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3/34)

22.

지난밤 재욱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돌아갔던 경찰은 이른 아침부터 다시 병원을 찾았다.

불의의 사고는 선술집 주차장에서 도로로 나오는 좁은 길목이 그 무대였다. 길가에서 이동준을 대신해 대리 기사와 통화하고 있던 재욱은 뒤쪽에서 급하게 돌진하는 차량을 보지 못하고 부딪혔다고 한다. 경찰 측은 그를 치고 달아나 버린 차주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근방의 CCTV와 주차되어 있던 차량 등의 블랙박스를 수배하고는 있으나 마침 그가 사고당한 그 자리만 사각지대인지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재욱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척추의 뼈 중 아주 일부만 골절상을 입어 상한 부위만 수술했다. 문제는 당분간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할 수 없으리라는 데 있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운이 많이 나빴다. 경찰에게 일련의 상황에 대해 진술하는 재욱을 보고 있자니, 수현은 많이 안타까웠다.

“다행히 본인이 차량 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금방 해결될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현은 경찰을 따라 나가 배웅했다. 아는 바는 모두 본인이 진술했으니 남은 수사는 그들의 몫이었다.

1인용 병실의 문을 닫고 선 수현은 잠시 바깥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사실 이쪽이야말로 다행한 일이었다. 적어도 그가 이곳에 오기 전 걱정했던 것처럼 요한의 마수가 뻗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어느새 요한의 존재 자체가 그에게 노이로제가 되어 있었다.

수현은 굳게 닫힌 병실의 문을 힐끗 살폈다. 지금 저 안에는 재욱을 보러 온 그의 부모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고 소식이 아침 뉴스에 작게 실리자마자 그의 부모님이 병원으로 찾아오셨다. 부모님과 거의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다더니 뉴스는 조용히 챙겨 보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수현은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 쪽이 그의 눈에 익숙해서였다. 재욱의 부친은 한국 대학교 본관 건물 설계도를 직접 그리기도 했던 유명 건축가 심상익이었다.

그의 누나 또한 악기를 전공하기도 했었기에 내심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하긴 했었다. 아버지가 건축학과를 갔으면 했었다더니, 그 아버지가 심상익이라면 의절에 가까운 반목이 설명됐다. 당연히 하나뿐인 아들에게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신의 명성과 자산을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그의 부모님이 나와 일어섰다. 어머니 쪽이 수현의 손을 잡았다.

“수현 씨 맞지요? 재욱이가 첫눈에 피아노 치는 걸 보고 좋아했던……. 그때 콩쿠르에 딸애도 출전해서 우리도 갔었거든요.”

딱 거기까지 그녀가 말했을 때 수현은 본능적으로 아버지 쪽의 안색을 살폈다. 아들의 탄탄대로였던 인생을 전면으로 뒤집어 놓은 존재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는 마땅해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못마땅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평판이 어떻든 일단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까지 했으니 이 정도 됐으면 아들의 선택을 존중할 마음도 생겼을 것이다. 다만 화해의 계기가 마땅치 않았을 뿐이리라. 그의 표정을 보고 부자지간의 관계 개선을 돕고 싶어진 수현은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제 실력은 변변치 않고요. 이젠 재욱이가 훨씬 잘 쳐요. 얼마 전에 서울 국제 콩쿠르라고, 꽤 권위 있는 대회에서 입상도 했고요. 아시나요?”

그러자 두 부부가 서로 멋쩍은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며, 수현은 적어도 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생긴 좋은 점도 한 가지 정도는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마워요. 엄마가 돼서 면목이 없네요. 수현 씨가 새벽부터 같이 있어 줬다고 들었어요. 토요일이라 본인 쉬기도 바쁠 텐데…….”

“전 내일 쉬면 돼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급하게 나오신 것 같은데 천천히 준비해서 저녁때쯤 오세요.”

“고마워요. 늦지 않게 병간호 준비해서 올 테니까 딱 반나절만 부탁 좀 할게요.”

“네, 들어가세요.”

정중한 인사를 서로에게 건넨 뒤, 세 사람은 각자의 길로 멀어졌다. 부모님까지 배웅하고 난 뒤 병실로 들어가자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환자복 차림의 재욱이 보였다. 누가 눕혀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자리보전하고 누울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가 눈짓으로 눕고 싶은지 넌지시 묻자 재욱은 고개를 저었다.

