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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에서 탈출시켜 줄 히든영웅을 찾습니다-60화 (60/178)

60화

선대 군주를 위해 열리는 제례. 그 때문에 허술해지는 성곽의 방비. 틈을 놓치지 않고 우루크를 침공했던 라가쉬군. 우루크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나택이 거쳤던 수눈키의 스토리 전개와 모든 게 미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조용하던 한밤중의 니누르타 저택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어디에 있었던 건지 저택 내에 있던 시종들이 모두 밖으로 뛰쳐나왔다.

“빨리 피하시오!”

시종들의 외침을 들은 아가디스가 검을 뽑아 들었다.

“너는 어서 메데우스 님께로 가라.”

“메데우스 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건 네가 알겠지.”

메데우스가 지금 너 만나겠다고 간 건데, 어디 있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

“메데우스 님은 부지휘관님을 만나겠다고 가셨습니다.”

“젠장……. 그럼 아마 동쪽의 주둔지로 가셨을 거…….”

“아아악!”

아가디스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비명 소리가 들렸다. 처소의 창가 바로 앞에서 푹, 푹 날붙이가 살점을 쑤시는 소리가 이어졌다.

뭐야. 구티족이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이렇게 갑자기?

당황한 나택이 얼른 처소 안을 훑었다. 안쪽 벽에 검이 몇 자루 걸려 있는 게 보였다. 나택은 얼른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검을 쓸 줄 아는가!”

“아뇨.”

검도를 배운 적도 없으니, 이 긴 날붙이를 다룰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맨손으로 밖에 나갈 순 없었다. 차라리 방패가 있다면 더 도움이 됐을 텐데.

그때, 덜컹거리며 출입문이 흔들렸다. 곧이어 굵은 비명이 들리더니, 문에서 금속을 긁는 소리가 났다. 문틈 아래로 붉은 피가 흘러들어 왔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나택이 절대로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살육이 난무하는 이 시대의 전쟁 따위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는데.

쿵,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이 내던져지는 소리가 났다. 나택의 숨이 가빠졌다.

“뒤로 물러서라.”

아가디스가 검 끝을 출입문 쪽으로 겨누며 전투 자세를 취할 때였다. 끼이익, 마찰음을 내며 처소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앞에는 몸에 피를 뒤집어쓴 장신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가디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메데우스 님!”

나택이 메데우스에게로 다급하게 달려갔다. 메데우스가 다가온 나택을 위아래로 훑었다. 제 시종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메데우스가 나택의 팔을 붙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아가디스. 어째서 네가 여기 있는 거냐고 물었어.”

“……메데우스 님.”

“동쪽 성문이 열려 있어. 병사들은 아무도 없고. 아무리 국장을 치른대도, 동쪽의 수비에는 공백을 두지 않는 게 우루크의 군규 아닌가. 어서 보병들부터 불러 모아. 동쪽 성문을 닫아야 해.”

“…….”

“뭘 꾸물대는 거야! 어서!”

“메데우스 님.”

그러나 아가디스는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메데우스가 검을 고쳐 쥐었다.

“……아가디스, 우루크 성내까지 구티족들이 쳐들어왔어.”

“…….”

“상황을 알고 있긴 한 거야?”

“아아악!”

니누르타 저택에서 끊임없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병은 대신관님의 명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죄송합니다, 메데우스 님…….”

“무슨 소리냐고 묻고 있잖아!”

메데우스가 외치는 순간, 시종 하나가 창문 쪽으로 내던져졌다. 찰나에 본 그의 가슴에는 두꺼운 날붙이가 몸통을 꿰뚫고 있었다. 난장판이 된 피바다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소리쳤다.

“메데우스는 어디 있나! 메데우스를 내놓아라! 놈을 내놓는다면 순순히 물러나겠다!”

저택 내에서 포효하는 협박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 위협을 듣는 순간 이제까지 막혀 있던 나택의 의문들이 순식간에 해금되었다.

‘이난나 신이 메데우스 님을 이 도시에 멸망을 가져올 사람이라고 했다더군. 신관놈들은 그게 이난나의 계시라고 말했지만, 난 다르게 생각해.’

“메데우스, 메데우스 님을 찾아라! 이 도시에 멸망을 가져올 야만인을 빨리 찾아!”

절박하게 메데우스를 찾는 시종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뭐, 이런…….”

나택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황당한 나머지 웃음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루할자게시가 말한 신의 계시, 메데우스가 몰고 올 멸망이라는 건 구티족의 침입이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왔다면 저 구티족마저도 루할자게시가 끌어들였다고 보는 게 맞았다.

미친 건가? 돌은 건가? 제 도시를 적군에 내어 주면서까지 메데우스를 내쫓으려 하다니, 제정신인가?

“메데우스 그 야만인을 어서 찾아!”

도망치기 급급하던 시종들은 이제 일제히 메데우스를 찾아 댔다.

