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20/34)

19.

수현이 기억하는 바로, 자신이 집 근처에 있는 성당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당시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있는 성당을 매일같이 지나쳤다. 어머니가 매주 다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늘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 음악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에게 여쭤보니 가톨릭 성가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목도 모르는 곡들이었지만 수현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그 따뜻한 음악들이 참 듣기 좋았다. 그래서 일부러 지름길 대신 그 길로 갔던 적도 때론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수현의 귀에도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이런 게 가톨릭 성가’라면서 들려주었던 브루크너의 음악이었다.

귀에 익은 음악을 따라 홀린 듯이 들어간 커다란 성전 안에서, 수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어떤 신을 만났다. 손과 발에 박힌 못들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 아이에게 친절한 생김새의 한 사제가 다가와 물었다.

<매일 이 앞을 지나다니던 아이로구나?>

깜짝 놀란 수현은 그대로 도망쳤다.

그로부터 얼마 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타난 수현을 본 사제는 부드러운 미소로 그를 다시 한번 환영했다. 이렇게 보니 어머니를 닮은 것도 같다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그때부터 수현은 매주 엄마를 따라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두꺼운 패딩으로 전신을 꽁꽁 싸매도 피부 위로 한기가 여지없이 스며들어 오던 그런 날에, 때마침 눈까지 내렸다. 그해는 유례가 없던 혹한기였다. 수현이 기억하는 바로 요한과 처음 만난 해이자, 자신이 성당에 다니게 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요한이라는 아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친다는데, 예배당에 나와서 치지는 않는 모양이라 가까이에서 들은 사람은 없고 구전 설화처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수현의 어머니는 그 애가 피아노를 잘 치는 데다 혈액형까지 너와 꼭 같다며, 이게 운명이 아니라면 어떤 걸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여자애였으면 미리부터 찜해 놓고 너와 결혼을 시켰을 거라며 수선을 피웠다. 그래서 수현은 요한을 보게 되면 혼자 얼굴을 조금 붉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나면 안녕, 하고 인사를 해야지. 그러고 나서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연주를 들어 보고 싶었다. 기회가 되면 연탄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첫 만남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그렸는지 모른다.

<이름이 요한, 맞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수현은 성당 담벼락 앞에 나와 앉아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다시 한번 인사했다.

<안녕. 요한 맞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혹시 듣지 못하나? 순간 생각했지만 어머니로부터 아이가 듣고 보기만 하면 전부 따라 칠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지녔다는 말을 들었던 걸 기억해 냈다. 그래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그제야 요한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수현은 인내심을 갖고 아이의 곁에 앉았다. 날이 추웠는데, 아이의 차림새가 생각보다 얇아서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다행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손도 너무 시려 보였다. 장갑도 빼서 손에 끼워 줄까 말까만 몇 분을 고민했던 것 같다. 결국 쪼그린 무릎 위에 벗어서 올려놓아 주었을 뿐 끼워 주진 못했다.

<피아노 치는 애가 손을 소중히 해야지.>

<형을 알아요.>

<진짜? 나도 너에 대해 약간 들은 적 있어.>

사실은 약간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어왔지만, 수현은 자존심상 아주 조금만 들어 본 척했다. 너무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말씀했던 대로 두 사람의 공통점이 꽤 있기 때문인지 수현은 요한에게 이상할 정도로 동질감을 느껴 이미 절친한 친구나 동생같이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얼굴을 직접 대면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아이답지 않은 차분함과 어딘지 근원적으로 쓸쓸하고 고독해 보이는 처연한 눈빛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다렸어요.>

<나를?>

<지난주에 연주했던 곡, 뭔지 궁금해서요.>

가끔 예배가 끝나고 혼자 남겨지면 성당 소예배실의 피아노로 생각나는 음악들을 치곤 했다. 집은 방음도 좋지 않고 피아노도 워낙 낡아서 일요일 오후가 되면 치기가 왠지 겸연쩍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내가 뭘 연주했더라. 뭐였더라.

