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태어나서 제일 먼저 들은 피아노 연주는 아버지가 연주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였다. 그 전에 들은 음악도 물론 있었겠지만 수현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 곡이 처음이었다. 칭얼거리는 수현을 달래겠답시고 치기 시작했던 그 느긋한 피아노곡은 잠이 쏟아질 정도로 편안하고 다정다감했다. 아이는 금세 짧은 울음을 거두고 수마에 빠져들었다.
서초동의 한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던 아버지는 대학 때 피아노를 부전공한 아마추어 연주자이기도 했다. 결혼 전 아주 잠깐 고향의 소규모 밴드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는 일탈을 감행한 적도 있다지만, 기본적으로는 클래식 마니아로 한평생의 외곬이었다.
덕분에 수현은 어릴 때부터 클래식과 아주 친숙하게 자랐다. 다른 아이들이 만화 영화를 보고 정의로운 주인공을 친구로 여길 때 그는 음악계의 거장인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친구로 삼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순수하게 클래식을 사랑하는 애호가여서, 요한의 천재성을 버거워했다. 그래서 어렸던 그를 아들로서 사랑하는 마음보다 존경하는 마음이 훨씬 컸다. 워낙 고지식한 사람이라 그랬는지, 사실 그는 처음엔 요한에게 조금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데려온 아들 또래의 남자아이를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아버지가 어머니 못지않은 요한의 심리적 아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만나게 된 피아노는 수현의 인생을 뒤집어 놓았다.
피아노는 자신의 연인이었다. 죽는 날까지 함께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언젠가 결혼해서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겨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의 1순위는 피아노이리라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수현의 성격은 아버지와 대체로 달랐으나 한길로 일방통행을 하는 면만은 그를 빼닮았다. 연주자로서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을 때는 잠깐 방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시 피아노로 되돌아온 것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었다. 그에겐 할 줄 아는 것도, 해 온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오직 피아노뿐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땐 잠시 좌절하긴 했지만 수현은 곧 딛고 일어섰다. 평생 포기하기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온 마음과 순정을 다 바쳐 사랑했으니까.
그걸 송두리째 빼앗아 갔던 것이 요한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든 그 좌절을 갚아 주지 못할 것이라면 최소한 제대로 그를 거부라도 해야 이치에 맞는 것이다.
“얼굴이 많이 안 좋다. 저녁은 다음에 같이 할까? 지금이라도 들어가 볼래?”
“아, 죄송해요, 선생님. 계속 딴생각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수현은 황급히 상념을 모두 거둬들였다. 그가 스스로를 탓하듯 고개를 꾸벅거리자, 이동준이 괜찮다는 양 손을 내저었다.
“무슨 일 있어? 이런 얼굴은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너 다치고 나서 한동안 내가 이런 표정을 봤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게 안 좋나요?”
“내 눈엔 그렇구나.”
알아 온 시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게 노출한 개인적인 정보들이 많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내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 보네.”
“아니에요. 안 그래도 선생님께 드릴 말씀 있었어요. 무엇보다 저도 마땅히 어디에 상담할 데가 없어서…… 뵈니까 좋아요.”
“혹시 요한이가 공연에 왔던 걸 알게 됐니? 나한테 상담할 만한 일이라면 그것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만.”
푹 수그린 고개가 말 대신 긍정을 표현했다. 오랜 스승의 한숨이 깊었다.
“참 큰일이구나. 안 그래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좀 보자고 했단다. 말이라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늦은 것 같네.”
지난밤의 일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도망치듯 집으로 와 이불 속에 몸을 숨긴 수현은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아직까지 요한으로부터 온 연락은 없었다. 허술하게 쌓여 있어 안 그래도 위태롭던 장벽을 누군가 반대편에서 억지로 떠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벽돌이 무너질 것만 같이 불안했다.
“그대로 도망쳤어요. 뭘 어떡해야 할지 몰라서요.”
“어쩌다가 그랬어.”
“요한이 공연 티켓을 제 지갑에서 발견했어요. 확실하게 버린답시고 챙겼다가 까먹었거든요. 제가 이래요.”
그냥 공연장에서 버렸으면 될 일을. 멍청이가 따로 없다.
“요한 기분 풀어 주는 걸 너만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없잖니. 돌파구가 없을까.”
“처음 그 앨 화나게 했을 때 너무 여파가 컸어요. 저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요.”
“손 얘길 하는 거구나.”
“그런데 선생님, 요한이 좀 변했어요.”
“변했다?”
“저를 견디려고 하는 것 같달까……. 봐주려고 작정한 것 같아요.”
“…….”
“요한이 한국에 돌아온 건 7년 전 저와 했던 약속 때문인데, 그걸 지키란 얘기도 없고요.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는 건 아주 중요…… 중요하거든요.”
7년 전 했다던 약속이 무엇인지, 짐작 가는 바가 있는 이동준은 잠시 침묵했다.
“이미 눈치챈 이상 누구랑 갔는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혹시나 절 참아 주느라 불똥이 걔한테까지 튈까 걱정되고요.”
“그 친구 말이니?”
“그 애도 그렇고, 선생님께도요. 이 거짓말을 묵인해 주셨다는 걸 혹시 알게 되기라도 하면……. 요한은 별로 자비가 없으니까요.”
“대체 왜 그랬어?”
대답할 말을 찾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썼지만, 자신의 마음인데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대부분의 거짓말은 자기방어의 기능을 하기에 자신도 그랬던 게 아닌가 가늠해 볼 뿐이었다. 그의 독점욕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수현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재욱이라는 친구, 피아노과 후배라고?”
