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수현은 냉담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일요일 오전이 되면 일어나 어머니를 성당까지 모셔다 드렸다. 다만 안까지 들어서지는 못하고 성당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의 어머니는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영성체라도 하고 가라는 권유를 몇 번이나 했지만 좀처럼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는 그는 이것만큼은 번번이 거절했다. 언제부턴가 수현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를 극도로 꺼렸다.
“곧장 다음 달부터지? 요한이 너희 학교에 간다는 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수현의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밀폐된 차 안에 히터를 최대치로 틀어 놓았는데도 몸이 데워지기는커녕 점점 식어 갔다. 가끔은 그의 이름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듣는 것만으로도 이런 지경이 된다. 특히 그 누군가가 어머니나 아버지일 경우 몇 배로 긴장이 일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기 때문일까. 그가 끄덕이자 어머니는 걱정스레 염려를 이어 갔다.
“일을 너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요한이 어련히 잘 알아서 결정했겠냐만……. 어쨌든 그 전에 엄마한테도 얼굴은 한번 보여 주지.”
그녀는 요한이 귀국한 지 몇 주가 지나도록 아직도 얼굴을 못 본 상태였다. 겨우 미디어로 접하는 것이 다였다. 요한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엔 꼭 그리움을 내비쳤다.
“그렇게 보고 싶어?”
“늘 보고 싶어서 애타지.”
“진짜, 누가 친아들인지 모르겠네.”
“그런 소리 하지 마. 둘 다 아들이지. 수현이 너 혹시라도 요한이 앞에서…….”
“설마 걔 앞에서 그럴까. 그렇게 보고 싶으면 집으로 가 보지 그래요. 내가 말해 놓을게.”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해. 예전 일도 있고.”
7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의 계절은 가을쯤이었다. 몇 달이 되도록 한국으로 돌아올 기미는커녕 매니저인 린을 통해서만 근황과 안부를 전해 오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직접 그를 만나러 가기로 용단을 내렸다. 마음먹은 달이 2월쯤이었으니 콩쿠르 이후 계절이 한 차례 흐른 이듬해 늦겨울이었다. 아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두 번째 협연 무대를 앞두고 있었던 때였을 것이다.
독일에 도착해서 린에게 연락하자 클라시스 측은 부모님을 극진히 대했다. 돌아갈 비행기를 1등석으로 미리 업그레이드해 주고, 숙소와 식사·교통 및 제반 비용 일체를 지불하고, 구하기엔 이미 늦어 버린 공연장 티켓까지 제공해서 요한을 찾아온 손님을 예우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 요한의 숙소로 부모님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쉬기에도 모자란 빠듯한 시간에 자신들을 위해 손님맞이를 하는 요한을 보고 난 뒤에, 그들은 일정을 모두 접고 부리나케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며, 이 모든 융숭한 대접이 요한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염치 있는 부모님은 요한에게는 물론이고 두 번 다시는 린에게도 먼저 연락을 취하지 못하게 됐다. 요한에게 털끝만큼이라도 부담이 되거나 누가 될까 염려했던 것이다.
“집에 한번 오라고 얘기해 볼게. 저녁이라도 같이 먹게.”
“오겠다고 할까?”
어머니와 아버지는 도맡아 양육을 하면서도 요한을 어려워했다. 존중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말 친아들처럼 대하고 싶었다면 그가 어떤 냉담한 태도를 취하든 좀 더 엄격히 그를 대하고, 어떤 선을 그어 놓았든 단번에 그것을 넘어갔어야 했다. 지금처럼 굳어진 어려운 관계는 부모님의 탓도 일정 부분 있었다. 수현은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인 부모님의 태도가 좀 이상하다고 종종 생각했다.
“부담 주는 거 아니니까 아무 때나 자기 편한 시간에 오라고 하면 되지. 내가 얘기할게.”
물론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이 정도의 요구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 왔다. 문 열어 드릴게요.”
성당 주차장이 빼곡했다. 이곳은 지역의 유일한 성당으로 유서가 깊었다. 성당도 워낙 오래되고, 지역 주민들도 이사를 거의 가지 않아서 신도들끼리는 서로 잘 알았다. 수현을 알아보는 눈들도 있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내리면서 함께 들어갔으면 하는 기색을 내비치기에, 그는 고개부터 저었다.