“수술하기 전에요. 전신 마취 할 때. 저 수술해 준 선생님이 절 알아보시더라고요.”

사실 수술 집도의의 이름을 보고 수현도 조금 놀랐다. 토요일은 오전 회진이 없어 환자의 보호자가 정식으로 그를 마주칠 일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저는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분인가, 그래서 날 알아보나 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라 선배를 알고 계셨어요. 지난번 병원 왔을 때 보셨다면서 본인 휴대폰은 언제나 24시간 대기 중이라고 전해 달라시던데. 혹시 작업 치시는 건 아니겠죠? 만약 그런 거라면 그분도 번호표 끊고 제 뒤에서 기다리셔야 돼요.”

“이상한 농담 하는 걸 보니까 네가 덜 아프구나.”

수현은 그의 인체 중 비교적 가장 자유로운 손등을 탁 때렸다. 그러자 억, 하고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수현은 침대맡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이윤도 선생님. 내 손 수술해 주셨던 분이야.”

진짜 심각한 트라우마는 정신적으로만 영향을 받고 공포에 질리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진짜였다. 수현의 경우가 꼭 그랬다. 이 사건에 대해서 말을 꺼내는 것이 망설여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여태 이 얘기를 속 시원히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엄두도 못 냈다. 사고와 요한을 함께 떠올리면, 다친 부위가 아팠으니까.

“대체 그 자식은 선배한테 왜 그런 건데요?”

“내가 약속을 어겼어.”

그러자 재욱이 어이가 없다는 양 헛웃음을 터트렸다.

“누구나 약속 정도는 어겨요. 선배가 한 일 때문에 승요한 가족이 죽거나 본인이 죽거나, 그런 규모의 엄청난 나비 효과가 일어난 거 아니고서야 전 납득 못 하겠어요. 대체 무슨 약속을 어긴 건데요?”

나비 효과라.

“내가…… 다른 사람이랑 피아노 두 대로 함께 연주했어.”

재욱은 잠시 뒷말을 기다리듯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수현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진짜 그게 다예요?”

“다야.”

목소리는 한평생 꽁꽁 숨겨 두던 금기를 털어놓듯 조심스러웠으나, 표정만큼은 후련했다. 수현의 고백을 들은 재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떡 벌렸다. 흥분한 그는 몸을 들썩였다. 반동으로 통증을 느꼈는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손을 마구 흔들어 가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겨우, 고작, 그런 일로 선배 손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또라이 아냐? 그 새끼 완전 개사이코 아니에요?”

수현은 쓰게 웃었다.

예의 그날, 자신은 외출 준비를 한답시고 코트를 갖춰 입고 있었다. 요한이 다가와 코트의 단추를 직접 채워 주기 시작하자, 그날따라 이상하게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요한이 이상할 정도로 과하게 의식되던 차였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심장 박동 소리를 그가 전부 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고 싶어 방어 기제가 발동했다. 피아노과에 합격한 예비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그는 두 대의 피아노로 함께 연주하자던 한 여학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누구였는지 수현은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1년을 쉰 뒤 그가 학교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이제 와 피아노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미 자퇴한 뒤였다.

그날 그곳에 요한이 우산을 핑계로 나타났던 게 우연이었는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찾아왔던 것이었는지 수현은 아직까지도 몰랐다. 그가 물어보지 않았기에 요한도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어쨌든 요한은 수현이 자신 아닌 누군가와 두 대의 피아노로 합주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그날 새벽 비극은 일어났다.

그 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그때의 자신은 겨우겨우 스무 살의 고지에 올라선 애송이였고, 누군가에 대한 애정을 들킨다는 사실이 죽기보다 부끄럽게 느껴지던 그런 멍청한 시절이었다. 그게 요한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얼마나 큰 배신으로 느껴졌을지 거기까지 헤아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자신만 돌보기에도 너무나 벅찼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했던 행동이 이런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키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난 선배가 더 이해 안 돼. 대체 왜 그 새끼 아직까지 받아 주고 있는 거예요? 겨우 그깟 일로 선밸 이렇게 만든 사람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비참하게 버렸어야죠.”