<이거…….>

삽시간에 수현의 손바닥은 펼쳐져 요한의 앞에 놓여 있었다. 요한은 그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수현은 그게 무슨 곡이었는지 손쉽게 알아챘다. 큼직큼직한 움직임은 속도감 있고 과감했다. 무엇보다 아주 정확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만 쳐 온 수현은 그의 손짓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소리도 없었는데 그 움직임만으로도 무척 아름다웠다. 흑마를 탄 왕자님이 추는 위험한 왈츠 같았다. 큼직큼직하게 움직이는 손의 모양은 수현이 몇 번이나 연습해서 더듬더듬 쳤던 것보다 훨씬 정확했다. 아이의 기다란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하는 손바닥이 이상하게 간지러웠다.

<쇼팽이야. 「에튀드」고…… 작품 번호는 10번과 25번. 콩쿠르 준비를 하고 있거든.>

그러면서 수현은 황급히 손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혹시 기분 나빴을까 요한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이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에튀드」?>

그 순간, 아이가 악보를 읽지 못한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 정도라면 클래식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을 것이었다.

<아, 쇼팽이 만든 연습곡인데, 하나의 장르야. 전주곡, 소나타……. 뭐 그런 것들 중 하나라고 하면 될까? 그런데 악보 못 보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따라 친 거야?>

<악보는 못 읽지만, 건반 어떤 부분을 치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를 알아요.>

<우와…….>

어머니의 말대로였다.

<너 진짜 천재구나. 무슨 영화 주인공 같다.>

말로만 듣던 어린 천재를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경탄스러워 입을 쩍 벌렸다.

<그런데 왜 여기 나와 있어? 날이 이렇게 추운데.>

<아, 신부님이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 하는 것 같아서요. 친아버지를 찾았다나 뭐라나.>

<그럼 좋은 일 아니야?>

<책임을 못 지겠다고 하는 것 같던데…….>

자신도 어린 건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지금 요한이 하는 말이 이렇게 어린 아이가 들을 만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수현은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차갑게 얼어붙은 요한의 손등을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온기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한이 이 행동을 통해 위로받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무릎 위에서 움찔한 손은 잠자코 수현에게 덮여 있었다. 그러고는 수현이 손을 떼어 내자 두툼한 장갑을 한 손에 끼워 넣는 것이었다.

원체 어머니를 닮아 잘 기뻐하고, 쉽게 슬퍼하는 수현이었지만 그 순간은 그야말로 까무러치게 기뻤다. 한참 우물쭈물하던 수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요한에게 급히 물었다.

<저, 우리 안에 들어가서 피아노 같이 쳐 보지 않을래? 네 연주를 직접 들어 보고 싶어.>

<요한! 이 날씨에 아직 밖에 있어? 어서 들어와라!>

멀리서 신부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장갑을 수현에게 돌려주었다.

<가 봐야겠어요.>

<어……. 나도 집에 가야 해. 아쉽다.>

<다음에 꼭 같이 쳐요.>

인사를 건넨 요한이 신부님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여전히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던 수현은 아이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저기…….>

<…….>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꼭 구해 줄게. 나한테 꼭 말해. 알겠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변을 살피던 요한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대답도 없이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 버렸다. 수현은 요한이 떠나고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은 무심했다.

‘친아버지를 찾았으면 요한은 거기로 가게 될까? 하지만 그 아저씨는 책임지지 않겠다고 했댔으니까…….’

그런데 왜 요한에게 그런 호언장담을 했는지 몰랐다. 자신은 요한보다 겨우 두 살 많을 뿐 아직 스스로조차 제대로 구제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마냥 아무렇게나 꺼낸 말은 아니었다. 수현은 아이의 이름을 곱씹었다.

요한. 내가 발견해 낸 성당 거리 앞의 천재.

