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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5)화 (5/317)

* * *

침대에 누워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온갖 망상을 했던 덕에 이온은 상태창을 볼 방법을 알아냈다.

콜록, 콜록…….

며칠째 멈추지 않는 기침으로 목이 지독히도 아파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어깨가 푸르르 떨려 왔다.

내내 침대 안에 웅크리고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했다. 그에 이불을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며 이온은 허공에 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상태창 출력.”

이건 어제 우연히 알게 된 방법이었다.

[플레이어의 상태 목록을 로드합니다.]

[이온 제멜 크레이거

나이: 13세

직업: 무직

특이 사항: 크레이거 공작가의 첫째 아들. 플레이어 본인이다.]

[능력치

ATK(공격력): 0

MP(마나): 0

STR(근력): 1]

일단 스테이터스를 보면서는 이런 거지 같은 경우도 다 있구나 싶다. 모든 능력치가 0 또는 1이라니. 더 자세히 보고 싶지도 않다.

게다가 상태 이상 목록도 심상찮게 많이 출력이 됐다.

[상태 이상: 기억 상실. 이전의 기억이 없음. ※본 페널티는 특정한 조건을 달성할 시 해제됩니다.]

[상태 이상: 적의. 불특정 다수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있음.]

[상태 이상: 호의. 불특정 다수의 도움을 받을 확률이 있음.]

[상태 이상: 저주. □□가 당신에게 저주를 걸었습니다. ※□□의 사망 시 해제됩니다.]

[상태 이상: 능력 상실. □□의 저주에 의해 플레이어의 특정 능력이 봉인되었습니다.]

[상태 이상: 병약함. □□의 저주에 따라 기력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돌연사 또는 건강상 이유로 사망할 확률이 200% 상승합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21%입니다.]

제 스탯 및 상태 이상 목록을 훑던 이온은 목이 간질간질해지자 침대 옆에 있는 협탁 위를 더듬어 손수건을 찾았다. 그러고 자꾸만 기침이 나오는 입을 막았다.

쿨럭.

목을 확 긁는 느낌에 이온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 안에 침을 모아 넘겼다.

‘21퍼센트…….’

3일 전에는 30퍼센트가 넘었는데 좀 낮아진 것이었다. 하지만 21퍼센트도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온은 마음이 심란해졌다.

‘나한테 저주를 내렸다는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가 누군지 전혀 짐작도 안 간다. 이렇게 방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아내는 길은 더욱 요원해질 터였다.

찾아내긴 해야 할 텐데.

심지어 ‘□□의 사망 시 해제됩니다.’라니. 마치 저 사람을 죽이라는 듯한 멘트였다. 아마 짐작이 맞겠지. 하지만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물론 창을 보면 생사와 관련된 얘기들밖에 없으니 이 세계가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다만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각오를 하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런 약골인 몸으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네…….”

이온이 작게 입을 달싹였다. 그러자 잠시 잊고 있었던 존재인 욤뇽이가 이온의 가슴 위에서 고개를 들고 갸웃거렸다.

“꾸우?”

막 잠에서 깨어나 눈을 깜빡깜빡하는 귀염둥이를 향해 이온이 손을 뻗자 욤뇽이가 손안에 기어들어 왔다. 그렇게 녀석을 손에 넣은 채로 옆으로 돌아누워 눈앞까지 끌어당기자 욤뇽이의 예쁜 물빛에, 다이아몬드처럼 여러 각으로 빛이 나는 보석안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온은 그 모습을 여전히 신기해하는 눈으로 보며 속삭였다.

“배 안 고파?”

물음에 욤뇽이가 눈을 굴리며 이온의 방 문 쪽을 쳐다보았다.

“꾸.”

배가 고프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전혀 되지 못했지만 왜인지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에 이온 역시 움찔하며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집중하자 저벅, 저벅, 하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얼른 욤뇽이를 이불 안으로 쏙 숨긴 이온은 저도 그대로 누워 자는 척을 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가로질러 왔다.

“도련님, 공작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첫날 이온을 부축해 주었던 버틀러의 목소리였다.

“……큽.”

이온의 자는 척은 거기서 끝났다. 기침을 참으려다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는 흠칫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자 버틀러가 천천히 걸어와 침대 옆에 섰다. 어쩔 수 없이 살며시 눈을 뜨자마자 버틀러는 그의 작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방문 앞에 서 있는 공작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인 제멜 D. 크레이거 공작.

흐트러짐 없이 옷을 갖춰 입을 채 몸을 꼿꼿이 세운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마주하며 이온은 바짝 긴장했다.

또 무슨 일로 찾아온 걸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라 난처해하며 이온은 바닥에 내려섰다. 순간 이불이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욤뇽이가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이온은 아버지에겐 절대 들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비틀거리는 척 침대를 짚으며, 욤뇽이가 있는 자리가 티 나지 않게 이불을 끌어모았다. 그러고는 작게 기침 소리를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제멜이었다.

“듣자 하니 밥도 제대로 못 넘기고 있다고?”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연기는 아니었다. 정말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쭉쭉 빠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옆에 선 버틀러도 이온을 부축한 손을 떼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작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가 뚜벅뚜벅 걸어 다가왔다. 이온이 처음 이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처럼 눈 아래로 아들을 내려다본 그가 쯧, 하고 한 번 혀를 찼다.

그런 뒤 침대로 무언가를 툭 던졌다. 이온은 뭔지 모를 그것이 욤뇽이 쪽으로 던져지는 것을 보면서 흠칫했지만, 다행히 조금 볼록한 그 부분에서 움직임은 없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그래도 네놈 덕분에 드디어 그 사생아 놈이 순순해졌더구나. 네 멍청한 머리로 계획한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아버지의 말을 듣고 방금 전 침대 위에 던져진, 보석같이 생긴 작은 돌을 확인했다. 그것은 영롱한 푸른색의 보석이었다. 마치 욤뇽이의 보석안처럼 아름다운…….

