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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에서 탈출시켜 줄 히든영웅을 찾습니다-66화 (66/178)

66화

조용한 나택에게 메데우스가 말했다.

“이게 다야.”

“참 굉장한 노래네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택이 성의 없이 박수 쳤다. 메데우스는 자신이 듣고 자란 가사를 덤덤하고 건조한 어투로 낭독했다.

“영웅 타령하는 어린아이 말장난 같은 내용인데. 네 귀엔 굉장하게 들렸나 보지.”

거참. 말이 그렇단 소리지.

“예. 엄청난 노래로 들렸습니다.”

“이제 궁금한 건 해결됐어?”

더 물어볼까.

나택이 턱을 긁으며 메데우스를 빤히 보았다. 메데우스와는 이제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수수께끼 같은 놈이지만 처음에 비하면 나택은 메데우스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여태 나눴던 대화로 유추해 보건대, 메데우스는 어릴 때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은 것 같았다. 이해는 갔다. 현대인 나택 역시 사진과 영상이라는 선명한 기록을 두고서도 어릴 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런 것조차 없는 고대인은 오죽할까.

메데우스의 어머니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었다.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의 어머니가 시스템과 엮여있는 듯해서 마음에 걸렸다. 메데우스를 닦달하고 쥐어짜면 콩알만 한 단서라도 얻을 수 있겠지만……

“해결됐냐고. 궁금한 거.”

그게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스템이 ‘물어볼까?’ 따위의 안내 멘트를 띄우지 않는 게 그랬다. 거기다 메데우스는 어머니에 대한 좋은 추억보다 가족이 끔찍하게 학살당한 날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했다.

“……예. 해결됐습니다.”

더 캐물어 봐야 큰 도움이 되지 않겠단 판단이 들어 나택은 이 대화를 마무리했다. 키워드 하나를 얻은 거로 족하다.

나택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데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꼬르르르르륵-.

“요란하네.”

메데우스가 짧게 웃음을 흘렸다. 아침밥을 그렇게 푸지게 먹고, 한 바구니 가득 사 온 과일도 몽땅 배에 넣었는데. 청소 조금 하면서 움직였다고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 모양이었다. 민망해진 나택이 괜히 코끝을 긁적였다.

메데우스가 나택을 따라 바닥에서 일어섰다.

“일을 한 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보상을 줘야겠지.”

메데우스가 문 쪽을 턱짓했다.

"따라와."

무슨 보상을 주려고?

나택은 목적지도 영문도 모른 채 메데우스를 쫓아 나섰다. 보상이라는 말 한마디에 은근히 기분이 들떴다. 닫히는 문 사이로 나택의 빈 위장이 또 한 번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강가였다. 메데우스는 허름한 집 마당에서 주워 온 갈대 바구니를 강가에 내려놓았다.

“여기에 무슨 보상이 있습니까. 생선 구이라도 해 주시려고요?”

“그래.”

설마 하는 마음에 웃자고 던진 말인데, 그게 사실일 줄이야.

메데우스는 어디서 주워 온 건지 모를 긴 나뭇가지를 다듬고 있었다. 짧은 단검으로 끝을 날카롭게 손질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허……”

나택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영화에서나 보던 물고기 사냥을 눈앞에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군인이라는 놈이 물고기 사냥은 할 수 있는 건지 미심쩍었지만, 한편으로는 낚시의 과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택이 슬쩍 메데우스의 옆에 앉았다.

“작살로 쓰시려는 겁니까. 잡을 줄은 아시고요?”

검을 벼리듯 나무를 다듬던 손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할 줄도 모르면서 폼만 잡고 있는 것 같아 보여?”

“사냥이나 이런 건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특히나 물고기라면 더 힘들 것 같은데……”

일단 나택은 불가능했다. 나뭇가지 하나로 물고기를 잡으라니. 어지간한 순발력과 노하우가 있지 않은 한 힘들 것 같았다.

메데우스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할 줄도 모르는 일에 노동력을 낭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 시간 버리면서 매달릴 만큼 절박하지도 않고. 일단 나는 지금 배가 고프지 않거든.”

“.......”

배도 고프지 않고, 굳이 물고기를 사냥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지만 나택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 이 짓을 하고 있단 뜻이었다. 고마워해야 할 일인 것 같긴 한데 말본새가 점수를 다 깎아 먹었다.

어느새 완성된 작살을 들며 메데우스가 끝에 붙은 잔 가루를 입으로 후후 불었다.

“너도 알려 줘? 요령만 터득하면 어렵지 않아. 몸이 둔하지 않은 편이라며.”

뒤에 붙는 한 마디에 나택의 과거가 끌려왔다. 메데우스의 노예가 되었던 첫날, 나택이 살기 위해 제 쓸모를 어필하던 때 냅다 날아오던 단검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관계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예. 알려 주세요. 저도 해 보고 싶습니다.”

나택이 냉큼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택 역시 가만히 앉아서 남이 가져다주는 거나 받아먹을 성미는 아니었다.

