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 무작정 한국을 떠나온 수현은 사실 조금 암담했다. 혼자 비행기를 탄 것도, 혼자 여행을 온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만국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라면 모를까, 프랑스어라곤 쥬뗌므 정도의 기초도 못 되는 몇 단어밖에 몰랐다. 유럽 어느 나라를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휴대폰도 없는 상황이라 까막눈에 가까웠다.
수현은 일단 공항에서 도심의 지도를 챙겼다. 그리고 라운지에서 메일을 확인했다. 부모님께 아무런 말도 없이 멀리까지 떠나온 게 마음에 걸렸다.
계정에 연결하자 쌓여 있는 스팸들 사이에 드문드문 린이 보내온 것들이 있었다. 「클래시즘」의 원고를 보내겠다고 했었는데 첨부 파일이 있는 메일은 아마 그것들이겠지 싶었다. 수현은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한 뒤 돌아갈 테니 걱정 마시라는 내용의 메일만 아버지에게 보내고 곧바로 라운지를 빠져나왔다. 공항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면서 생각했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서럽게 울고도 비행기가 이륙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잠은 쏟아졌고, 이렇게 한 치 앞이 까마득한 상황에서도 허기는 졌다. 심지어 공항 내부에 입점한 「라 뒤 레」를 보고 수현은 색색의 마카롱까지 몇 개 구매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단걸 먹으면 좀 나아진대요.>
문득 떠오르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공항을 떠났다.
* * *
월간 「클래시즘」.
한국의 클래식 애호가들 중에서도 이 잡지의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클래식은 원체 수요도 공급도 적었다. 잡지사가 자본력 없이 영세할수록 빠른 속도로 업계에서 사장됐다. 손해를 봐도 계속 발간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판매 부수로 재정을 채우기란 불가능한 것이 실정이어서 대부분 광고로 충당을 하는데, 이 광고들도 몇 안 되는 전통 있는 잡지사가 독점하고 있었다. 「클래시즘」뿐만 아니라 다른 작은 잡지사들도 살아남기가 힘든 구조였다.
특히 「클래시즘」은 신생이라 구독하는 유료 회원도 적었고, 광고는 전무했다. 지난해부터 현주가 발로 뛰면서 명함을 건네고 다닐 때, 대부분의 선배 기자들은 그녀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금세 다른 길을 모색하리라고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며칠 사이 이 잡지는 온라인·오프라인 서점의 잡지 코너 예약 판매율 1위를 달성했다. 승요한 덕분이었다. 워낙 클래식계 자체가 척박한 토양이라 그냥 승요한의 독점 인터뷰라고만 홍보했다면 이 정도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사장이자 편집장이자 취재 기자인 현주는 월간 「클래시즘」 10월 호의 헤드라인을 ‘승요한의 연인, S’라고 걸었다. 게다가 최근 승요한에게 있었던 사고가 연인과의 결별로 인한 자살 미수였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요한의 애정 전선은 그간 공개된 바가 전혀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대중의 호기심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요한에 대한 흔한 선입견 중 하나는 그가 금욕적이라는 것이었다. 일례로 지난해 파리에서의 독주회가 끝나고 어떤 클래식 평론가는 자신의 공식 블로그에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겨 꽤 큰 논란을 일으켰다.
