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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의 주인공이 공이 된 이유(외전)-6화 (135/143)

6화

와 보면 안다더니….

사원증의 노란 표식을 보던 연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이능력자 중 차헌만이 노란 표식을 달고 있었다.

“너랑 나랑 한 팀이야?”

“네. 이럴 때 권력 좀 써야죠.”

연우는 뻔뻔한 얼굴로 웃는 차헌의 뒤로 모여 있는 이능력자들을 둘러보았다. 이제부터 능력에 따라 팀을 정할 거라고 하더니…. 차헌의 말대로 광장에 모인 이능력자들은 등급에 상관없이 한데 어우러져 몸을 풀고 있었다.

“몸으로 뛰는 센터장은 우리 센터장님뿐일 겁니다.”

뿌듯한 얼굴로 다가온 윤석현이 용품이 담긴 가방을 내밀었다. 가방 안을 확인하는 동안 윤석현의 뒤를 따라온 정신계 에스퍼들이 동경 어린 눈으로 차헌을 올려봤다. 던전을 토벌할 실력이 있음에도 정신계라는 이유로 문서 정리만 하던 에스퍼들 자신을 현장으로 이끌어 준 차헌에게 한없이 감사하고 있었다. 개중 몇몇은 차헌을 힐끔거리며 볼을 붉히는 사람도 있었다.

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연우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질투해?]

그런 것 같은데.

순순히 인정한 연우는 윤석현과 얘기를 나누는 차헌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머리를 괜히 다듬어줬나. 그냥 나간다는 차헌을 붙잡고 그래도 센터장인 애가 이렇게 다녀도 되겠냐며 깔끔하게 정리해준 사람은 자신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다 일어난 꼴 그대로 나가라고 할 걸 그랬다.

윤석현은 차헌에게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나중에 우리 애들이 들어가서 확인할 거니까, 오늘은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오세요.”

“그냥 같이 들어가서 보는 게 제일 정확하지 않아요?”

“음. 정신계도 훈련받고 있지만, 아직 자기 몸을 지킬 만큼은 아니라서. 그리고 눈으로 보는 거랑 기억을 읽는 거랑은 또 다르거든요. 일단 후발대랑 같이 현장 체험부터 해보려고요.”

차헌은 윤석현의 말을 곱씹어보다 연우의 팔찌를 쳐다봤다.

[오늘은 얌전히 있어야 하나 봐.]

“복귀 첫날이니까 하나하나 신경 쓰는 건 좀 어려울 것 같고. 그건 우리 말고 다른 팀이랑 해요.”

“뭐, 다음에 해도 되는 거니까. 오늘은 두 분 호흡만 맞춰보고 나오세요.”

윤석현이 내미는 자료를 받은 연우는 제일 먼저 게이트의 좌표를 확인했다. 빨리 차헌을 데리고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얌전히 출퇴근만 하는 줄 알았더니 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사람들 얼굴색이 저 모양이야.

“저기, 센터장님!”

출발하기 직전. 가이드가 다다다 달려왔다. 가이드를 쳐다보는 연우의 눈이 서늘했다.

“저 오늘 일정이 없는데, 함께 참여해도 될까요? 아, B급 가이드. 류선진입니다.”

미숙하지만 센터장님과 한 번이라도 더 경험을 쌓고 싶다는 말에 연우의 눈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참나, 자신이 용희랑 한마디만 얘기를 나눠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더니. 오늘 아침에도 뭐? 다른 가이드랑 눈도 마주치지 말라며 신신당부할 때는 언제고 자기는….

“한연우 에스퍼는 가이드 없어도 돼요?”

도지원의 물음에 연우는 보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두 분은 예전부터 가이드 없이 훈련받으셨다면서요.”

“그래도 오랜만에 복귀한 거잖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가이드랑 같이 가지 그래요?”

신기하단 얼굴로 차헌과 연우를 번갈아 보던 도지원이 연우의 어깨를 툭, 쳤다. 그 순간 쑥 뻗어 나온 차헌의 손이 연우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무슨 소리예요. 나랑 형, 아니, 한연우 에스퍼만 갈 거니까 일정 없으면 쉬어요. 마나 코어 혹사하지 말고.”