“네.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제 일도 많이 도와주고요.”
“요한이 한국에 없던 사이에 많이 가까워진 모양이군. 인상이 좋더라.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럴지도 모르지만 요한이랑은 전혀 다른 타입같이 보였어.”
문제는 바로 그 부분이다. 본질적으로, 또 기질적으로 요한과 재욱은 정반대였다. 그가 보기에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재욱을 선택한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지난 7년간 자신의 생활에 대해 린에게 보고를 받았다면 재욱의 존재도 모를 리가 없는데, 줄곧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 또한 불안했다.
재욱과는 단지 친구였다. 이런 사실 관계들을 일일이 요한에게 해명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거짓말을 했으니 해결의 물꼬를 틀 책임은 이쪽에 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너희들을 직접 봤으니까, 내 눈엔 정말 별 사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고 말해 준다든지?”
“그런 건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요.”
단호하게 대답하고 나서 허탈해졌다. 이동준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그는 고집이 무척 세서, 설득이나 변명이 먹히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놓인 상황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했다.
그 일례로 학교 문제가 있었다. 승국환 신부는 그를 입양한 뒤 학교부터 보내고자 했다. 그러나 어렸던 그는 제도권을 거부했다. 생활의 일정 부분을 통제당하고 또 강제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현의 집에서 함께 산 뒤로도 그 결정은 마찬가지였다. 수현과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만이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었으나, 그건 그에게 있어 규칙이라기보단 수현과의 공생을 위한 필요악에 가까웠다. 또 그런 의미였기에 순순히 받아들였을 터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지를 아무리 들춰 봐도 이거다 싶은 건 나오지 않았다. 수현의 눈빛에 이동준을 걱정하는 듯한 기색이 스치자, 그는 염려 놓으라는 듯이 빙긋이 웃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안심이 됐다.
“선생님 여전하시네요.”
“그래? 어떤 면이?”
“웃으시는 거 보니까 마음이 편해져요. 재욱이가 선생님이랑 좀 비슷해요.”
늘 부드러운 인상의 이동준이지만 의외로 그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고된 삶을 살아왔다. 강원도의 휴전선 근처 마을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인맥 하나 없이 한국 클래식계의 독보적인 위치로 악착같이 올라왔다. 여기까지 다다르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실력에 필적하는 독기와 강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수현아, 노파심인 건 알지만 마침 이런 자리가 생겼으니 한마디 해야겠다.”
수현은 경청하겠다는 듯 두 손을 정중하게 모으고 귀를 기울였다.
“요한일 버리면 안 돼.”
눈앞의 스승은 모든 면에서 수현을 배려했지만 단 한 가지 부분에서만큼은 결단코 양보가 없었다. 같은 제자라지만 역시 더 아픈 손가락은 있는 모양인지 요한을 위해서라면 수현에게 부담이나 상처 주기도 거리끼지 않았다. 본인부터 스스로를 요한을 위해 내려진 도구처럼 여기기에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런 말이 너한테 얼마나 부담으로 느껴질지 잘 알고 있다. 네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하지만…… 그 애는 붙잡을 게 너밖에 없어서 그래. 요한에겐 네가 전부야. 조금만 그 애를 불쌍히 여기고…….”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수현은 더 듣기 괴로워 말허리를 잘라 냈다. 누가 누굴 불쌍히 여긴단 말인가.
<그 애를 불쌍히 여기고…….>
나는?
선생님, 저는요?
언제나 이동준과의 대화는 요한으로 귀결됐다. 처음부터 이런 관계였다. 피아노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수현에게 재능이라고 할 만한 것은 대상을 향한 열정과 노력, 순수한 마음 따위가 전부였다.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국내외에서 열리는 주니어 콩쿠르 몇 군데에서 입상할 정도는 됐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보통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국내 혹은 해외의 정통한 선생들이 손을 내밀어 오기 마련이었다. 운이 좋으면 경제적 지원까지 받으며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수현에게까지 그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재능이 없으면 재력이라도 있어야 했지만 부모님 또한 경제적인 뒷받침을 완전하게 해 주진 못했다. 저명한 스승에게 가르침받는 일은 꿈도 못 꿨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란 게 정말 있는 것인지, 어느 날 수현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요한이었다.
이동준이 요한을 가르치고자 했다. 기본기만 속성으로 가르쳐 그를 하루라도 빨리 해외로 보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전부 거절했다. 그런 요한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수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요한의 부탁으로 수현을 함께 가르치게 되고 나서부터는 수현에게 이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켰다.
<요한을 하루라도 빨리 해외로 보내야 돼, 수현아. 도와주겠니?>
나쁘게 표현하면 요한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었지만 수현은 그런 것들을 모두 차치할 수 있을 만큼 이동준에게 가르침받는 일이 좋았다. 캐나다의 유망주들이 글렌 굴드를, 중국의 유망주들이 윤디 리를, 러시아의 유망주들이 예브게니 키신을 보면서 자라는 것처럼 요한을 만나기 이전의 수현은 이동준의 연주를 보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선생님 원망 안 해요. 저까지 거둬 주신 거 늘 감사하고 있어요.”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요한을 원망하기에도 그의 시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 우리 다른 즐거운 얘길 하자꾸나. 피아노는 계속 치고 있는 거니?”
그 말과 함께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음, 즐거운 얘기치곤 나빴어.”