그의 말이 맞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사실은 진작 버렸어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수현으로서도 항변할 말은 있었다. 자신이 끌어안고 있던 감정과 상황들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빠져나올 길이 아득했다. 그가 미운 만큼 그의 연주를 사랑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피아니스트를 향한 존경, 불우한 유년기를 알게 된 뒤 품게 된 연민, 무엇보다 오직 자신만이 그를 제대로 된 어른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착각했던 자만. 그것들은 청소년기의 수현 그 자체였다. 그 시절의 수현에게서 피아노를 빼면 요한밖에 안 남았다. 게다가 그는 자신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진 유일했다.

그러나 인생을 점유하고 있는 단 두 가지, 피아노와 요한. 그것들을 동시에 빼앗아 버린 것도 바로 그였다. 대체 자신을 향해 그릇된 집념을 보이는 요한을 어떻게 했어야 현명한 일이었는지, 수현은 아직도 잘 몰랐다. 이렇게 된 이상 피아노와 그, 모두를 버리는 게 정말 맞는 일인 것인지 자신이 진짜 그것을 원하긴 하는지도 헷갈렸다.

그래서 정말 몇 번이고 그를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번번이 실패해 왔던 것이다.

“그러게. 진짜 바보 천치 같다.”

태곳적 원죄를 털어놓듯 비장해진 마음을 가다듬고 있던 수현은 무척 허탈해졌다.

* * *

수현의 방이 조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작고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의 벽면들이 이런저런 스냅 사진이나 포스터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천장에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그린 「아마데우스」의 포스터가, 책상의 옆에는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일대기를 영화적으로 각색한 「샤인」의 포스터 따위가 붙어 있어 시각적으로 다소 산만했다.

워낙 주변에 관심이 적은 요한은 문화생활에도 이렇다 할 흥미가 없었다. 그를 화면 앞에 앉혀 놓으려면 최소한 그것이 음악과 일정 부분 연관이 있어야만 했다. 「샤인」은 수현이 예전에 요한과 함께 봤던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제일 처음 같이 본 영화이기도 했다. 수현이 갓 고등학생이 되던 해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다양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나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등의 연주도 유명했지만, 수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 데이비드 헬프갓은 허름한 차림으로 카페에 들어가 괄시와 박대를 당하지만, 그가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채로 이 「왕벌의 비행」을 현란하게 연주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180도 바뀌게 된다. 관찰자로서 느낀 그때의 희열은 도무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수현은 요한에게도 그 짜릿함을 전해 주고 싶었다. 자신이 느꼈던 만큼 절실하게 그가 느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요한에게 같은 곡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스스럼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 주었다.

처음 듣는 곡일 텐데, 몇 분 동안 두세 번 같은 장면만 반복해서 돌려 보던 그는 똑같이 연주해 냈다. 그때만 해도 요한이 연주하는 곡들은 대부분 장엄하고 웅장한 곡들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해 주는 영상을 통해 오케스트라 협주곡이나 피아노 독주회들만 봐 왔을 때여서, 그렇게 장난스러운 요한의 연주는 꽤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그때 수현이 느꼈던 감정은 뭐랄까. 영화 속 주인공이 연주하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의 재가 건반 위에 언제 떨어질지 지켜보는, 초조한 심정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러니까 이토록 귀한 건 나만 보고 싶은 불안함,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초조함. 그런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거실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과거에 빠져 있던 그는 어렵지 않게 탈출했다. 수화기를 들며 그는 생각했다.

정말 내 인생을 통틀어 요한이 끼어 있지 않은 곳이 없구나.

[수현이지? 집에 있었네?]

어머니였다.

“난 줄 어떻게 알았어?”

[인철 씨한테 이미 전화했지. 엄마도 정신이 없었는지 네 아버지 오늘 제자들 만난다고 했던 거 깜빡했지 뭐야. 오늘 늦는다 그래서 집으로 해 봤어. 너 핸드폰 좀 고치면 안 돼?]

“고쳤어. 걸어 보지.”

[어머, 그래? 아무튼, 엄마 데리러 와라. 차가 퍼졌어.]

“도로에서? 지금 갈게. 어디야?”

[아냐. 아직 꽃집이야. 아까 잠깐 요 근처 가려고 탔는데 타는 냄새 진동하더니 시동이 안 걸리더라고. 엔진 문젠가 싶어서 일단 수리는 내일 맡기려는데…… 네, 어서 오세요!]

