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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화 (2/317)

그렇게 의문의 메시지들이 연달아 뜬 뒤 내내 이 상태였다. 이온은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끼며 연신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누가 꺼내 줘.

누구든 좋으니 나 좀 꺼내 줘.

손을 뻗어서 뭐든 잡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마치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사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프고, 쑤시고, 심지어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거기에 어둠과 함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은근한 추위.

[본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에서 살아남을 플레이어님의 즐거운 생활을 기원합니다.]

전혀 즐겁지 않은 상황.

아니, 오히려 공포가 짙게 몰려오는 탓에 이온의 눈에 마침내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

죽음.

이온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그 단어가 머리를 새까맣게 잠식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기이익…….

어디선가 낡은 경첩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게나마 희망을 발견한 이온이 눈동자를 굴려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했다. 그러자 여태껏 미처 발견 못 했던, 실금처럼 가는 빛이 조금씩 퍼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느다란 빛 사이로 아주 작은 인영이 보였다. 그것은 소녀의 그림자였다. 문틈으로 기웃기웃 작은 머리를 기울이던 소녀는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이온, 오라버니……?”

“…….”

이온.

낯선 이름이었지만 이온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저게 ‘나’의 이름이구나. 하지만 응, 하고 대답해 줄 수 없었다.

“흐으…….”

작은 흐느낌만 흘러나갔다.

[상태 이상: 실어]

입만 벙긋하려고 하면 이온의 앞에 그런 메시지가 도로 떴다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온은 대신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끙, 끙. 앓는 소리가 나왔다.

버르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소녀가 잠시 바깥의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이온에게 살며시 다가왔다. 오는 동안 작은 발은 까치발을 디뎠다.

가벼운 잠옷 치마의 끝단과 소녀의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그 와중에도 소녀는 바깥에 있는 존재를 의식하듯이 몇 번이나 문 쪽을 힐끗힐끗했다.

마침내 다가온 소녀의 얼굴이 보인 순간이었다.

[에밀리 리아나 크레이거

나이 : 7세

직업 : 무직

특이 사항 : 크레이거 공작가의 둘째 딸. 플레이어의 동생이다.]

마치 지침서 같은 내용이었다.

‘동생…….’

이온이 상황 파악을 위해 잠시 멈춰 있는 사이, 에밀리가 오빠를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쪼그려 앉아 팔을 당겨 주었다.

“많이 아파, 오빠?”

그러면서 소녀는 큰 눈에 눈물을 매달았다. 금세 그렁그렁해지는 눈을 보면서 이온은 그렇지 않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아, 아…….”

실어증으로 인해 말소리는 역시나 나가지 않았다.

한데 그때였다.

“에밀리.”

소녀가 눈치를 보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모든 것이 처음 접하는 상황, 그리고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도 이온은 그 저음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쿵, 쿵…… 마치 거대 괴물에게 제 심장을 짓밟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쿵, 쿵.

한 번 박동할 때마다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사이 문을 더욱 활짝 열고 그 가운데 선 사내가 엄한 어조로 다시 한번 소녀를 불렀다.

“에밀리, 여기서 무얼 하는 게냐? 이 체벌방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이 아비의 말을 어기다니.”

말하면서 에밀리의 아버지는 손에 쥔 짧은 지팡이를 꾹 쥐었다. 마치 곧 체벌이라도 내릴 것처럼.

그에 겁을 먹을 법했지만 소녀는 그에게 도도도 달려가 옷깃을 붙잡고 매달렸다.

“오라버니가 아픈 것 같아요, 아버지.”

“그럴 만하지, 네 오라비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게다.”

“하지만…….”

냉혹한 말에 에밀리가 여전히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제 오라버니인 이온을 돌아보았다. 이온은 그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힘이 없는 두 팔로 겨우 바닥을 짚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소녀의 아버지가 제 딸의 팔을 붙잡고 방 밖으로 끌어당기며 이온에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명했다.

“에밀리를 도로 방에 데려다 놓게.”

“예, 공작님.”

낯선 언어인데 이해가 되는 게 신기했다. 이온은 겨우 상체를 일으키며 소녀의 아버지, 아니 에밀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자신에게 오라버니라고 했으므로 아마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할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안이 어두운 반면 바깥에서 빛이 쏟아져 역광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그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드러났다.

[제멜 드루실라 크레이거

나이 : 36세

직업 : 공작

특이 사항 : 플레이어의 아버지이다.]

작은 자신의 몸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큰 사내였다. 그런 그가 비틀거리며 앉아 자신을 쳐다보는 이온을 눈 아래로 깔아 보며 입을 열었다.

“체벌방에 갇혀 있는 동안 반성은 좀 했더냐.”