<무대 위의 그는 지나치게 금욕적인 인상이라 사제복을 입어도 썩 어울릴 듯했다. 그의 절제된 연주는 꾹꾹 눌러 담아도 결국엔 넘쳐흘러 폭발하는데 …(중략)… 이번 파리에서의 공연은 마치 조물주의 아들인 그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광장에서 피아노와 성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연주한 베토벤은 곧 그의 사정을 의미하며…… (후략).>
이 글은 클래식 커뮤니티들에서 신, 베토벤, 요한 모두를 모독하는 것이라며 한동안 논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녀가 요한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평론가 측이 표현의 자유를 들며 침묵으로 일관한 덕분에 이 일은 결국 흐지부지됐지만 바다 건너 한국까지 소식이 전해져 뒤늦게 우리나라 클래식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만큼 대중들은 어떤 불순물 섞인 욕망과 그를 결부하는 것을 꺼렸다. 그런 여론의 기저에는 요한이 그런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넘겨짚은 각자의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 「클래시즘」에는 그런 편견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인터뷰가 실려 있어 특히 화제가 됐다. 수현은 모르는, 현주와 요한이 따로 만나 진행한 마지막 인터뷰였다. 전문 중에는 놀랍게도 애정이나 섹스에 관한 붉은색 담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잡지가 정식으로 오프라인 서점에 유통되던 날, 요한의 소속사인 클라시스에서 공식 성명이 나와 한차례 더 떠들썩해졌다. 지난번 승요한이 독일에 간 일은 소문대로 S.2의 사장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클라시스 측은 자사의 아티스트가 작곡한, 그리고 앞으로 작곡할 모든 곡을 그의 연인에게 헌정할 예정이며 일체의 권한 또한 그쪽에 있다 밝혔다. 이런 경우는 그들도 처음 다루는 것이어서 관련 법령을 따지기 위해 요한이 한동안 독일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 일로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나 러시아 등지의 클래식계가 떠들썩했다. 왜 하필 여태까지 입도 뻥끗하지 않았던 사적인 영역의 얘기들을 자국의 영세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건지, 잡지사 측의 패기 넘치는 노이즈 마케팅인 건 아닌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 건지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는 무겁게 침묵했다. 그가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만 뉴스에서 간헐적으로 전해질 뿐이었다.
* * *
라벨의 「거울」. 총 다섯 개의 피아노곡으로 구성된 작품이었다. 흔히 파리 하면 이곳에서 귀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활동했던 쇼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수현에게 파리의 이미지는 라벨의 「거울」이었다. 수현은 다섯 개의 곡 중 정오에 파리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를 듣고 영감을 받았다던 마지막 곡 「종의 골짜기」를 가장 좋아했다. 그가 모차르트 다음으로 선호하는 음악가는 바로 그 라벨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의 여유로운 색채가 좋았다. 요한에게는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다. 모차르트를 자주 쳐 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왠지 그가 라벨도 자주 쳐 주지 않을 것 같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다만 말하지 않아도 평소 즐겨 듣는 모습을 보고 이미 들켰으리라는 생각은 들었다.
피아노곡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귀가 아쉬워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뭐라도 들을 수 있게 휴대폰이라도 챙겨 올 것을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다 버스 바깥을 무심코 내다보니, 지나치는 길목 건너편에 작은 성당이 있어 시선을 빼앗겼다. 일렁이는 바람을 맞으며 저기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종소리를 상상하고, 「종의 골짜기」를 떠올렸다. 기분 좋아지는 일이었다.
사실 파리를 방문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요한이 쇼팽 콩쿠르에 출전하기 전 요한, 그리고 이동준과 함께 왔었다. 쇼팽을 건반 위에서 아름답게 풀어내기 위해서 이동준이 조언한 것은 함께 쇼팽이 전성기를 맞았던 파리에 가 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수현은 처음 동행해 달라는 이동준의 부탁을 들었을 땐 학교 수업 때문에 거절했으나 그가 직접 찾아와 몇 번이나 설득하는 바람에 결국 수락했다. 그는 요한에게 좀 더 쇼팽을 이해시키고 싶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는 데엔 수현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돌이켜 보면 그는 요한에게 퍽 좋은 선생이었지만 수현에게만큼은 최악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삐거덕대는 원인, 그러니까 수현의 손을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분명히 눈치챘는데도 늘 모르쇠로 일관하고 요한을 돕도록 종용했다. 원망하는 건 아니었다. 결국 허락한 것은 수현 자신이었다.