그리 생각하다가 이온은 다시 아비를 올려다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공작이 다시 어처구니없어하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언지도 모르겠더냐.”

“보석…… 아닌가요?”

“평범한 보석이 아니야. 마나석이다.”

대답을 듣고 놀란 건 이온이 아니라 버틀러인 듯했다. 표정엔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붙잡혀 있는 이온은 분명히 느꼈다. 버틀러의 손이 움찔하는 것을.

플레이어를 위한 배려 따위 없이, 시스템이 아무 기억도 남겨 두지 않은 탓에 이온은 혼란스러웠지만 들려온 몇 마디와 이전의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 사실을 충분히 추론할 수 있었다.

‘사생아 놈’이라는 녀석과 자신이 어떤 ‘사건’으로 엮였고, 그것은 공작이 ‘한심하다.’라며 자신의 뺨을 때렸을 만큼 상당히 좋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

‘사생아 놈’은 그 일로 인해 자신이 입은 어떤 피해 때문에 순순해졌으며, 그 덕분에 저 ‘마나석’이 공작의 손에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마나석’은 누군가의 놀라움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물건이라는 것.

이온은 재빠르게 그러한 사실들을 추론해 내며 말을 골랐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지금은 약간의 도박수를 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무사, 한가요?”

‘그 애’라고 지칭하려다가 동년배가 아닐 가능성이 있으니 아예 주어를 빼 버리고 물었다.

그러고는 왜인지 자신을 부르고 있는 듯한 예의 마나석에 본능적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손끝이 닿는 순간 마나석에서 미약하게나마 파란빛이 흘러나오더니 봄처럼 따뜻한 기운이 몸 안으로 확 퍼졌다.

신비한 느낌에 이온이 놀라는 사이, 공작이 입가를 비틀었다.

“이온 크레이거, 나의 아들아. 알지 않느냐, 그놈은 괴물이야. 무궁무진한 힘이 있는 놈이지.”

“…….”

이온이 초록빛 눈동자를 올려 아버지를 똑바로 보았다. 그러자 이전과 달리 꽤 흡족해 보이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는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공작은 실제로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모양인지 마치 시를 읊조리듯이 여유로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런 놈을 순한 강아지로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이 크레이거 가문의 소공작이 아니겠느냐. 그렇지, 이온?”

그러면서 안색이 파리한 이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턱을 들어 올렸다. 이온은 그런 그의 눈에 비치는, 심상치 않은 광기에 저절로 몸이 굳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이 완벽한 기회임을 눈치채고는 기꺼이 입을 움직였다.

“아버지.”

마나석을 두 손으로 꼭 쥔 이온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까보다 호흡은 훨씬 편해졌지만 그래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힘겹게 숨을 넘기며 부르는 소리에 공작이 대꾸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더냐.”

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된 기침에 할퀴어진 탓에 잔뜩 부어오른 목으로 침을 한 번 삼키며, 눈을 내리깔았다.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가녀려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온은 잘 알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꺼풀이 떨리며, 긴 속눈썹이 파르르 흔들렸다.

“제가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곧, 콜록, 죽을지도…… 몰라요.”

지금 죽을 확률이 21퍼센트라는데.

그렇게 뒷말을 이으려는 순간이었다.

[상태 이상: 금어]

[플레이어가 말할 수 없는 문장입니다.]

[‘영원의 제국’ 시스템에 대한 접근은 플레이어에게만 허용됩니다.]

[플레이어는 ‘영원의 제국’ 시스템에 관한 것 및 시스템을 통해 얻은 정보는 말할 수 없습니다.]

‘……?’

나한테만 접근이 허용된다고?

그럼 이 창들 전부 나한테만 보인다는 거야?

당혹스러웠지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공작의 눈빛이 자신에게 꽂혀 있기 때문이었다.

이온은 서둘러 말을 바꿨다.

“아마도 5일 이내에요.”

다행히 이번 말은 제대로 나왔다. 돌려 말하는 것은 가능한 모양이다.

어쨌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죽을 확률 21퍼센트라고 했으니, 확률에 변동이 없는 한 앞으로 5일 이내에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다섯에 한 번의 확률이니까.

말하면서 중간에 거친 숨소리를 섞는 것도 잊지 않은 ―반은 자의고 반은 타의였다― 이온은 다시금 가슴을 들썩거리면서 격한 기침 소리를 쏟아 냈다.

그러고 투명한 눈물이 살짝 고인 눈으로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런 놈을 순한 강아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자신에게 그런 ‘가치’가 있다면 눈앞의 영악한 제 아비는 틀림없이 이마저도 이용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제가 너무 한심한 일을 했기 때문이에요. 진심으로, 쿨럭, 반성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하아, 하…….”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이온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숨이 찬 탓이었다. 그리고 그가 느낀 위기가 과장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었다.

옆에 있는 버틀러가 깜짝 놀라 이온을 불렀다.

“도련님……!”

재빨리 그의 입가에 손수건이 와 닿았다. 곧장 잇새로 흘러나온 피가 손수건을 적셨다.

이온은 그것을 보면서 움찔했다. 자신이 각혈을 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 몸 진짜 쓰레기구나…….’

그래도 이온은 하던 말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만나야 해요. 만나게 해 주세요.”

□□를 찾아 저주를 풀기 위해서.

그러려면 일단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과거를 찾아야 했다.

아마 그 시작은 누구의 사생아인지도 모를 그 녀석을 만나는 일부터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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