허리가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갔다.

어느새 나택은 테이블을 짚은 메데우스의 품에 갇혀 있었다.

“불만이 있는 게 아니고……. 말씀을 하다 마신 부분 때문에요. 저를 빌미로, 그다음에 뭐라고 하시려던 거였습니까…?”

나택을 가만히 보는 긴 속눈썹이 잘게 떨렸다. 메데우스는 말을 하려다 말고, 또 운을 떼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한참 후에 메데우스가 입을 열었다.

“……너를 빌미로, 내게 어떤 거래를 종용할 수도 있었어.”

나택은 속으로 비웃었다. 한 국가의 장군이라는 놈이, 상대의 가치를 판단하는 계산부터 제대로 셈하질 못했다.

“일개 노예일 뿐인 제가 어떻게 메데우스 님을 협박할 거리가 되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무엇보다 메데우스는 그런 협박에 눈도 깜짝하지 않을 인사였다.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불편한 자세에 나택의 집중이 점점 흐트러졌다. 나택이 몸을 옆으로 슬쩍 틀려는 순간 커다란 손이 쇄골에 닿더니 목을 틀어잡았다.

“그래. 가치가 있을 리가. 그런 일이 생겨도 델람의 교섭에는 응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는 더욱 주의해서 행동하도록 해.”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메데우스가 나택의 목을 테이블 위로 눌렀다. 나택은 그대로 드러누운 꼴이 되었다. 교차한 두 사람의 다리가 단단하게 얽혔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널 제대로 벌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읏, 죄, 송합니다.”

“델람에 있는 동안에는 네게 관용을 베풀겠다 말했지만, 주인의 명을 어긴 잘못을 이대로 넘어갈 순 없어.”

“으…….”

불편한 자세 때문에 나택의 얼굴에 피가 쏠렸다.

“캄비세스는 채찍질이 아주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라고 하던데. 살갗이 찢겨 나갈 정도로 맞고 나면 정신을 차릴까?”

광부를 내리치던 캄비세스가 떠올랐다. 나택이 도리질을 쳤지만, 메데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악스럽게 나택의 목을 조였다.

“윽…….”

아래턱과 목을 누르는 압박감에 나택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숨이 막힌 나택이 애원하듯 메데우스를 올려보았다.

“죄, 송합니, 읏, 다……. 메데우스, 님……!”

나택의 눈꼬리가 새빨갛게 질리는 순간, 메데우스가 화를 억누르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자꾸 혼란스럽게 만들지 마.”

나직한 말을 짓씹으며 메데우스가 허리를 숙였다.

“제가 뭘……. 으!”

수염 한 올 나지 않은 나택의 살갗 위로 질척한 숨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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