당시의 그들은 매일 낮 쇼팽의 발자취를 따라 파리 전역을 돌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쇼팽이 죽기 전 살았던 파리 방돔가 11번지의 아파트 근방이나, 그의 장례식을 치렀던 마들렌 성당, 시신이 안치된 페르라셰즈 묘지 따위를 거닐며 쇼팽이 만들고 연주했을 음악들을 들었다. 그리고 밤에는 쇼팽의 첫사랑과의 이별을 다룬 「이별의 노래」나 숙명의 연인 조르주 상드와의 이야기인 「쇼팽의 연인」 같은 영화를 봤다.
그 1주일간의 여행을 통해 요한은 무엇을 배웠을까. 그가 어떤 예술가의 발자취를 좇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뭘 깨달을 수는 있는 인간인가. 그때 수현의 머릿속은 그런 의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보고, 듣고, 배운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본질적으로 납득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그가 악한 사람이라서라기보단 그의 우주가 자신만을 중심으로 돌고, 또 그게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 감정, 심정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었다. 줄곧 외면하고 있던 진실을, 수현은 자신의 손을 대가로 배우게 됐다.
하필 그 당시는 수현이 가장 심리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다. 어찌어찌 교수님들의 배려로 학기를 보내고는 있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미래가 불투명해 점점 초조해졌다. 원망도 거세어졌다. 모두가 제자리걸음을 하면 상관없다. 문제는 전부 진화하는데 자신만 제자리에 서 있기는커녕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포기하는 게 맞는 일이란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피아노과의 동기와 교수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하루하루 시들어 가고 있었다.
1주일간의 짧은 일정 중 마지막 날에는 마침 그곳에서 약속이 있던 이동준을 제외하고 두 사람만 파리 몽소 공원에 방문했다. 그곳에는 쇼팽과 상드의 모습을 조각한 조각상이 있었다. 자크프로망 무리스가 조각한 것으로, 쇼팽이 피아노를 치고 상드가 듣고 있는 로맨틱한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그 조각상 앞에 섰다. 이동준이 없으니 대화도 뚝뚝 끊겼다. 조각상을 보면서 요한은 자신과 수현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수현은 구역질이 났다.
파리에서의 일정은 그날이 끝이었다. 여기까지만 참으면 된다고 수현이 자위했다. 그러면서 그가 하얀 조각상에 비친 햇살을 응시하며 눈살을 찌푸리자, 요한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단걸 먹으면 좀 나아진대요. 저쪽에 젤라또 가게가 있어요. 갈까요?>
<입 닥쳐. 내가 지금 메스꺼운 건 너 때문이야.>
그때 요한은 재미있는 영화라도 보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수현이 자신을 향해 예민하게 구는 일을 싫어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1주일간의 기억 때문인지 수현은 그 뒤로도 쇼팽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게 됐다.
과거를 반추하며 거닐다 보니 금세 마들렌 성당 근방에 도착했다. 수현은 이 오랜 성당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일전에 함께 왔을 때는 차마 들어가 볼 자신이 없어 되돌아왔다. 수현이 돌아서기에 요한도 그렇게 했다.
이번에야말로 안으로 들어가자 유명한 성모 마리아의 승천 조각상과 그 위의 벽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쇼팽이 죽은 2주 뒤 이 성당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그때 연주된 곡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다고 한다. 죽고 없어진 인간의 영혼을 기리며 진혼곡을 들려주는 것은 망자에 대한, 산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다. 신부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가 울던 모습은 어쩌면 그런 예의의 표현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여행지였으나 아무래도 현명하지 못했던 선택인 것 같았다. 그에게서 잠시 도망치기 위해서 떠나왔는데, 떠나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얽매여 있었다. 몸만이 벗어나고, 온 정신은 그에게 함락당한 그대로인 양 계속 그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남은 삶 동안 그를 생각하는 시간이 사라지긴 하는 것일까. 어쩌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지배당하고, 착취당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암담해진 수현은 빠르게 마들렌 성당을 벗어났다.
