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어! 선우건! 한연우!”
광장으로 들어가자 사관학교 출신 이능력자들이 동그랗게 모여있었다. 연우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지우고 선우건과 함께 동기들 무리에 합류했다.
“연지 누나는?”
“아까 나 엘리베이터 탈 때 뒤에 줄 서 있는 거 봤으니까 곧 오겠다.”
“엘리베이터 말고 에스컬레이터 타고 오지.”
“응? 어디 있었어?”
동기의 질문에 선우건이 당당하게 허리를 내밀었다. 이어지는 설명에 부러운 표정을 지은 동기들이 연우를 바라보았다.
“나도 기다렸다가 연우랑 같이 올걸.”
“역시 공간계…. 이럴 때마다 제일 부러워.”
“그나저나, 봤어?”
목소리를 잔뜩 낮춘 동기의 말에 연우는 덩달아 몸을 숙였다. 구석을 눈짓하는 동기의 시선을 따라가니 광장 한쪽에 조희서가 서 있었다.
“무영 길드 들어간다던 애가 여기 왜 있대?”
“그러니까. 졸업식 날 다시는 안 볼 거라며 으스댈 땐 언제고?”
“떨어졌나 보지. 무영 길드에 자리 맡아둔 것처럼 굴더니, 아무리 가이드라도 무영 길드 급이 있는데….”
에스퍼보다는 낮지만, 일반인보다는 높은 감각을 지닌 게 가이드였다. 자기를 두고 얘기를 한다는 걸 다 알 텐데도 꿋꿋하게 모른 척하고 있는 조희서를 보던 연우는 언제나처럼 심드렁하게 시선을 돌리려 했다.
뭔가 찝찝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이던 연우는 다가오는 선배를 발견하고 허리를 굽혔다.
“왔어? 다른 애들은?”
“아직 엘리베이터 앞이래요~”
“아, 거기. 다음부터는 옆문으로 가서,”
“계단으로 내려가서 에스컬레이터요?”
동기의 말에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표정에 선우건이 연우를 콕 집었다. 누가 공간계 아니랄까 봐 그런 것까지 알아냈냐며 칭찬하던 선배는 사관학교 동기들이 모두 모이자 안쪽을 손짓했다.
“조희서는… 뭐, 알아서 할거고. 가서 인사드리고 와.”
누구에게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신발을 내려보던 연우는 선우건의 뒤를 따랐다. 광장의 한 중간, 단상 아래 선 이상원이 서 있었다.
이상원을 발견한 연우는 반사적으로 오른쪽 허벅지를 내려보았다.
“왜 그래?”
순간적으로 솟아오른 살인 충동을 누른 연우는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조금 굳은 표정의 선우건과 걱정 어린 표정을 한 동기들이 연우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좀… 긴장돼서.”
“놀라라. 깜짝 놀랐잖아.”
아무렇게나 등을 두드리는 선우건의 사원증을 보던 연우는 한숨과 함께 웃음을 흘렸다. 처음으로 선우건이 질투 났다. 연우가 공격계였다면, A급이었다면 지금 당장 저 새끼의 멱을 따버렸을 텐데.
아니. 연우의 손을 더럽힐 이유가 없었다. 저 새끼 때문에 연화가 죽는다고 말만 흘려도 해치워주겠다는 길드…가 없겠군.
이상원은 죽기 직전까지 센터의 아이돌이었다. S급 에스퍼와 S급 가이드 사이에서 태어난 S급 에스퍼. 저 스스로 길드를 세워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지만,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제 발로 직접 센터로 들어온 에스퍼.
그 이미지를 철저히 유지해 센터의 하나뿐인 토벌대 대장을 몇 년이나 유지하고 있는 에스퍼가 이상원이었다.
그런 이상원이 연합팀의 대장이 되겠다고 대거리하다가, 부산물 좀 더 얻어보겠다고 뻗대다가 죽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연우의 말을 들어줄 텐데 다른 사람들에게 연화의 책을 보여줄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지금 죽일까? 그러면 나중에 던전에 들어가는 문제로 실랑이할 필요도 없고, 던전 내에서 팀의 붕괴도 막을 수 있다.
연우는 이상원을 바라보다 손의 힘을 풀었다. 연우가 아무리 빨리 공간을 접어 이동한다고 해도 공격할 때까지 얌전히 목을 내놓고 기다리고 있을 이상원이 아니었다. 그 전에 기척을 알아채고 되레 역공하겠지.
느리게 숨을 몰아쉰 연우는 입 안 여린 살을 깨물며 걸음을 옮겼다. 이상원이 서 있는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높은 등급, 멀어질수록 낮은 등급의 이능력자들이 모여 겹겹이 반원을 이루고 있었다.
“안…!”
원래의 계획은 이상원과 같은 구역인 A 구역에 배정받은 선우건이 먼저 인사를 하고 나머지들이 어영부영 인사를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연우의 앞에 성큼 다가온 이상원 때문에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오신 분들인가요?”
모두에게 하는 질문이었지만 이상원의 시선은 연우를 향해 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던 연우는 눈썹을 늘어트리며 순하게 웃었다. 만만하게 생긴 얼굴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웃고 있으면 제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그저 착하게만 봐주니까.
덕분에 속으로 이상원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
“아, 저희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나요?”
그 말에 연우가 속눈썹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어디서?
이상원은 청하 길드 산하의 아카데미 출신이었고 연우는 사관학교 출신이었다. 둘의 동선이 겹칠 곳은 어느 곳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던 연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제가 사관학교 견학을 갔었을 때 한연화 에스퍼와 잠깐 마주쳤거든요. 그때 한… 연우 에스퍼도 함께 있었죠?”