“다음에요.”
“다음에 언제.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벌써 십 년이 다 돼 가. 너 정말 왜 그러는 거야?”
“지은 죄가 많아서 그래.”
“그렇게 지은 죄가 많으면 고해성사라도 하고 가.”
“엄마, 종교를 강요하는 건 다른 의미의 폭력이야.”
“얘 좀 봐. 엄마보다 더 열심히 다니던 게 누군데! 엄마가 누구 덕분에 질세라 더 열심히 다니게 됐는데!”
“진짜 다음에. 먼저 갈게요. 올 땐 성당 버스 타고 와. 이따 봐!”
그는 도망치듯 차에 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룸미러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어머니가 비쳤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머니를 위해 최대한 타협해 매주 여기까지 오고는 있지만, 요한을 향한 증오와 숭배라는 양극단의 감정이 자신의 내면에 공존하는 한 저 안까지 들어가는 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수현이 온 마음 바쳐 믿었던 신은 그가 아닌 요한을 선택했다. 제발 출구를 열어 달라는 애원도 소용없었다.
요한을 처음 만났던 게 바로 이 성당에서였다.
* * *
개강을 앞둔 학교는 점차 활기를 띠어 갔다. 마침내 3월의 개강 첫날, 예년보다 피아노과는 훨씬 더 북적였다. 음대는 타 단대에 비해 재학생 수가 현저히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곳보다도 피아노과의 학과 사무실이 붐비는 데엔 원인이 있었다. 학생들은 요한이나 그 주변 상황에 관한 궁금증들이 넘쳤다.
최근 승요한 홀에 새로 들여놓은 스타인웨이 두 대와 야마하 한 대는 모두 요한이 베를린 체류 시절 주로 쓰던 피아노와 같은 모델이었는데, 이것들을 재학생들도 쳐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 꽤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요한을 누가 가르치느냐’라는 것이었다. 이곳 대학에서 작곡에 관한 공부를 하겠다고 천명했으나 요한은 이미 몇 곡의 소나타 편곡을 하고 있다는 하이네만의 증언 아닌 증언이 있었던 터다. 오히려 이론이든 실습이든 요한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는 쪽이 훨씬 이치에 맞았다.
그리고 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비단 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학기 「음악인의 밤」에 승요한도 참가할 수 있는 건지 수현 씨가 한번 물어봐요.”
「음악인의 밤」은 매년 여름마다 학교에서 열리는 소규모 음악제였다. 음악 대학만의 전통을 잇는 축제이기도 했다. 각 학과에서 신청자 반, 교수의 추천자 반으로 구성된 학생들은 독주곡이나 협주곡 등의 무대를 올렸다. 학년별로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도 했다. 각 과의 교수들도 협심해 특별 공연을 열었다.
올해에도 있을 음악제에 승요한이 얼굴을 내밀 것이냐 하는 것은 학생들과 교수들 전체의 관심거리였다. 전화 한 통이면 될 일에 학장이 직접 과 사무실까지 내려오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학장으로 있을 시기에 요한이 참여해 주기를 무척 독려하고 싶은 것 같았다.
“요한 씨가 자네를 직접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고, 린이라는 여자 얘길 들어 보면 아무래도 우리 학교로 온 데 자네 영향도 있는 것 같으니 우 조교가 말을 좀 잘해 줘요.”
“비서 분한테 말은 전하겠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않으시는 편이…… 본인이 세운 연주 계획으로도 빡빡한 것 같더라고요.”
이미 예상했던 답변인 듯 학장은 수현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하고는 돌아갔다. 학장이 들어오면서 학생들을 전부 물려 준 덕에 과 사무실은 잠시 평온을 되찾았다. 학기 초에는 원래 바쁜 데다, 요한의 시너지로 당분간은 정신없을 자신의 모습이 훤했다.