<요한…….>

꼭 널 구해 주고 싶어.

* * *

요한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었다. 현주는 지난번 인터뷰 이후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건 자신의 날카로운 직감이자, 기자로서의 본능이었다. 느낌 외에는 근거랄 만한 게 아직까지 없지만, 그를 속속들이 파헤치다 보면 분명히 건지는 게 있을 것이다.

그녀는 요한이 했던 인터뷰들을 가능한 전부 모아 취합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자료들을 추출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1년에 단 한 번뿐인 「음악인의 밤」 행사에도 불참할 정도로 그녀는 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전화 통화만으로 정보를 수집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소득을 얻으려면 직접 발품을 팔아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요한이 태어난 생가와 한동안 머물렀던 성당 근처를 지도 위에 체크하고 주변의 구청과 같은 공공 기관과 동네일에 빠삭할 어른들이 많은 양로원 등지를 빠짐없이 예상 방문지 목록에 넣었다.

인쇄한 기사들을 한데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번쩍 뜨이는 부분이 있었다. 요한이 지나가는 말로 꺼냈던 병명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 한 번, 아주 잠깐 장외의 이야기로 지나가듯 언급한 게 전부였지만 분명히 요한의 직접 발언이었다.

Q. 다른 소리?

A. 누군가의 목소리죠. 아주 근사해요.

Q.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나요? 당신 표정을 보니…… 어렵겠군요. 좋아요. 그럼 다른 걸 여쭤보죠. 주로 어떤 환청이 들렸나요?

A. 아이가 우는 소리. 늘 아이가 찢어질 듯이 울음을 터트렸어요. 낳아 주신 어머니 말씀이 난 울지도 웃지도 않는 아이였다고 해요. 아마 내가 울지 않는 대신 내 환상 속에서 그 애가 울었던 건 아닐까.>

이 몇 줄의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측두엽 간질에 대해 언급한 일이 없었다.

현주는 일단 급한 대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이 병은 인간의 단기 기억이나 감정 따위를 관장하는 뇌 부위인 측두엽에 일어나는 간질이었다. 보통 가벼운 두통을 동반한 환각, 환청, 환시, 환취 따위의 환상적인 감각을 겪게 되는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실제로 쇼팽에게도 이 병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전해졌다. 피아노 앞에서 유령을 본 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작가 에드거 앨런 포나 루이스 캐럴 등도 앓았다고 하니 예술가와 밀접하다면 밀접한 병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주가 집중한 것은 병 자체가 아니었다. 친어머니가 그를 가리켜 했다던 말이었다.

<난 울지도 웃지도 않는 아이였다고 해요.>

요한의 연주는 완벽하다. 종종 신이 빚어 낸 손이 있다면 그의 것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순수한 감탄을 하게 된다. 현주도 뭇 청중들처럼 요한이 치는 피아노를 무척 좋아했다. 그의 손아귀에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는 악마 같은 힘이 있었다. 애수가 가득한 한편 파괴적인 욕망의 발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현주가 느끼기에 그의 음악에 느껴지는 지독한 슬픔이나 분노는 이미 한 차례 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었다. 아니, 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학습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연주할 때의 표정은 너무나 동요가 없이 차갑고, 또 그가 만들어 내는 선율은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완벽했다. 그건 결국 연주에 빈틈이 없다는 의미이니, 기술도 감정도 요한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닐까 했던 것이었다.

현주는 인터뷰가 인쇄된 얇은 종이를 펄럭이다가 요한의 사진을 검지로 슥 가리켰다.

“너 대체 어떤 인간이니?”

여태 그녀가 파고든 것이 음악가로서의 요한에 대한 호기심이었다면, 이제는 그라는 인간 자체가 궁금해졌다. 그는 두려움을 주지만 그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모순적인 존재였다. 평생을 형제처럼 자라온 수현이 그의 정부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복합적인 감정의 연장선일지 모른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 아이라.”