곧바로 작은 공방이 차려졌고, 나택은 메데우스를 따라 낚시 도구를 만들었다. 그걸 들고 강가로 향하는데 언젠가 봤던 TV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정글과 아마존을 누비며 자급자족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예능 프로. 그걸 보고 사서 고생한다고 혀를 내둘렀던 과거가 후회됐다.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열심히 봐 뒀을 텐데.

메데우스는 망설임 없이 물속에 들어갔다.

“천천히 들어와.”

새하얀 손이 나택에게 내밀어졌다. 남자끼리 이런 호의를 주고받는 게 흔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택은 개의치 않고 냉큼 그 손을 잡았다. 이런 데서 자존심 세워 봐야 득이 될 게 없다.

강가에서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도 물이 벌써 나택의 무릎 위까지 왔다. 유속도 생각했던 것보다 빨랐다. 나택은 생존법 과외를 받는다는 기분으로 메데우스의 옆에 딱 붙어섰다.

메데우스가 작살 끝으로 물속을 가리켰다.

“보이지. 이렇게 그림자 같은 게 움직이는 거. 움직이는 방향이랑 거리를 계산해서 미리 자리를 예측해야 해.”

나택이 팔짱을 끼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속을 주시했다.

……엄청 빠르게 움직이는데.

“큰 건 노리지 말고 작은 것만 겨눠. 이걸로 잡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예.”

어차피 큰 건 노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 성공해야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택은 비장한 각오로 교습을 받았다. 낚시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문명의 누구보다 뛰어날 선생 한 명과 의욕 넘치는 학생 한 명,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 하나가 되어 강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억……!”

첨벙, 소리와 함께 나택이 물속으로 엎어졌다. 메데우스가 나택의 뒷덜미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조심하라니까.”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답하는 나택의 작살에는 물고기 대신 젖은 흙이 찍혀 있었다. 나택이 강가에 놓인 바구니를 흘끔 보았다. 메데우스의 것에는 손바닥만 한 물고기가 대여섯 마리 있었고, 나택의 것에는 고작 한 마리가 팔딱거렸다.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처참한 결과였다.

나택이 작살을 고쳐 쥐려는데 나무의 가운데가 소리 없이 동강 났다. 방금 미끄러지면서 부러진 모양이었다. 나택은 강물에 휩쓸려 가는 작살 반쪽을 허탈하게 응시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빠르게 늘은 편이야.”

“위로해 주시는 겁니까.”

“아니. 사실을 얘기해 주는 거야.”

나택은 젖은 옷감을 짜내면서 조용히 머리를 주억거렸다. 메데우스가 제 작살에 꿰인 물고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어느새 넓은 평원에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오후 내내 한 거라고는 물속에서 삽질한 것밖에 없는데. 또 하루가 넘어가는 게 허무하기만 했다. 나가자며 앞장서는 메데우스를 따라나서는 때였다. 발을 딛는 순간 왼쪽 발목에서 시큰한 느낌이 올라왔다.

발목이 삐었나.

멈춰 선 나택이 이번엔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지만, 얕은 통증은 변함이 없었다. 성큼성큼 가던 메데우스가 곧바로 뒤돌아보았다.

“왜 그래.”

“아닙니다.”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절뚝이는 걸음 때문에 숨길 수가 없었다. 균형이 어긋나는 걸음을 보던 메데우스가 나택에게 돌아왔다.

“다쳤어?”

“발목을 좀 삔 모양입니다. 심하게 다친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말릴 새도 없이 나택의 몸이 쑥 허공으로 올라갔다. 메데우스가 나택의 무릎 뒤에 팔을 끼워 넣더니 그대로 품에 안은 것이다.

“떨어집니다!”

“안 떨어트리니까 걱정 말고 가만히 있어.”

불안해진 나택이 본능적으로 메데우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메데우스보다는 작은 체격이지만, 나택 또한 180cm가 넘는 건장한 성인 남자였다. 그런 무게를 메데우스는 인형 안듯 번쩍 들어 올렸다.

“걸음마 뗀 어린아이도 아니고. 맨땅에서도 넘어지더니, 물에서도 그러네. 넌 어떻게 몸 성할 날이 없어. 업고 다니기라도 해야 하는 거야?”

나택은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은 제가 미숙해서 그렇다지만, 매번 그런 건 아니었다. 나택이 다치는 상황은 메데우스를 위한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 은혜도 모르는 놈이 이제껏 목숨 구해 주려 했던 건 생각도 못 하고 나를 한심하게 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메데우스가 저를 놓칠까 봐 끌어안은 손을 놓을 순 없었다.

“메데우스 님만큼 익숙하지 않으니 이 정도 실수는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삼나무 숲 때를 빼면 크게 다친 적도 없습니다.”

“다친 적이 왜 없어. 델람에서 코피를 쏟던 게 누구지. 네 팔이랑 뺨에 남은 흉터는.”