아.
능력이 좋은 동생을 두면 이럴 때 피곤했다.
한연우가 한연화의 오빠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내년이면 사관학교를 졸업할 한연화가 어느 소속에 몸을 담을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덕분에 연우를 찔러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옆구리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상원도 마찬가지겠지.
“아하하. 이것도 인연인데 다음에 한연화 에스퍼랑 같이 밥이나,”
“언제부터 센터가 도떼기시장이 되었지.”
연화가 왜 너랑 같이 밥을 먹어. 이를 갈던 연우는 묵직한 저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광장에 들어선 센터장이 무뚝뚝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던 이상원이 짙게 웃으며 연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같이 밥이나 먹어요?”
내가 미쳤다고.
연화는 이상원 때문에 자신이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담담히 앉아있을 거였고, 연우는 그런 연화를 보다가 숨이 넘어갔을 것이다.
“거기 누구지요? 자리로 안 돌아가나요?”
부센터장의 말에 연우가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조희서는 아니었다. 사원증을 쥐고 직원과 실랑이하는 조희서를 보던 연우는 C 구역으로 향했다. 주변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눈 연우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보았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낯익었다. 마치, 몇 년 전… 처음 입사할 때처럼….
“반갑습니다. 신입 에스퍼 여러분들. 대한 에스퍼 센터장, 정영환입니다.”
인사한 센터장이 단상에 서자 그 뒤로 토벌 대원들이 한 명씩 섰다. 다른 에스퍼들의 훈련복과는 달리 토벌대원의 훈련복에는 방패와 창이 교차한 문양이 붉은색 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경외심을 심어주기 위한 문양이라는 걸 알지만 연우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다 겉멋이지 뭐.
하지만 이상원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단상 아래에서 에스퍼들을 향해 서 있었다. 센터장보다 낮은 자리에서, 센터장보다 더 앞자리를 차지한 채.
“이상원 에스퍼.”
“네. 왜 그러시죠?”
태연한 이상원의 대답에 어깨를 누르고 있는 공기가 무거워졌다. 점점 심해지는 압박감에 인상을 찡그린 연우는 작게 숨을 흘렸다. 연우만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지 옆에 선 에스퍼도 떨리는 숨을 뱉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팽팽한 대립이 이어지고, 영원 같은 침묵을 깬 건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뭐야. 10시에 시작한다면서요.”
뚱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어깨를, 등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허벅지를 짚으며 몸을 일으킨 연우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에스퍼의 등을 도닥였다. 센터 꼴 잘 돌아간다. 권력이 뭐라고 센터장과 이상원 둘이서 자기들끼리 박고 치고 싸우느라 소속 에스퍼들 등이 다 터져나가고 있었다.
“…저게 뭐야?”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뒤를 돌아본 연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강차헌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풉, 하고 작게 웃자 앞줄의 사람들도 왜 그러냐며 고개를 빼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격식 있는 정장 사이에서 검은색 바탕에 형광 줄이 그어진 저지와 그와 세트로 보이는 반바지 차림의 차헌은 턱을 치켜든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오! 강차헌 에스퍼!”
부센터장의 말이 마이크를 타고 웅, 웅, 울려 퍼지자 노골적으로 비웃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황망하게 굳었다. 부름에도 여전히 삐딱하게 서 있던 차헌은 눈썹을 사납게 치켜올리며 옆에 서 있던 남자를 노려봤다.
“뭐냐고요. 10시에 시작한다면서요. 지금이 10시예요?”
아니. 9시다.
“아하하. 강차헌 에스퍼가 첫 출근날이라 떨려서 헷갈렸나 봅니다.”
“무슨 소리예요. 당신이 10시에 시작한다면서요.”
연우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강차헌을 응시했다.
뒷줄의 사람들 때문에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카락 아래로 서늘하게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다부진 눈썹뼈만 보였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니, 기억과는 조금 다른… 앳된 얼굴.
주변을 둘러보던 차헌은 제 저지를 내려보더니 탁탁 털어 주름을 정리하고는 허리를 숙였다.
“강차헌입니다.”
“아니, 강차헌 선수가, 아니, 아니, 강차헌 에스퍼가 그럴 필요는 없어요.”
허둥거리며 손사래 친 남자는 차헌을 단상으로 이끌었다. 허둥지둥 단상에서 내려온 부센터장이 친히 차헌을 안내했다. 단상에 올라간 차헌이 센터장의 곁에 서자 어디선가 플래시가 펑! 터졌다.
보아하니 강차헌이 일부러 늦은 건 아닌 것 같았고, 센터에 새로운 S급이 입사했다는 걸 조금 더 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센터장이 의도한 것으로 보였다. 하긴. 저 늙은 너구리 성격이 어디 갔겠어.
그나저나… 이상하기도 하지.
분명 오늘 연우도, 강차헌도 처음 입사한 날이다. 이때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게 분명한데, 차헌에게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불분명한 기분이 불쾌해 애써 무시해보려 했지만, 강차헌의 존재감은 뚜렷하기만 했다. 정장을 입은 무채색의 사람들 속에 홀로 형광빛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안 그래도 눈에 튀는데 곁에 선 공격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기도 했고, 얼굴은 시선을 끌어모으고도 남았다.
어디서 봤지….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생각나는 거라곤 연화의 잠꼬대 같은 중얼거림뿐이었다.
“생각하지 마, 전부 개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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