당장 나가려고 차 키를 찾아 주머니를 뒤지던 수현은 안도했다.

[어머, 요한아! 여기까진 웬일이야? 수현아, 됐다. 요한이 왔어. 끊어!]

“엄마, 엄마?”

그가 불러 본들 이미 전화는 끊겨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수현은 거실 소파에 편히 몸을 기대앉았다. 요한이 왜 어머니의 꽃집에 나타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독일로 자신을 데려가고 싶단 얘길 하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미 아버지한테는 언질을 준 일도 있었다.

아무래도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밝혀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대체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납득할까. 그게 가능하긴 한 일일까. 골치가 아파진 수현은 눈을 감고 손등으로 눈두덩 위를 덮었다. 새벽부터 재욱의 병간호를 한 터라 피로가 상당했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당연히 어머니로부터의 전화이리라 생각한 수현이 다짜고짜 내뱉었다.

“엄마, 요한 귀찮게 만들 거 없어. 그냥 내가 데리러 갈게.”

[누가 네 엄마야?]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어머니가 아닌 린이었다.

“어쩐 일이에요?”

[그 잡지 내달에 발간될 거야. 「클래시즘」. 인쇄 들어갔대.]

“잡지 하나 발간되는 걸 가지고 뭘 전화까지.”

[다른 거라면 나도 안 이러지. 그런데 요한이 네가 꼭 봤으면 좋겠다잖아.]

그러지 않아도 지난번 꼭 읽으라던 현주의 말도 있고 해서 발간되면 챙겨서 읽을 생각이었다. 학과에서 구독하고 있는 클래식 잡지 목록에 지난달부터 「클래시즘」을 올려 두기도 했다. 9월 호는 이미 배송되어 읽어 봤는데 광고가 없어서 그런지 군더더기 없는 얇고 깔끔한 팸플릿의 느낌이었다. 내용도 알찼다. 말미에서 다음 달 요한의 특집을 예고하기에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뭣보다 네가 꼭 먼저 읽어 봐야 할 것 같아 전화 걸었어. 원고 너한테도 보내 줄 테니까 미리 한번 읽어 봐. 지메일로 보내면 되지? 회사 계정으로 보낼 거니까 혹시 스팸 함에 있지 않은지 확인 부탁해.]

딸깍, 하고 마우스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귀가 예민하니 때론 아주 가까운 미래에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

“벌써 보냈어요?”

[어…… 방금 보냈어. 어떻게 알았지?]

“요한은 왜 제가 읽었으면 한다는 건데요.”

[네가 알아줬으면 하는 사실들이 담겨 있거든. 게다가 가장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네 얘기를 꽤…… 완곡하게 각색은 돼 있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지만, 맥락상 알아보는 사람도 분명 있긴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어제 다친 네 친구라든지?]

그건 지금 이 통화 중에 들릴 이유가 없는 이름이다. 수현은 휴대폰을 꽉 쥐었다.

“그걸 린이 어떻게 알아요? 요한이 당신한테 시켰어요?”

[시켜?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신은 요한이 원하는 건 다 하잖아요. 깨끗한 일, 더러운 일 가리지도 않죠. 번번이 요한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시켜도 비위 맞춰 가면서 사람 불편하게 만들잖아.”

[얘 갑자기 왜 꼬였지? 아, 난 꼬인 남자 질색인데. 이봐, 이 세상에 나한테 불친절한 남자가 딱 두 사람 있는데 너랑 요한이야. 요한은 마이 페이스니까 그렇다 치고 넌 왜 번번이 어깃장이야? 그리고 요한이 나한테 시켰니 어쩌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냐니까?]

한참 린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그는 쓸데없는 소릴 했다는 걸 깨닫고 멋쩍게 뺨을 긁었다.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요. 주변에 무슨 일만 생기면 꼭 요한이 한 짓 같아.”

그러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와하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 기왕 다치게 할 거라면 그렇게 어설프게 다치게 하느니 좀 더 과단성 있게 영원히 조져 버리지. 네 손처럼 말이야.]

그녀의 말마따나 저렇게 시한부로 잠시 잠깐 연주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요한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놀리는 듯한 말투와 음성에 미묘한 경멸이 담겨 있어 수현은 울컥했다.