“네, 넵! 그럼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차헌은 빠릿빠릿하게 물러나는 가이드를 뒤로한 채 연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또 누가 끼어들까 급히 공간을 이동한 연우는 게이트 앞에 섰다. 두 사람이 토벌할 던전은 바닷가에 생긴 하급 게이트였다. 던전으로 들어간 연우는 차헌을 삐딱하게 올려봤다.

“왜…요?

형이 시키는 대로 티도 안 내고 자연스럽게 행동한 것 같은데? 연우는 당황한 차헌을 올려보다 미간에 힘을 풀었다. 따지고 보면 차헌이 잘못한 건 없다. 다른 사람이 너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좀 덜 잘생겨져 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까핳하하핳.]

연우는 모랫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드래곤을 무시하며 차헌을 붙잡았다.

“가이딩 필요해?”

“네? 아직은?”

“그럼 내가 필요한 거로 하자.”

팔을 벌린 연우는 차헌을 꼭 끌어안았다. 갑자기? 차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연우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설마 형 질투했어요?”

“응.”

“아, 형.”

해맑게 웃은 차헌은 연우의 볼을 감싸쥐며 입을 맞췄다. 가벼운 입맞춤은 연우가 발끝을 세우는 순간 깊어졌다.

열정적으로 혀를 섞는 둘을 지켜보던 드래곤은 어휴, 한숨을 쉬며 바닷가로 기어갔다.

드래곤은 파도 속에서 너울대는 미역을 바라보다 크기를 키우며 입을 벌렸다. 실컷 포식한 뒤 모래에 누워 젖은 몸을 말리던 드래곤이 획득한 마석을 확인했다. 하급 마수라 그런지 소득이 별로였다. 그냥 둘이서 오손도손 데이트하라 그러고 나는 고등급 던전으로 갈걸. 혀를 차며 들러붙은 미역을 떼어내던 드래곤은 뻐근한 옆구리를 꼬리로 문질렀다.

수영을 너무 오래 했나…?

연우에게 포션을 조를 셈으로 기어가던 드래곤은 아직도 격정적으로 혀를 얽는 두 사람을 보고 그대로 멈춰 섰다. 저러다 조만간 각인하겠는데. 드래곤은 던전을 산책하며 얌전히 기다렸으나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살림 차릴 거니!?]

깜짝 놀란 연우가 목을 지분대는 차헌을 밀어냈다. 입가의 타액을 정리하고 훈련복을 정리한 연우는 언제 열띤 숨을 흘렸냐는 듯 깔끔한 얼굴로 드래곤에게 달려갔다.

차헌은 연우에게 밀려난 자세 그대로 짧은 명상을 끝낸 뒤 반쯤 벗었던 훈련복을 정돈하며 연우의 옆에 섰다. 쏴- 하는 파도 소리와 시원한 바람을 즐기던 차헌이 연우의 손을 붙잡았다.

“협회장이 준 집 안 아까워요?”

“왜? 지금 집이 별로야?”

“아니, 그게 아니라요.”

연우에게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자신은 햇병아리 에스퍼에 이제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센터장이라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차헌의 청혼을 거절한 연우는 어디에서 살든 불편할 것 같다며 직접 터를 골라 집을 지었다. 그렇게 한때 위험구역으로 분류되었지만, 정화 작업이 끝났는데도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호수에 집을 짓고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아니면 용희랑 연화랑 같이 사는 게 불편해?”

“처제랑 따로 살면 형 분리 불안 올걸요.”

사실이었다. 아직도 연우의 1순위는 연화였으니까. 차헌은 상관없다며 연우의 손을 잡고 산책하듯 해변을 거닐었다. 이제 형도 합류했으니 하루빨리 센터를 안정시켜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말에 차헌의 어깨에 올라탄 드래곤이 배를 내밀었다.

“뭔데.”

[내가 얼마 전에 연우한테 네 번째 집을 선물했거든.]

네 번째? 인상을 쓴 차헌은 빵빵하게 솟아오른 드래곤의 배를 노려봤다. 사냥을 끝낸 드래곤은 마석만 뽑아먹고 나머지 부산물은 레어에 위치한 연우의 집에 쌓아두었다. 얼마나 꽉꽉 쌓아놨는지, 집 하나만 팔아도 센터 직원의 1년 연봉은 책임질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다 못 쓸 것 같던데.”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연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볼을 깨물고 떨어진 차헌이 눈꼬리를 세웠다.