이동준은 머쓱한지 어색하게 웃었다. 그제야 수현도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이동준은 수심에 잠겼다. 운전을 하지 않는 그는 택시에 타 목적지를 말한 뒤로 줄곧 침묵을 지켰다. 그를 알아본 택시 기사가 몇 마디 붙여 왔지만 전부 건성으로 대답했다. 늘 사람에게 친절한 그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제자가 있었다. 하나는 제자지만 존경하는 요한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전 만나고 온 수현이었다. 그는 늘 수현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요한을 자극하기 위해 번번이 수현에게 버거운 짐을 떠맡겨 왔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수현은 그 존재만으로도 요한의 욕망을 건드리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왜 하필 그 아이일까. 요한은 특별히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도덕하지도 않았다. 세상사는 물론 자신의 주변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지난한 유년기를 거쳤지만 특별히 반골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느 방향으로도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모를까.
그의 머릿속에는 피아노, 그리고 수현뿐이다. 기저에 있는 그 어떤 열망 덩어리를 건드리는 특질이 수현에게 있는 모양이지만, 솔직히 이동준으로서는 수현에게 있는 남들보다 특별한 어떤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물론 예전의 수현은 잘 울고, 잘 웃고, 감정에 솔직하고 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다만 전 세계를 잘 뒤져 보면 그런 존재는 몇천 명 중 한 명꼴로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예전 일이었다.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현재의 수현에겐 예술적인 영감을 줄 만큼의 대단한 매력이 없었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사람의 연애…… 라고 표현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관계를 낱낱이 캐묻는 것은 월권이라 느껴져 그러지 않았지만 사실 늘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쪽에 세워 주십시오.”
집까지는 거리상 한참 남아 있었다. 도보로 20분은 족히 가야 했다. 그러나 택시 기사가 틀어 놓은 트로트 메들리가 거슬려 애매한 지점에서 내렸다. 그는 조용한 밤거리를 걸었다.
요한은 떡잎부터 알아봤다.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평생 쳐 온 피아노는 모두 허상일 뿐이었다. 처음 그를 접하게 된 계기는 그의 양아버지…… 이 또한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를 거둔 양아버지이자 수현의 아버지가 가져온 촬영 영상이었다.
캠코더로 찍은 영상은 화면이 피아노에 고정되어 있었고, 길이가 꽤 길었다. 만약 그것을 소속사 사무실에 잦은 빈도로 도착하는 열혈 학부모들의 편지 중 하나로 치부하고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다행히 완고한 인상이던 수현의 부친이 무릎까지 꿇어 가며 지극할 정도로 간절하게 부탁하는 통에 그 자리에서 함께 영상을 보기 시작했었다. 부친에게 피아노를 향한 그만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다행인 일이었다.
영상 속에서는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했을까 말까 한 깡마른 남자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아이는 정말이지 엄청난 에너지로 건반을 두드렸다. 그런데도 너무나 시원시원한 움직임 때문에 조금도 버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보고, 또 보면서 감탄했다. 아이가 단순히 피아노를 잘 쳐서가 아니었다. 아이가 외워서 치고 있는 것은 얼마 전 텔레비전으로 방영하기도 했었던 자신의 독주회 부산 공연 프로그램 전곡이었다. 예민한 청중이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몇 번의 실수마저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을 보며 그는 머리가 다 울렸다.
아이는 전부 눈으로 본 대로 똑같이 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똑같은 연주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소화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곧바로 아이와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직접 만나 본 아이는 콩쿠르나 해외 유학 같은 데 흥미가 전혀 없었다. 그저 혼자 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몇 세기가 더 흐른대도 한국에서 이만한 천재가 다시 나올 것이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는 국내의 각종 피아노 공연 등지에 요한을 몇 번 데려가 직접 보게 했다. 동기 부여를 위해서였다. 처음에 거절하던 아이는 수현이 설득하자 순순히 따라왔다. 두 아이 사이에 어떤 작은 거래 조건이 있었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까지는 몰랐다. 역시나 아이는 공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잠든 줄 알았던 요한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그의 기억에 선연했다.
<이런 허접한 걸 계속 보는 게 의미가 있나요? 차라리 선생님이 쳐 주세요.>
프로의 연주를 보면서 내던진 오만한 출사표에, 그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의 판단으론 나이를 막론하고 국내 아마추어 연주자들 사이에 요한의 상대는 없었다. 명망 있는 국내 콩쿠르에 심사 위원으로 대부분 위촉되는 그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사정은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내보내야 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아이를 해외 유명 연주회에 직접 데려가 그 열렬한 무대들을 보게 했다. 이 또한 안 가겠다는 것을 수현이 설득하자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그때의 거래 조건에 대해서는 이동준도 알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수현이 ‘절대 혼자 외출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럽에 동행해 달라고 하는 쪽이 더 편한 일인데 아이는 굳이 그런 방법을 택했다. 어쩐지 요한다웠다.
