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연우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친 차헌이 조심스럽게 컵을 쥐었다. 손끝에 닿는 열기에 깜짝 놀란 연우가 손끝을 움츠렸다. 그런 연우의 손등을 차헌이 조심스레 도닥이며 물었다.
“이 정도는 괜찮은 것 같아요?”
천천히 손마디를 펼쳐 컵을 감싸 쥔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드래곤과 이상원이 싸우는 모습을 봐서 그런가, 이 정도 열기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우는 코코아 위에 동동 떠다니던 마시멜로가 녹을 때까지 기다리다 후, 작게 한숨 쉬며 차헌에게 몸을 기댔다. 아무래도 마시지는 못하겠는데. 컵을 내려보며 고민하는 동안 차헌이 손을 내려 연우의 허리를 껴안았다.
“형, 있잖아요.”
“응?”
“여기 와서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지. 센터에서 토벌대가 출발하자마자 그들의 뒤를 쫓아 던전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이상원의 끝을 봤지. 토벌대원들이 이상원의 실종을 알리기 전까지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연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하며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아니…. 형 마나가 너무 잘 느껴져서요.”
뭔가 불투명한 막이 있다가 그게 사라진 기분이라며 속삭이는데, 연우가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피어싱이 있는 자리에 차헌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화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아파요?”
“응. 잘 때도 왼쪽으로만 자.”
얼마 전에는 머리를 감다 비명을 지른 적도 있었다. 연우의 대답에 차헌이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넘기며 상처를 살폈다. 귓바퀴를 타고 차헌의 손이 지나갈 때마다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몸을 움츠린 채 버티고 있던 연우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차헌의 손을 밀어냈다.
“간지러우니까 그만하고, 밤마다 연고 바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간지럽기만 해요?”
“응.”
고개를 끄덕인 연우는 보고서를 써야 할 시간이라며 몸을 일으켰다.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차헌과 다르게 연우는 태연한 얼굴로 카시노 옥잠 줄기를 전송하고, 위험 구역의 생태 환경을 보고하고 있었다. 차헌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코코아를 단숨에 삼켜버리고 식탁을 정리했다.
“놔둬, 내가 할 건데.”
“됐어요. 형은 보고서나 마저 써요.”
“그럼 다하고 앞에 둘러볼래?”
말이 좀 퉁명하게 나간 것 같아 후회하던 차, 차헌은 연우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거지를 끝내고 찬장을 열어보니, 연우의 집과 마찬가지로 그릇들이 열과 행을 맞춰 진열되어있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정리했을 연우의 모습이 선했다. 작게 미소 지은 차헌이 물기를 닦은 수저를 연우의 방식으로 정리한 다음 그가 자신을 부르기를 기다렸다.
“다 했어?”
“네.”
연우는 벌떡 일어난 차헌과 함께 큐브를 벗어났다. 몇 발짝 걷기도 전에 호수가 보이자 연우는 초라한 모습으로 호수 위를 떠다니는 카시노 옥잠을 가리켰다.
“저기 보여?”
“저거 자라려면 며칠 걸리겠는데요.”
연우가 며칠에 강세를 주어 발음하는 차헌을 올려보다가 불현듯 물었다.
“그런데 너 여기에는 어떻게 온 거야?”
“이번 과제가 수상 식물 마수에 관한 거여서요. 혹시 몰라서 센터를 찔러봤는데 마음대로 하라 그래서 바로 왔죠.”
좀 정신없어 보이던데. 차헌의 설명에 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다 죽일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보니 오합지졸들로 센터를 끌어가느라 고생했던 책 속의 차헌이 떠올랐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지. 은혜도 모르고 차헌에게 까분다면 다시 던전에 집어넣을 생각으로, 부상이 가장 심한 토벌대원부터 하나씩 밖으로 내보냈었다.
토벌대원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오는데 이상원 혼자 나오지 않고 있으니 정신이 없을 만도 하겠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샐리맨더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상원의 모습이었다면 더더욱.
“좀 둘러봐도 돼요?”
영상 통화로 몇 번을 확인했으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차헌이 눈에 불을 켜고 위험 구역을 둘러보았다.
“그쪽 아니야.”
균열이 닫히기 직전이라 그런가, 던전 마나가 감지되지 않는지 차헌은 계속해서 위험 구역이 아닌 다른 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공격계는 이쪽으로 좀 둔한가? 연우는 밖으로 빠져나가는 차헌의 손을 붙잡고 안으로 끌어들였다.
서로의 손바닥이 마주 닿는 순간 연우는 조금 멍한 얼굴로 차헌을 올려보았다. 차헌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겠다. 그의 마나가 평소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파도처럼 넘실거렸다면 지금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듯했다.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방파제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에 정신을 차릴,
“형.”
깍지를 낀 차헌이 몸을 바짝 붙여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마른침을 삼키고 있던 차헌이 입을 열었다.
“뽀뽀해주세요.”
눈을 감은 차헌이 볼을 내밀었다. 얼른요. 연우는 발을 동동 구르는 차헌을 보다 살며시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입술이 볼에 닿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입술에서 퍼진 감각이 온몸을 덮치는 바람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연우는 허벅지를 짚고 어지러움을 버티다, 볼을 감싸 쥔 채 주저앉아있는 차헌을 내려보았다.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는 접촉이었는데도 오늘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숨을 헐떡거리던 연우는 허전한 손목을 내려보았다. 드래곤이 방파제 같은 존재였나? 연우는 해답을 찾기 위해 머릿속으로 드래곤을 찾았지만, 깊이 잠이 든 건지 드래곤에게서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던 연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곧 큐브가 닫힐 시간이었다. 이대로 밖에서 밤을 보낼 수는 없었다.