일시적으로 그의 한국 일정을 담당하는 비서는 이동준이 직접 추천한 30대 후반의 김은희란 이름의 여자였다. 수현은 그녀에게 과 사무실로 온 인터뷰 요청을 취합해서 문자 메시지를 한 통 넣었다. 그리고 여름에 있을 학내 음악제에 참석이 가능한지, 가부를 학기 말까지 알려 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한 통 더 보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요한이 선물한 새 휴대폰이었다. 피해 의식이 지나친 것인지 이 안에 위치 추적 장치 따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볼 때마다 하게 됐다. 그냥 이것도 버리고 새것을 살까 했지만 그 사실을 요한이 알게 되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아 체념했다. 대신 그도 조건을 하나 달았다.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리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문득 이상할 정도로 괴악한 소리들을 듣고 멈칫했다. 평소 이 건물은 방음이 워낙 잘되어 있어 이 정도로 소란할 일이 드물었다.
과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수현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가 몸을 바로 세웠다.
“학생들 수업 다 끝난 것 같던데, 퇴근 안 해요?”
문밖에서 요한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경호원들이 학생들의 밀착 접근을 막고 버티고 있어 키가 작은 여학생 대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이 어깨에 메고 있는 악기 케이스들이 비명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수현은 무심코 벽시계로 시선을 던졌다가 깜짝 놀랐다. 얼마나 바빴으면 벌써 퇴근 시간이 된 줄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요한의 등 뒤로 과 사무실의 문이 닫히는 것이 보였다.
“오늘 같이 저녁 먹기로 했잖아요.”
이건 자신이 휴대폰의 번호까지 변경하는 대가로 요한에게 내민 조건이었다. 수현은 컴퓨터 모니터를 종료했다. 어두워진 모니터 화면에 수현의 무표정한 얼굴이 비쳤다. 제대로 음식 준비도 못 했다며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아이처럼 좋아하실 어머니의 모습이 그 윤곽 위로 겹쳐졌다. 어릴 땐 아버지를 더 닮은 줄 알았는데 자라면서 수현은 어머니의 외양을 더 닮아 갔다.
“김 비서님은?”
“일찍 보냈어요. 그래서 운전할 사람이 없네요. 운전은 내가?”
“린이 손은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게 좋다고 했어.”
“그래요, 그럼.”
차 키를 휙 던져 오기에 수현은 반사적으로 잡아챘다. 닿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순간적으로 손에 힘을 주려다가 외려 풀려 버리는 바람에 툭, 하고 차 키가 책상 위에 떨어졌다.
“그 망가진 손으로 운전할 수 있겠어요?”
“사고로 너까지 죽게 되면 그건 미안한 일이겠다.”
“그래도 나만 죽이려 들진 않네요. 늘 공정해서 좋아요.”
수현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앞뒤를 뒤집어 가며 살폈지만 외견상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다친 것 자체가 이미 오랜 일이었다. 그의 말대로 다 망가진 손이지만 일상생활에서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손에 젓가락을 쥐든 핸들을 쥐든 어설프게나마 해냈다. 다만 오랜 시간 공들여 압박을 가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한 악장 이상 연주할 수가 없었다.
잘 알고 있는데도 굳이 현실 자각을 시켜 주는 것은 그의 잔인한 면 중 하나였다. 덧붙여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보이기엔 너무나 무람없는 태도이기도 했다.
“가요, 선배.”
“뭐?”
“선후배 사이가 됐으니까요. 듣기 싫어요?”
싫다기보단 낯설게 들렸다. 여태껏 요한은 어떤 특별한 호칭을 만들어 수현을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이따금 평범한 가족 구성원인 것처럼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게 수현은 늘 마음에 걸렸다. 일부러 수현의 죄책감을 건드리는 일종의 유희처럼 들렸다. 그래서 줄곧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다고 내심 생각해 왔건만 막상 달리 불리고 나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형을 선배라고 부르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난 모르는 사람이던데.”
뜬금없는 소릴 한다 싶더니, 이쪽이 본론인 모양이다. 재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처음 학교에서 요한을 봤을 때, 그가 자신의 곁에 있었다.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일을 요한이 다시 깨우쳐 줬다.
“날 선배라고 부르더라며. 그럼 후배지 뭐겠어.”