심지어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베토벤 무덤에도, 독일 바이로이트의 리스트 박물관에도, 수많은 작곡가들이 망명했던 유럽의 지역들까지 모두 데리고 다녔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그들을 기리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아이는 심드렁했다. 어떤 것을 보고도 자극받지 않으니, 콩쿠르에 나가서 프로가 되면 더 많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제안도 당연히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동준은 그런 요한을 보며 자신이 악계에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법을 써야 아이를 콩쿠르에 내보내고, 또 아이에게 어울리는 저 넓고 화려한 무대에 오르게 할 수 있을까. 원하는 것을 주어야 그가 움직여 줄 텐데 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어 무척 고심하던 차였다. 오죽했으면 수현에게 물으면 그 아이는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선생님.>
<그래, 요한아. 유럽은 물이 영 맛이 없지. 차라리 콜라를 마실래?>
<형 입시를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걱정이 많은가 봐요.>
<수현이 말이니? 하긴 그 애가 내년이면 수험생이구나. 그래, 레슨 시간을 좀 더 늘려 보자. 그럼 너도 내 부탁 한 가지 들어줄래?>
<여태 부탁 들어 드렸잖아요. 같이 여기저기 다니고. 이제 저도 요구할 수 있어요.>
틀린 소린 아니었다. 어른의 욕심으로 아이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피로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의아한 것은 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현을 위해 이런 부탁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건 그가 생각하기에 요한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런데 수현일 도와주고 싶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전 형이 좋아요.>
<평소에 수현이가 워낙 잘해 주는가 보구나. 착한 애지.>
<그런 의미 말고…… 형이랑 하고 싶어요.>
하고 싶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굳이 묻지 않았던 것은 이미 요한의 눈빛을 보고 충분히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부드럽게 딸려 올라간 아이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열여섯 살짜리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상당히 되바라졌지만 그는 놀라지 않았다. 요한은 종종 기성세대가 보기에 다소 비상식적인 언동을 할 때가 있었다. 게다가 여태껏 요한을 봐 오면서 직접 목격한 몇몇 상황으로 내심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 금기시되는 욕망에 대해서 말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그때’일까.
언젠가 한번은 수현이 출전한 콩쿠르에 함께 데리고 가 결선을 보게 한 적이 있었다. 운 좋게도 그날 수현은 동메달을 수상했다. 입상자들이 전부 올라가 메달을 수여받는데, 그때까지 지루해 보이던 요한이 눈을 빛내며 이런 말을 했다.
《저 여자가 왜 형을 만져요?》
그 목소리를 용케 들은 수현의 어머니가 입상을 축하한다는 뜻으로 격려해 주는 것이라 대꾸했으나 요한은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고는 또 한참 침묵이었다.
무대 위의 수현이 가족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요한! 요한! 벌어진 입이 그런 모양을 그렸다. 수현이 무대에서 애타게 요한을 불렀으나 요한은 끝내 대답해 주지 않았다. 굴곡진 옆모습이 깜짝 놀랄 만큼 싸늘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순간 자신이 쌓은 세월에 반의반도 쌓지 못한 어린 요한이 무서워졌다. 돌이켜 보면 그건 어떤 직감이었던 모양이다.
옛 생각에 빠져 있던 그를 깨운 것은 예의 그 요한이었다.
<선생님은 언제 처음 해 보셨어요?>
<글쎄. 언제였더라.>
<지금 아내랑?>
<아니, 첫사랑이랑.>
<언제요?>
<열여섯 살 때가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지. 그땐 손 한번 잡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릴 만큼 연애가 느린 시절이었거든.>
애써 태연함을 가장해 대답하면서도 등줄기에선 식은땀을 흘렸다.
<전 형이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하지만 요한, 네가 수현이가 원하는 걸 준다고 해서 그 애가 꼭 너와 같이 자 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니야.>
<형이 그렇게 말했어요. 누가 날 선의로 도와주면 꼭 그만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요. 제가 그런 사회적 합의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넌 수현이 말이라면 전부 다 철석같이 믿고 받아들이는구나.>
<그러니까 다 해 주고 싶어요.>
<그러면 그 애가 너한테 보상할 테니까?>
왜 수현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요한은 다소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이제는 양육하고 있는 수현의 부모가 통제해야 하지만, 아이를 어려워해 제대로 지도를 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수현은 아이의 사고나 행동에 제동을 걸기 위해 임의로 그런 규칙을 설정해 둔 모양이었다. 미성년인 아이가 한 것치곤 제법 현명한 일이었다.
다만 수현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요한이 기함할 정도로 영악하다는 사실이었다. 음악도 넓은 의미의 수학이었다. 정교하고 능란한 연주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계산하는 데 능했다. 수현이 원하는 걸 차곡차곡 쌓아 조건을 요구할 셈인 것이다. 그는 이 못된 작전에 대꾸할 말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짖을 수 없었다. 요한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원동력을 찾아낸 것이다.
이거였구나. 네가 진짜 원하는 것.
그동안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던 것을 본인의 입으로 확인 사살당한 기분이 들었다.
<요한, 잘 들어. 콩쿠르에 나가라. 그러면 앞으로는 이렇게 불편하게 날 따라다니면서 내게 부탁하지 않아도 돼. 수현이가 원하는 걸 네 스스로 전부 해 줄 수 있게 될 거거든.>
아이는 처음으로 눈을 반짝 빛냈다. 그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에 보일까 봐 극도로 호흡을 자제하고는 있었지만 버거울 정도였다.
<수현이가 말해 주지 않은 모양인데, 성공한 사람일수록 원하는 걸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사회의 법칙이란다. 네 재능으로 넌 위대해질 수 있어. 콩쿠르에 나가라. 입상해서 딱 3년만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연주해. 그렇게 되면 넌 네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전부 손에 쥘 수 있게 될 거야. 내가 피아노를 놓고 장담하지.>
요한은 웃음을 터트렸다.
<전부?>
<그래, 전부. 수현이가 원하는 것들을 네 말 한 마디면 전부 들어줄 수 있게 돼. 그럼 넌 그 애에게 손쉽게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겠지. 보자, 내년에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있구나. 첫 대외 무대로 어떻겠니?>
사실 수현을 요한이라는 구렁텅이에 등 떠민 것은 다름 아닌 그였다.