이보다 요한과 잘 어울리는 수사가 또 있을까.

* * *

쾅!

음악관 8층의 작업실에는 요한만을 위한 스타인웨이앤드선스와 야마하가 한 대씩 구비되어 있었다. 주인이 잘 들러 주지 않는 이 넓은 공간은 피아노와 책상, 오디오 기기들을 제외하면 집기들이랄 것도 거의 없이 휑뎅그렁했다. 수현의 몸이 내팽개쳐진 것은 출입구와 더 가까운 검은색 야마하 위였다. 상체가 피아노의 몸체에 부딪치자 딱딱한 촉감 때문에 격통이 일었다.

수현은 달아나려 했으나 허사였다. 차라리 이곳이 아니라 학교 밖이라면 나았을 것이다. 화장실 같은 더러운 장소가 아닌 게 어디냐고 애써 안일하게 생각해 봤자 자신을 거칠게 다루고 있는 지금의 요한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꽉 붙들린 손목이 미친 듯이 아렸다. 그는 수현의 손목을 건반 위에 비스듬히 대고 그대로 짓눌렀다. 딴, 하고 불꽃이 터지듯 한꺼번에 뭉쳐진 음정이 울려 퍼졌다.

“윽……!”

수현은 참았던 고통을 겨우 토해 냈다. 요한은 해묵은 상처에 새롭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손목이 끊어질 것 같았다. 이건 정말이지 미친 짓이다.

“그렇게 못마땅해 미치겠어? 차라리 자르지 그래!”

“지금 그때 베풀었던 자비를 후회 중이야. 잘라 버릴걸. 불구인 너라도 난 사랑하는데.”

그는 수현의 바지 버클을 한 번에 풀어내고, 또다시 양 손목을 결박하듯 건반 위에 짓눌렀다. 위의 옷을 벗길 생각도, 입술에 입을 맞출 생각도, 당연히 전희 따위로 긴장을 풀어 줄 생각도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요한은 수현의 바지를 반쯤 벗기고, 그를 뒤집어엎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온몸의 하중을 실어 그를 압박했다. 이곳에 들어와 속옷을 벗겨 내고 밀부를 더듬기까지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수현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결박당한 온몸이 덜덜 떨렸다.

“넌 돌았어. 이건 강간이야.”

“너무 새삼스럽지 않나? 어차피 넌 늘 합의라고 말하면서 강간당하는 심정으로 내 침대 위에 올라오잖아, 안 그래?”

“개새끼, 놔, 하지 마! 하지 말라니까?”

“입 닥쳐. 날 더 자극하지 마.”

요한은 가볍게 대꾸했다. 축 아래로 늘어진 수현의 성기를 무성의하게 쓸어내리던 그는 뒤이어 회음 부위를 다급히 매만졌다. 구멍 속으로 불쑥 침입한 손가락이 단단히 수축해 있는 내부를 마구 휘저었다. 손짓이 평소에 비해 너무 투박했다. 제대로 안을 꼼꼼하게 넓힌 뒤 삽입해도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되는 행위였다. 이런 속도와 기세라면 정말 찢어질지도 모른다. 수현은 아득하게 밀려오는 두려움으로 도리질 쳤다.

“어떤 말을 해 줄까요?”

그의 낮고 음험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빙빙 맴돌았다. 공포로 인해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갔다.

“형, 하고 싶어요.”

“…….”

“아니지. 형을 강간하고 싶어요.”

“…….”

“네 대답은 안 들어도 예스야. 늘 그래 왔잖아.”

“이건 짐승만도 못한 짓이야. 제발, 놔!”

겁에 질린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닿지 않는 듯했다.

“심심하면 이게 몇 번째 강간인지 횟수나 세. 난 오늘 네가 까무러칠 때까지 할 거니까.”

뻣뻣하게 선 그의 것은 수현의 밀부 입구 위에서 잠시 맴돌다 그대로 안을 꿰뚫었다.

