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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의 주인공이 공이 된 이유-44화 (44/143)

44화

게이트를 활성화하고 던전을 공략하는 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서지만, 그게 우선은 아니었다. 던전 부산물과 마수를 처리하고 난 뒤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위해 토벌대가 꾸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단순한 마나 증가 아이템부터 각종 무기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던전 공략권을 두고 각성자들끼리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수많은 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라는 암묵적인 룰이 생겼지만, 그 덕분에 연화가 얼마나 들들 볶였는지 모른다. 게이트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그 어린애를 얼마나 쥐잡듯이 잡던지.

연화의 능력으로 부모님은 돈을 많이 벌었겠지만, 연화가 얻은 건 인간 불신과 트라우마뿐이었다.

아무튼, 연우가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된 게이트에서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비싼 값으로 거래되는 리아브 마수가 떼로 나타난 것도 모자라 변환형 무기까지 발견되었다. 토벌대의 대장, 이상원은 당연히 자신이 주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상원을 견제하는 센터장이 허락해줄 리가 없었다.

센터에 귀속된 무기니,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며 사격 시험의 보상으로 무기를 내놓았다. 센터장의 계략에도 이상원은 사격 시험에서 우승하며 무기의 주인이 되었다.

사격 시험에서 우승해서 무기를 가로채는 게 연우의 계획이었는데…

“음.”

“아, 형 보지 말라니까요!”

차헌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연우는 애써 한숨을 참았다. 과녁판 앞에 설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해하던 차헌은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당황한 표정으로 연우를 돌아봤다. 도와달라는 표정을 본 연우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부터 차헌은 보지 말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총을 쥐어본 적 없다면서도 위풍당당하게 설 때부터 알아봤다. 총을 쥐는 자세부터 엉망이라 반동을 버틴 게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몇 번 더 방아쇠를 당겨보던 차헌은 헤드셋을 벗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차헌에게 다가가려는 연우의 어깨를 붙잡는 손이 있었다.

“연우야. 웬일이야?”

“선우건 에스퍼.”

연우의 반응에 반갑다고 인사하던 선우건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 동기한테 에스퍼라고 불리니까 진짜 기분 이상해.”

에스퍼 증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이야. 어깨를 움츠리며 호들갑을 떨던 선우건은 연우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런 선우건에게 몸을 기댄 연우는 작게 속삭였다.

“총 쏘는 법 좀 알려줄 수 있습니까?”

연우의 말에 선우건은 가까이 다가오는 강차헌을 흘끔거리다 표정을 굳혔다. 선우건의 반응을 살핀 연우는 작게 한숨을 흘렸다. 사관학교 시절 뒤처지는 아이가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챙겼던 게 선우건이었다. 그런 선우건이라도 A 구역에 속한 이상 차헌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기는 힘들다는 건가.

그렇다고 선우건을 포기할 순 없었다.

“나도 사정이 있어서….”

완곡한 거절에 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내가 다른 구역 에스퍼라서 그래?”

주변 사람에게 들으란 듯 목소리를 키우는 연우와 연우의 옆에 선 차헌을 번갈아 보던 선우건이 아아, 하며 눈을 찡긋거렸다.

“연우 너를 가르쳐 달라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연우에게 씩 웃어 보인 선우건은 안 그래도 신경 쓰였다며 중얼거렸다.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 개인 사격장을 요청하고 오겠다며 선우건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선우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차헌은 연우를 붙잡았다.

“아니, 형이 나 가르쳐 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왜 저 사람은 형을 가르쳐준다고 해요? 아니, 저 사람은 뭔데요?”

“제 사격 실력이 누구를 가르칠 만큼 좋진 않아서요. 그리고 총 쥔 사람 함부로 붙잡는 거 아닙니다.”

차헌의 손을 조심스럽게 밀어낸 연우는 총을 느릿느릿 분해했다. 대놓고 따라 하라는 모습에, 옆에 선 차헌이 어설프게 따라 하고 있자 헤드셋을 목에 걸친 선우건이 다가왔다.

“어, 음. 이건 이렇게 하는 더, 음.”

선우건이 차헌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기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연우는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사격 연습이라면 차헌의 훈련장에서 해도 충분했다.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선우건 때문이었다. 차헌에게 말했듯 연우는 사격 실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고, 선우건은 사관학교에서부터 사격이라면 알아주는 학생이었다. 거기에다 워낙 오지랖이 넓은 애라 차헌 옆에 데려다 놓기만 해도 이것저것 알려줄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우건은 주변 눈치를 보면서도 차헌에게 기본적인 사격 기술에 대해 열심히 알려주었다. 그러는 사이 연우가 차헌 쪽을 보며 가볍게 손짓했다.

“천천히 해요. 총 쏘는 건 처음이라면서요.”

너무 떠는 것 같아 진정시켜주려고 한 말이었는데, 차헌은 총을 조립하다 말고 작게 투덜거렸다.

“처음 아닌데요.”

“오~ 경험이 있으신가 보네요. 어쩐지 아까도 자세가,”

“아니, 잠시만요. 처음이 아니라고요?”

이때까지 일반인으로 자라온 애가 어디서 총을 쐈다는 거지? 연우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차헌은 달아오른 귀를 문지르며 빠르게 중얼거렸다.