과거를 떠올리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진 그가 버스 정류장의 기둥을 향해 헛손질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부축해 줘서 고마워요.”
초로의 남자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도움을 받아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옛날 일을 떠올리다 보니 수현이 무척 안타깝고 애틋해졌다. 그는 이럴 때마다 자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이 위선에 구역질이 났다.
손을 다친 이후로 수현은 무척 어두워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순간에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 전부를 부인당한 셈이었으니까. 거기에 톡톡히 일조한 것이 자신이었다. 그래서 요한이 한국에 없는 동안은 수현과도 개인적인 만남을 꺼렸다. 손을 다쳤던 수현은 왜 다쳤는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 철저히 함구했다. 그러나 이동준은 그의 불행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분명 요한일 것이다.
죄인인 자신은 평생을 수현에게 미안해하며 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이 돌아오자 또다시 자신은 수현을 이용해 요한을 움직이려 들고 있었다. 요한이 독일로 돌아가 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말이다. 오늘도 사실은 그런 얘기를 하고자 수현에게 연락했던 터였다.
이동준은 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다 반복하다가 이내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사치였다. 수현은 원망하지 않는다지만 사실 처음부터 자신은 선생님 소리를 들을 자격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벤치에 드러누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취한 사람 보듯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손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 * *
열심히 계산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땐 해답을 보면 된다. 쉬운 길로 가면 안 된다지만 인간은 원래 요행과 운에 운명을 기대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돼?”
대문 앞에서 수현은 그의 처분을 기다리며 얌전히 서 있었다. 요한은 속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피아노를 전공한 수현의 손마저 망설임 없이 망가뜨릴 정도로 정도를 모르는 인간이었다. 화가 어디까지 미칠지 수현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부디 자신의 실수로 인해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기만을 바랐다.
난데없는 수현의 방문에 눈가를 조금 구긴 요한은,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빨리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겁이 없네.”
“이제 더 잃을 게 없다고 하는 게 맞겠지.”
“살려 달라고 하던 우수현 씨는 어딜 갔나?”
“그냥 갈까?”
그러자 요한은 적당한 방법이 생각났다는 양 핑거 스냅을 딱 쳤다.
“이렇게 하죠. 일단 들어와요.”
수현은 요한이 이끄는 대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긴장한 그가 얌전히 앉아 있는 사이 요한은 악보를 가져와 보면대 위에 올려놓았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 악보 상의 음표가 다른 화려한 곡들에 비해 듬성듬성한 편이어서 자신의 손으로도 완성할 수 있었다. 수현은 두꺼운 종이를 살짝 매만졌다.
“집에 있는 피아노에는 먼지가 잔뜩 끼었던데. 얼마 만에 치는 거죠?”
역시 집에 왔었구나. 일전에 봤던 피아노 위의 손자국은 그의 것이 맞았다.
“정확히는 모르겠어. 집에 혼자 있는 날엔 가끔 쳤는데 그것도 벌써 몇 달 전이야.”
“…….”
“화난 거지?”
“그렇게 겁나요? 이제 안 그래요. 그게 스스로 세운 규칙이에요. 형을 다시는 다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그냥 돌려보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안심이 되기는커녕 더 두렵기만 했다. 자신에게 미치지 못한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는 건 원하지 않았다. 불행은 전염성이 있었다. 자신 때문에 주변의 누군가 불행해진다면 분명 수현도 함께 괴로울 것이다.
“좋네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거 보니까.”
자신에게서 이것을 빼앗아 놓고 잘도 저런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수현은 어이가 없어 픽 웃었다.
“내가 원하는 건 피차 없던 일로 하는 거야.”
“그럼 연주해 봐요. 날 위해서.”
건반 위에 올린 손은 오른쪽이 현저히 무거웠다. 심리적인 영향도 다소 있을 것이다. 산산조각 나 억지로 이어 붙였던 뼈와 인대들이 모두 요동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선뜻 치지 못하자, 요한이 수현의 곁으로 와 앉았다. 그러고는 수현의 등 뒤에서 감싸듯 그를 품에 안고 양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올렸다.
연주는 무척 조심스럽게 시작됐다. 라투르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이 음악은 어딘지 시(詩)적 기질을 지닌 부드러운 왈츠곡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매혹적인 선율이 공기 중에 흘러들었다. 중간중간 수현의 미스 터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요한은 차분히, 또 진지하게 건반 위의 손을 따랐다.
어릴 때의 수현은 그의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부족한 부분만 잔뜩 눈에 보일 자신의 연주를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겁이 났다. 천재를 향해 존경심과 열등감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내면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다만 그는 요한의 연주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때때로 고개를 들던 열등감은 사라지고 금세 좋은 기운만 남곤 했다.
우린 왜 이렇게 됐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부당하고 불행할수록 합리화를 거듭하기 마련이다. 수현도 그랬다. 가끔은 망가진 손을 보면 차인 지 몇 년이 흘렀는데도 놓을 수 없었던 첫사랑의 붉은 실을 다른 사람이 억지로 대신 끊어 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합리화를 할 때마다 요한을 더 저주하게 됐다. 약속을 어긴 대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컸다.
타앙. 나름대로 물 흐르듯 흐르던 연주가 중단되고 수현의 양손이 건반에 내리꽂히듯 떨어졌다. 수현의 두 손을 덮어 쥐고 있던 요한 때문이었다. 그는 수현의 어깻죽지를 숨결로 간질이다 과감하게 니트를 벗겼다. 바지 버클까지 단번에 풀어냈다. 마침내 속옷 안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수현이 황급히 그의 팔뚝을 손으로 짚었다.
