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세 사람이 사는 집에 부모님 두 분이 부재하자 모델하우스보다도 못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없는 공간에 서 있자니 기분도 황량해서, 수현은 숨듯이 자신의 방으로 도망쳤다. 그나마 이곳에 들어오면 어지럽혀진 주변 풍경 덕분인지 아늑해진 듯한 착각이 일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그는 일단 침대에 누워서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에게 복수하고 확실하게 결별을 선언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생각은 금세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물리적 폭력이었다. 그의 가치는 아름답고 위대한 손으로부터 나온다. 예술계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소수의 천재들이다. 또한 클래식은 인간이 누리는 인류의 막대한 유산이다. 요한은 둘 다에 속했으니 자신처럼 그의 손을 다치게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내 요한과 똑같은 괴물은 되지 말자고, 또다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최악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두 번째로 떠올린 것은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 마디 말로는 그에게 큰 타격이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은 수현,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자신을 정말로 원하고 아끼고 있다면, 그편이 제일 아프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는 자신이 아픈 건 싫어서 그것도 포기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래도록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최선책을 찾아냈다.
그의 피아노 연주를 영영 포기하는 것.
한참 동안 고민하던 수현은 분연히 일어섰다. 우선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몇 권, 그리고 레코드 수납함에 꽂혀 있는 CD 전체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커다란 쓰레기통이 금세 가득 찼다. 꽉꽉 눌러 담았지만 뚜껑이 닫히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지 않고 남은 것은 쓰레기통 옆에 고이 놓아두었다. 이것들은 전부 버리는 것이었다.
쌓여 있는 실황 앨범들을 한데 모아 놓고, 그대로 두꺼운 책으로 내리쳤다. 케이스가 부서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안에 든 CD들이 튀어나왔다. 요한이 연주한 베토벤이었다. 쓰레기통에 욱여넣은 책들 중 가장 위에 있는 한 권은 있는 대로 찢고 종이들을 헤집어 놓았다. 라이터로 종이 더미에 불을 붙였다. 금세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며 그을었다.
얼추 반 정도 탄 듯한 모양새가 되자 수현은 천천히 불을 끄고, 미약하게 타는 냄새가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런 화형식으로 단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러지 않고선 어디에나 있는 그를 자꾸 만나게 되니까.
입 주변의 근육이 묘하게 불편해서 손으로 더듬거리자, 아까 전 아버지에게 맞은 상처 위로 돋은 물컹한 딱지가 만져졌다. 뒤늦게 부은 뺨이 쓰라렸다. 점점 온몸이 아팠다. 차가운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그는 시야에 담긴 피아노 다리를 보고 옛날 일을 떠올렸다.
저 그랜드 피아노는 요한이 이곳에 온 바로 다음 해에 큰마음 먹고 새로 구비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현이 치던 피아노는 아버지의 동창이 이사를 가면서 넘기고 간 업라이트 피아노였다. 그러나 요한의 연주를 듣고 난 아버지는 가격은 차치하고 일단 다른 사람의 손을 안 탄 새 피아노라도 구해 주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모아 두었던 비상금을 탈탈 털어서 깨끗한 피아노를 산 그는 요한과 수현에게 함께 치라며 집에 저것을 들여놓았다. 아버지는 저 피아노를 요한에게 보여 주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차를 사면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시승식이라는 걸 하거든? 피아노를 샀을 때도 제일 처음 연주를 하는 곡이 큰 의미가 있지. 베토벤은 어떠니. 피아노 3중주인데 「대공」이란 작품이야. 한번 들려줄 테니 듣고 쳐 보지 않을래?>
아버지는 베토벤의 열성 팬이었다. 특히 「대공」을 얼마나 좋아했느냐면 그 음악이 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수십 번 완독했을 정도였다. 그러자 피아노를 물끄러미 보며 요한이 했던 뜬금없는 말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건 이 집에 들어와서 요한이 했던 말 중 가장 긴 호흡의 문장이었다.
<아저씨, 형도 이동준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어 하는데 혹시 말씀은 해 보셨나요? 어려우시면 제가 직접 말씀드려 볼까요?>
그 당시의 수현은 이동준에게 배우는 요한을 보며 부러워하면서도,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접 그를 찾아가 애원하다시피 해서 요한의 연주를 들려주었던 아버지는 막상 수현에 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혹시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런 배움의 욕망이 거세되어 있다고 여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안 그래도 함께 배울 수 있게 부탁해 달라 말을 꺼낼 시기를 재고 있던 차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요한이 먼저 말을 꺼내 주기에 수현은 무척 감격했다. 수현이 눈을 빛내며 아버지의 입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때 마주쳤던 시선을 타고 아버지의 생각이 수현에게 건너 들어왔다.
