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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화 (1/317)

쿵, 쿵, 쿵, 쿵…….

가슴에서 마치 누군가가 북이라도 치는 듯이 심장 박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온은 방금까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와 기침을 삭이던 자신의 모습이 꿈처럼 느껴졌다. 대신 그는 지금 파티장 외곽의 작은 방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새까만 밤 이온은 저를 눕혀 놓은 채 조용히 내려다보는 남자를 마주했다.

그의 눈은 여느 때처럼 어두운 곳에서도 유리구슬처럼 예쁘게 반짝였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과는 달리 한껏 낮아진 남자의 저음을 들으면서 이온은 생각했다.

“……키스해도 될까?”

감미롭다고, 여전히.

한데 내용을 뒤늦게 알아들은 이온이 당황해 눈을 크게 떴다.

“……뭐?”

그렇게 멍청히 묻고 난 뒤에야 그가 입에 올렸던 단어를 곱씹었다.

키스?

이온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의 인생에서 거의 등장한 적 없는 단어였던 터라 잠시 그게 뭐지, 했던 것이었다.

마치 일깨우듯이 카밀루스가 그의 팔을 꾹 잡았고, 이온의 몸에 순간적으로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그 감각에 이온은 역시나 제 눈앞의 남자가, ‘그’ 카밀루스 클로델이 맞는구나 깨달았다.

〈넌 내 구원자야, 이온.〉

어릴 적, 자신을 신이라도 된다는 듯이 받들었던.

〈나의 기적.〉

비록 얼굴을 붉히며.

“읏!”

남몰래, 그러니까 어른들 몰래 입을 맞추긴 했어도.

이온이 제 입 안으로 매끄럽게 밀고 들어오는 그의 혀에 깜짝 놀라 버둥거리자 카밀루스가 작게 웃더니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속삭였다.

“쉬이, 괜찮아.”

“카밀루스……!”

“점막을 통해야 회복이 더 빠르니까, 응?”

정말 그것뿐이야?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카밀루스가 몸을 숙였다. 기익, 하고 침대가 기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온이 그에 불안해져 흠칫 문 쪽을 살피는데, 문이 열리는 대신 눈앞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그것을 보고 이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가 적용됩니다.]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 플레이어의 몸에 마나가 충만한 상태입니다. 기력이 개선되고 나쁜 상태 이상이 억제됩니다.]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이 50%…….]

확률이 계속 수정되는 중이었다.

[60%……]

[……]

[95% 감소합니다.]

‘95……퍼센트?’

이런 숫자는 처음이었다. 그 수에 놀라는 것도 잠시, 갱신이 완료되고 최종 수치가 계산되어 나왔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1.2%입니다.]

확실히 잔뜩 예민해져 있던 몸이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한순간에 체감이 될 정도였다.

내심 놀라워하면서도 그가 드디어 곁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이온은 왜인지 가슴 뻐근함과 눈가의 시큰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가 버려 놓고 그때와 똑같은 눈을 하고 돌아온 그가 원망스러운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되어서.

“이온.”

하여 그가 불러 오는 소리에 이온은 눈을 질끈 감으며 불평 어린 소리를 내뱉었다.

“왜 이제야 나타났어?”

“…….”

질문에 카밀루스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특유의 할 말이 잔뜩 담긴 것만 같은 눈빛, 언제나 제게 중요한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던 그 눈빛은 수년이 지났어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는 달라졌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서는 담담한 얼굴로 돌아온 것이었다.

“나랑 거래를 하자, 이온.”

갑자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거래’라는 정략적인 표현에 이온은 말문이 막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렸을 적 그들은, 어떠한 이해관계에도 얽히지 않고 서로를 대했다.

순수했던 그 시절이 이온은 방금 그 ‘거래’라는 단어 하나로 전부 사그라진 것만 같아 당혹스러웠다.

……대체 너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마음속으로 그런 질문을 한 순간 이온은 다시금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 그가 슬쩍 미간을 좁혔다가 물었다.

“무슨, 거래를?”

그러자 카밀루스가 이온을 지그시 내려다보면서 선언했다.

“나 대공 카밀루스 클로델은 크레이거 공작가의 영식인 이온 크레이거의 저주를 무슨 일이 있어도 풀어 준다.”

“…….”