“난 너랑 섹스하러 온 게 아냐.”
“알아요. 용서를 구하려고 온 거죠.”
“용서? 그건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이지. 오늘 난 널 설득하려고 온 거야.”
“그래요. 그럼 그런 걸로 해요. 지금 나랑 자면 설득당할게요.”
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침대로 가자. 피아노 더럽혀지는 거 보기 싫다.”
“난 그게 좋은데. 나만 더러운 것보다 같이 더러운 게 좋지 않나요?”
“더러운 건 너 혼자 해. 얜 깨끗해야 돼.”
“여기에 먼저 한 번 쌀래요? 내 피아노에 형 정액을 발라 주는 거예요.”
“제발 그런 정신 나간 소리 좀 관둘 수 없어?”
요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음엔 그 집에 있는 피아노 위에서 해 보는 건, 어때요?”
본가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떠올리던 수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요한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언젠간 그런 일을 저질러 버린대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머릿속으로 온갖 걱정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요한의 손길이 점점 과감해졌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당신이 날 찾아온 게 좋은데, 또 그게 너무 싫어. 누굴 위해서 온 걸까. 같이 공연 보러 갔던 그 사람?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만하군요.”
“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누굴 탓해?”
그는 대답 대신 목덜미와 쇄골 근방에 연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면서 손으로 수현의 것을 끈질기게 매만졌다. 등 뒤에서 끌어안고 있어서 요한의 얼굴이 수현에겐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 표면에 희미하게 비쳐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연주할 땐 꼭 피아노랑 섹스하는 것 같다던데. 그거 왜 그런 건지 알려 주고 싶어요. 난 늘 형이랑 하는 상상을 하면서 얠 만지거든.”
점점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수현은 왠지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겨 돌아봤다. 그러고는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는 어지간한 육탄 공세로는 이쪽의 의사를 알아주지 않는다. 끝도 없이 절박해야만 겨우 알아챘다. 감정에 무뎌서인지도 모른다.
수현은 의사 표현의 일환으로 요한의 목을 꽉 잡고 힘주어 짓누르려 시도했다. 그러나 금세 허사가 됐다. 요한이 그의 왼손을 끌어와 손가락 끝을 깨물었다. 손끝에서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수현의 몸이 자꾸만 건반 위로 고꾸라져서, 요한이 그의 가슴팍을 손으로 단단히 지탱했다.
기다란 손가락 끄트머리가 유실을 희롱하기 시작하자, 수현의 얼굴이 확 붉게 물들었다. 때론 그의 것이 내부로 꽂혀 드는 적나라한 상황보다 더 수치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지금이 딱 그랬다.
“하…… 읏! 이거 놔!”
“그러니까, 어딜? 말을 해야 알죠.”
“둘 다! 피아노 더럽히지 마. 넌 이게 그렇게 하찮아?”
“우수현 씨에게서 나온 건 전부 깨끗해. 그건 걱정하지 마요.”
수현은 있는 힘껏 바르작거렸으나 작정하고 하중을 실어 압박하고 있는 등 뒤의 그를 물리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수현이 간절히 해방을 원할수록, 요한은 결박에 여념이 없었다.
두 사람이 정서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수현의 상대적 우위로 끝났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발로 직접 찾아와 신체를 접촉하고 있는 지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아마 요한은 봐주지 않을 것이다.
커다란 손이 수현의 반쯤 일어선 성기를 매만졌다. 투박하게 쓸어내리다가, 돌연 부드럽게 어루만지기를 반복했다. 성기부터 회음 부위까지 모래사장을 평평히 손질하듯 아주 꼼꼼하게 애무했다. 사정을 부르는 능숙한 손길이었다.
괴로워진 수현은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러자 요한의 손가락이 불의의 사고를 저지하듯 입 속으로 단숨에 떠밀려 들어왔다.
“……읏.”
“미친 새끼. 도, 돌았어?”
“함부로 피 보지 마. 그건 나만 할 수 있어.”
“그렇다고 네 손을……! 이게 어떤 손인데!”
미세하게 비친 피를 보자마자 수현은 까무러칠 듯 놀랐다. 그는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의 치아에 세게 깨물린 요한의 오른손부터 잡아당겨 빨았다. 혀끝으로 상처를 소독하듯 혈흔을 정성껏 핥고 있는데, 묘한 기분이 뒤따랐다.
쉬지 않고 자신을 희롱하던 요한의 움직임이 일순 잠잠해졌던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수현이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급작스럽게 머리채를 붙잡혔다.
“악……!”
쾅!
동그란 이마가 피아노 몸체에 부딪쳤다. 수현은 통증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요한은 수현의 두 손을 들어 올려 X자 모양으로 한 번에 모아 쥐었다. 그러자 어설프게 선 수현이 팔뚝으로 자신의 체중을 지탱했다. 조금만 방심했다간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아서였다. 이미 한참 전부터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자유로운 한 손으로 다시금 수현의 곤두선 성기를 매만지는 요한의 손길이 기이할 정도로 녹녹하고 부드러워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자신을 가학적으로 상대하고 싶은 건지, 다정하게 마주하고 싶은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진 수현은 발뒤꿈치부터 긴장했다. 그 맹렬한 감각은 서서히 전신을 타고 올라와 수현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머리카락이 곤두설수록 하반신은 부피를 늘려 뻣뻣하게 발기했다. 머릿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아랫도리는 욕망에 솔직했던 것이다. 이미 지핀 불길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비참함으로 치환되어 한꺼번에 몰려왔다.