“그런 말 하지 마요.”

무슨 말? 눈을 굴리던 연우는 죽는다는 단어를 되짚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한 연우가 차헌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었다. 잠시 미래 계획을 세워보던 둘이 다시 해변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스사- 스사- 하는 파도 소리에 차헌이 실리를 꺼내 들었다.

“악! 뭐야!”

자리에서 솟아오른 차헌이 연우를 끌어안았다. 모래 해변이 끝나는 곳, 여기저기 놓인 바위 사이로 갯강구들이 기어 다니는 게 보였다. 다시 보니 저건, 바…위가 아니었다. 자기들끼리 몸을 뭉친 갯강구였다. 연우도 순간 할 말을 잃을 만큼 수많은 양의 갯강구가 이쪽을 향해 더듬이를 흔들고 있었다.

[내가 먹을까?]

“먹기만 해!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차헌의 엄포에 드래곤이 시무룩한 얼굴로 연우의 손목에 감겼다. 진저리를 치던 차헌이 얼음벽을 만들었다. 주변의 갯강구를 모조리 얼려버린 차헌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연우에게 안겨들었다. 쩌-적하고 갈라진 얼음 틈 사이로 기어 나온 갯강구가 이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소리치는 차헌을 뒤로한 연우가 얼음 끝에 손을 대고 좌표를 잡았다. 얼어붙은 갯강구를 통째로 다른 던전으로 옮겨버린 순간 몸이 아래로 쑥, 빠졌다. 발목에 감긴 것을 걷어찬 뒤 둘러보자 모래 속에 문어 마수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연우는 문어가 몸을 숨긴 일대를 들어 바다로 이동했다. 모래가 흩어지며 모습이 드러난 문어에게 단검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얼음 덩굴이 몸에 휘감겼다. 얼음 덩굴이 연우를 건져 올릴 동안 실리를 대궁으로 변환시킨 차헌이 문어의 입을 노렸다. 여섯 개의 다리로 필사적으로 입을 숨긴 문어는 다리를 뻗어 먹물을 쏘았다.

재빠르게 피한 차헌이 활을 쏘는 동안 문어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온 다리에서 먹물을 쏟아냈다. 차헌을 데리고 먹물을 피하던 연우의 눈에 하늘을 향해 다리를 벌리는 문어가 보였다.

“차헌아. 위.”

어떻게 하라는 말 없이도 얼음을 펼쳐 장막을 만든 차헌은 비처럼 쏟아지는 먹물을 쳐다봤다. 독성은 없지만, 몸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 골치 아픈 부류였다.

“괜찮아요?”

“좀 묻긴 했는데 괜찮아. 너는?”

연우는 손끝에 묻은 먹물을 가리키고는 오히려 바닷물이 눈에 들어가서 눈이 따갑다며 깜박거렸다. 그 모습에 차헌이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쪽 눈만 깜박거리는 모습이 윙크하는 것 같아서 너무 귀여웠다.

“잠시만요. 물로 씻어내요.”

차헌이 물병을 꺼내 바닷물을 씻어주는 동안, 하늘을 향해 먹물을 뿜어내던 문어가 다리를 길게 늘였다.

“어딜.”

첫 번째 다리는 얼음 칼에 잘려 나갔지만, 두 번째 다리는 아니었다. 두 번째 다리가 먹물을 쏘려는 순간 공간을 접은 연우가 문어의 입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문어는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모아두고 있던 먹물을 발사했다.

[이게!]

몸을 키운 드래곤이 문어에게 기어가고, 차헌은 연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단검을 박아넣자마자 물러나기도 했고, 차헌이 얼음벽을 세워준 덕분에 먹물이 튄 곳은 없었다.

대신 바닷물이 들어간 눈이 몹시 따가웠다. 깜박거리던 연우는 무심코 눈가를 문질렀다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차헌을 붙잡았다. 손끝에 묻었던 먹물이 속눈썹에 엉겨 있었다.

“나 눈을 못 뜨겠어.”

[자-알한다, 잘해!]

꼬리로 연우의 등을 내려친 드래곤은 게이트 근처 샘물을 가리켰다. 연우도 연우였지만, 차헌도 여기저기 먹물이 묻은 상태였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희 둘은 씻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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