‘걱정 마라.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으니. 만약 이대로 돌아간다 해도, 메데우스는 이제 우루크에 정착할 수 없을 것이다.’

‘놈은 곧 우루크에서 쫓겨날 거야.’

캄비세스가 확신에 차 했던 말이 이제야 납득됐다.

“저기 있다! 메데우스다! 메데우스가 여기 있다!”

출입문 앞에서 한 시종이 안을 가리키며 손가락질했다. 육중한 덩치의 구티족 두 명이 쿵쿵 땅을 울리며 처소로 뛰어왔다.

“찾았다! 메데우스를 찾았어!”

황소 투구를 쓴 놈들이 이를 드러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메데우스가 재빨리 검을 휘두르며 한 놈의 가슴을 벽에 꽂았다. 그러나 검에 찔렸음에도 놈의 눈에 번뜩이는 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수없이 메데우스에게 패배만 해 왔던 황소들은 마치 오늘만을 벼르고 있던 것처럼 더욱 광포하게 날뛰었다. 삼나무 숲 때와 비할 게 못 됐다.

메데우스의 뒤에서 또 다른 황소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메데우스가 손을 대기도 전에 놈의 움직임이 멎었다.

“메데우스 님! 어서 가십시오!”

아가디스의 검이 황소 한 놈의 배를 뚫고 나와 있었다.

“시종! 내가 말한 곳으로 메데우스 님을 안내해!”

아가디스가 검을 뽑자 황소의 배에서 피가 솟구쳤다. 쿵쿵쿵. 멀리서부터 땅이 울리는 진동이 다가왔다. 황소 떼가 몰려오는 소리였다.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메데우스 님! 빨리 가요! 여기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나택이 메데우스의 손을 잡아끌었다.

* * *

북서쪽. 북서쪽 성문.

나택은 계속 자신의 목적지를 중얼거렸다. 메데우스는 가는 길에 맞닥뜨리는 구티족과 끊임없이 맹전을 펼쳤다. 다행인 것은 동쪽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구티족이 아직 이곳까지는 몰려오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나택의 달리기 실력이 메데우스 못지않게 빠른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황소 떼들은 육중한 몸 때문에 두 사람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북서쪽 성문은 아직 멀었습니까?”

나택이 헉헉대며 물었다.

“저기 보이는 나무,”

“아악!”

“너머야. 다 왔어.”

전력으로 달리는 두 사람 앞의 침입자를 메데우스가 단칼에 처치했다. 바닥에 뒹구는 황소 투구를 보며 나택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을 달려 둘은 드디어 북서쪽 성문에 도착했다. 우루크의 서쪽에는 유프라테스강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쪽에 비해 방어에 유리했다. 게다가 침략할 만한 이민족도 없었기 때문에 우루크군의 수비 인력은 자연스럽게 동쪽으로 몰리게 되었다.

두 사람 앞의 북서쪽 성문은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 녹슬고 흙먼지가 껴 있었다. 지키고 서 있는 문지기도 없었고, 문은 성문이라기보다는 니누르타 곳간의 양 문 크기 정도였다.

나택은 얼른 품에서 열쇠를 꺼내 구멍에 걸었다. 잠금을 풀어 빗장을 밀어내고는 힘껏 문을 밀었다. 그런데 아무리 밀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메데우스 님!”

나택의 부름에 메데우스 역시 문에 어깨를 붙였다. 한 사람이 문 한쪽에 붙어 온 몸으로 문을 밀자 작은 틈이 벌어졌다.

그때, 뒤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택이 힐끔 돌아봤을 때 거대한 황소가 코앞까지 와 있었다.

“크억……!”

그러나 놈은 무기 한번을 휘두르지 못하고 그대로 메데우스의 검에 찔려 고꾸라졌다.

“읏, 하 씨, 왜 이렇게 안 열리지.”

그러는 와중에도 나택은 낑낑대며 문을 열려 했다.

“문을 연 지 너무 오래됐어.”

엉겨 붙은 흙먼지와 녹슨 금속은 생각보다 더욱 고집스러웠다. 팔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의 틈이 벌어졌을 때였다. 갑자기 바깥에서 손 하나가 쑥 틈으로 들어왔다. 놀란 나택이 문틈을 보는데 뒤이어 셋, 넷, 다섯, 여섯. 수많은 손들이 틈으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먼지에 절어 있는 손들이 문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메데우스 님! 도와드리겠습니다! 읏차!”

문틈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택과 메데우스가 그 기합에 맞춰 문을 밀었다.

쿵-!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우루크의 외곽에 사는 천민들이었다. 메데우스가 매일 검을 맡기던 대장장이 노인도 있었고, 나택과 함께 갔었던 선술집의 여주인도 있었다. 그리고 성문에서 자식을 찾아 달라 울부짖던 하크의 부모도 있었다.

“너희들은 왜 여기 있어.”

“아가디스 님께서 미리 기별을 주셨습니다.”