재욱에 대해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가장 미치는 화가 적을까 고민하던 수현은 에둘러 설명하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눈앞에 닥친 문제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자신의 나쁜 습관 중 하나였다.
* * *
가뜩이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쏟아지던 시선은 강의동에서부터 주차장으로 함께 걸어오는 내내 수현에게 더욱더 쏠렸다. 피아노과의 조교가 까다로운 승요한과 저녁 식사 약속을 잡을 만큼의 친분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내일 오전쯤이면 학교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부 퍼질 것이었다. 굳이 학과 사무실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분명히 일부러 한 짓 같았다.
“술 마실 거예요?”
“글쎄. 아버지께서 주시면…….”
“나 데려다줘야 하지 않아요?”
“아, 그렇지. 그럼 관두고.”
“이러면 내가 다음 할 말을 못 하잖아요.”
“뭐라고 하려고 했는데?”
“나 자고 갈까요?”
수현이 미간을 조금 구기는 것이 차의 창문으로 비쳐 보였다. 그것을 본 요한은 픽 웃었다.
“뭐 해요? 문 열어 줘야죠.”
김 비서를 먼저 보낸 것이 자신의 부탁 때문이었으니, 이 정도는 요구해도 된다는 양 당당한 태도였다.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린 수현이 벌컥 문을 열었다. 그 바람에 차체와 부딪칠 뻔한 요한이 한 걸음 물러섰다. 수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퇴근길의 교통 체증을 감안해도 30분이면 충분했다. 그런데도 수현은 최대한 길목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한 시간가량이 걸렸다. 급하게 연락을 하는 바람에 저녁 식사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을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산 음식보단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할 것이었다. 요한도 대충 짐작하고 있는지 도로에 일부러 갇힌 일로 가타부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여전히 효도 잘하네요. 부모님이란 존재는 원래 그렇게 애틋한가?”
“워낙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보상해 드려야 한다는 심리가 있는 거지.”
“손 많이 가는 아들이긴 했죠. 태어나선 혈액형 때문에 탈 날까 봐 속 썩이고, 커선 피아노 친답시고 가계에 부담 주고. 그래도 낳았으면 책임지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매사에 잘해 드리려고 전전긍긍할 필요 없어요.”
“넌 왜 그렇게 우리 부모님이 못마땅해?”
요한은 아주 탐욕스러웠다. 물론 자신에게 한정된 일이었다. 수현이 어떤 대상에 연연하는 것을 보기 싫어했다. 그게 부모님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왜 못마땅하냐는 질문을 했지만 수현은 사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물음에 요한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하자, 초인종을 누를 필요도 없이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어머니의 상기된 표정은 물론이고, 좀처럼 감정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은 아버지도 내심 기쁜 모양인지 만면에 웃음 기운이 가득했다.
자기 속으로 낳지 않은 자식도 저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모님은 늘 요한이 하는 어떤 행위든 덮어놓고 지지했다. 수현이 했다면 잔소리를 했을 일도 요한이 하면 대부분 넘어갔다. 만일 수현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해외에 체류하기 시작했다면, 부모님은 당장 그를 찾아와 자초지종을 묻고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요한이 버려져 있을 때 직접 데려왔던 어머니는 그를 아픈 손가락으로 아끼고 있다면, 평생 음악과 함께해 온 아버지는 위대한 음악가로서 존경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 어쨌든 두 분 모두 요한을 어려워하는 것은 공통적인 기조여서, 오늘처럼 수현이 종종 그 사이에서 매개체가 되곤 했다. 그 때문에 수현에게 어떤 희생이 따르고 있는지, 부모님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뭘 이렇게…….”
수현은 감탄했다. 식탁 위의 음식들은 단시간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치로 보였다. 요한을 위해 만들어 놓았던 갖가지 반찬들과 미리 재워 둔 갈비찜, 잡채 같은 전형적인 한국식 잔치 음식들이 즐비했다.
