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태어났을 때부터 요한에게 아버지는 없었다. 생물학적 친부가 있다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알았다. 이 세상에 어머니와 같은 성인 여자, 자신과 같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성인 남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아버지가 아니라 집에 찾아오는 남자들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에둘러 말하자면 술 따르는 여자였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창녀쯤 되리라. 가끔 찾아오는 남자들과 좁아터진 단칸방 안에서 무언가를 하느라 바빴는데, 그럴 때마다 아들인 요한을 방구석에 있는 조그만 문 안쪽에 가둬 놓았다. 그리고 한참 후 남자가 돌아간 뒤에라야 그곳에서 꺼내 주었다.
먼지가 뿌옇게 낀 그곳은 방에서 분리된 창고 같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곳을 창고 방이라고 불렀다. 몸집이 작은 요한마저 어깨를 구기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비좁아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금세 숨이 막혔다. 그곳에는 다 낡아 빠진 텔레비전이 한 대 있었다.
처음에는 스위치를 누르면 그것이 켜지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전원이 켜지고 화면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그는, 그 뒤로 어머니가 없을 때마다 창고 방 안에 들어가서 텔레비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곤 했다. 눈동자를 굴려 그것을 응시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가 자신을 가둬 놨을 때는 텔레비전 전원을 켤 수가 없었다. 자신을 좁은 곳으로 밀어 넣으며 어머니가 종종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입 닥치고 얌전히 있어.>
<…….>
<그게 싫으면 혀 깨물고 죽든지.>
작은 문의 틈새로 방 안이 들여다보였다. 그래서 요한은 종종 집에 찾아오는 남자들의 얼굴을 관찰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자신을 감추고 있다는 느낌은 비슷했다. 개중 어떤 한 사람만이 달랐다.
멀끔한 차림새의 남자는 어린 요한이 보기에도 잘 배운 학자 같았다. 그는 어머니가 방 안에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최초의 상대이자 때론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가는 단 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어머니에게 존댓말을 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남자를 ‘손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남자가 쳐다보면 그녀는 ‘사랑해요’라고 뒤이어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집에 오면 그날은 새벽이 다 되도록 방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올 때의 어머니는 요한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먼지가 풀풀 날려 숨이 막히는 공간에서 동이 튼 새벽녘에야 깨는 게 부지기수였다.
어머니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게 분명한 고전 문학이나 클래식 따위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남자를 향해 눈을 빛냈다. 그러면 그는 모차르트니 베토벤이니 차이콥스키니 운운하며 휴대용 CD 플레이어로 낯선 음악을 켜고 일장연설을 늘어놓곤 했다.
요한은 그 조화로운 음정들이 무척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도구가 내는 소리인지, 어떤 방식으로 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어머니에게 설명하면 말하면 ‘아, 그런 제목이구나’, ‘아, 그런 내용이구나’ 하고 이해할 뿐이었다. 그리고 기억에 의하면 그가 어머니에게 처음 들려줬던 곡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문득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던 그는 남자가 돌아가려고 하자 문간을 건너 좁은 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리고 아주 또박또박 물었다.
<아까 그게 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란 음악이죠? 모차르트가 누구예요? 어떻게 하면 다시 들을 수 있는지도 알려 주세요.>
그때 남자가 지었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하얗게 질린 어머니와 어린 요한을 번갈아 보며 머뭇대던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들이 있단 얘기는 없었잖아요.>
<아들 아니에요, 선생님! 이렇게 그냥 가지 마세요!>
붙잡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빠져나간 ‘선생님’은 그 이후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그날이 요한에게 어머니가 처음으로 직접 폭력을 행사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늦은 밤 술에 취한 그녀는 남자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자리끼 주전자로 요한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요한은 물끄러미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요한이 울지 않자 더욱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얘, 넌 왜 울지도 않니? 그렇다고 웃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야.>
<…….>
<네가 내는 숨소리까지 끔찍해……. 대체 왜 태어나서 내 인생을 망쳐?>
그날 이후, 어머니는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도 요한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물리적 행위였을 때도 있었고, 저주에 가까운 폭언일 때도 있었다. 가뜩이나 요한을 못마땅해하던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불행의 원인을 요한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날이 더워서, 기분이 우울해서, 하늘이 흐려서, 날벌레가 방에 들어와서. 핑계는 그때그때 만들어 내면 그만인 일이었다. 어린 요한은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울지도 않고 그저 그 모든 학대를 견뎠다.