* * *
수현의 집과 어머니의 꽃집 앞에 취재진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아직 병원에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었고, 아버지 쪽도 수업이 끝나면 도망치듯 병원으로 퇴근하기 일쑤였다.
악운이 겹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강남 경찰서에 출입하던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요한과 웬 중년 여성이 함께 탄 차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듣게 된 모양이었다. 독일에서 한국에 올 때 요한이 양어머니가 꽃집을 한다고 말했던 일 때문에 두 사람의 연관 관계는 아주 쉽게 예측됐다. 불씨를 키우기라도 하듯 때마침 「클래시즘」의 인터뷰에서 요한이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이 가족은 하루아침에 대중에 공개돼 며칠째 고초를 겪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요한까지 사고를 입은 터라 독일의 클라시스는 직접 진화에 나섰다. 국내의 한 병원과 접촉해 말을 맞추고 그가 해당 병원 VIP실에 입원해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승요한을 찾는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한 린의 계책이었다. 실제로는 작업실로 직접 의료진을 파견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을 린과 김 비서가 번갈아 가며 지켰다.
현주는 현주대로 불편했다. 잡지의 유명세가 올라가는 것이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본의 아니게 수현의 부모님이 겪고 있는 불편이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원고를 넘겼을 때 린이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고 분명히 경고했었는데 흘려듣고 강행한 결과였다. 수현이나 가족에 관한 정보들은 전부 각색을 했으니 들킬 리가 없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클래시즘」의 인터뷰는 전적으로 요한의 의사였기 때문에, 린은 위험 부담이 있으리란 것을 예상하고도 더는 반대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 듯했다.
퇴원 후 기자 회견이 있을 것이다, 은퇴 선언을 할 것이다, 손에 문제가 생겨 더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오래된 연인이 갑작스러운 결별을 선언했을 것이다……. 요한에 관한 루머는 황색의 향연이었다. 소속사인 클라시스의 발표와 잡지의 내용을 기반으로 저마다 추측한 결과였다.
클라시스는 은퇴와 관련한 소문에 대해서는 헛소문이라며 일축했다. 전속 계약을 한 요한이 지금 계약 해지를 하면 감당해야 할 위약금은 천문학적인 액수이며, 그런 문제를 떠나 당사와 아티스트 간의 신뢰 관계는 무척 두텁다는 논리였다.
그 성명 외에는 줄곧 묵묵부답이었다. 침묵의 실을 짜다 보면 그 실로 짠 이불이 결국 허공을 덮기 마련이었다. 요한이 가십으로 소비되는 것은 지금 한국에 있기에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이란 것을 파악하고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여기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 몰래 수현의 집으로 찾아간 현주는 대문을 두드렸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는데도 아직 드물게 기자들이 있었다. 현주를 향해서도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불씨를 던진 것은 자신이었으니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 찾아왔는데, 오늘도 역시 안 되려나 싶었다.
“계 기자님, 들어오세요.”
포기하고 돌아서려던 차였다. 대문이 덜커덩, 열렸다. 그녀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는 파리한 얼굴의 남자가 그녀를 마중 나와 있었다. 마음고생이 워낙 심한 듯 혈색이 없고 창백했다. 현주는 들어서자마자 허리를 깊이 숙여 사과부터 했다.
“면목 없습니다. 이제 와 제가 사과드리는 게 의미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꼭 한번 찾아뵙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정말 이렇게 이 가정이 만천하에 공개될 줄은 몰랐어요.”
요한이 수현의 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 못 했던 변수였다.
“압니다.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궁금한 게 있어서 들어오라고 했어요.”
이미 그녀를 대접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 그는 차와 간단한 다과를 내왔다. 두 사람은 군데군데 그을린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뜨거운 차가 식을 만큼 한참이나 침묵했다.
“저, 어머니께선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얼마 전에 의식도 찾았고요.”
“그러면 궁금하신 거라는 게…….”
“요한이가 이런 얘길 다 실어도 된다고 허락한 건가요?”