어떤 대상을 욕망할 시간도 모자랐기 때문에 모조리 뒷전이 되고 있을 뿐 요한은 인간이 가진 수면욕이나 성욕 같은 기본 욕구에 균형적으로 충실했다. 다만 식욕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연주할 때 체력을 유지하는 차원으로만 섭취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의 요한 그대로라면 말이다. 입맛도 까다로운 편이어서 어머니의 평범한 맛을 내는 음식이 썩 입에 맞지는 않을 것이다.
“맛있어요, 어머니.”
다만 놀랍게도 어머니에겐 늘 이런 선의의 거짓말을 해 주곤 했다.
“많이 먹어. 산해진미를 가져다 놔도 네가 잘 안 챙겨 먹는다면서 린도 고민이 많더라.”
“앞으로는 더 잘 챙겨 먹을게요. 이제 제 옆에 형 있잖아요.”
두 사람을 부모님의 눈에 사이좋은 형제처럼 보이게 해 줄 저 말이 수현에게만큼은 액면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 가족에게서 수현을 빼앗아 가기 위해 돌아온 약탈자였다. 부모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요한이 먹는 양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때마침 거실에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 요한에 관한 뉴스가 들렸다. 다들 내용을 듣느라 식탁을 둘러싼 네 사람 중 요한만 천천히 젓가락질을 했다. 그는 텔레비전 소리에 빼앗긴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듯 테이블 위의 꽃을 가리켰다.
“라눙쿨루스, 맞죠?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꽃이요. 예뻐서 침대 옆에 뒀어요.”
거짓말. 그는 자기가 생각했던 물건 이외의 것이 자신의 공간에 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워낙 깔끔해서 주변이 늘 청결하고 또 정돈되어 있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됐다. 꽃다발은 다음 날 아침 수현이 그곳에서 나가자마자 쓰레기통으로 직행해 버려졌을 터다. 요한은 가능하면 무색, 무취, 무음 등의 감각이 마비된 상태를 선호했다.
“어머, 정말? 잘 관리해도 금세 시들 거야. 또 수현이 편에 보낼게.”
“어머니 선물인데 늘 감사히 받아야죠. 참, 이번 어버이날에도 두 분 같이 여행 다녀오세요. 제가 보내 드릴게요. 올핸 어디가 좋으세요?”
“재작년에도 네가 보내 준 패키지 항공권으로 홍콩에 다녀왔잖니.”
“바빠서 신경을 잘 못 쓰니까 죄송하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해야죠. 작년처럼 거절하시면 저 너무 섭섭해요.”
여태껏 서운했던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진 양 어머니의 두 뺨이 소녀처럼 물들었다. 아버지도 내심 기특해하는 눈치였다.
요한은 늘 저런 식이었다. 천 번 섭섭하게 해도 한 번의 그답지 않은 다정함을 발휘해 만회했다. 어째서일까.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도 쉽게 용서했다. 수현은 그게 잘 안 됐다. 용서할 수 없어 미워하고, 그렇다고 전부 버릴 수는 없어서 끊임없이 휘둘렸다.
그가 부드럽게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 따뜻한 마음이 한 조각도 없다는 것을 수현만큼은 잘 알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해 줄지에는 늘 물음표가 붙었다. 짐작건대 아마 그에게 이 가족은 영원히 남일 것이다.
음악가의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가 만들어 내는 음악의 일부로 함께 소비된다. 요한의 경우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픔이 있는 유년기 때문에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깊은 슬픔과 애수가 힘이 세다고 평가하는 평론가도 더러 있었다.
다만 수현과 가족의 존재만큼은 한 번도 대중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법적으로 입양 절차를 밟았던 것이 아니기에 가족과 성이 달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참, 요한아. 신부님 기일이 얼마 안 남았다. 알고 있지?”
어머니가 아버지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그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요한은 웃어넘겼다.
일반 대중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요한은 이 집에 오기 전 5년가량 한 남자와 함께 살았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부터였다. 그는 승국환이라는 이름의 천주교 사제였는데, 14년 전 이미 사망했다. 요한은 그 남자에 관해선 늘 함구했다. 마치 이 세상에 없던 사람처럼 굴었던 것이다.
“어째 살이 더 빠졌다. 텔레비전에서 볼 땐 괜찮아 보였는데…….”