‘선생님이 평범한 우리 수현이를 가르쳐 주실까?’
그 순간 수현의 가슴속은 깊은 원망으로 사무쳤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비참했다. 그가 머뭇대는 사이 아버진 이렇게 대답했다.
<바쁘신 분이잖니.>
<그래도 제가 부탁드리면 도와주실 거예요.>
요한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건 그가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수현은 아무런 말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세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맥없이 끝났다.
삐릭.
현관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과거라는 바닷속으로 수몰되어 가던 그는 차가운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동이 트기도 전에 수현을 찾아온 것은, 요한이었다. 어머니는 요한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면서 쓰고 있는 비밀번호를 몇 년째 바꾸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었다.
“얘기 좀 해요. 도저히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찾아왔어요.”
몇 시간 전에 봤던 얼굴과 또 달랐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표정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막후에서 군림하면서도 앞에서는 보통 사람인 척 뻔뻔하게 구는 쪽이 훨씬 잘 어울렸다.
천천히 다가오던 요한은 수현의 발치에 엉망으로 깨지고 부서진 실황 앨범들과 책들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다 헤지고 찢어진 데다 끄트머리가 조금 타들어 간 책을 주워 들었다. 표지 부분을 손으로 털자, 촌스러운 명조체로 된 제목이 드러났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표지 디자인보단 내용의 번역에 훨씬 충실한 옛날 책이었다.
“다신 이 집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
작업실로 가서 직접 얘길 해야 하나 고민이 컸는데 그 쪽에서 직접 찾아와 줬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요한은 응답하지 않았다. 반은 타고 반은 찢어진 책에 시선도 마음도 빼앗겨 있는 듯했다.
그래서 수현은 그것을 빼앗았다. 매일같이 그를 찾아가 읽어 주곤 하던 이 책을 태운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라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알아듣지 못하는 척할까 봐 수현은 가장 정확한 말과 표정, 그리고 목소리를 통해 짚어 주기로 결심했다.
“나 이제 네 피아노 필요 없어.”
수현이 요한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의 피아노 연주가 전부였다. 이제 더는 그 어떤 것도, 요한에게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는 의미였다. 이로도 부족할까 싶어 수현은 그를 향해 일축했다.
“내 인생에서 꺼져. 이젠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어.”
“…….”
“이걸로 결별이야.”
이 말은 그대로 돌려줄게.
“너,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아, 넌 태생적으로 감정 결여자라 사랑이 뭔지 모르지.”
결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영원한 귀속을 의미했다. 어떻게든 이번에야말로 결별해야 했다.
동의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굳힌 채 듣고만 있던 요한은, 이윽고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수현은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좁은 거실은 사방이 막다른 곳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가 불신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요한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평소처럼 무표정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읽기란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책을 되돌려 받고 싶은 모양이라, 수현은 반 넘게 그을어 곧 바스러질 듯한 그것을 등 뒤로 감췄다. 이제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었지만 요한이 갖고 싶어 한다면 내주기 싫었다.
요한에게 소설 속 베르테르는 늘 자기 자신이었다. 그래서 수현에겐 어느 순간부터 악몽이 되고 말았다. 우리 관계의 종말로 인해 그가 그 사실을 배울 만큼만이라도 성장하길 기원해 주는 것이, 자신이 요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였다.
“돌려줘요.”
“싫어.”
“억지로 뺏게 하지 말고, 돌려줘.”
“다신 너한테 아무것도 안 뺏겨.”
“그건 내 거야.”
코웃음 치던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내 것, 네 것을 따지는 그의 서툶에 이제 진저리가 났다. 그의 영유아기적 미숙함은 늘 자신에게 상처로 되돌아왔다.
“이건 누구의 것도 아냐. 굳이 따지자면 괴테의 자손들 거겠지.”
쓰레기통으로 다시 예의 책을 내던지려 하자, 요한이 성큼 다가와 수현의 손목을 잡아챘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나마 힘껏 그를 밀어냈지만 허사였다. 늘 그에게 혹사당하는 이 손이 불쌍했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손을 내젓다가 울컥한 수현은 요한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고는 요한의 한쪽 손을 자신의 입 쪽으로 잡아끌었다.