그는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던 현주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자리에 월간 「클래시즘」 10월 호 두 부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겉면이 헤질 정도인 것을 보니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 본 게 아닌가 싶었다.
저 안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평범하고 고지식한 중년이 읽기에는 수위가 지나치게 적나라했다. 자신의 취재, 편집, 출간이 삼위일체가 된 잡지이기 때문에 그녀의 취향 그대로 기사에 여과 장치가 없었다. 첫 만남, 처음 관계를 가졌던 날, 약간의 각색을 가미했으나 수현의 꿈을 앗아가 버린 일들 따위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수현의 부모님이 보기엔 내용이 적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첫 번째 인터뷰는 대중, 두 번째 인터뷰는 수현이 표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터뷰는 그녀가 느낀 바로 분명 수현의 부모님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인터뷰를 하면서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형에게 보낼 때, 부모님께도 한 부 보내 줄래요?>
요한이 수현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한국의 힘없는 초보 미디어를 선택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독일 유수의 언론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독어로 된 기사를 부모님이 읽을 일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뉴스를 통해 듣게 된대도 본인의 의도가 명확히 전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현주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 중 가장 다루기 쉽고 편리한 도구였다.
그에게 큰 호의를 가지고 있었고, 수현과 동기라는 접점이 있어 접근하기 쉬웠으며, 데스크에서 내용을 검열하는 일반 잡지사와 달리 자신의 입맛대로 기사를 싣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그녀가 웬만한 일로는 끄떡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쟁취해 내리라는 것을 그는 분명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수현이 그녀를 싫어했다. 그는 그 사실을 재미있어했다.
“왜 이런 일을 벌인 건지도, 기자님께 말을 했습니까?”
“아뇨.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짐작 가는 바는 있습니다.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요한은 꼭 부모님을 시험하려는 것 같았어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막판에 가선 두 분께서 특히 불편해하실 얘기들을 아주 많이 했거든요.”
“우리한테 자기 입장을 확실히 알려 주고 싶었다는 얘기군요.”
“네. 하지만 반응을 보니 요한과 수현이의 관계를 짐작하고 계셨던 것 같네요.”
“…….”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전부 알게 되면 두 분은 수현일 지키기 위해 자기 손을 놓을 거라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럼 또 버려지는 셈이니까 수현이만큼은 자길 영영 못 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걘 워낙 본성이 순하니까요. 물론 이건 전부 제 추측이에요.”
요한은 포식자였다. 그와 같은 맹수에게 수현처럼 순진한 인간들은 먹잇감이 되어 잡아먹히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수현인 강한 애예요. 그 앤 요한일 견뎠죠. 자기한테 닥친 불행들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착하지만, 순한 앤 아닙니다.”
그의 가족은 그가 착하고 강한 마음을 지녔다는 이유로 어쩌면 쭉 방치해 왔는지도 모른다. 울타리가 필요할 때 그를 보호해 주지도 않고 오히려 외롭게 만들면서 말이다. 불같은 성미의 그녀는 왠지 수현을 대신해 화내 주고 싶어졌다. 사과하겠답시고 와서 할 일은 결코 아니었지만 이미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강한 애라 견뎠다고요? 혹시 부모님께서는 여태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수현이를 방치하신 건 아닌가요?”
“…….”
“걔가 다치기 전에 구해 주셨어야죠. 애가 참고 견디기 전에 애를 위험으로부터 격리하셨어야 했어요. 그게 부모 역할이잖아요. 예전의 수현이는 훨씬 긍정적이고 밝은 애였다고 들었어요.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지금 그 애 얼굴을 보세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신가요?”
힐난을 듣는 내내 그는 양손을 맞잡고 만지작거렸다. 늘 가장 뼈아픈 것은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었다.
“맞아요. 무슨 말을 하든 전부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현인 요한일 사랑하니까. 참견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하도록 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말도 안 돼요!”