반성. 어떤 반성을 말하는 걸까. 묻고 싶었지만 역시나 입만 뻐끔거릴 수 있을 뿐 아무런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것을 뭐라고 해석했는지 몰라도 이온의 아버지는 확 인상을 찌푸렸다.

“한심한 놈. 그렇게 가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감히 이 아비의 명을 거부하고 결국 그 사달을 만들어?”

“…….”

“왜 그랬느냐.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야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우습게도 그런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실 말이 나간다고 해도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온의 눈앞에 다시금 텍스트가 깜빡였다.

[상태 이상: 실어]

[상태 이상: 기억 상실]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그렇게 생각하며 억울한 마음에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엄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공작이 문득 양손으로 단단히 쥐고 있던 짧은 지팡이를 왼손에 옮겨 잡았다. 그러고는 빈손을 치켜들었다. 그것을 보면서도 이온은 다음에 제게 닥칠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짜악.

이내 날카로운 소리가 얼굴에서 나더니 앉아 있는데도 시야가 휘청거렸다.

“아…….”

이온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볼이 순식간에 화끈해져 와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제가 왜 맞았는지 영문을 몰라 다시금 아버지를 올려다보자 화난 목소리가 넘어왔다.

“네놈은 이 크레이거 공작 가문의 명예를 실추했다. 고작 그놈의 측은지심 때문에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놈이 감히 황실의 명을 거역해?”

다시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서 불이 일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이온은 멀뚱히 그를 보다가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덮었다. 눈가가 금세 뜨거워졌다.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야? 내 아버지 아닌가?

이유도 모르고 맞고 있자니 억울해서 금방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 순간 또다시 약 올리듯 메시지가 떴다.

[상태 이상: 적의]

“겨우 그런 쓸모없는 놈을 구하겠다고, 감히!”

내지르는 소리에 이온이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지만 다행히 추가적인 폭력은 없었다. 그러나 잔뜩 움츠러든 이온의 입에서는 겁이 잔뜩 든 신음이 흘러나갔다.

“으, 으…….”

그런 나약한 모습 때문인지 공작의 눈이 슥 가늘어졌다. 결국 쯧, 하고 혀를 찬 사내가 발을 돌렸다.

잘 닦인 구두가 방 밖으로 나갔고, 곧 못마땅해하는 음성으로 누군가에게 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 꺼내서 먹을 거나 내주든지 하거라.”

마치 이온을 집에서 키우는 못난 개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 말투였다.

곧이어 작게 예, 하는 대답이 들리고 조금 전의 아버지라는 작자보다 더 늙은 사내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부어오른 뺨을 감싼 채 거친 호흡과 함께 울음을 삼키는 이온의 양어깨를 붙들었다.

“가시지요, 도련님…….”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음성은 다정했다. 이온은 그의 옆으로 뜨는, 제 집안의 버틀러라는 설명을 읽으며 부축에 따라 비틀비틀 일어섰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힘’이라는 말 한마디로 눙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몸을 지탱하는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한데 이런 상황이 당혹스러운 것은 부축하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는지 옆에서 질문이 들려왔다.

“도련님, 몸이 많이 불편하십니까?”

“……으.”

그렇다는 대답 대신 역시나 흐느낌을 내보내니 할아버지의 낯빛이 검어졌다. 그렇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는 조심스러운 부축을 이어 갔다. 덕분에 이온은 방 밖으로 겨우 나갈 수 있었다.

밖은 낮이었던 모양이다. 복도는 커다란 전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눈이 부실 정도의 밝은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온은 눈을 깜빡거렸다. 눈앞에 안개라도 낀 듯 시야가 흐릿했다. 비단 눈물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그냥 몸의 기능이 한 단계씩 다 부족한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넘어질 뻔도 하면서 이온은 겨우겨우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제 방으로 들어간 뒤, 이미 차려져 있는 상을 앞에 두고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흐윽…….”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에 버틀러가 당황한 기색을 비쳤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갑자기 얻어맞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측은지심? 쓸모없는 놈?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이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 때문에 억울함만 더해져 이온은 짭조름한 눈물의 빵을 허겁지겁 뜯어 먹었다.

귀족의 예법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이온의 게걸스러운 모습에 그를 방에 데려온 할아버지는 놀란 듯했으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온은 덕분에 빠르게 배를 채우긴 했지만 곧 기분 나쁜 사실을 깨달았다.

배 속에 거지가 든 것을 보니 아버지란 작자가 가둬 놓고 굶긴 모양이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너무하잖아……?

한데 그런 푸념을 했을 무렵이었다. 너무 급하게 먹느라 배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무시해 왔는데, 순간 안에 들어간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온은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자.

“우욱……!”

“도련님!”

지켜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놀라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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