“오락실이요.”

차헌의 대답을 듣자 선우건이 작은 탄식을 터트렸다.

“부럽다…. 어때요? 아, 다른 게 아니라 저는 한 번도 못 가봐서요. 재밌어요?”

선우건의 말처럼 사관학교 학생들은 오락실은 물론,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곳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사실 사관학교에 갇혀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했다. 협회의 인정을 받은 공식 에스퍼들도 아직 세상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갓 각성한 어린아이들이 흥분해서 이능이라도 사용한다면? 갖가지 추측과 제약 때문에 학생들의 외출 빈도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자유를 위해 여러 가지 유희 거리가 제공되었지만, 폭력성을 낮추기 위해 게임기는 접해볼 수도 없었다. 부럽다며 한숨을 쉬던 선우건은 연우에게 몸을 기댔다.

“에스퍼 증만 따면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더니, 이게 뭐야. 입사한 뒤로 내내 훈련만 하고 있잖아.”

선우건의 말에 기억을 더듬어보던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관학교 선생님들은 일단 이능에 익숙해지라고, 일단 센터든, 길드든 입사만 하면 자유가 보장된다고 장담했었다.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 일만 했었지.

뭐, 차헌이 센터장이 되면 좀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연우의 눈에 손짓하는 직원이 들어왔다.

“건아. 너 부르나 봐.”

연우가 부른 건 선우건인데, 눈이 동그래진 건 차헌이었다. 건아? 입을 뻐끔거리던 차헌은 직원을 향해 튀어가는 선우건을 바라봤다. 그런 차헌에게 손짓한 연우는 사격장 한쪽에 놓인 훈련장 탄창을 챙겼다.

“챙겼으면 여기에 사원증을,”

설명하며 사원증을 찍던 연우는 그제야 옆에 차헌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강차헌 에스퍼.”

연우의 호명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차헌은 풀이 죽은 얼굴로 다가왔다. 그런 차헌에게 연우는 다시 한번 설명하며 탄창을 챙겼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원증을 찍는 차헌의 모습에 연우는 사격장을 둘러보았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서 불편한가? 사격장에서 연습하기 싫어서 저러나?

“무슨 일 있어요?”

탄창을 챙기던 차헌이 눈만 움직여 연우를 바라봤다.

“아까 저 사람이랑은 무슨 사이예요?”

“누구, 아. 선우건 에스퍼요? 사관학교 동기예요. 사격 실력이 뛰어나니까 지켜보면서 따라만 해도 자세가 많이 좋아질 거예요.”

“아, 그냥 동기예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신나게 총을 조립하던 차헌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연우를 쳐다봤다.

“동기라면서 왜 애칭으로 불러요?”

“무슨?”

“건이라면서요.”

그 말에 연우는 차분히 눈을 감았다. 차헌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알겠다. 에스퍼라면 당연히 가이드와 짝을 맺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대체로 호흡이 잘 맞는 에스퍼와 사귀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우건이라니! 연우도 눈이 있는 에스퍼였다.

“이름이 건이예요. 성이 선우고.”

“내 얘기하고 있었어?”

다가온 선우건은 연우와 차헌을 번갈아 봤지만, 두 사람 다 대답이 없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선우건은 연우에게 사격장 좌표를 알려주었다. 선우건이 이동하자 연우는 차헌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는 A 구역으로 돌아가는 척했다가, 다시 저기로 갈 거예요.”

알았죠? 차헌에게 작전을 설명한 연우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공간을 접었다.

“좀 있다 올게요.”

빨리 오라며 손짓하는 차헌을 뒤로하고 연우는 이전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시차를 두어 사격장 안으로 들어갔다. 선우건은 그새 차헌의 자세를 잡아주며 이대로 쏴보라며 총을 쥐여주고 있었다. 과녁을 보자마자 집중하는 차헌을 내버려 둔 선우건은 연우에게 다가왔다.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만, 강차헌 에스퍼를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건 알고 있지?”

걱정 어린 충고에 고개를 끄덕인 연우는 차헌이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반동에 휘청이던 차헌은 깔끔한 자세로 총을 쏘고 있었다. 그런데도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차헌은 삐딱하게 서서 과녁을 노려보고 있었다.

“와. S급이다 이건가….”

작게 감탄하던 선우건은 연우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짜증 안 나?”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설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 물음에 연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부럽네. 나는 짜증 나는데. 작게 중얼거린 선우건은 손에 얼굴을 묻었다.

A급 공격계 에스퍼인 선우건은 사관학교에서 대접받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였다. 그런 대접을 받다가 입사해보니 자신의 상상과는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을 테고. 그런 현실에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다른 에스퍼들과 비교당해서 열등감도 들 테고.

연우도 당연히 짜증 나고, 열등감도 생겼다. 하지만, 이 정도 열등감이야 사관학교 때부터 지독하게 느껴왔던 감정이라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열등감을 느낀다고 갑자기 내가 B급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에스퍼들도 마찬가지라 열등감을 느낄 시간에 자신의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닌 사람도 있었다.

“팀원 교체해 주시면 안 돼요?”

조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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