“윽……!”
수현은 요한의 손을 있는 힘껏 물었다. 요한의 오른손에 치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잠시간 그것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 반목이 너무나 지겹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해요. 왜 이 간단한 논리를 이해 못 하지?”
“말이 안 되니까!”
“…….”
“네가 날 사랑할 리가 없으니까. 요한, 그건 사랑이 아니야.”
“내 마음을 왜 네가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난 널 알아.”
“하지만 나만큼은 아닐 거잖아. 내가 사랑이 맞다는데…….”
“설사 네 말이 맞는다고 한들 난 널 이해해 주고 싶지 않아.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다신 너 때문에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다는 거야. 이제 그만 빼앗아 가.”
요한은 기가 막힌다는 듯 하, 하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최대한 자신을 억누르려는 듯 잠자코 수현을 응시하다, 결국 참지 못하겠던지 미간을 찌푸렸다.
“많이 빼앗겼다면, 그 보상으로 날 가지면 돼. 내게 그 정도 가치는 있어.”
그렇다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차마 버리지 못한 세월이 벌써 9년이 넘어갔다. 그러는 사이 끊임없이 그의 불행에 물들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젠 필요 없어.”
“어째서? 넌 피아노밖에 모르는 멍청이잖아. 내가 줄 수 있어.”
기가 막혔다. 그는 이 마당에마저 문제가 뭔지 이해 못 하고 있다. 수현은 그에게 아주 거대해서 절대 잊을 수도, 없앨 수도 없는 엄청난 상처를 남기고 싶었다.
“사람들이 왜 널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아? 네가 쓰레기니까. 넌 영혼까지 다 썩어서 구원이 불가능한 폐기물이거든. 네가 그렇게 가치 있었으면 왜 번번이 버려졌겠어!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돼?”
“…….”
“네 어머니가 옳았어.”
그의 눈빛이 일순 확 바뀌었다. 너무 차가워서 주변의 공기마저 얼릴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짐작하고 또 확인해 왔던 일이지만, 역시나 그의 친어머니는 요한의 기저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가 맞았다.
자신이 아주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관둘 마음은 없었다. 조금만 더 자극하면 그가 돌아 버리리라는 것을 아는데, 왠지 멈추기가 싫었다.
두 사람은 정면으로 마주 본 채 서 있었다.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수현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요한은 미동도 없었다.
“애초에 너 같은 괴물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
“네 숨소리까지 끔찍해!”
그의 얼굴에 비친 이런 표정은 처음 봤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허탈함, 실망감, 암담함 따위가 온통 뒤섞여 있는 듯했다.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생각지 못했던 수현은 잠시 침묵했다. 요한도 말이 없었다. 잠시 손이 느슨해진 틈을 타 수현은 그에게서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목이 붙들리고 말았다. 그는 끔찍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윽……! 미, 미친 새끼. 이거 놔!”
요한은 그대로, 수현의 숨통을 옥좼다. 숨이 막혀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수현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요한이 현관을 열어 둔 채로 들어왔으니 지나가는 사람이 비명이라도 들어 주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자신의 집은 골목의 제일 끝에 있는 외진 곳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지금 분명히 비명을 지르면서 그에게 그만둬 달라 소리치고 있는데, 제대로 된 단어는커녕 흐느낌 섞인 신음 소리만 계속 들렸다.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요한을 밀어내려 했지만, 망가진 오른손은 물론이고 왼손마저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계속 미끄러졌다. 그는 이대로 자신을 죽이려는 것일까. 그 순간의 수현은 너무 살고 싶었다. 이대로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나으리라 종종 여기곤 했었는데, 막상 그런 순간이 도래할 것 같자 생각이 바뀌었다. 몹시 살고 싶었다.
“살, 살려 줘……!”
가까스로 만들어 낸 짧은 단어는 살려 달라는 세 음절이 전부였다. 마구 몸부림치던 수현은 요한에게 매달리듯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귓가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열어 둔 현관 너머로 들려오는 발소리였다. 이 시간에 이쪽을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면 아주 가끔 순찰을 도는 경찰이나 그의 가족밖에 없었다. 아니, 누구라도 좋았다.
제발 누구라도 들어와서 날 구해 줬으면…….
“숨, 막혀……!”
