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진짜 안 해도 되겠어?”
“네. 귀찮게 뭐 하러 해요.”
임명식이 귀찮아서 안 한다는 센터장은 너밖에 없을 거다. 연우는 넥타이를 건네다 말고 걸려있는 정복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차헌이 공식적으로 센터장이 되는 날이었다.
경험이 적다는 게 걸렸지만, 전 센터장의 재판이 열리기 전부터 지금까지 센터를 이끌어 온 차헌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대는 무슨, 차헌이 센터장 자리를 맡지 않을까 봐 눈치를 보기 바빴다. 하루라도 빨리 임명식을 올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권할 정도였다.
차헌은 연우의 재심사 날이 정해지고, 그에게 센터에 입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센터장 자리를 받아들였다. 차헌이 결정을 미루는 동안 윤석현은 정신계 에스퍼를 끌고 우르르 몰려와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며 농성을 벌였다.
마침내 차헌이 센터장이 되었을 때, 수락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처리해야 할 일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센터 직원들 대부분이 재계약해 그를 도와주었지만, 정작 토벌대장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S급 에스퍼가 토벌대를 끌어 주는 게 제일 이상적인 그림이었지만, 차헌은 센터를 이끄는 데도 급급했고 윤석현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거절했다.
그렇다고 S급이 입사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공격대장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차헌이 제안했던 훈련 방식을 토벌대, 공격대뿐만 아니라 모든 구역의 에스퍼에게 적용했다. 등급이 다른 에스퍼들이 서로 타이밍을 맞춰 치고 빠지는 방식이었다.
모든 에스퍼가 새로운 훈련 방식에 적응하고 있는 지금, 센터는 벌어들이는 수입이 없었다. 재판 끝에 정영환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돈이 반환되긴 했지만, 다른 길드에 갚아야 할 돈도 남아있었고. 이 상황에서 임명식을 거행하는 건 사치였다. 그 돈으로 무기를 하나 더 사는 게 이득이라는 차헌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복을 바라보던 연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헌이 인정받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뒤에서의 태도는 어떨지 몰라도 임명식에서는 차헌을 높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게다가 온갖 길드에서 몰려와 서로 눈도장을 찍는 자리다 보니 안면을 튼 대형 길드 말고도 중소 길드와도 인사를 나눌 기회였다. 그로 인해 차헌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질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지.
연우는 한숨을 쉬다 말고 입술을 끌어올렸다. 차헌이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은 거다. 내가 속상한 거지, 차헌은 아니니까.
아니, 그래도.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파들거렸다. 저번에도 안 했다면서 이번에는 하면 좋잖아. 입술을 말아 문 연우는 정복을 입는 차헌을 지켜봤다. 이번 일로 차헌이 얻은 건 행사 때 입을 정복, 저거 한 개뿐이었다.
“왜요? 이상해요?”
연우는 머리를 올리는 게 나은지 내린 게 나은지 묻는 차헌을 멍하니 올려봤다.
“형?”
“…어, 아니. 괜찮아. 잘 어울려.”
심하게 잘 어울렸다. 어리게 보이기 싫다며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헤집어 보던 차헌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겼다. 그러자 훤칠한 이마가 드러나며 다부진 눈매가 돋보였다. 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와 남색 넥타이가 소름 끼치게 잘 어울렸다.
차헌은 무겁고 거추장스럽다며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어깨를 장식하는 견장과 그 뒤로 늘어진 망토는 무서울 정도로 그와 잘 어울렸다. 찬찬히 지켜보던 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목 끝까지 올린 넥타이 때문인지, 딱 맞는 정복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삐딱하던 자세도 달리 보였다.
단정하게 서 있는 차헌을 보고 있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예의 차린 차헌이 아니라 울먹이는 차헌이 보고 싶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헤집은 다음 넥타이를 잡아당겨 흐트러트리고 싶다는….
“형?”
“어!”