“차헌아.”
“…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자신과 달리 차헌은 아직도 멍한 얼굴이었다.
“들어가자.”
머뭇거리던 연우가 손을 뻗었다. 차헌이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놓자 연우가 공간을 접은 다음 어색한 얼굴로 손을 움칠거렸다. 한 번 자각하고 나니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차헌의 마나가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한 번만 더 해주면 안 돼요?”
연우의 손등을 엄지로 쓸던 차헌이 또다시 눈을 감고 볼을 내밀었다. 연우는 홀린 듯이 차헌에게 몸을 기울였다. 한 번만 더요. 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헌이 졸랐고, 연우는 기꺼이 입술을 내밀었다.
왠지 모르게 갈증이 났다. 마나 코어에 구멍이 난 것 같았다. 그 구멍을 막고 있는 무언가가 차헌의 마나를 더 내놓으라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연우는 조금씩 멀어지는 차헌을 붙잡고 쪽, 쪽, 소리가 나게 입술을 부딪치다 물었다.
“어디 가?”
“다 왔어요.”
침대에 걸터앉은 차헌이 얌전히 제 얼굴을 내어주었다. 연우는 차헌의 볼과 이마, 코, 얼굴 이곳저곳에 입을 맞추다 자신의 볼을 감싸는 손길에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살며시 눈을 뜨니 차헌이 여기라는 듯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도장을 찍듯 입술을 꾹, 누르자 입속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 무릎 안쪽이 떨릴 정도로 목덜미가 오싹거렸다.
비틀거리는 연우를 제 허벅지에 앉힌 차헌이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속삭였다. 차헌이 말할 때마다 그의 입술이 연우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입 좀 벌려주면 안 돼요?”
허락을 구하며 턱과 볼, 귀를 감싸는데 차헌이 손을 스칠 때마다 연우의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마주 닿은 입술로 쏟아지는 열기가 너무 뜨거워, 연우가 살금 입을 벌리자 차헌이 입을 벌리며 파고들었다.
혀도, 손도 성급하게 움직였다. 입 안을 훑는 혀 때문에 벌린 턱이 아려왔다. 하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억지로 숨을 쉬어보려던 연우는 결국 차헌의 어깨를 밀어냈다.
“형, 나 혀 좀 빨아주면 안 돼요?”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연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차헌이 몸을 붙여 혀를 밀어 넣었다. 열이 오른 혀를 머금는 동안 차헌의 손이 연우의 머리카락을, 등을, 어깨를 어쩔 줄 몰라 하며 쓸어내리다가 움켜쥐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흠칫거리던 연우가 침을 꼴깍 삼키자 차헌이 입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누가 등줄기를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오싹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혀로 그를 밀어내려 힘을 줘봤지만 그럴수록 맞붙은 혀가 거칠게 엉켰다.
몸서리친 연우가 고개를 물리니까 그제야 차헌이 조금 떨어졌다.
“왜요? 숨차요? 아파요?”
“아니, 잠시만,”
“아니면 조금만 더 해요.”
연우는 손을 뻗어 달려드는 차헌의 입을 막았다. 손바닥 아래로 차헌의 거친 숨이 쏟아졌다. 잠시 연우를 내려보던 차헌이 연우의 손목을 붙잡고 제 목뒤로 넘겨버렸다.
차헌은 그대로 몸을 돌려 연우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시트 위로 쏟아진 연우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준 차헌이 몸을 숙였다. 연우는 그런 차헌을 반대 손으로 막아낸 다음 고개를 돌려 그를 피했다. 차헌이 붉게 물든 목선을 내려보며 입맛을 다시다 아쉬운 듯 몸을 물리며 물었다.
“싫어요?”
“그건 아닌데….”
타액으로 흠뻑 젖은 입술을 말아 문 연우가 작게 속삭였다.
“…조금만 떨어지자.”
그 말에 차헌이 시선을 내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바짝 닿아 있었다. 저번부터 떨어지라고 하던데, 이런 게 불쾌한 건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는 사이 아래가 꾹, 닿았다 떨어졌다.
“흐….”
달뜬 숨소리와 함께 연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차헌 역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팔꿈치로 몸을 받친 차헌이 연우의 볼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싫은 건 아니죠?”
차헌이 고개를 끄덕이는 연우의 볼을 감싸 쥔 채 입을 맞췄다. 몸을 내린 차헌은 아래를 딱 맞붙인 뒤 고개를 비틀며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연우가 입술을 모아 혀를 빨 때마다 허리 아래부터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더 깊게 밀어 넣으면 힘겹다는 듯 혀끝을 세워 밀어내는데, 그때 느껴지는 작은 돌기의 감촉이 사람을 돌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요.”
차헌이 연우를 붙잡으며 허리를 감싸 안았다. 움칠거리는 연우의 허리를 매만지던 차헌이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순간이었다.
연우가 차헌의 양쪽 볼을 붙잡더니 있는 힘껏 팔을 뻗었다. 마지막까지 연우의 입술을 물고 늘어지던 차헌이 나 몰라라 손을 물리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요?”
연우는 한참을 숨을 고르다 차헌과 눈을 맞춘 채로 속삭였다.
“따라 해.”
“네? 네.”
“저는.”
“저는?”
“성인이.”
“…성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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