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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에서 탈출시켜 줄 히든영웅을 찾습니다-48화 (48/178)

48화

나택이 끌려온 곳은 지하 수로와 연결되어 있는 작은 동굴이었다. 안에는 녹슨 철창이 대여섯 개 있었는데, 모두 살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철창 하나의 앞에는 정체 모를 정강이뼈가 있었다. 그 옆에는 낡은 갑옷을 입고 기대앉은 해골이 있었다. 내부의 풍경은 마치 저주받은 유적지 내지는 식인의 흔적이 남은 장소 같았다.

“들어가.”

끌고 온 놈이 감옥 하나의 문을 열더니 나택의 등을 발로 찼다. 손이 사슬에 감긴 나택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

쿵, 철컥-.

귀를 찢을 듯한 소리를 내며 철창문이 닫혔다.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에 나택은 망연자실했다.

이게 뭐야.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뜬 별을 보며 저 지상 위에 있었는데.

메데우스와 떨어진 지 고작 한 시간 만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 황당하기도 하고 그만큼 두렵기도 했다.

제가 갇힌 곳을 스윽 둘러보자 처한 상황이 더욱 실감 나게 느껴졌다. 나택이 있는 감옥 구석에도 갑옷을 입은 해골이 앉아 있었다. 나택은 알 수 있었다. 여긴 사형장이었다. 살아서는 나갈 수 없는 감옥. 아니, 아마 죽어서도 나갈 수 없는 감옥임에 틀림없다.

나택이 창살을 잡고 세게 흔들었다. 덜컹덜컹, 요란한 소리가 메아리쳤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철창에 기댄 나택의 몸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어떻게 나가지.

그때, 옆에서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인가.”

바로 옆 감옥에 사람이 있었다. 나택이 쇠창살을 붙잡고 벌떡 일어났다.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안이 되는 공간이었다.

“그쪽도 끌려오신 겁니까?”

“그렇다. 너는 누구지.”

“저는…….”

나택은 잠시 고민했다. 제 신분을 섣불리 말해도 되는가에 대해. 그때 옆 철창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이어졌다. 고심 끝에 나택은 질문을 질문으로 되받아쳤다.

“그러는 그쪽은 누구십니까.”

“……스메나피쉬팀이다.”

스메나피쉬팀? 나택이 얼굴을 창살에 바짝 붙이며 되물었다.

“델람의 후계자인 그 스메나피쉬팀 말입니까?”

“그렇다.”

“하.”

나택이 무릎을 쳤다. 대답을 듣는 순간, 나택의 시야에 밝은 빛이 떴다.

스메나피쉬팀을 발견했습니다!

나택의 희열과 함께 시스템이 확신의 알림을 주었다.

[스메나피쉬팀의 행방]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꺼져 가는 시스템의 알림을 보며 나택이 게슴츠레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이걸……. 이놈을 발견하게 하려고 시스템은 나를 그렇게 굴리고 던지고 빠트리고…… 끌려오게 만들었구나.

계획적인 스토리 흐름에는 납득했지만, 열불이 뻗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곱게 내려보내 줄 수는 없었나?

나택이 기쁨과 분노에 섞인 한숨을 길게 내쉬는데 스메나피쉬팀이 물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메데우스는 스메나피쉬팀에게 호의적이다. 게다가 나택은 델람인이 아니니, 최소한 옆방 감방 동기와 적대 관계일 리는 없었다. 나택의 볼이 창살을 쥔 주먹에 바짝 붙어 짜부라졌다.

“저는 메데우스 장군님의 시종입니다.”

“메데우스 장군이라고?”

옆에서 힘겹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장군이 델람에 오다니……. 설마 장군도 끌려온 것인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동안 델람에는 발길 한번 하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무슨 일로 델람에 온 거지.”

“주석 거래 문제로 오셨습니다.”

“주석 거래라니?”

나택은 이곳에 오게 된 자초지종을 스메나피쉬팀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주석부터 직전에 엿들은 계략까지 전부. 여기까지 온 마당에 무엇을 고르고 거르겠나 싶었다.

“근 반년 사이에 주석 거래량이 급속도로 줄었다 하셨습니다. 이를 볼모로 메데우스 님을 델람에 오도록 종용했고요.”

“……형님이 장군에게까지 몹쓸 짓을 하려 할 줄이야.”

스메나피쉬팀이 통탄했다.

“캄비세스가 집권하게 된다면 우루크도 지금처럼 평온할 수는 없을걸세.”

“그건 메데우스 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계속 스메나피쉬팀 님을 찾으신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델람은 끝났어…….”

콜록콜록, 스메나피쉬팀이 쇠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기침 소리에 나택은 덜컥 불안해졌다.

저 자식 저러다 죽는 건 아니겠지.

스메나피쉬팀을 살려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택은 이 어두운 지하 감옥에 송장을 옆방에 둔 채로 갇혀 있고 싶진 않았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해골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다.

“정신 차리세요! 얼른 여길 빠져나가야죠!”

“여긴 뭄무의 감옥이라 불리는 곳이야. 누군가 꺼내 주지 않는 이상, 여기서 벗어날 순 없어. 이곳에서 죽어 간 사람들을 보면 모르겠나. 게다가…… 곧 물의 심판이 내려질 거야.”