“널 말려 죽이고 싶어. 그래도 돼?”
“악! 놔! 요한……!”
정신이 점점 스러졌다. 숨을 통제당한 수현의 눈가로 눈물이 비쳤다.
“외롭진 않을 거야. 내가 따라갈게.”
“…….”
“사랑해요.”
그때였다.
“요한! 수현아!”
집 안으로 황급히 뛰어들어 온 그의 아버지가 요한을 말렸다. 그러나 중년의 아버지와 폭주하고 있는 요한의 악력 차이는 댈 것이 못 됐다.
본인의 힘으론 요한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주변의 도구들을 살폈다. 마땅한 것이 없었다. 경찰을 부른다 한들 이곳까지 오는 시간만 한참일 것이었다. 그는 일단 112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뒤 급한 대로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마당 한편에 비치해 둔 소화기를 꺼냈다.
구비만 해 뒀을 뿐 직접 사용하려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소방 안전 교육을 할 때 학생들과 함께 들어서 입구의 안전핀을 뽑아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위급 상황이 되자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까맣게 잊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일단 그것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수현은 반쯤 정신을 놓고 축 늘어져 있었다.
“제발 부탁이다. 진정해, 요한……! 수현아! 너도 정신 차려!”
그는 외쳤지만 둘 중 그 누구도 그의 애절한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지 않았다. 잠시간 소화기 입구만 만지작거리던 그는 거실 협탁에 몰래 숨겨 두었던 일회용 라이터를 꺼냈다. 그는 소화기를 바닥에 마구 두드리다가 조금씩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자 주둥이에 라이터의 불을 붙였다.
“요한! 피해!”
펑!
그 순간 압력이 급격하게 높아진 소화기가 거실 중앙에서 터져 나갔다. 순간 돌아본 요한이 터진 소화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들을 눈으로 확인했다. 불이 거실 이곳저곳으로 점점 옮겨 붙어 세력을 늘려 나가자, 그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인 수현을 품에 둘러 안았다.
꺼져 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수현은 자꾸만 감겨 가는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자신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며 요한이 지었던 표정을 눈에 담았다. 그래서 스러져 가는 정신의 끝자락에서도 무척 의아함을 느꼈다. 그건 분명…….
두려움.
“제기랄……!”
나직이 욕설을 입에 담는 요한의 목소리까지가 수현이 기억하는 지난 새벽의 전부였다.
* * *
주말의 인천 공항은 몇 시가 됐든 붐볐다. 새벽마저 마찬가지였다. 토요일 오전은 가장 인파로 붐빌 때였다.
발권을 마친 수현은 면세점이 즐비한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연말연시의 명동처럼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 자연스럽게 섞여 든 그는 대합실에 우두커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셌다. 수면에 빠져들기 위해 양을 세는 관습처럼, 머릿속의 잡념들을 잊기 위해 기계적으로 숫자만 세고 또 삼켰다. 아무래도 별반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비행기 표를 예매한 것은 무척 충동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고 일어났어야 했던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손은 가벼웠다.
며칠 전, 요한과 거의 전쟁을 치렀던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자신은 병원 1인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목 주변에 극심한 통증이 있어서, 간밤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를 만나는 일도 내키지 않았다. 그는 몰래 집으로 돌아갔다. 거실 일부가 불에 탄 꼴이 엉망이었다. 그는 간단한 메모만 남기고는 무작정 짐을 챙겨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그런 뒤 제일 시간이 가까운 버스를 탔다. 타고 나서야 그 버스가 전주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있는 호텔에서 며칠 묵은 그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오늘 이른 아침부터 인천 공항에 와 있었다.
지금 그가 이곳에 있으리란 건 그의 부모님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 자리 있나요?”
수현에게 누군가 말을 건넸다. 그는 옆자리로 한 칸 옮겨 앉았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몇 명의 여자들이 우르르 와 빈자리에 한 사람을 앉혀 두고 그 주위를 에워쌌다.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 갑자기 요한이 이곳에 나타나 자신을 데려가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마저 들었다.
의자들이 죽 늘어선 대합실 중앙 전광판에서는 뉴스가 송출되고 있었다. 주변이 워낙 소란해서 뉴스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의자 등받이에 깊숙하게 몸을 당겨 앉은 수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승요한?”
그의 이름 석 자가 찰나의 향기처럼 귓가를 스쳤다. 설마 여기를 알고 오지는 않았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들려온 발원지는 자신의 바로 옆자리였다. 그들은 전광판의 뉴스를 보고 있었다.
