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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4)화 (4/317)

그러더니 자꾸 머리를 갸웃갸웃하면서 맑아 보이는 물빛 눈동자를 깜빡였다. 언뜻 도마뱀 같기도 한 그것을 보고 이온은 눈을 댕그랗게 떴다.

도마뱀처럼 비늘이 둘려 있었지만, 왠지 전체적으로 말랑말랑해 보이는 몸체나 동그란 머리 모양, 커다란 눈이 꼭 이 세상 생명체 같지 않게 귀여웠다.

‘넌 누구야?’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이온의 입에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답답함에 입술을 움찔거리자 앞에 다시 메시지가 떴다.

[상태 이상: 실어]

말하지 말라는 거다.

이온은 슬쩍 메시지창을 노려보고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부서진 쿠키 조각이 입가에 잔뜩 묻은 것이 보였다.

이온은 왠지 그 모습이 귀여워 웃다가 손을 뻗어 엄지로 닦아 주었다. 그 행동에 도마뱀인지 아닌지 모를 녀석이 살짝 놀란 듯 흠칫했다.

“꾸욱?”

마치 ‘뭐야?’ 하고 묻는 듯한 눈빛에 이온도 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시선을 내리자 책상 위에 과자 부스러기가 흐트러져 있는 모습과 함께 비어 있는 접시가 보였다.

설마 이 녀석이 쿠키를 직접 구웠을 리는 없고, 옆에 책도 펼쳐져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책을 보다가 사용인들이 치우겠거니 하면서 두고 간 모양이었다.

이온은 왠지 딱 봐도 사고뭉치처럼 생긴 통통한 도마뱀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자 흰 도마뱀은 다가오는 이온의 팔을 입을 살짝 벌린 채 지켜보다가 몸을 끄응 일으켰다.

‘두 발로 일어설 수도 있어?’

심지어는 짧은 팔다리를 움직여 아장아장 걸어서 이온의 팔을 타고 올라와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꾸?”

그 뒤 물빛 눈을 반짝거리는데 자세히 보니 눈동자가 보석처럼 여러 면으로 빛을 반사해 신비하게 빛났다.

도마뱀이라기에는 똥똥한 몸매하며, 이상한 머리 비율……. 눈까지 보니 확실히 평범한 파충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등 뒤에는 조그마한 날개까지 붙어 있다.

기분이 좋은지 살며시 파닥거리는 그것을 보면서 이온이 저도 모르게 녀석을 쓰다듬는데, 의외로 올라오는 감촉이 뱀의 살결처럼 징그럽지 않았다. 그냥 갓난아기처럼 피부 결이 보송했다.

그리고.

[화이트 드래곤과 조우하였습니다.]

[본 만남은 플레이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드래곤?

보이는 것보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져 이온이 신기함 반, 당황스러움 반에 휩싸인 사이 도마뱀, 아니 화이트 드래곤 너머로 그런 메시지가 떴다.

‘드래곤이 이렇게 위엄이 없어……?’

위엄이 없는 걸 넘어서 짧은 팔다리에, 꼬리를 포함해도 3.5등신은 될까 싶은 머리 크기, 말똥말똥한 눈을 보면 꼭 봉제 인형처럼 생겼는데…….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이미 다 안다는 양 예의 ‘드래곤’은 반짝반짝한 눈을 올리며 눈꺼풀을 깜빡였다.

“…….”

“꾸.”

“…….”

이온은 연신 갸웃갸웃하는 작은 생명체의 모습을 뚫어져라 보다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 어쩌다 이런 곳에 있느냐고 묻고 싶어 입을 열었지만.

“아, 으…….”

역시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드래곤이 안절부절못하며 날개를 파르르 떨더니 이온의 옷소매를 입으로 물고 잡아당겼다. 어디론가 이끌려는 녀석의 움직임에, 이온은 얼떨결에 따라서 발을 옮겼다.

금세 땀을 흘릴 것처럼 끄응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드래곤이 데려간 곳은 수많은 책들이 꽂힌 서가의 한가운데였다. 그러고는 과연 몸무게를 견뎌 낼 수 있을까 싶었던 작은 날개로 어디론가 포르르 날아갔다.

의아해하던 이온이 시선을 옮긴 곳엔 여러 권의 책이 있었고, 이내 그는 드래곤이 왜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어 왔는지 알아챘다.

오브라이언 건국 신화

오브라이언 제국 발전사

‘오브라이언 건국 신화’라는 책 옆에는 빈 공간이 보였다.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이 들어가면 꼭 알맞을 만큼의.

“꾸우우!”

‘여기에 넣어!’

자신만만해하는 드래곤의 물빛 눈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온은 제가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도와준 드래곤에게 신기함을 느꼈다.

‘시스템 도우미 같은 건가…….’

어쨌든 나쁜 것은 아니니 이온은 얼른 그곳에 책을 갖다 넣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희미하게 빛이 일렁이더니 디리링, 하는 명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조건을 충족하여 튜토리얼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상태 이상 ‘실어(失語)’의 효과를 해제합니다.]

이렇게 쉽게? 이래서야 페널티의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당황스러웠지만 이온은 곧장 입을 열었다. 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 제가 들고 있던 책의 제목을 읽었다.

“오브라이언 제국 100년 편년사…….”