요한이 묵묵히 참으면 참을수록 어머니는 더욱 소름 끼쳐 했다. 때로 그녀는 요한을 예의 그 창고 안에 며칠 가둬 두고 굶겼다. 그러고는 자신은 방 한가운데에서 술을 마셨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단칸방에는 반쯤 비운 술병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하면 요한은 그제야 조심스레 고물 텔레비전을 켰다. 송출되는 채널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그는 교육 방송 따위에 채널을 고정하고 하염없이 그것만 쳐다봤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더운 여름날 낮, 요한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일을 밤에 시작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요한의 수면 시간은 늘 밤낮이 뒤바뀌어 있던 차였다. 단칸방의 중앙에는 어머니가 안주로 곁들일 라면 물을 올리기 위해 버너에 불을 올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 잠을 설쳐 비몽사몽간에 눈이 떼꾼했다. 그런 그녀의 몇 뼘 근처인 한쪽 구석에 요한이 누워 있었다.
선풍기를 틀어 놓았지만 공기는 이상하게 후덥지근했다. 어제 새벽 겨우 창고 방에서 꺼내진 요한은 그날따라 신열에 들떴다. 늘 말수가 적었던 아이의 입이 잠결에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녀는 아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호기심이 일어 입가에 귀를 대고 들었다. 아이가 만들어 낸 단어들은 어설프게 문장이 됐다.
<……그만 좀 울어…….>
동시에 아이가 번쩍 눈을 떴다. 아이는 두 귀를 손으로 막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횡설수설 내뱉었다.
<너무 시끄러워……!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또 그놈의 환청 들린단 소리야?>
지겹다는 듯이 고개를 저은 그녀가 돌아서려던 때였다.
<신부님, 엄마가 절 죽이려고 해요. 제발 살려 주세요…….>
횡설수설하던 아이는 헐떡였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이는 엄마인 자신보다 안 지 겨우 반년이 될까 말까 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성당의 신부를 더 따랐다.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 입으로 직접 자신으로부터 구해 달라는 소릴 듣자 피가 거꾸로 솟았던 모양이었다. 여태 없는 살림에 버리지 않고 먹여 주고 키워 주며 길러 낸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 여겼는지도 몰랐다.
마치 넋이라도 빠져나간 사람처럼 눈가가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는 온몸의 하중을 실어 아이의 가녀린 목덜미를 짓눌렀다. 쿨럭, 아이가 잔기침을 터트렸다.
<엄마…… 살…… 려 주세요……!>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작은 몸이 한참 바르작거렸다. 연신 헐떡이던 아이의 숨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녀는 아이의 코끝에 손가락을 대 호흡을 확인했다. 아주 미약하게 숨결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있는 대로 짓누르려던 차였다.
삐익, 하고 버너 위에 올려 둔 낡은 양철 주전자가 신음했다. 그녀가 버너의 불을 끄려고 고개를 돌리자,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낸 요한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의 몸을 밀고, 그대로 달아났다. 살기 위해 열심히 몸부림쳤다.
밖으로, 밖으로 내디뎠다.
<얘……!>
아이는 이름이 없었다. 신부님이 요한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아이도 만족해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그 이름으로 불러 준 적이 없었다. 자신이 지어 준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얘, 얘 하고 여러 번 소리쳤다. 양철 주전자 위로 얼굴을 처박는 바람에 얼굴이 바싹 타들어 갔다.
<얘……! 안 돼! 가지 마! 119에 전화……! 전화해 줘!>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뛰어나가던 요한은 잠시 돌아봤다. 그녀는 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진 라면 면발 위에 누워서 몸을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놀란 그가 다가가서 어머니의 얼굴을 물로 씻겨 주자, 그녀는 그대로 아이의 발목을 붙잡고 뜨거운 주전자 안으로 처넣었다.