“허어어엉. 메데우스 니이이임.”

어른들의 뒤에서 훌쩍이는 아이의 울음이 들렸다.

“하크! 쉿, 조용히 해!”

어둠이 내린 밤, 유일하게 메데우스를 도우러 온 자들. 그들은 메데우스가 수장당할 위험까지 감수해 가며 지키려 했던 우루크민들이자 배척받는 이방인들이었다.

하크의 어머니가 쥐고 있던 고삐를 내밀었다.

“제일 건강하고 튼튼한 놈으로 데려왔습니다. 이놈을 타고 어서 가세요!”

고삐를 받아 든 메데우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루할자게시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메데우스 님.”

대장장이 노인이 작은 검을 메데우스의 손에 쥐여 주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압니다. 메데우스 님이 없었다면 다들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을 거란 걸요. 이제까지 살 수 있던 것도 모두 메데우스 님 덕분입니다. 저희의 앞날은 기약 없는 절망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메데우스 님이 어딘가에 살아 계신다면, 언젠가 바뀔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 꼭 무사히 살아남으셨으면 합니다.”

벌레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마른 땅에서 노인과 사람들의 진심이 전해졌다.

‘이방인들’의 진심을 수집했습니다.

[진심의 기로] 퀘스트 (3/4) 달성

포로로 잡혀갔던 이들을, 아무 가치가 없다 여겨진 이들을 구해 준 순간부터 그들에게 메데우스는 유일한 희망이자 미래였다. 간절하게 꿈꾸는 앞날이기도 했다.

쿵, 쿵-.

땅이 크게 울렸다. 메데우스가 단검을 챙기고 고삐를 쥐었다.

“이틀 동안은 서쪽 강가에 숨어 있어. 놈들이 잠잠해지면 그때 돌아가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루할자게시의 목적은 메데우스를 축출하고 우루크의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러니 메데우스가 사라지면 이후 구티족을 어떤 방식으로든 몰아낼 것이다. 해결책을 사전에 강구해 두었을 게 틀림없었다.

메데우스가 쿤가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테레시. 너는,”

“잡아 주세요.”

나택이 메데우스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메데우스는 딱지가 앉은 나택의 아래팔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불안해진 나택이 애타게 다시 손을 뻗었다.

“저는 절대 메데우스 님하고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약속하셨잖아요.”

“……테레시.”

쿤가위에 앉은 메데우스의 눈높이에 맞추느라 나택은 고개를 쳐들 수밖에 없었다. 점점이 박힌 하늘의 별이 마치 삼나무 숲에서의 그날 같았다.

절대 놓아선 안 되는 나의 인도자, 절대 놓칠 수 없는 나의 수호신.

이 자식아, 헛소리할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날 데려가!

“제가 메데우스 님을 지켜드릴게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메데우스 님의 편이 되어 드릴 겁니다! 다른 놈들이 다 사라져도 저만큼은 메데우스 님 옆에 꼭 붙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발 데려가 주세요.”

“…….”

“메데우스 님……!”

나택이 다시 한번 손을 흔들며 애걸했다. 결국, 하얀 손이 나택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몸이 하늘 위로 끌어 올려졌다.

“테레시…….”

메데우스가 제 앞에 앉힌 나택을 터트릴 듯 품에 안았다. 어깨에 파묻는 메데우스의 코끝과 숨결이 나택의 피부에 그대로 전해졌다.

“진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얼른 가요.”

공주님처럼 안긴 나택이 비장하게 말했다. 메데우스가 나택의 어깨 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단단한 어깨가 몸을 일으켰다.

이랴-!

메데우스가 고삐를 내리쳤다. 너른 평원, 비옥한 토지. 별이 쏟아지는 땅 위를 쿤가 한 마리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경의를 표하는 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은 도망쳤다. 이는 메데우스 최초의 전패이자 대패였다. 나택은 10년 넘게 살아왔을 메데우스의 터전이 멀어지는 걸 마지막까지 두 눈에 담았다.

엿같이 험난한 세상, 하루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문명. 이 고난들을 몸소 겪으면서 나택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반드시……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고 만다. 아니, 메데우스가 통일하게 만들 거다.

나택은 별을 반사하는 메데우스의 가슴에 기대 굳은 각오를 다졌다. 그를 격려하듯 두 사람 사이로 별빛이 우수수 쏟아졌다.

‘이난나 테레시’의 진심을 수집했습니다.

[진심의 기로] 퀘스트 (4/4) 달성

[진심의 기로]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메인] ‘별의 품에서’ 스토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다그닥, 다그닥 쿤가의 발소리가 배경음처럼 울려 퍼졌다. 어느새 우루크의 성채는 저만큼 멀어졌다. 두 사람의 선택이 또 한 번의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문명아……. 내가 반드시 벗어나고 만다!

시스템이 화답하듯 마지막 문구를 띄웠다.

[메인] ‘베일 속의 영웅’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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