현주는 늦은 시간이라는 것도 잊고 목청껏 소리쳤다. 요한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명확했다. 수현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현의 마음 또한 명확하다고 생각해 왔다. 요한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 수현의 아버지가 하고 있는 말들에 대해선 금시초문이었다. 마음이 급한 현주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한참을 손을 만지작대던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수현인 요한일 여전히 좋아해요.”
“설마요…….”
“동시에 죽을 만큼 미워하죠.”
“…….”
“그 애가 지금 힘든 건, 그런 자기가 싫기 때문이에요. 기자님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우린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수현일 이해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도 그러니까. 내 아들을 다치게 한 게 또 다른 내 아들이라는 걸, 기자님은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경악한 현주는 말을 잊지 못했다. 할 말을 모두 마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처음 빈손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막막했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 이곳에 왔는데 막상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이상하게 머릿속이 잡생각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수현은 탈출 방법을 모색했다. 몸을 바쁘게 만들어 정신을 빼놓는 것이었다.
그는 과거 오페라 공연으로 유명했던 유럽 각 지역의 극장에 가 보기로 결정했다. 이미 사라진 극장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오페라 공연을 상연하는 곳도 물론 있을 터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역사가 깊은 건물들이 많고 문화 유적지들도 보존이 잘되어 있어서 헛걸음을 하는 일이 적으리라. 딱 떠오르는 것은 빈이나 밀라노의 오페라 극장들이었으나, 지금 그가 있는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지금은 음악 강국의 위상을 독일이나 러시아 등지에 내어 줬지만 19세기 후반의 파리는 음악가들이 진출해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던 꿈의 무대였다. 파리에도 당연히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들이 있었다. 특히 오페라 가르니에는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했다.
간밤에 그곳에 들러 보기로 결심한 수현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 노선도에서 오페라 역을 찾은 그는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위치상 며칠 전 갔던 마들렌 성당과도 가까웠다.
그는 도착한 그곳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꽤 발견했다. 생각보다 좁은 도시인 파리는 어느 곳에 가도 한국어를 듣기가 쉬웠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그랬던 것이다. 멀리 타국에서 듣는 모국어는 반갑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파리가 생각보다 더러워서 실망이라느니, 의외로 음식이 입에 잘 안 맞는다느니 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화려한 건물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의 귀에, 익숙한 어떤 이름이 들려왔다.
“……래시즘인가? 처음 듣는 잡지인데 동네 서점 다 둘러봐도 재고가 없대서 난 온라인판으로 봤어. 작품 번호, 승요한의 S가 아니라 그게 자기 여자 이니셜이래. 앞으로 만들 모든 곡들도 전부 헌정한다고.”
“자기 엄마 같은 여자인 거 아냐? 콤플렉스 있을 만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결혼도 안 한 사이에, 자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클 줄 알고? 그럼 그 저작권료가 다 얼만데 걔 진짜 정신 나간 거 아니야?”
S.
수현은 멈춰 섰다. 당연히 승요한의 S가 아닌가. 그간 한 치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자신은 그에게 이니셜을 새겨 선물한 핀에 S가 아니라 J라고 적었다. 성인 승은 본래 그의 것이 아니고 이름인 요한만이 그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클래시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으나, 뒤늦게 그 내용들이 궁금해졌다. 가르니에의 안으로 들어가려던 수현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파리에 있는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국립 도서관인 미테랑 도서관이었다. 여권을 맡기고 잠시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을 번 그는 뉴스부터 검색했다.
요한은 아직 사고 후유증으로 병원에 있다는 것 같았다. 내용들은 크게 깨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사고로 인해 손을 다친 듯하다는 뉘앙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죄다 정확한 사실 관계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추측성 기사들이었다.
그는 메일을 확인했다. 목록에서 린이 보냈다던 원고를 찾다가 우연히 현주의 이름으로 온 메일을 한 통 발견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승요한 1, 2, 3차 인터뷰 전문>
내용은 짤막했다.