<차라리 같이 죽어!>
<악……! 뜨거워요!>
이번엔 요한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칸방에서 도망쳤다. 그녀가 또다시 불렀지만 더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문 밖으로 뛰어나온 요한은 앞만 보고 한참을 달렸다. 맨발은 화상을 입어 잔뜩 붉어져 있었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서 계속 까지고 진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었다. 머릿속에는 신부님이 자주 읊어 주던 주기도의 한 구절이 귓가에 날벌레가 맴돌듯 윙윙 맴돌았다.
악에서 구하소서.
악에서 구하소서.
악에서 구하소서.
<신부님!>
성당에 도착한 요한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소예배실 건물은 외관이 낡았지만 기이한 위엄이 있었다. 그 앞을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 마리아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홀린 듯이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던 요한은 커다란 창문 너머로 어떤 사람들을 보았다. 승국환 신부였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신부님 또래의 어떤 나이 든 여자, 그리고 자신 또래의 한 소년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무척 애틋하고 다정했다. 요한이 아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저런 게 아니었다. 그러나 소년은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여자를 분명히 ‘엄마’라고 불렀다.
<엄마, 예배 때 반주해 주던 대학생 형 이사 갔대. 신부님, 앞으로 제가 하면 안 돼요?>
<하지만 성인 미사에 초등학생이 반주를 했던 적이 없는데…….>
<신부님, 저 되게 잘 쳐요. 보실래요?>
소년의 두 손이 낡은 피아노 위에 부드럽게 얹혔다. 요한은 창문 밖에서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건반을 두드리는 작지만 강단 있는 손. 그것들은 어떤 화음을 만들어 냈다.
<……!>
‘선생님’이 방에서 틀어 놓던 레코드에서 나는 소리와 똑같았다. 다만 녹음된 연주와 달리 소년의 연주는 빈 곳도, 실수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요한이 태어난 이래로 들었던 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음악 자체는 남자가 즐겨 틀던 예의 모차르트나 베토벤보다 풍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주할 때 소년이 짓고 있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틀려도 주눅 들지 않고, 어설퍼도 위축되지 않았다. 만약에 신부님이 늘 말하던 사후 세계의 천국이란 곳이 있다면 그곳에선 이런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곡은 꽤 우울한 느낌이었는데, 그걸 치고 있는 소년의 표정이 어찌나 행복해 보였던지. 우울이나 근심 같은 비극적 정서들이 소년의 손을 통해 정화되는 것만 같았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빛의 번짐이 소년의 주변을 반짝반짝하게 빛냈다. 요한은 그 소년의 모든 것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담았다. 매분 매초를 하나씩 프레임으로 쪼개 머릿속에 새겼다. 소년의 연주가 끝나자 그의 어머니가 너무나 기특하고 사랑스럽다는 듯이 꼭 끌어안아 주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뺨에 입을 맞추자, 소년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웃었다.
신부님을 포함한 세 사람은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인영들이 밖으로 나오자 요한은 담벼락 뒤로 몸을 숨겼다. 두런두런 대화하는 목소리들과 함께 세 사람은 멀어졌다. 아마 신부님이 그들을 배웅하는 것 같았다.
요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양손으로 자신의 무릎 위를 건반 삼아 소년이 했던 연주를 따라 치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 최대한 정확하게 치려 애썼다. 물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요한의 귀에는 아까 전의 음악이 분명하게 다시 들렸다.