“그리고 이온 크레이거는 카밀루스 클로델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절대적 지지를 약속한다.”

듣다가 이온은 눈썹을 들썩였다.

자신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는 걸까?

이온은 여전히 제 팔을 통해 들어오는 충만한 마나의 힘을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혹시 그라면 알지도 모른다.

그는…….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나이 : 24세

직업 : 대공, 대마법사

특이 사항 : 전 황제의 사생아. 마녀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누군가는 돌연변이라고 일컬을 만큼 강력한, 오브라이언 제국에 현존하는 이들 중 최고의 실력을 지닌 마법사이니까.

“맹세할게. 저주를 풀기 전까지 내가 널 목숨을 바쳐 지키겠어.”

침대에 엉켜 있는 이 상황에 맞지 않게 진지한 맹세의 말을 읊은 그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올려 이온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주 그리운 것을 덧그리듯이, 간지러운 손길로.

이내 그의 입에서 약간의 떨림을 품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 계약의 증명으로서 각인을 하지 않을래, 이온?”

그렇게 말하는 카밀루스의 손에서 작게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그에 시선을 돌린 이온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카밀루스의 손에 떠 있는 것은 마법진이었다.

그 순간 이온의 눈앞엔 선택지가 펼쳐졌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이 당신에게 마법의 계약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1. 예

2. 아니요

3.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본 선택은 플레이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예.’ 하는 대답을 읊으며 이온은 눈을 꾹 감았다.

그렇게 고대하던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과의 재회(3/3)]

[조건을 충족하여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의 저주를 풀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플레이어의 자연사·병사·돌연사 등 사망 확률이 현저히 낮아집니다.]

드디어.

* * *

8년 전.

[본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에서 살아남을 플레이어님의 즐거운 생활을 기원합니다.]

축 늘어진 이온의 눈앞에는 여전히 그러한 메시지가 부유해 있었다. 마치 그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비웃듯이 말이다.

시간 감각이 사라진 터라 온통 새까만 어둠에 갇힌 지 얼마나 됐는지조차 몰랐다. 당연하게도, 그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역시 모른다. 다만 무엇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이는 제 몸이 몹시 아프다는 것만은 인식했다.

그리고 저 ‘게임’이라는 단어…….

이온은 그게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 단어를 아주 기나긴 시간 빤히 보다가, 또 그 전에 보였던 문장들을 여러 번 곱씹다가 불현듯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마치 무언가를 집중해서 생각하다 보면 갑자기 영감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저 말인즉 이 세계가 무언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의미인 듯했다.

자신은 그 설계 안에 내던져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온은 작게 몸을 들썩였다. 순간적으로 안에서 기침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다친 걸까.

이온은 마치 관절 구석구석을 누군가가 예리한 바늘로 쑤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파, 아파, 아파…….

입 속으로 자꾸만 그 말이 맴돌고, 코끝이 조금씩 시큰해졌다.

어서 이 어둠을 빠져나가기 위해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고 싶었다. 그렇지만.

[상태 이상: 실어]

“……아, 아.”

신음 소리 외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체념한 이온은 문득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순간이었다. 아주아주 공포스러운 대상으로부터 말이다.

그리고…… 그는 ‘문’을 통과했었고, 그 뒤 온통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인 어떤 공간을 지나왔다.

형체도, 소리도 없는 문 너머의 세상. 그곳에서 온 세상을 울릴 것처럼 귓가를 어지럽히는 시계 소리를 들었다.

째깍, 째깍, 째깍…… 하는.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고, 이온이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앞에 의미 모를 메시지가 덩그러니 떠올라 있었다.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 시스템이 적용됨에 따라 처음 온 유저에게는 아래와 같은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상태 이상: 실어(失語). 언어를 말하지 못함.]

[상태 이상: 기억 상실. 이전의 기억이 없음.]

[※본 페널티는 특정한 조건을 달성할 시 해제됩니다.]

[본 오픈 월드를 이용하는 유저에게는 아래와 같은 기본 사항이 주어지니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태 이상: 적의. 불특정 다수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있음.]

[상태 이상: 호의. 불특정 다수의 도움을 받을 확률이 있음.]

[상태 이상: 금어(禁語). 특정 단어 및 문장을 말할 수 없음.]

[본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에서 살아남을 플레이어님의 즐거운 생활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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