“그렇게 작은 것까지 다쳤다고 하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뭐가 좀 그런데. 작은 상처는 다친 게 아냐?”

“호들갑 떨 정도로 잘못된 것도 아닌데요. 무엇보다 메데우스 님께 방해가 될 정도의 부상을 입은 적은 없습니다.”

강가에 거의 다다른 메데우스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눈치를 살피던 나택이 얼른 한마디를 덧붙였다.

“......삼나무 숲 때를 빼고요.”

그러나 말을 이어 붙였음에도 메데우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느린 속도로 제 가슴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왜 이래. 말대꾸했다고 이러는 건가? 설마 강물에 다시 쑤셔 넣을 생각인 건 아니겠지.

“테레시.”

“예.”

단단한 가슴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메데우스는 안정적인 걸음으로 강 밖을 나왔다.

“크고 작은 게 문제가 아냐. 네 몸을 함부로 대하지 마.”

메데우스가 나택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택이 갸웃거렸다. 한 나라의 장군이었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스웠다. 매일같이 전쟁터에 몸을 내던지며 누구보다 끔찍한 참상을 보아 왔을 인사가 메데우스일 텐데. 고작 나택의 작은 상흔을 걸고넘어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거로 말씨름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나택이 눈썹 끝을 긁적이며 성의 없이 대답했다.

“뭐……. 예. 알겠습니다. 그러죠.”

그런데 답을 들은 메데우스가 등을 보이더니 몸을 아래로 숙였다.

“알았으면 업혀.”

내보인 메데우스의 등은 서 있을 때보다 훨씬 광활했다. 거기다 뒤쪽으로 뻗은 손 때문에 팔의 근육이 더욱 도드라져 조각 같은 실루엣을 만들고 있었다. 그걸 본 나택의 눈길이 저도 모르게 제 팔로 향했다. 메데우스 정도는 아니지만 제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감상이 거기까지 이르자 괜한 오기와 자존심이 솟구쳤다.

“못 걸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걸어가겠습니다.”

부러진 것도 아니고, 멀쩡한 두 다리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업혀 가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나택은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제 생선 바구니를 주워 들었다. 고작 한 마리가 담겨 있는 휑한 바구니가 또 한 번 메데우스의 것과 비교되었다.

“업히는 게 싫으면 안아 줘?”

“돼, 됐습니다. 심하게 삔 것도 아니고요.”

“거리가 꽤 되는데, 그 상태로 무리했다간 오히려 악화돼. 빨리 걸을 수도 없잖아.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냥 업혀.”

“......”

“신선한 생선 요리를 맛보려면 얼른 가는 게 좋을 텐데.”

꼬르르르르륵-.

생선 요리라는 말에 나택의 몸이 반응했다. 아까는 그냥 출출한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정말로 허기가 졌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메데우스의 말이 일리가 있긴 했다. 나택은 곧바로 고집을 꺾고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나택의 답에 메데우스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물론 나택은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바구니 두 개의 생선이 한데 모였다. 덕분에 한 마리라는 치욕스러운 성과는 희석되었다.

바구니를 손에 쥔 나택이 메데우스의 등에 업혔다. 쑥 올라가는 눈높이에서 보이는 평원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택은 어설프게 메데우스의 어깨 옷자락을 쥐며 끝없는 하늘을 감상했다. 메데우스가 걸으며 말했다.

“꽉 붙잡아.”

그 말에 나택이 옷감을 더 세게 쥐었다. 그러자 메데우스가 갑자기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나택의 몸도 순식간에 뒤로 넘어갔다.

“떨어집니다!”

놀란 나택이 얼른 메데우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흔들리는 갈대 바구니 안에서 생선들이 팔딱였다. 메데우스가 그제야 몸을 똑바로 세웠다.

“그러니까 꽉 붙잡으라고 했잖아.”

말로 하면 되잖아, 인마……!

나택이 불만을 담아 코를 찡그렸다.

“이런 짓 좀 하지 마세요.”

“무슨 짓?”

나를 엿 먹이려는 짓.

“......위험한 행동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한번 말할 때 시키는 대로 해.”

또 한 번 나택이 코를 찡긋했다.

“......예.”

체념한 입에서 얕게 한숨이 나왔다. 나택은 포기한 듯 팔다리에 힘을 빼고 메데우스에게 몸을 맡겼다.

“저희 설마 밥 먹으려면 매일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 두 번 했다간 네 다리가 부러질 것 같으니까, 내일부턴 다른 걸 할 거야.”

“그 정도로 약골은 아닙니다……”

꼬르륵-

또 한 번 나택의 배가 아우성쳤다.

“뭘 하시려고요?”

“사람들 사이에 섞여야지. 하나밖에 없는 가솔을 배불리 먹이려면.”

@????????(맘대로 퍼나르겠지만..괜찿ㄶ아..ㅎ..ㅎ..진짜 괜찬..아..ㅎ..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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