“악……! 하윽……!”

“하, 아파? 아파요?”

수현은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감쳐물었다. 안면 근육을 혹사하지 않으면 당장 건물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를 것 같아서였다. 어마어마한 격통이 하반신을 뚫고 들어와 마구 휘저어 댔다.

꿰뚫린 곳은 애초에 다른 사람의 성기가 들어오면 안 되는 나약하고 은밀한 곳이었다. 함부로 대하면 큰 상처가 남았다. 이미 얼얼한 둔통이 하반신을 무감각하게 했다. 건반 위에 짓눌린 양손은 움직이면 소리가 날까 봐 꼿꼿하게 힘을 주고 있는 채였다. 이곳이 방음이 완벽하게 돼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공기 중에 소리를 토해 내면 누군가 들을까 무서웠다.

“아, 읏……! 읍……!”

한껏 억눌린 신음 소리와 수현의 내부에 요한의 것이 들락날락하면서 내는 철벅철벅한 마찰음 외에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인터코스가 한참 계속되자 수현은 더 버틸 아무런 힘이 없어졌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풀리려고 할 때마다 등 뒤를 짓누르고 있는 요한이 그의 복부를 손바닥으로 지탱해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뜨거운 공기 중을 가로질러 휴대폰의 벨 소리가 울렸다. 요한은 수현의 바지춤을 뒤적여 그것을 꺼낸 다음 창문으로 던져 버렸다. 두꺼운 유리창에 부딪친 휴대폰이 튕겨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요한이 돌아오고서 휴대폰의 잔혹사만 벌써 두 번째였다. 다만 지금의 수현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하, 윽……!”

달빛이 스며들어 와 그들의 전쟁 같은 정사를 지켜보며 구경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 통증이 계속 반복되니 감각이 점차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수현의 머리카락이 요한이 앞뒤로 박아 넣을 때마다 부드럽게 흩날렸다. 통증을 견디려 입술을 잇새로 짓누르고 있자니 입 안에 피가 흥건하게 고였다.

수현은 등 뒤로 손을 뻗어 오기로 요한의 입에 키스했다. 꿀렁이는 침 섞인 핏덩이를 그의 입 속으로 전부 뱉었다. 그러자 요한이 수현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더 거세게 하반신을 맞부딪쳐 왔다. 하체가 꽉 붙들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의 내부로 요한이 살덩이를 전부 욱여넣을 듯 힘껏 밀어붙였다.

“악……!”

쾅! 바르작대던 수현의 이마가 보면대 위로 추락했다. 온몸이 불덩이 같았다. 수현은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불현듯 요한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가끔 자신의 연주를 섹스에 비유했다.

<내가 왜 피아노를 좋아하는 줄 알아요? 직관적이거든요. 서툰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죠. 게다가 한 번 사정하고 나면 끝인 섹스처럼 공기 중에 흩뿌리고 나면 수정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한 번 연주할 때 최고로 완벽한 연주를 해야만 하고요. 이건 나와의 싸움이랄까. 이기면 짜릿해요.>

그는 일부러 수현을 상처 내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작정한 이상 이건 섹스가 아니라 그의 방식대로 가하는 폭력이었다. 수현에게는 악몽이기도 했다. 이 잠에서 깨는 것은 신이 하는 일이지 자신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지금 이 순간 수현을 관장하는 신은 요한임이 분명했다. 자신은 그가 끝내기만을 바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비스듬히 그를 향해 고개만 들어 올린 수현은 잇새를 전부 짓이기듯 일갈했다.

“하, 읏. 이겨서 짜릿하니, 이 씹새끼야?”

기계적으로 꽂아 넣던 요한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다시 과격한 허리 짓이 반복됐다. 동시에 수현에게 키스했다. 수현은 뒤늦게 체념하고 속절없이 흔들렸다.