<기사에는 각색이 많이 들어갔거든. 그래서 원본을 보낸다. 한번 읽어 봐. 요한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질 거야. 현재 요한은 잠적했고, 어머님은 깨어나셨어. 괜찮으시대. 널 많이 걱정하고 계셔. 넌 지금 어디 있니?>
워드로 된 첨부 파일을 열어 전문을 인쇄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정해 책상 귀퉁이를 손가락 끝으로 연신 매만졌다. 정신없이 계속 왼손을 혹사하자 손끝에 열이 오르고 상처가 났다. 통증이 아릿하게 느껴질 때쯤 그는 일어섰다. 몇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누가 앉아서 자신만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한 죄악감에 시달렸다. 그는 도서관 근방에 있는 가게들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으로 들어가 구석 자리에 몸을 숨겼다. 메뉴판에 있는 제일 첫 번째 음식을 주문하고, 대략 몇 장이나 되는지 확인하려 뒤로 한참을 넘겼다.
그사이 주문한 메뉴가 나왔으나 손도 대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먹을 수도 없는 달팽이 요리였다. 주변 정리를 못하는 성격은 이곳에서도 십분 발휘돼서 음식이 차지한 자리보다 종이가 차지한 자리가 더 많았다. 잠시 고정하려 물 잔을 올려 둔 몇 장의 종이 위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수현은 잉크가 흐려진 부분부터 눈으로 살폈다.
A. 그 불안을 섹스로 보완하는 거예요. 서로가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던 감정을 확인할 수 있어요. 말초 신경이 자극되고…… 원시적이잖아요. 본심을 감추기가 어렵죠. 아, 나랑 이렇게 얽혀 있는 게 메스껍구나, 혼란스럽구나, 혹은 이 부분이 가장 잘 느껴지는구나 하는 것까지도 전부.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그게 뭐든.>
“읏……!”
젖지 않은 종이를 만지작대던 수현은 손끝을 날카로운 끄트머리에 베이고 말았다. 아까 도서관에서 책상 모서리를 쓸어내릴 때부터 부어 있던 약지였다. 종이 위에 핏방울이 조금 맺혔다. 마치 먼 곳에서 이 내용을 읽고 있는 그에게 요한이 내리는 벌 같았다.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던 그는 냅킨으로 대충 닦아 내고 다시 기사를 읽었다.
A. 언제든지 피아노를 버릴 거예요. 지금 당장이라도 좋겠군요.
Q. 당신의 연주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낄 거예요.
A. 난 그 사람 때문에 피아노를 치게 됐으니까요.
Q. 하지만 그 사람은 그걸 모른다면서요?
A.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Q. 왜요? 다 얘기해 버리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나 때문에 처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는 건 너무 설레는 일이잖아요.
A.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믿거든.
Q. 왜 S는 당신을 안 믿을까?
A. 아, 이런 얘긴 재미없다.
Q. 그럼 그 사람 때문에 피아노를 치게 됐다는 그 이야기로 돌아가 봐요, 우리.
A. 음, 친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던 날에, 처음 만났어요. 아니, 내가 처음 S를 훔쳐봤다고 하는 편이 맞겠군요.>
거기까지 읽은 수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생모가 사망한 것은 요한이 여덟 살이던 해였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 속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그보다도 한참 뒤인 그가 열 살이던 해의 일이었다. 수현이 그를 처음 봤을 때, 요한은 이미 ‘가끔 성당에서 피아노를 치는 천재’였던 것이다.
수현은 젖은 종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동그랗게 손가락 끝에 맺혀 있던 핏방울이 종이 위로 번졌다.
어쩌면 이 인터뷰에는 요한이 자신에게 몰두하는 이유에 대해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글자 위에 맺힌 핏자국을 누르자 그 위에 지문이 꾹 찍혔다. 마치 요한의 회고록을 자신이 읽기 시작했다고 날인하듯 말이다.
이윽고 제일 첫 장으로 시선을 되돌린 그는 전문을 차분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