“손, 이 손부터 놔. 우린 지금 합의하에 하고 있어.”
“합의?”
“그래, 합의.”
요한은 어른이 가르치는 단어를 따라 내뱉는 어린아이처럼 수현의 말을 느리게 곱씹었다. 그러나 더 이상 어떤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수현이 요구하는 대로 손으로 힘껏 쥐고 있던 속박을 풀어 주었다.
마른 손목에 새빨갛게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현재의 수현에게 거기까지 신경 쓸 정신이라곤 없었다. 덜덜 떨리는 양팔을 피아노 몸체에 보다 편히 기대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대신해 팔꿈치로 버텨 돌아서기 위해 애썼다. 등을 돌려 그를 보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피아노 위에 토정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였다.
다만 애쓴 것이 무색하게 등 뒤의 요한은 그의 위로 길게 몸을 기대 수현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뻣뻣하게 곤두선 수현의 것을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듯 아주 진득하게 손바닥으로 훑었다.
“하, 으…….”
밀도가 한계까지 높아진 성기가 분출을 원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될 정도였다. 그걸 아는지 요한의 긴 손가락이 분출구를 꽉 틀어막았다.
쿠퍼액이 덜 잠근 수도꼭지처럼 간헐적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덩달아 요한의 손가락이 축축해지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요한은 자애를 베풀기는커녕 도리어 그의 것을 꽉 말아 쥐고 더 압박하는 것이었다.
“흣…… 놔. 놔, 제발.”
붉어진 성기 끄트머리가 점점 단단해져 갔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사정을 버티느라 하얗게 질린 손등 위로 뼈가 툭 불거졌다.
“건반 위에 해요. 그럼 열어 줄 테니까.”
“읏…… 싫…… 다니까! 놔! 차라리 다른 걸 말해!”
“좋아, 그럼 고개 돌려서 나한테 키스해.”
미간을 구긴 수현은 고갤 돌려 요한에게 거칠게 입 맞췄다. 혀가 그의 입 안을 넘나드는 와중에 요한이 바지 버클을 푸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순간, 딱딱하게 발기한 그의 것이 수현의 허벅지 사이 빈틈을 가로질러 꽂혔다. 요한이야말로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듯했다. 좁은 내부에 밀어 넣을 여유조차 없이 사타구니 사이에 끼워진 성기를 과격하게 쑤셔 대기 시작했다.
“읍……! 읏!”
급기야 수현의 입술과 뺨 위에 그가 내뱉은 거친 호흡이 흩뿌려졌다.
“하……, 사랑해요.”
“아, 아……!”
두 사람은 동시에 사정했다. 지친 수현이 건반 위에 두 팔을 내딛자 꽝, 하고 온갖 건반 음이 뒤섞인 이상한 소리가 났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이제 귓가에 들리는 것이라곤 공기 중에 섞인 두 사람의 숨 가쁜 호흡 앙상블뿐이었다.
결국 이 건반 위에 했다. 질펀한 액체가 요한의 손바닥에 반, 피아노 건반 위에 반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수현은 문득 겁에 질렸다. 종종 교접해 오던 이런 상황은 굳이 한쪽의 편을 들어야 한다면 낯설기보단 익숙한 데 가까웠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 서먹하고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계약, 약속, 거래…… 그런 핑계 따위가 아니라도 잔다. 설득이라고 애써 포장지를 씌워 봤지만 오직 자신이 요한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사실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는 걸 그도 알고, 자신도 안다.
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수현의 눈동자가 혼란으로 형편없이 흔들렸다. 그는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피아노 위에 부은 이마를 기댔다.
“결국 건반 위에 싸게 했어. 씨발 새끼.”
등 뒤의 요한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망연해 늘어져 있는 수현을 번쩍 안아 올렸다. 덕분에 종아리 언저리에 어설프게 걸려 있던 바지가 완전히 벗겨졌다. 그 광경을 본 요한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속옷까지 한 번에 끌어내리고, 수현을 공주님 안 듯 성의껏 안아 들어 침대로 향했다.
조심스레 수현의 뒷머리를 푹신한 베개에 눕힌 그가 두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허벅지 사이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자신의 정액을 꼼꼼하게 닦아 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수현은 눈을 감고만 있었다. 천천히 눈을 뜨니, 밝은 시야가 드러났다.
놀랍게도 악마 같은 그는 화사한 빛 아래 있었다. 이런 순간에 그가 아름다운 스스로를 가리켜 천사라고 말한다면 누구나 속을 것이다. 오로지 수현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가 고개를 기울여 콧잔등을 핥았다. 그제야 수현은 자신의 뺨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겨우 알았다. 만약 눈물이었다면 그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지루하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장소도 옮겼으니까 본 게임 시작할까요?”
“이걸로 모자라?”
“본 게임이라고 했잖아요.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쳐 줄게요.”
“아……!”
대답도 듣기 전에 거침없이 허벅지를 가른 손가락이 은밀한 공간에 침범했다. 그것은 좁은 입구를 지압하듯 꾹꾹 눌러 댔다. 손가락에 질척한 오일을 가득 발랐기 때문인지 입구부터 밀부까지 이어지는 비좁은 통로가 미끄덩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가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불쑥 안쪽 끝까지 밀어 넣었다. 수현은 급작스러운 이물감이 불편해 미간을 찌푸렸다.