[왜 대답이 없어? 요한이 시킨 거 아니라니까. 난 그냥 기사로 봤을 뿐이야. 한국 클래식계 전반적인 이슈는 요한이 사고 쳤을까 봐 매일 오전마다 한 번씩 체크하고 있어.]

“알아요. 말 꺼내 놓고 후회하는 중이니까 자꾸 되짚어 주지 말아요.”

[요한이 네 독일행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너도 아는 거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요한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환영이야. 혹시라도 네가 모르고 있을까 봐 안부 겸해서 걸어 봤어. 슬슬 준비하라고.]

“내가 절대 안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 3차 대전 일어나겠지. 아니면 네 왼손마저 부러지거나. 그러기에 왜 빌미를 줬어.]

7년 전의 약속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수현으로선 그를 최대한 납득시키면서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린은 늘 도움이 안 되네요. 끊어요.”

수현은 짜증스레 전화를 끊어 버렸다. 린과의 통화는 늘 이렇게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그는 자신의 방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영화 포스터에 시선을 던졌다. 파란 배경 속 주인공은 자유를 갈망하듯 양팔 벌려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던 수현은 그것을 뜯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러자 포스터를 떼어 내 풀 자국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책장 벽면에 요한과 수현이 키를 쟀던 파인 자국들이 보였다.

이걸 감추기 위해 이 포스터를 붙여 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수현은 탄식했다.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없는 미궁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하…….”

정말이지.

그는 어디에나 있었다.

* * *

강남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처음에는 재욱의 사고 때문인 줄로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오늘따라 집으로 걸려 오는 전화가 무척 많은 것 같다고, 이상한 날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쪽에서 건네 오는 명사들은 전부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어머니, 구급차, 교통사고…….

수현은 자신이 뭘 듣고 있는지도 제대로 감이 오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지금 정신없으신 것 같아 대신 전화를 드린 겁니다.]

“아까 엔진이 고장 나서 내일 차 수리 맡긴다고 했거든요. 그걸 끌고 나갔을 리가 없어요.”

[엔진 고장요? 뭔가 착오가 있으셨나 본데요.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차가 어머님이 앉아 계셨던 보조석을 들이받은 거예요. 운전은 그 왜, 피아노 치는 사람 있죠? 승요한이라고 되게 유명하다던데. 아버님께서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증언도 해 주셨고요. 아무튼 그 사람이 하고 있었어요. 차도 그 청년 차였습니다.]

순간 수현은 불쑥 치밀어 오르는 온갖 끔찍한 생각으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며칠 전의 그는 요한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가족들이 있어. 난 안 가. 못 가.>

“제대로 조사하신 거 맞아요?”

[물론이죠. 사건에 유명인이 끼면 저희도 평소에 하던 대로 처리하기가 어려워요. 현장을 몇 배는 꼼꼼하게 조사합니다. 아버님께선 소식 듣고 병원 쪽으로 바로 와 주셨거든요. 아드님께서도 오시겠어요?]

“어디예요?”

[강남 세브란스입니다. 응급실로 오시면 돼요.]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수현은 일단 집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나오는 길에 주방 식탁 위에 자신을 위해 차려진 소박한 식사를 보자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병원 근처까지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길이 막혔다. 그는 해 본 적 없는 짓을 했다. 옆 차의 앞으로 끼어들며 깜빡이도 켜지 않고, 조금이라도 걸리적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면 클랙슨을 미친 듯이 울렸다. 병원은 그에게 참 익숙하고 또 싫은 공간이었다. 건물 외관을 올려다보던 그는, 시한폭탄이라도 설치해 두고 건물 전체를 다 터트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응급실 입구 주변에는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 반, 평상복을 입은 사람 반, 그리고 의료진들도 더러 있었다.

수현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을 전부 헤치고 안으로 파고들어 응급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어머니는 힘겨운 숨을 토해 내며 누워 있었다. 몇 가지 응급 처치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은 듯 그녀의 주변에 선 의료진들이 심전도 기기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아연해진 수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옆 침대에 걸터앉은 요한은 의료진과 김 비서를 대동하고 경찰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그는 어이가 없었다. 시체처럼 누워 있는 어머니와 달리 그는 육안상 보이는 상처들이 그리 크지 않았다. 수현은 그 사이를 비집고 뛰어들어 가 요한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왜 넌 멀쩡해?”