어머니는 요한의 앞에 미지근한 물을 떠 건넸다. 그를 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선은 애틋했다. 그는 차분히 식사를 마치고 입 주변을 깔끔하게 닦았다. 잘 배운 식사 예절은 그의 친어머니도, 그를 입양했던 양아버지도, 수현의 부모님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 영국 상류층의 테이블 매너였다. 놀라운 정도로 정확하게 매너를 준수하는 요한을 보고 아주 어릴 때의 수현이 이런 건 대체 누가 가르쳐 줬느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교육 방송에서 봤어요.>
“이제 가 봐야겠어요, 어머니. 비서 없이 왔거든요. 형이 데려다줬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수현아, 요한이 피곤하겠다. 얼른 데려다주고 와.”
“어차피 제 작업실이 학교 근처니까 저희 집에서 자고 내일 출근하면 어떨까 해요.”
“방해 안 되겠어?”
“그럼요. 형이 옆에 있어 주는 게 전 더 안심되고 좋아요.”
“그래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요한과 수현을 번갈아 보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래, 그럼? 수현이 옷 챙겨 줄 테니까 거기서 자.”
수현은 직감했다. 이건 일종의 섹스 사인이다. 어머니 앞에서 내놓고 요구하는 그의 대담함 때문에 수현은 등골이 다 오싹했다. 자신이 그가 원할 때마다 그의 아래에서 헐떡인다는 것을 알면 눈앞의 부모님이 얼마나 절망하실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넌 이게 재밌니?
수현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요한을 향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을 길게 접었다.
“갈까요? 형.”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
* * *
피아노 앞의 남자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지녔다. 이 미적 가치는 피아노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을 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요한은 꼭 대대로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귀공자 같았다. 온갖 수사가 불필요할 정도로 그저 아름다웠다. 어떤 악기를 손에 쥐고 있어도 그럴 것이다.
수현은 그런 그를 보며 사람의 외모가 지닌 힘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은 요한의 내면이 얼마나 차갑고 추악한지 쉽사리 짐작하지 못했다.
요한은 지금 리스트의 「즉흥적 왈츠」를 치고 있었다. 이 물방울이 튀듯 경쾌한 음악은 수현이 좋아하는 곡 중 하나였다.
그가 맨 처음 듣게 된 음악은 「피아노 협주곡」이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들었던 음악이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면 그는 바이올린을 켜게 됐을까. 크고 곧고 섬세한 손으로 현악기도 잘 연주했을 테지만, 결국 그가 처음 대면한 것이 피아노였던 것을 보면 악기와 연주자 사이에도 상성은 물론이고 운명이든 필연이든 존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네가 맨 처음 들은 곡이 뭐였다고 그랬지?”
“처음?”
연주를 끝낸 요한은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늘 무슨 질문을 하든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양 즉답하는 그가 대답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이것만큼은 여전히 건드리면 안 되는 화제였을까. 수현이 없던 일로 하려고 손을 내저으려던 때였다.
“제일 처음 들었던 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이었어요. 빰, 빰, 빰, 빰!”
쾅, 하고 건반 위를 꾹 짓누르는 손등의 뼈가 선연히 두드러졌다. 마치 비극적인 운명의 장난을 선율로 표현한 것 같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도입부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요한으로 인해 수현의 것이 되었다.
이 곡은 정확히 10년 전의 그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했을 때 연주했던 곡 중 하나이기도 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수현은 이 웅장한 음악이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좀 더 쳐 줘. 그것도 듣고 싶어.”
부드럽게 그러쥔 양손이 건반 위에 솜털처럼 내려앉았다. 그는 마치 배경 음악으로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깔린 것처럼 풍성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아하지만 열정적인 화음이 점차 들리지 않는 오케스트라와 한데 겹쳐져 울림이 생겨났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주도권을 서로 빼앗기지 않은 채 호흡하는 이 곡은 가장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인 베토벤의 「황제」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위대한 음악이었다. 물론 연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에는 자주 연주되고 있지만, 당시 차이콥스키가 이 곡을 작곡해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에게 헌정했을 때만 해도 너무 어려운 곡이어서 거절당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첫 부분부터 중후함 넘치는 이 곡은 화려한 연주를 하는 요한과도 무척 잘 어울렸다.