이미 공기 중에 흩뿌려진 우리의 음악을 돌이키기엔 늦은 일이라는 듯이…….

피아노 위의 수현을 유린하고 있는 요한은 자비가 없었다.

* * *

눈을 뜨자 걱정스러운 낯빛의 어머니가 수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온몸이 누군가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무거웠다. 특히 손목의 통증이 유독 거셌다.

파리에 있어야 할 어머니가 왜 집에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수현이 눈썹을 들어 올려 의사 표현을 하려 하자, 그녀가 이마 위의 물수건을 갈아 주며 그를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준비해 둔 CD를 재생했다. 멘델스존의 「론도 카프리치오소」 14번이었다.

“이거 왜 틀어 놓은 거야?”

목소리가 가뭄이라도 인 것처럼 쩍 갈라져 나왔다. 그녀는 이 메마른 음성이 퍽 가슴 아픈 듯 눈물을 조금 비쳤다.

“너 기분 좀 편안해지라고 잔잔한 음악 튼 거야.”

제목인 ‘카프리치오소’란 유쾌한, 환상적인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도입 부분은 장조, 주요한 부분들은 단조로 배치된 이 곡은 앞부분만 조금 정적일 뿐 뒤로 갈수록 무척 발랄하고 유쾌한 음악이었다. 아마 앞부분만 조금 틀어 보곤 고른 모양이었다.

요한과 다른 의미로 그녀 역시 영화 주인공 같았다. 그녀는 들장미 소녀 캔디 타입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수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부턴가 그에겐 웃을 일이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어머니 덕분에 겨우 웃을 일이 생겼다.

“이 음악 반전 있어. 앞부분은 자장가 같아도 뒤로 갈수록 튄다고.”

“어머, 앞부분만 듣고……. 끌까?”

“아냐. 나 이 노래 좋아해. 근데 엄마 왜 내 방에 있지. 파리에 있어야 하잖아.”

“너 꼬박 며칠을 잤어.”

“벌써 엄마, 아버지 귀국 날짜가 지났다고?”

“그래. 오늘도 안 깨어나면 병원 가려고 했다. 병원은 싫었는지 귀신같이 눈 뜨네.”

타박하는 말투에도 속상함과 걱정이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음악인의 밤」 이후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기억에 없는 것을 보니 요한은 정말 경고대로 기절할 때까지 그를 몰아붙였던 모양이다.

“나 어떻게 집에 있어?”

“은희 씨가 데리고 왔어. 연락이 왔더라. 혹시 집에 간병인이 출입해도 괜찮겠느냐고 묻기에 무슨 일이 났지 싶어 우리가 날짜를 하루 당겨 들어왔거든.”

“김 비서님이? 요한이 아니라?”

“왜 갑자기 요한…… 너희 혹시…… 아니, 아니다.”

어머니는 요한의 이름을 듣고 무언가 묻고 싶은 일이 있는 듯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전후 상황을 전혀 알 길이 없으니 수현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도 까마득했다. 김 비서가 데리고 왔다면 당일 사후 처리는 제대로 해 주었으리라는 생각 정도는 들지만, 어머니의 눈초리에 미심쩍은 기운이 있는 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심재욱이라는 학생한테 집으로 전화가 왔었어. 그때 집 앞에서 봤던 친구 맞지?”

“재욱이가?”

“응. 네가 연락이 안 된다면서. 학교에도 안 나가고 하니까 걱정이 됐는지 전활 했더라. 너 핸드폰은 또 어디다 둔 거야? 암튼 이따 정신 들면 전화 한 통 해 줘.”

“맞다, 학교!”

그는 몸을 반쯤 일으키다가 그대로 기우뚱하고 도로 넘어지고 말았다.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어머니가 이미 귀국했을 정도라면 「음악인의 밤」으로부터 이미 최소한 사흘은 지나 있을 텐데, 며칠이나 지나도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아무런 예열 없이 있는 대로 무자비한 삽입만 반복했으니 병이 나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찌나 깨물어 댔는지 입술과 입 안의 상처도 여전했다. 침을 삼키자 피 맛이 조금 났다.