“수현아! 왜 이래!”

“이 개자식아, 넌 왜 멀쩡하냐고. 엄만 저 꼴이 됐는데!”

“일단 진정하고 이리 따라와.”

흥분한 그를 말린 것은 멱살을 잡힌 요한도, 시민을 지키는 경찰도 아닌 수현의 아버지였다. 그는 자신들 쪽으로 따가운 시선이 집중되자 억지로 수현을 이끌고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한참을 묵묵히 걷더니 병원 비상구에 와서야 꽉 붙잡고 있던 수현의 손을 놓아주는 것이었다.

“네 엄마, 크게 다친 건 맞지만 그래도 제때 병원에 도착해서 상황이 최악은 아니래.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노력하면 생명엔 이상이 없을 거란다. 그러니까 마음을 좀 가라앉혀.”

그는 수현의 어깨 위에 손을 툭 얹었다. 무뚝뚝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수현은 조금도 위로받지 못했다. 모든 게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다.

“제가 안 된다고 했어요. 여기 가족들이 있어서 따라갈 수 없다고 제가 그랬다고요. 아버지, 요한은 일부러 그런 거예요.”

“경찰이 말 안 하니? 가파른 골목에서 급하게 내려오던 차가 요한의 차를 들이받았어. 걔가 그걸 어떻게 일부러 할 수 있단 거야?”

“모르죠, 알 게 뭐예요.”

“수현아!”

“제 친구도 바로 어제 교통사고로 다쳤어요. 아세요? 자꾸 제 주변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요. 요한이 돌아온 뒤부터 줄곧 그랬어요. 요한이 일부러 낸 사고가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버지, 이건 확실해요. 요한은 불행을 몰고 와요.”

철썩! 질척한 마찰음이 울렸다. 때론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 쪽이 그 사람의 심정을 드러내 주는 법이었다. 뺨을 얻어맞은 수현은 부어오른 볼을 감쌌다.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물리적 폭력을 당한 것인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어머니의 사고라는 더 큰 충격이 그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맞은 수현은 담담한데, 막상 때린 아버지 쪽이 당황해서 두툼한 손을 어쩔 줄 몰라 했다.

“미안하다. 괜찮니?”

“저한테 미안해하세요? 그럼 끝까지 걜 데려오면 안 된다고 반대하시지 그랬어요!”

한참 난감해하던 그는 수현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지금 지나치게 흥분해서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으니 부디 진정하라는 무언의 사인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수현이 그 엄중한 충고를 들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걘 꼭 먹구름 같아요. 비바람만 몰고 온다고요. 이 손을 좀 보세요. 전 하다못해 밥 먹을 때도 가끔 손을 저는 병신이 됐어요. 매일 보시잖아요!”

“네 손은.”

“…….”

“수현아, 그건, 죽을 때까지 내가…… 사죄하마.”

사과와 속죄까지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는 인생이란 건 얼마나 편리할까. 수현은 허탈하게 웃었다.

“너무 늦었어요. 아버지한테 사과받을 생각도, 필요도 없고요.”

어쨌든 그는 넘지 말아야 할 능선을 넘었다. 그가 꾸민 일이 아니라 한들 오늘의 사고가 그의 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오늘 찾아가지만 않았다면 어머니는 저렇게 다 죽어 가는 모양새로 누워 있지 않아도 됐다. 지금쯤 자신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은 마지막 보루였다. 수현은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을 때보다도 더 화가 났다.

그의 친어머니가 맞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을 몰고 오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걸 왜 이제야 인정하게 된 걸까. 신은 몇 번이나 자신에게, 모든 원흉은 요한이니 어서 빨리 도망치라는 붉은 신호를 주었는데 말이다.

그는 수현이 가르친 그대로를 믿었다. 그래서 앞으로 자신은 그가 불행을 몰고 온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일러 줄 생각이었다. 단번에 못 알아들으면 이해하고 용납할 때까지 끈질기게 가르쳐 줄 작정을 했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어쩌면 늘 말뿐이었을지 모르는 결심이, 이제야 겨우 자신의 안에 섰다. 이것만이 함께 독일에 가자고 말하는 요한에게 제대로 결별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이제 다 끝이에요.”

너를 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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