수현의 고개도 천천히 돌아갔다. 영상 속에서 요한의 모습, 그러니까 그의 연주하는 장면이나 수상 장면, 인터뷰하는 장면 등이 편집되어 나오고 있었다. 앵커의 음성이 없어도 자막으로 대충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화면 하단 자막의 푸른 띠에는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속보가 연달아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승요한, 지난 새벽 가드레일 돌진. 교통사고.>
<음주 측정 결과 이상 없음.>
“헉, 죽었대?”
“그런 얘긴 없던데?”
“술도 안 마시고 가드레일을 왜 들이받아? 마약 했나?”
“자살하려고 한 거 아니야?”
옆자리 일행의 대화는 필연적으로 들려왔다. 수현은 귀를 막고,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불행은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자신까지 좀먹어 가는, 아주 끈질긴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을 붙잡기 위한 그의 연극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앞으로는 그를 모르는 척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제 그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때마침 항공편의 출입구 위 전광판에서 프랑스 국적기인 에어프랑스 AF267 운항편의 알림이 깜빡였다. 수현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가 챙겨 온 짐이라곤 여권과 신용 카드, 급히 인출해 온 현금이 다였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출국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탑승한 뒤로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행기는 이륙했다. 천천히 비행기의 몸체가 비상할수록 자신의 온몸도 공중에 떠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창밖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한국 땅을 바라보던 수현은 시트에 뒷머리를 기댔다.
자신은 요한에게 복수하고 제대로 된 결별을 선언하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때 생각했던 세 가지를 본의 아니게 전부 이행했다. 그의 손을 다치게 하고, 폭언을 퍼붓고, 자신까지 다쳤다. 깨끗한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남은 것은 요한의 몫이었다.
이걸로, 우린 진짜 끝일 수 있을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작정하고 결별을 선언했는데, 왜 자신의 마음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불행 한가운데에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그가 애틋하고, 또 증오스럽다. 심하게 다친 걸까 봐 걱정마저 됐다.
허탈함으로 몸을 떨던 그는 앉은 자세 그대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손님, 괜찮으신가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승무원 두 사람이 황급히 그에게로 다가와서 응급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물었다. 그는 손과 고개를 한꺼번에 내저으며 그냥 가 달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걱정스레 지켜보던 그들이 자리를 비키고 나서도, 주변 승객들의 따가운 눈초리는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장소에서 울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건 꽤 난감한 일이었다. 무척 서럽거나 슬프지 않았는데도 쏟아져 나온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한번 터진 눈물샘은 말라 들지 않고 계속 눈가를 흥건하게 적셨다. 아마 요한을 버리고 난 뒤에 흘리고 있는 이 눈물은 아주 농도 짙은 액체일 것이다.
그를 버리겠다고 어렵게 결심한 뒤로 우린 처음으로 진짜 결별을 했는데, 왜 그는 아직도 자신의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떠나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며칠 내내 이상하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 한 가지가 있어 마음이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건, 두려움을 느끼는 듯 하얗게 질려 있던 요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가 결코 그렇게 선명하게 느낄 리가 없다고 여겨 왔던 바로 그 ‘감정’ 말이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말했지만 여태까지 그는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선 안 됐다. 자신의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불편한 진실이 자신을 괴롭힐 게 뻔했으니까. 요한은 모른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수현은 사실 마음에 없는 말을 굉장히 자주 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해 댈 수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
<왜 안 해요?>
<구역질 나니까.>
사실은 몇 번이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로 속고 싶었다.
나는 처음부터 네가 너무 불쌍했어. 그래서 사랑했어. 불쌍해서 사랑하게 됐는데, 그러면 미지근해야 했는데, 난 늘 너무 뜨거웠어. 그게 문제였던 것 같아. 내가 너무 뜨거워서…… 넌 태생이 뜨거워질 수가 없는 사람인데.
나의 독재자.
내가 버린 베르테르.
<널 말려 죽이고 싶어. 그래도 돼?>
있잖아, 요한.
그 순간 너무나 살고 싶었던 나는.
<사랑해요.>
그때,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하마터면 ‘나도’라고 대답할 뻔했어.
아주 잠시였지만 그런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진심으로 생각했어.
실은 지난 한 순간도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
“…….”
그는 여전히 요한을 사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