소년이 작은 손으로 이 부분을 눌렀을 땐 이 소리가, 저 부분을 눌렀을 땐 그 소리가 났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이마에서 타고 흐른 땀이 뚝, 떨어져 발밑의 모래로 파고들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요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 요한이 아니냐?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그 앤 누구예요?>
<아, 본 모양이지? 수현이라고, 너보다 두 살 형이야. 더우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설득하는 대신 요한의 곁에 나란히 앉는 것을 택했다. 워낙 더운 날씨 탓에 신부의 이마에도 금세 땀이 맺혔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신부님, 아까 그 애가 친 곡, 제목이 뭐예요?>
<난 클래식에는 문외한이라. 제목을 들어도 금세 까먹거든. 브람스의 뭐라고 했는데……. 피아노 무슨 음악이란다. 학교 친구들이랑 축제 준비를 하고 있다던데?>
<피아노?>
<저 악기 이름이야. 그런데 요한, 왜 맨발로 온 거야. 신발은 어쩌고.>
<엄마한테서 도망쳤어요.>
사제는 침묵했다. 지켜본 바로 그녀는 결코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 오히려 최악의 부모를 꼽는다면 몇 손가락 안에 들 것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아이를 뜨거운 방 안에 방치해 두는 바람에 병원에 데리고 갔던 것이 자신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듣는 앞이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천천히 요한의 맨발로 손을 뻗다가, 움찔했다. 발등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플 것 같았다. 그는 아이의 복사뼈 부근에 있는 우둘투둘한 상처를 손으로 부드럽게 두드렸다. 원래도 아이의 깡마른 몸은 그녀가 가하는 크고 작은 폭행으로 성한 날이 없었다. 심할 때는 뜨거운 물을 끼얹어서 화상을 입게 한 적도 있었다.
사실 맨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땐 경찰을 불러 학대를 막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지구대의 경찰은 가정 내의 문제에 개입하는 데 대단히 비협조적이었다. 게다가 그의 신고로 경찰이 다녀갔던 다음 날, 요한은 더 큰 폭력에 시달렸다. 그 뒤로 그는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요한을 위하는 일인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발이 잔뜩 부었구나. 또 무슨 일이 있었니? 네 엄마가…… 또 뜨거운 물을 뿌리던?>
<목을 졸랐어요. 이번엔 진짜 절 죽이려고 했어요.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간 죽일 거예요.>
깜짝 놀란 그는 요한의 목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아이의 가녀린 목에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없던 새빨간 손자국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크고 작은 손톱자국들도 함께였다. 여자의 악력으로 이 정도 자국을 남겼을 정도라면 적어도 수 분은 아이의 목을 움켜쥐고 계속 졸랐을 것이었다. 그는 황급히 요한의 손을 붙들어 일으켜 세웠다.
<우선 치료부터 하러 가자꾸나.>
<도망쳐 나오다가 제가 엄말 다치게 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가 절 또 괴롭힐 거예요. 그냥 신부님이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되나요? 저 정말 얌전히 지낼게요.>
<하지만 요한…… 하, 그래. 일단 널 치료하고, 어머니도 도와 드린 뒤에 이 얘기는 다시 해 보자.>
<그러면 지금 엄마한테 가서 절 데려가신다고 말씀해 주세요. 제발요.>
소예배실 안으로 뛰어들어 간 사제는 신발 한 켤레를 들고 나왔다. 종종 성당에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후원 물품이 들어오곤 했는데, 그것들 중 하나였다. 다만 요한의 발에 딱 맞지는 않았다. 헐렁이는 신발을 신은 요한이 앞장섰다. 소예배실 안으로 함께 들어가 치료부터 해 주려 했던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결심한 듯 요한을 잠자코 뒤따랐다.
빠르게 걸은 두 사람이 요한의 집 근방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화염에 전소되어 가는 집을 발견했다.
<요한! 이게 무슨 일이냐? 안 돼, 이리 와. 거기 가까이 가면 안 돼!>
그는 홀린 듯이 불꽃을 향해 다가가던 요한의 손을 붙들었다.
<엄마가 저 안에 있어요.>
<일단 119에 전화를…… 근처 가정집에 가서 내가…….>
<혹시 이대로 두면 엄마가 죽나요?>
<아주 위험하지!>
<이미 죽었을 수도 있나요?>
<그건…….>
그가 힐끗 불길을 살피자 이번엔 요한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빨간 화염을 가만히 응시하는 표정이 기묘했다.
<그러면 그냥 죽게 두면 안 돼요?>
깜짝 놀란 신부는 요한을 빤히 내려다봤다. 상처투성이의 어린아이가 그를 간절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짧게 갈등하다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얼굴에 그늘이 새카맣게 내려앉았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일 것이었다. 하지만 요한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것밖에 안 떠올랐다. 아이를 구하고 자신이 지옥에 갈 수 있다면 그걸로 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사제는 차라리 안에서 그녀가 죽어 있기를 바랐다.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낡은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는 금세 옆으로 전이될 조짐이 보였다. 그 바람에 고요하던 동네가 소란해졌다. 인근 지역이 발전한 것에 비해 많이 낙후된 달동네라 노인 인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들은 뒤늦게 하나둘씩 나와서 화재 현장을 지켜보았다. 신부는 요한에게 붙잡힌 손에 꽉 힘을 주었다.