한참 뒤 연주가 끝났을 때는 연주한 요한보다 오히려 듣던 수현의 기력이 다 빠져 있었다. 그는 수현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엄마가 아주 사랑했던 남자가 엄마에게 들려줬던 곡이에요. 난 창고 방에 갇혀서 그 소릴 들었어요. 이걸 들으면 엄마와 그 남자가 함께 생각나요.”
“창고 방? 방 하나짜리 집 아니었어? 그런 얘긴 처음 들어.”
“단칸방 안에 조그맣게 난 문 너머로 손바닥만 한 공간이 있었어요. 엄만 내가 미워질 때마다 날 그 창고 방에 가뒀고요. 그러다 날 가둬 놨다는 걸 까먹기도 했었죠. 아직도 그 비좁고 어두운 공간이 생생해요. 아, 우리 엄만 나중엔 내 숨소리마저 끔찍하다는 말을 가끔 했는데 다른 건 견딜 만했어도 그건 꽤 상처였어요.”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의 요한은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그냥 멀뚱히 앉아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쳐다보는 것만이 일과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몸을 파는 여자였는데 밤낮이 바뀌었던 바람에 아이의 학습은커녕 끼니도 잘 챙겨 주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제때 학교에 입학하지도 못했던 그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일상들과 지식들을 익혔다고 한다.
사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 옛날이야기는 피차간의 금기였다. 요한의 과거는 빛과 그림자가 아닌 어둠만이 가득했다.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짐작했다.
요한의 어둠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양지에서 자라 왔던 수현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였다.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도 몰라서 소극적인 방어만 대신 해 주다 보니 점차 없던 일처럼 묻지 않게 됐다. 그도 썩 내키는 사연은 아닌지 성실하게 대답해 주지 않기도 했다. 한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그가 먼저 얘길 꺼내고 있는 게 놀라웠다.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요. 이 음악을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음악은 죄가 없다면서요.”
그건 자신이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는 면죄부였다. 요한은 죄가 있어도, 그의 연주에는 죄가 없었다. 물론 핑계였다.
앉아 있는 요한이 피아노맡에 선 수현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를 눈으로 주욱 훔치듯이 훑었다.
“벗어 봐요.”
수현은 헛웃음을 삼켰다.
“돌았어?”
“밝은 데서 보고 싶어요. 형은 뼈가 정말 예쁘니까.”
온몸이 부드럽고 선이 아름다운 것은 요한이다. 요한의 미적 기준은 분명히 매일같이 보는 거울 속 자신일 텐데 왜 잘못 정립되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원하는 곡을 계속 연주해 줬던 거 잊었어요?”
작업실로 돌아온 이후 요한은 모차르트, 라벨, 리스트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 연주했다.
잠시 망설이던 수현은 피아노 위에 셔츠를 벗어 놓고, 청바지도 마저 벗어 올렸다. 전라가 되자 요한이 그의 온몸을 껴안고 무릎 위에 앉혔다.
이렇게 밝은 곳에서 이만큼 가까이에 있는 것은 꽤 부담이었다. 수치심을 일으키는 모든 일은 아무리 해도 무뎌지지 않았다. 얼굴은 이미 화끈거릴 정도로 붉게 달아올랐다. 수현의 갈 곳 없어진 손이 부드럽게 요한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상체를 사선으로 확 그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쑥 치밀었다.
수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피부 위에 두드러진 쇄골을 어루만지던 요한이 살결 위에 부드럽게 입 맞췄다. 그러고는 물었다.
“구역질 나요? 솔직하게 대답해요.”
“구역질 나.”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
“왜 안 해요?”
“구역질 나니까.”
“네, 저도 사랑해요.”
그가 웃자, 숨죽이고 있던 수현은 반사적으로 낮은 숨을 터트렸다. 그는 늘 뻔뻔하게도 거짓말을 입에 담는다.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진짜 사랑이라면,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선 안 됐다. 수현이 알고 요한이 모르는, 어쩌면 모른 척하고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었다.
요한.
그는 사랑이 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