스메나피쉬팀이 절망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물의 심판, 델람의 대홍수. 나택이 철창을 마구 흔들며 물었다.

“샤바투의 초하루에 온다는 대홍수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자 옆방에서 또다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난 다 알아, 인마.

“설명드리기 복잡합니다. 메데우스 님께도 신의 계시가 내려왔다고 생각해 주세요.”

갈대 벽 뒤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은 나택뿐 아니라 메데우스 역시 마찬가지니 맞는 말이었다.

“오오, 나의 신 에아여……. 이 땅의 인간을 구하기 위해 타국의 시종을 제게 보내 주신 것입니까!”

죽어 가던 스메나피쉬팀이 탄식이 섞인 찬가를 뱉었다.

……뭐라는 거야.

여하간 옆방의 반송장에게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준 것 같았다. 이 기세를 몰아 나택이 외쳤다.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나갈 방법이 있는가!”

“…….”

그건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희망을 불태운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감옥 내부에서 나택의 고민과 발악이 번갈아 가며 울렸다. 해골의 갑옷에 있는 장식 핀으로 잠금장치를 열어 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돌덩이 대신 큰 정강이뼈 하나를 훔쳐 사슬을 내리쳐도 봤지만, 그 또한 소용이 없었다.

돌겠네. 진짜 나갈 수는 있는 거야? FAIL과 YOU DIE를 연달아 띄우던 하드 모드 보스도 이 정도로 진전이 없진 않았다.

쾅-!

나택이 답답한 마음을 삭이며 철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희망을 되찾았던 옆방의 스메나피쉬팀도 어느새 다시 기력을 잃은 채였다.

“하아…….”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버려서는 안 됐다. 저도 살아서 나가야 했고, 기왕 발견한 김에 스메나피쉬팀도 함께 데려가야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대홍수가 덮치기 전에 메데우스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러다간 나란히 익사하게 생겼다.

콜록, 콜록.

병든 후계자의 기침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택은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자물쇠를 주물럭거렸다.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생각에 잠겨 한참을 자물쇠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자물쇠 표면의 거친 감촉이 무언가 이상했다. 낡아서 파여 있는 줄 알았던 면에 음각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택이 허리를 숙여 창살 틈으로 얼굴을 구겨 넣었다. 실눈을 한 한쪽 시야로 자물쇠를 관찰하며 동시에 느껴지는 질감을 머릿속에 그렸다. 둥근 곡선에 눈알 같은 게 새겨져 있는 듯도 하고. 꽃도 아니고 방패도 아닌 것이, 괴상한 문양인데…….

어. 잠깐.

순간 나택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스쳤다.

목욕탕에서 건져 왔던 수상한 열쇠. 델람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목욕 시중의 사건이 있던 날 획득한 열쇠에 분명 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택이 내밀었던 손을 급하게 품으로 거두었다. 그러다 손목 피부가 사슬에 쓸렸다.

“아 씨, 따가워.”

피부 껍질이 벗겨진 것 같았지만 그걸 살필 틈이 없었다. 나택은 묶인 손으로 낑낑대며 간신히 품 안의 열쇠를 꺼냈다. 그러고는 다시 팔을 내밀어 자물쇠를 열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금속의 마찰음이 들리고, 식은땀 한 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또르르 흐를 때였다.

덜컥-.

눈앞이 환하게 빛났다.

‘수상한 열쇠’를 사용했습니다!

굳게 닫힌 철창이 열렸습니다!

“하. 이런…. 개 거지 같은…….”

나택이 맥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 이렇게 쓰라고 준 아이템일 줄이야.

개고생을 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탈출할 수 있게 된 현실이 기뻤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만약 그때 메데우스의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렸다면, 그래서 이 아이템을 얻지 못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나택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재수 없는 상상일랑은 아예 하질 말아야 했다. 나택은 손목에 감긴 사슬의 자물쇠도 풀어 보려 했지만 맞는 열쇠가 아닌지 열리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택은 무거운 사슬과 함께 옆방의 창살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안에는 피골이 상접한 남자가 있었다. 초췌한 스메나피쉬팀은 수염을 가슴까지 기른 채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스메나피쉬팀 님!”

“자…. 자네. 어떻게 나왔나?”

스메나피쉬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났다. 그렇게 난리를 쳐도 열지 못하던 문이 돌연 허무하게 열렸으니 혼란스러울 만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해 줄 여력이 없었다.

“어쩌다 보니 나왔습니다. 잠시만요. 금방 열어 드릴게요.”

나택이 다급하게 열쇠를 자물쇠에 끼웠다. 여기에도 맞을까. 낑낑대며 이리 맞춰 보고 저리 돌려 봤지만 스메나피쉬팀이 갇힌 철장은 열리지 않았다. 열쇠는 아무래도 나택의 철장에만 적용이 되는 듯했다.

나택이 다른 수를 고심하는 때였다.

화르륵-!

멀리서 횃불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일렁이는 빛이 저 끝에서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나택을 이곳에 끌고 온 경비가 살벌하게 소리쳤다.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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