<저 화냥년 집에 불났잖아요! 옆집까지 다 타게 생겼네. 신고했어요? 누구 신고하신 분!>
한 중년 남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소리치던 남자는 휴대폰으로 119에 직접 신고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제는 요한을 데리고 천천히 뒷걸음질했다. 무척 괴로운 얼굴로 화염을 지켜보다가, 문득 요한을 내려다봤다. 아이의 어머니는 늘 요한이 웃지도, 울지도 않아 소름 끼치고 무섭다고 말해 왔다. 신부도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나 짓는 표정이 썩 다양하지는 않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요한은 지금 분명 소리도 내지 않고 울고 있었다.
<요한…… 괴롭니?>
그는 꿇어앉아 요한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힘주어 끌어안았다. 요한의 손이 천천히 사제의 등을 마주 안았다.
대답은 한참 뒤에 이어졌다.
<신부님, 저 피아노를 가르쳐 주세요.>
<…….>
<저도 그 애처럼 되고 싶어요.>
* * *
인터뷰 전문을 모두 읽고 난 수현은 의자 등받이에 편안히 등을 기댔다. 그의 어머니가 평범한 부모처럼 대해 주지 못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심각한 학대를 가했을 줄은 몰랐다. 요한이 과거 일에 대해 좀처럼 말하려 하지 않는 이유도 어렴풋하나마 알 것 같았다. 요한의 불면증도 이해가 됐다. 그의 말이 전부 거짓 없는 진실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수현은 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요한이 무척 솔직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본인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수현과의 사연들을 털어놓은 전문을 모두 읽고 보니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아마 기사상에는 최대한 완곡하게 각색되어 실렸을 것이다. 그가 두렵다던 현주가 굳이 자신을 위해 원본을 보내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문득 자신이 잠든 요한의 목을 조를까 말까 고민하며 손을 뻗었던 일이 떠올랐다. 신부님의 기일이었다. 그때 그가 보인 반응은 지나치게 덤덤했다. 그는 어머니와 똑같은 짓을 하는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며칠 전에는 그런 그녀가 옳았다며 그녀가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일 또한 떠올랐다. 그 말을 들은 요한의 눈빛이 지나치게 차갑게 식어 간다고 느꼈다. 그때의 그는 수현에 대한 강렬한 미움으로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인터뷰 몇 글자를 읽고 그의 과거를 알게 된다 한들 이미 결별을 선언한 자신의 생각이 180도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늘 그를 양치기 소년 취급해 왔던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무겁고 갑갑해졌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는 여전히 나쁜 놈이지만, 최소한 자신이 생각해 왔던 것처럼 거짓말쟁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현은 꽤 동요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다.
가게를 빠져나온 수현은 호텔로 돌아가 체크아웃부터 했다. 그런 뒤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브람스 「피아노 4중주」를 치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수현은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들렀던 소예배실에서 자신은 공석이 된 반주자를 시켜 달라고 조르다가 그 곡의 1악장 피아노 부분을 연주했었다. 학교 친구들과 축제 준비를 하던 것도 모두 맞았다.
왜 그렇게 그가 브람스의 「베르테르」에 목숨을 거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줄곧 그가 동명의 소설 속 주인공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수현이 틀렸다. 요한에게 베르테르는 자기 자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억지로 뺏게 하지 말고, 돌려줘. 그건 내 거야.>
S.
그리고 베르테르.
전부 수현이었다.
* * *
불어와 마찬가지로 독어는 ‘이히리베디히’ 정도의 기초 단어 외엔 까막눈이었다. 충동적으로 결심한 독일행의 돌파구라곤 일전에 요한과 함께 왔던 경험을 되살려 하나씩 되짚어 보는 것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중부의 소도시 베츨라어에 당도한 수현은 요한과 함께 왔던 예의 그 집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여전했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여서 꼭 시간이 멈춘 곳 같았다. 그때처럼 세계와 단절된 곳인 양 느껴졌던 것이다. 다만 여전히 요한이 가득했다.