고통은 조금씩, 조금씩 더 강력해졌다.
“아! 읏, 차라리 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진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실은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런 스스로가 넌더리가 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에게 질질 끌려다니면서, 입으로는 그를 증오하고 귀로는 그의 연주를 숭배하는 모순이 지겨웠다.
그러나 엉켜 있는 두 사람 모두를 지극히 혐오하면서도, 자신은 또 무너진다. 계속해서 그가 원하고 있는 자신의 몸을 팔아 그의 손끝으로 완성되는 선율을 구걸하는 것이다.
“손이나 잘려 버려.”
역시나 그는 회심의 일격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손가락 끄트머리에 몇 방울 피가 비쳤다고 안절부절못하던 자신이 한 말이니 당연한 반응이리라. 그러나 그것도, 이것도 모두 수현의 진심이었다. 그는 영원히 명확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복잡한 내면의 ‘감정’들 말이다.
“좋아?”
“하, 아…… 아! 좆같아.”
“난 좋아. 계속 지껄여요. 밤은 기니까.”
그의 손가락이 빠져나가려 하자, 반사적으로 더위에 녹은 젤리처럼 안쪽 살들이 달라붙었다. 아래에서부터 그 감각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수현은 수치로 미간을 구겼다.
수현의 허벅지를 한계치까지 접어 올린 그가 성기 끝을 들이밀었다.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요한의 어깻죽지를 붙들고 매달렸다. 광산에서 금이라도 캐내듯 입구를 깔짝거리던 그의 것이 어느 순간 단번에 완전히 밀부에 들어찼다. 둔부에 느껴지는 터럭들과, 직접적인 하반신의 결합은 오직 촉감만으로도 외설스러웠다. 거기에다 그가 드나들 때마다 철벅거리는 기름진 소리가 청각까지 괴롭히자 수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단번에 삽입된 성기가 좁은 내부에서 꺼떡거렸다. 그러다 요한이 수현의 허리를 꽉 붙잡고, 자신의 것을 뿌리까지 욱여넣을 듯 있는 대로 박아 넣기 시작했다. 미간을 좁히고 구멍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마치 한밤의 야수 같았다.
“하, 읏……!”
“아, 아, 아, 아!”
요한은 신음하는 수현에게 뜨겁게 키스했다.
“으, 읍……!”
그의 말대로다. 밤은 아주 길었다.
* * *
한국으로 귀환한 그와 수현이 자꾸 부딪치게 되면서 어느새 요한에게 생긴 습관이 한 가지 있었다. 그가 섹스 후에 반드시 씻는다면, 수현은 대부분 침대에 뻗어 수마와 다퉜다. 지쳐 잠이 든 얼굴을 지켜보는 것은 요한의 소소한 취미였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것이 뺨에 닿자 수현이 조금 뒤척였다.
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건너편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여자들 특유의 하이 톤이었다. 그는 이런 것보단 조금 더 울림이 있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좋았다. 예컨대 집중하기 좋은 수현의 음성 같은…….
[어머, 요한. 웬일로 한 번에 받지? 지금 통화 돼? 그냥 걸고 끊으려고 했는데!]
“괜찮아요. 얘기해요.”
[지금 한국 시간 새벽 아냐? 그런데 웬일로 이 시간에 멀쩡한 목소리로 통화가 돼? 연주했으면 이렇게 청량감 있는 상태일 리가 없고.]
“적당히 해요. 서두가 너무 길어. 뭐가 궁금한 건데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냐는 거지.]
“잤어요. 그 사람이랑.”
린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진짜, 이래서 보내기 싫었어!]
요한은 픽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듣고 보고 겪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프로페셔널 했지만 아주 때때론 수다쟁이 참새 같았다. 하지만 계속 들어 주는 일이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나 린이랑 이런 얘기 하는 거 싫은데.”
그러자 그녀는 금세 본분을 찾고 원래의 목적으로 되돌아왔다. 이렇게 빠른 태세 전환이 편해서 린과 줄곧 함께 일하고 있었다.
[자기가 은희 씨한테 알아봐 달라고 했던 거 말이야. 그 피아노과 학생. 내가 직접 찾아봤거든. 그 얘기 할 건데……. 지금 얘기할 수 있는 상황?]
“뭐, 난 안 되는 걸…….”
그는 수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종종 되게 하죠.”
드러난 동그란 이마 위에 입을 맞추고는, 그대로 일어서서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서울 국제 콩쿠르에 지원서 낸 거 맞더라. 어떻게 알았어?]
“여긴 권위 있는 콩쿠르가 그거밖에 없어요. 이맘때쯤이기도 하고.”
[그래서 자기한테 들어온 심사 위원 제안을 수락한다고 전달했지. 물론 비밀에 부쳐 달라고도 얘기했어. 자기들 명성에도 좋고, 출전자들한테도 잊지 못할 이벤트가 될 거라고 아주 좋아하던걸? 언론 보도는 콩쿠르가 시작되면 돌릴 거야.]
“린은 하나를 부탁하면 열 개를 전부 해결해서 편해요.”
[나 일 잘하는 거 하루 이틀이니? 그럼 하루빨리 독일로 돌아와!]
“끊을게요. 우리 형 깰라.”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수현을 지그시 직시했다.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지 미간이 조금 일그러졌다 펴졌다 했다. 요한은 그의 곁에 모로 누웠다. 좁혀진 미간에 입을 맞추자 금세 표정을 펴고 천천히 호흡했다.
사랑스럽다. 언제나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
나의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