정말로 말소리가 나왔다. 낯선 언어가 뇌 속에 깊이 박힌 듯 자연스럽게 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터라 이 부분은 그다지 위화감이 없었다.

다만 말을 하자마자 이온은 기침을 쏟아 냈다.

쿨럭, 쿨럭, 쿨럭.

가슴이 크게 흔들리면서 연신 벅찬 숨이 올라왔다. 이온은 예상치 못한 때에 제 몸을 뒤흔드는 기침에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을 살짝 비쳤다.

“헉, 헉…….”

순식간에 숨이 가빠져 저도 모르게 가슴을 두드렸다. 그동안에도 잔기침이 흘러나와 이온은 책장에 손을 대고서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목을 긁고 나오는 거친 소리는 쉽게 멎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려 보았으나 오히려 공기가 과하게 들어와 목구멍이 차게 식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꾸, 꾸.”

갑작스러운 사태에 이온의 몸이 비틀거릴 무렵이었다. 잠시 존재를 잊고 있던 드래곤이 작게 우는 소리에 눈물이 슬며시 올라온 눈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조그만 손이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몰라도 식은 찻물이 담긴 찻잔을 꼬옥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이온은 여전히 쿨럭, 하고 기침을 내뱉으면서도 놀란 눈으로 녀석을 보았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화이트 드래곤의 눈동자에는 걱정의 빛이 어려 있었다.

“……나 주는 거야?”

“꾸우웅.”

다시금 가슴을 들썩이면서도 이온은 웃으며 찻잔을 받아 들었다.

물을 마시자 긁힌 목구멍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거친 숨이 가라앉지 않아 쌕쌕 들이켜다 이온이 바닥에 잔을 내려놓으며 주저앉자 드래곤이 아장아장 걸어 가슴께까지 올라왔다.

“끄우웅.”

가슴에 찰싹 달라붙은 녀석이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뺨에 우물을 움푹 파며 입술 끝을 내렸다.

그 귀여운 모습에 이온은 사르르 미소를 띠며 녀석을 두 손으로 잡아 올렸다. 그러자 손에 걸쳐진 녀석이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아양을 부렸고, 이에 이온은 푹 웃고 말았다.

“너는, 이름이 뭐야?”

“꾸……?”

그러나 대답을 하지 못하는 드래곤이 금세 울망울망 커다란 눈에 눈물을 쌓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입가를 파르르 떠는 것을 보고 이온은 당황했다.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서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이름이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달래기 위해 얼른 되는대로 내뱉었다.

“이름 지어 줄까?”

“꾸우?”

그제야 녀석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시지창에 떴던 대로 도롱뇽이 아니라 드래곤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말은 못 하지만 알아듣기는 하는 것을 보니.

이온은 바짝 마른 입 안을 침을 삼켜 억지로 적시면서 입술을 벌렸다. 또 가볍게 기침이 나왔지만 아쿠아마린처럼 청량한 색인, 드래곤의 반짝이는 보석안을 들여다보면서 이온은 입을 열었다.

“욤뇽이는 어때……?”

사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대충 귀여워 보이는 단어를 뱉고 본 것이었다.

‘너무 성의 없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드래곤의 물빛 눈에 또 눈물이 순식간에 고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옅게 막을 씌우는 듯이 차오른 눈동자를 보자 이온은 목구멍을 간질이던 기침마저 멎는 느낌이었다. 대신 당황해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아 숨을 꾹 참았다.

‘마음에 안 드나 봐! 어떻게 해야 하지?’

이온은 얼른 드래곤을 더 가까이 끌어안아 주었다. 그러자 가슴에 아기처럼 꼬옥 달라붙어 온 녀석이 몸체를 들썩이고, 꼬리를 소심하게 말았다.

“꾸우우……우웅.”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아니, 이렇게 서러워할 정도로 작명이 구렸나 싶어서 이온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서 힘이 빠진 채로 우울해하고 있는데, 드래곤이 가슴께에서 얼굴을 마구 비볐다.

이온은 곧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녀석이 얼굴을 단순히 비빈 게 아니라 도리질을 했다는 걸.

하여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욤뇽이, 맘에 들어?”

그러자 머리 위에 돋은 약간 푸르스름한 작은 뿔이 흔들렸다. 머리를 끄덕끄덕한 거였다.

“우, 꾸우우웅, 꾸욱…….”

욤뇽이는 꾹꾹 억누른 울음소리를 연신 흘려보냈다.

왜 이리 서럽게 울지?

의아하긴 했지만 이온은 귀여우면 됐다 싶어 욤뇽이의 등 비늘을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나 손에 착착 감기는 부드러운 감촉에 반할 것만 같았다.

‘……너무 사랑스럽다.’

주인이 따로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키우고 싶은데…… 너무 위험하려나?

이온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다시금 제 눈앞에 여전히 떠 있는 문구를 건너다보았다.

[본 만남은 플레이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여운 게 심장 외에 해로울 리가 없잖아?’

이온은 가볍게 생각하며 욤뇽이를 데리고 일어났다. 보기보다 무게가 나가 감싸 안은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좋지 못한 컨디션 때문인지 다리도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겨우겨우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이온은 만 3일간 끊이지 않는 기침을 하며 앓아누웠다. 덕분에 확실히 깨달았다.

스스로가 너무나 깨지기 쉬운 유리 몸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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