현관 앞의 화분 밑을 뒤적이자 무언가 만져졌다.
“있다.”
그는 흙이 묻은 맨손 위에 열쇠를 놓고 한 번 꽉 쥐었다.
안으로 들어간 수현은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사 온 독영 사전 한 권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블라인드를 확 걷어 냈다. 그러자 시가지 근처에 있는 집의 창가에서 일전에 요한이 연주했던 적이 있는 노천카페가 바로 보였다.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개점했는지 천막이 펄럭였다. 사전을 뒤져 몇 개의 단어를 찾아 손바닥에 쓴 수현은 밖으로 나갔다.
따사로운 햇살이 그의 전신에 와서 부드럽게 부딪쳤다. 노천카페로 들어가자, 수현을 알아본 모양인지 가게 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해 왔다. 무언가 투박하고 각진 독일어로 연신 이야기를 하는데 수현은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서 있자 그가 입을 동그랗게 모았다.
“John! Johann S!”
그것만이 딱 하나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라, 수현은 그저 웃었다.
4인용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 있자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음식이 나왔다. 샐러드와 소시지, 샌드위치, 그리고 미지근한 맥주였다. 비슷한 메뉴를 안쪽의 직원들도 먹고 있었다. 가게 직원끼리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자신의 것까지 챙겨 준 모양이었다.
그런 수현의 뒤로 노부부 한 쌍이 들어와 앉았다. 수현은 그들의 두런두런한 대화 소리를 들으며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꼭 ASMR 같았다. 생각을 정리하기 좋았다. 물론 그 정리할 생각이라는 건 늘, 모두, 요한이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권총 자살을 택했던 소설 속 베르테르처럼, 그는 정말 스스로를 죽이는 것으로 이 이야기의 끝을 낼 생각이었을까. 왠지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마 멀쩡히 살아 있으리라.
노천카페 안쪽에 일전에 요한이 쳤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수현은 카운터로 가 가게 주인을 향해 손바닥에 쓴 단어들을 보여 주었다. 아까 전 수현은 딱 세 개의 단어를 찾아 적었다.
I, playing, piano. 어쨌든 의미만 통하면 되니까.
꼬부라진 글씨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주인은 흔쾌히 끄덕였다. 이윽고 피아노 앞에 앉은 수현은 자신을 뺀 유일한 손님인 노부부를 힐끗 봤다. 머리가 희끗한 그들은 수현의 연주를 지켜볼 셈인지 이쪽 방향을 향해 제대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꽤 사이가 좋아 보였다. 저렇게 살다가 늙어 죽는 것. 그건 사실 별게 아닌데, 삶의 어떤 평범함도 요한에겐 허락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그런 자신이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현의 생각에 여전히 요한은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자신은 주도적으로 그를 주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요한이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 먼저였다. 조물주가 요한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은 게 아닌가.
“베르테르라…….”
브람스 「피아노 4중주」는 아직도 대충 흉내 정돈 낼 수 있었다. 물론 군데군데 틀리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어릴 때 자주 불렀던 동요를 기억하는 것과 비슷했다.
수현은 빛이 쏟아지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뚜껑 위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다. 천천히 들어 올리자 건반만은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손을 그 위에 내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주하는 내내 오른손을 계속 절었다. 계속 힘을 주고 있는 바람에 나중에는 손목까지 덜그럭거렸다. 녹슨 기계에서 날 법한 삐거덕대는 소리가 자신의 오른손에서도 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억나는 1악장의 부분들을 전부 연주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악보의 뒷부분이 기억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연주하던 그는 손을 떼어 냈다. 탕! 커다란 소리와 함께 그의 상체가 건반 위로 쓰러졌다. 청중을 자처해 준 주인과 직원들, 노부부는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그런 수현을 한참 지켜봤다.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힘이 다 빠진 수현은 천천히 일어나 무대에서 내려왔다. 여전히 그를 지켜보는 시선들에 걱정이 깃들었다. 그는 괜찮다고 해명하듯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는 정처 없이 걸었다.