차라리 이대로 한 달은 잠들었어야 했는데. 매일 뒤를 아파하며 깨게 생겼다. 무서워서 화장실에 가서 환부를 확인해 볼 용기도 안 났다.

“학교에는 요한이 잘 얘기해 뒀대.”

“걱정 끼쳐서 미안해.”

“넌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어. 늘 내가 못 해 줘서 미안한 아들이었지.”

“나 지금 아프잖아. 그게 다 걱정 끼친 거지 뭐.”

그러자 그녀는 수현의 이마 위를 덮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수현아, 엄마 어떡하지. 너희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팔이 안으로 굽나 봐.”

의아한 일이었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그녀가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현이 섭섭해할 정도로 요한을 더 감싸고돌았던 그녀였다.

“요한이가 계속 널 이렇게 많이 아프게 하면…… 엄마도 이제는…….”

“엄마, 엄만 내 말만 들어. 그래 줄 수 있지?”

그는 그녀의 입으로부터 나올 말들이 너무 무서워서, 말허리를 댕강 잘라 냈다. 그녀는 지금처럼 속 편히 사랑스러운 채로 있어 주었으면 했다. 어릴 때의 수현은 어머니를 많이 닮은 아들이었다. 여전한 그녀를 보면서 자신의 예전 모습을 반추하는 정도의 호사는 누리고 싶었다. 또한 어머니가 쓸데없는 걱정이나 고민으로 힘겨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감정에 쉽게 연연하는 어머니라면 남들과 똑같은 크기의 문제를 가지고도 그의 몇 배는 힘겨워할 것이다.

“요한인 다른 사람들하고 좀 다르잖니. 서툴고.”

그녀가 상처가 많고, 그것을 제대로 표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요한을 위해서 원예 치료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언젠가 요한에게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 싶었을 것이다.

“다르지.”

“…….”

“그래도 내 말만 믿어 줘. 나는 내가 알아서 잘 지킬게.”

“그래, 엄만 우리 아들들 믿어. 재욱이란 친구한테 전화나 해 줘. 연락이 안 된다고 걱정 많은 것 같더라. 찾아온다는 걸 네가 언제 깨어날지를 몰라서 말렸어. 한번 놀러 오라고 하든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엄마, 나 혼자 좀 쉬고 싶어.”

그래도 눈을 뜨고 처음 본 것이 늘 익숙한 천장이라 다행한 일이었다. 둘러본 주변이 언제나 그랬듯 정신없는 자신의 공간이어서 그나마 마음이 안정이 됐다.

그가 힘겹게 손을 들어 올리는데, 오른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그녀를 보고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니까 이만 나가 달라고 분명하게 말하자 등 떠밀려 나가면서도 계속 돌아보는 것이었다.

딸칵. 문이 닫히고 혼자 덩그러니 남자 간신히 입가에 매달았던 희미한 미소마저 금세 스러졌다. 알아서 잘 지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여전히 마비된 듯한 하체,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 같은 통증, 쓰라린 밀부와 온몸에 생긴 멍 자국, 상처, 입 안에 아직까지 비릿하게 남아 있는 혈향까지.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 그럴 만한 힘도 없으면서 늘 주제넘게 내 몸은 내가 지키리라고 장담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지금 그는 뭘 하고 있을까. 결별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망가뜨리곤 말이다. 상처투성이인 자신을 이곳에 내던져 둔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까. 수현은 왼손으로 어깨를 주물렀다.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결국 이럴 거면서 스스로 자길 선택해 주길 바란다니 말만 번지르르했다.

“하…… 죽겠군.”

넌 내 손아귀에서 절대 못 벗어나.

비명을 질러 대는 온몸이 그런 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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