깜짝 놀란 연우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드래곤이 없어서 다행이다. 옆에 있었다면 머릿속이 아주 음탕하다며 키들거렸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니, 그냥. 멋있어서.”
“네?”
“옷 잘 어울려. 오늘 잘하고 와.”
“진짜 멋있어요? 제가요? 형한테?”
“응.”
고개를 끄덕이자 차헌이 눈을 끔벅거렸다. 얼이 빠진 차헌을 뒤로한 연우는 차헌이 방 여기저기에 널어놓은 넥타이를 정리했다. 이전 삶에서도 나이가 어려 무시당했다며 조금이라도 늙어 보이는 넥타이를 고르려 고심한 흔적이었다. 짙은 초록색 넥타이를 들어 올리던 연우는 갑자기 생긴 그늘에 옆을 쳐다봤다.
어느새 다가온 차헌이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는 손만 뻗어 연우의 손목을 붙잡았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목덜미와 귓바퀴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입고 다닐까 봐요.”
“응? 불편하다며.”
“뭐 어때요.”
형이 멋있다고 해주는데. 슬며시 몸을 붙여온 차헌은 정말 멋있냐고 물었다. 고장 난 녹음기처럼 정말 멋있다고 대답해주던 연우는 조심스레 몸을 기댔다.
“진짜 멋있어.”
그제야 고개를 든 차헌이 얼굴을 보여주었다. 청혼 아닌 청혼을 거절했을 때부터 차헌은 계속해서 애정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사귀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해놓고 서운한 티를 비추는 차헌을 어르고 달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고개를 기울인 연우가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췄다.
“여기도요.”
차헌이 요구하는 곳마다 입을 맞춰준 연우는 마지막으로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남긴 다음 몸을 일으켰다. 코알라처럼 매달려 떨어지지 않던 차헌이 연우의 목덜미에 고개를 비볐다.
“형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나는 외부인이잖아.”
“어차피 복귀할 거잖아요.”
재심사 신청을 넣자마자 심사 일정이 나왔다. 다음 주 수요일 재심사를 받게 될 것이고, 형식적인 면접을 통과한 다음 센터에 입사할 예정이었다.
“그래도.”
규칙은 따라야 한다는 말에 입을 삐죽인 차헌이 연우의 볼을 잡고 진하게 뽀뽀했다. 쪽! 이 아니라 뽑!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입을 맞춘 차헌이 반장갑을 챙겼다. 반장갑 속에 자리를 잡은 실리가 비밀이라는 듯 약하게 깜박였다.
“헬리는요? 오늘도 아침 산책하러 갔어요?”
“응.”
부쩍 자란 드래곤은 눈을 뜨자마자 던전으로 향했다. 집안에서는 보석뱀 크기를 유지하다, 아침이면 온몸이 뻐근하다며 던전에서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돌아오곤 했다.
“그럼 우리끼리 밥 먹으면 되겠네요.”
연우는 망토를 펄럭이며 식탁으로 향하는 차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공간을 접어 그의 앞에 섰다.
“뭐 갖고 싶은 건 없어? 우리끼리라도 작게 축하하자.”
갖고 싶은 거.
질문을 곱씹어 보던 차헌은 헐렁한 잠옷 아래 드러난 연우의 목선을 눈으로 훑었다. 욕망을 말하는 순간 연우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표정으로 평소처럼 행동하겠지.
그동안 수도 없이 거절당하는 바람에 내성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거절당하는 건 아프고 슬펐다. 차헌은 혀끝에 당신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고 고개를 기울였다. 식탁과 차헌 사이에 갇힌 연우는 입을 벌리며 각도를 맞춰 주었다.
파고드는 혀를 부드럽게 빨아 주는 감촉에 만족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걸로 만족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계속해서 욕심이 났다. 이 사람과 한 몸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올랐다.