네가 먼저 나를 발견했고 또 줄곧 쫓아오기 위해 애썼다는 걸, 나 때문에 제대로 사랑받고 살아 보고 싶어졌다는 걸 넌지시 알려 줬었다면. 지금의 널 만든 모든 기원이 나였다는 걸 처음부터 내게 말해 줬었다면. 우린 좀 더 일찍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적당히 평범한 연인이 되어 늙어 갈 수 있었을까.
대답해 봐, 내가 되고 싶었던 요한.
대체 왜 넌 날 좋아한다, 내가 필요하다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날 망치려 든 건지.
* * *
밤이 되자 커다란 집은 한없이 적막해졌다. 침대 위의 수현은 창을 투과하는 달빛을 응시하며 몸을 웅크렸다. 그러다가 자신의 손을 허공에 들고 달빛에 비췄다. 영 잠이 오질 않았다.
계속 뒤척이던 그는 책장에 꽂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꺼냈다. 자신의 것은 태워 버렸지만, 이렇게 요한이 선물한 집에 또 한 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독일어로 적혀 있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이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구구절절한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들 하루아침에 상황이 격변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아는 요한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심지어 떠나오기 전 그는 정말로 자신을 죽여 버릴 듯이 무섭게 굴었다. 당장은 몸을 낮출지 몰라도 언제라도 다시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자기밖에 모르고, 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에 대해 턱없이 무뎠다.
다만 수현은 혼란스러웠다. 여태까지는 그가 절대로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손톱만큼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자신이라면…….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기에, 솔직히 수현은 흔들렸다. 그리고 절대 그에게 또 속아 줘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흘러왔다. 정반대의 마음으로 시시각각 싸워 왔다. 요한을 받아 주고, 또 그런 자신을 메스꺼워하면서 말이다. 이젠 이 지겨운 끈을 끊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또 그를 연민하고…… 또……. 뫼비우스의 띠였다.
팔랑, 부드럽게 뒷장으로 넘어간 책에서 희미한 종이 냄새가 풍겼다.
그때였다.
예고 없이 현관문이 열렸다. 바깥의 어둠과 안쪽의 빛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누군가를 해일처럼 몰고 들어왔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밤손님이라도 맞이하는 게 아닌가 싶어 숨죽이고 있던 수현은 깜짝 놀랐다.
“요한?”
딸칵. 문을 닫고 들어온 그는 그대로 정지해 있는 수현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지치고 혈색 없는 그의 낯빛이 선연하게 보였다. 꼴이 만신창이였다. 지금 이 순간은 꼭 한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연실색한 수현은 뒷걸음질 쳤다. 본능적으로 그를 향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목을 감싸고 도망치자 요한의 커다란 손이 그런 수현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수현은 비명을 질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요한이 키스하는 바람에 튀어나오던 소리가 그의 입 속으로 꽂혔다.
“으……읍……!”
운신이 힘겨워진 수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공포 때문인지, 당혹스러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천천히 입술을 떼어 낸 요한이 수현의 온몸을 꽁꽁 결박하듯 꽉 끌어안았다. 수현은 양팔을 축 늘어뜨렸다.
“우린 끝났어.”
“알아. 하지만 난 아직도 네가 되고 싶어…….”
“…….”
“잘못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수현은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혀 왔다. 여긴 물속도 아니고, 우주의 한가운데도 아니니 숨을 쉬어 보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달래 봤지만 호흡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양 어떻게 숨 쉬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가까스로 숨을 토해 내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너무 늦었어.”
“내가 잘못했어.”
“요한, 이제 와서 이래도 소용없…….”
“잘못했어요…….”
“하…….”
신은 가엾고 어리석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천사를 내려보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자신은 하늘의 사절단인 천사도, 영화 속 히어로도 아니었다.
넌 왜 하필 나를 구원이라 착각해서. 이제 와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다고. 내 손은 더 이상 널 수렁에서 건져 내 줄 힘이 없는데…….
수현이 힘없이 요한을 밀어내자 그는 순순하게 밀려났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쳤을 때, 수현은 너무 놀라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도 전부 하얗게 잊었다.
“사랑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제발 믿어 줘요.”
“…….”
“한 번만 더 날 구해 줘. 제발…….”
요한은 서럽게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