차헌은 밀어내려는 혀를 깨물며 귓바퀴를 문질렀다. 그것만으로 바르르 떨던 그는 금세 가쁜 숨소리를 내며 안겨 왔다. 목선을 따라 손을 미끄러트린 차헌이 목덜미에 작은 원을 그렸다. 깜짝 놀란 연우는 그 자리에서 팔딱 뛰어오르다 깨문 혀가 아파 신음을 흘렸다.
“세게 깨물었어요? 어디 봐요.”
연우가 입을 벌려 혀를 보여주자 그 위를 살살 핥던 차헌은 입술을 옮겨 그의 귓바퀴를 물었다.
“으, 잠시, 차헌아, 나 간지, 흐, 간지러워.”
진짜 간지럽기만 하냐고 묻자, 연우는 대답도 못 하고 웃기만 했다. 그러다 혀끝을 세워 귓바퀴를 핥아 올리자 달뜬 숨소리 사이사이 신음을 흘렸다. 귀가 녹을 것 같은 소리에 입안 가득 고인 침을 삼킨 차헌은 식탁에 반쯤 누운 연우를 내려봤다. 손을 오목하게 모아 귀를 가린 연우는 온몸을 붉게 물들인 채 차헌을 노려보고 있었다.
와, 진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민하지.
홀랑 벗겨 놓고 어디가 제일 예민한지 샅샅이 훑어 내리고 싶었다. 웃음이 섞인 신음이 아니라 제대로 터져 나온 탄성을 듣고 싶었고, 쾌감으로 얼룩진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랬다간 바로 도망가겠지.
차헌은 한숨을 삼키며 연우를 짓누르듯 끌어안았다. 서로의 허벅지가 닿지 않도록 몸이 엇갈린 상태였다. 몸에 딱 맞게 제작된 정복 때문에 솟아오른 윤곽이 평소보다 뚜렷했다. 연우가 봤다면 어색하게 웃으며 슬그머니 도망치겠지.
그러니 여기까지만…. 해야 하는데.
입술을 할짝거리던 차헌은 팽팽하게 솟아오른 연우의 것을 힐끔거렸다. 만지면 안 되겠지. 참지 못하고 움켜쥐었다가 놀라 달아났을 적, 연우는 일주일 넘게 도망 다녔다. 건드리지 않겠다고 빌고 빈 다음에야 그 옆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차헌은 협회의 인정을 받은 어엿한 에스퍼였지만, 연우는 협회장이고 나발이고 어쩌라는 표정으로 각인을 거부했다. 각성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미숙한 마나 코어로 각인을 시도했다가 차헌이 다칠까 걱정된다는 이유였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자신을 걱정하는 반려자의 말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딱 두 달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새해가 지나기만 해 봐라.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형이 괜찮다고 하면 넣고 잘 생각도 있었다.
자신의 정액으로 뒤덮인 연우를 상상하던 차헌은 서둘러 그의 입술을 찾았다. 연우가 입술을 모아 혀를 빨아주는 동안, 목구멍까지 혀를 깊게 집어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던 차헌은 저도 모르게 연우의 허벅지에 부푼 성기를 문질렀다.
잘게 허리 짓 하다 말고 눈을 반짝 뜬 차헌은 눈만 움직여 연우의 눈치를 살폈다.
혼나겠지, 도망가겠지, 이대로 얼굴도 안 보여주겠지. 하는 예상과 달리 연우는 차헌과 눈을 맞췄다.
“형?”
차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보았다. 연우가 자신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프리컴이 질금질금 흘러나오는 귀두 쪽에.
“자, 잠시만요.”
연우가 손가락을 꿈질거리는 것만으로도 쌀 것 같았다. 무릎이 풀린 채 끙끙거리던 차헌은 연우의 손바닥에 성기를 길게 문질렀다.
“차헌아.”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이던 차헌은 뜨끔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손에 힘을 풀자 손자국이 남은 연우의 손목이 보였다. 이건 무조건 혼난다. 눈을 꾹 감은 채 질타를 기다리던 순간 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