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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6)화 (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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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문을 열어 볼세라, 이온은 내내 입을 꾹 다물고 기침을 참으려 애썼다. 그러자 따뜻한 마나석을 안은 채 이온의 허벅지에 웅크리고 있던 욤뇽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내보였다.

“꾸…….”

“쉿, 조용.”

이온이 검지를 입술 앞에 갖다 대며 경고하니 욤뇽이가 몸을 더욱 동그랗게 말았다. 이온은 그런 녀석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눈높이에 맞춰 트여 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마차는 크레이거 공작가의 정문을 통과해 시내를 내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황궁이었다.

〈……이상한 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 게야?〉

그 사생아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들은 크레이거 공작의 얼굴에는 잠시 균열이 일었다. 그는 손수건에 묻은 이온의 새빨간 피를 보고 나서야 심각성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당혹감이 물씬 묻어나는 그 표정을 보면서 이온은 어이없어했다.

‘며칠 동안 누워만 있었는데 아프다는 것도 몰라? 바보 아냐?’

제 후계자가 귀하긴 했던지 공작은 당장 의원부터 불러오라고 소리쳤고, 이온은 다시 쓰러지다시피 침대 위에 누웠다.

그 뒤 마나석을 쥔 채 또 내내 앓았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약한 몸이었다.

그래도 마나석을 쥔 순간 느꼈던 따스한 기운이 영 허황한 것은 아니었던 듯, 기침이 조금 잦아들었다. 그럼에도 공작은 화를 냈다.

〈대체 왜 병이 낫질 않는다는 말이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온은 제 상태창을 확인했다. 나머지 상태 이상은 그대로였지만, 또 다른 것들이 추가됐다.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 플레이어의 몸에 마나가 충만한 상태입니다. 기력이 개선되고 나쁜 상태 이상이 억제됩니다.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이 30% 감소합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17.5%입니다.]

사망 확률 수치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아무래도 마나석의 영향인 듯했다.

이 따뜻한 기운이 그 사람의 마나인 거구나…….

몽롱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제멜 크레이거 공작은 여전히 펄펄 뛰었다.

〈카밀루스 그놈이, 날 속인 게 틀림없다. 그러게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이온. 그놈은 아주 영악한 여우라니까!〉

이온은 그때 들었던 이름을, 시시각각 바뀌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읊조렸다.

“카밀루스…….”

정확히는,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듣자 하니 클로델은 이온 크레이거가 살아가고 있는 이 오브라이언 제국의 세 번째 왕조를 연 자의 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왕조가 이어지고 있으니, 카밀루스의 정체는 바로 황제의 사생아였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황제의 핏줄인데 이놈 저놈 하다니…….’

제 아비의 말투만 봐도 얼마나 하찮은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알 만했다.

이온은 욤뇽이가 소중하다는 듯이 꼭 안고 있는 마나석에 손을 갖다 대 보았다. 역시나 따뜻한 기운이 곧장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자마자 다시금 상태 이상이 걸렸다.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

이온은 몸속을 휘도는 감미로운 느낌에 저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 마나석이라는 게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그 카밀루스라는 사람의 기운이라면…… 그렇다면 이런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는 없으나 이온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라진 기억 속엔 카밀루스도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가, 곧장 스스로 답을 찾았다.

아마도 그랬겠지. 아니, 틀림없을 거다.

아버지는 카밀루스와 관련하여 이온이 했던 어떤 행동이 아주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으나 아버지는 다른 사람 앞에선 그 일에 대해 일절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걸 캐묻자고 굳이 독대를 하고 싶지는 않았던 터라 ―몸이 안 좋으니 만사가 귀찮았다― 이온은 결국 지금까지도 자초지종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도 곧 카밀루스를 만날 테니 경위를 알게 될 터였다. 잠시 늦는다고 해서 초조해할 이유는 없었다.

잠시 뒤 마차가 멈추고, 밖에서 버틀러의 부름이 들려왔다.

“도련님, 이제 내리셔야 합니다.”

이온은 콜록, 하고 잔기침을 했다가 대답했다.

“알겠어.”

얼른 욤뇽이가 끌어안은 마나석을 가져오면서, 어느새 허벅지 위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던 녀석을 깨웠다. 순간 욤뇽이는 나라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온은 나가기 전에 살짝 무릎을 꿇어 작은 녀석을 의자 아래쪽에 숨겼다.

“금방 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려야 해…… 알았지?”

“꾸.”

작은 날개를 축 늘어뜨리면서도 같이 가고 싶다는 눈빛으로 욤뇽이가 물빛 눈을 글썽였다. 아직 손톱조차 날카롭기는커녕 뭉툭하니 귀엽기만 한 드래곤의 작은 손이 이온의 손가락을 살짝 쥐었다.

이온은 그 꼼지락거리는 손에 마음이 흔들릴 뻔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넌 너무 크잖아.”

“끄으응…….”

제법 단호한 이온의 거절에 욤뇽이는 또 눈꺼풀 아래로 눈물을 차곡차곡 쌓았다.

이온은 속으로 ‘미치겠네…….’ 하고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눈물이 무기인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면 비율상 뚱뚱해 보이는 것뿐이지, 크기 자체는 성인 남자의 손보다 좀 더 큰 정도라 어떻게든 숨기면 숨겨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어디다 감추나 싶어 이온이 난처함에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릴 때였다.

꼭 삐친 것처럼 몸을 둥글게 만 욤뇽이가 끄응, 끄응, 연신 앓는 소리를 내더니…….

“꾸으응!”

이온은 제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욤뇽이가 뿅, 하면서 작아진 것이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 크기로 말이다.

미니 사이즈가 된 욤뇽이가 손바닥 위에 폴짝 올라, 여전히 커다란 눈을 똘망똘망 빛내는 것을 보면서 이온은 가슴이 죄는 것을 느꼈다.

“아니, 욤뇽아…….”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 얼굴을 비비고 싶은데, 때마침 밖에서 재촉하는 소리에 그 마음을 애써 삼켰다.

“도련님?”

“지금 나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이온은 얼른 욤뇽이를 품 안에 쏙 넣었다. 그러고 접혀 있던 손수건을 활짝 펼쳐 일부러 늘어뜨리는 것으로 가슴 부근을 가렸다.

마차의 문을 열고 나가자 이미 저 앞에 서 있는 아버지인 크레이거 공작이 보였다. 이온은 침을 꿀꺽 삼킨 뒤 그 뒤를 따라갔다.

쫓아가며 문득 위를 올려다보자 거대한 마법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하늘을 떠받치란 형벌을 받는 아틀라스처럼, 마법진 바로 아래에는 그것을 이고 있는 듯이 보이는 탑이 하나 있었다. 고개를 젖혀 쳐다보아도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탑이었다.

‘황성에 저런 눈에 띄는 탑이라니…….’

그리고 그 주변으로 아주 옅게, 드리워진 투명한 막…….

저게 뭔가 했을 때였다.

[황성을 둘러싼 결계의 억지력으로 인해 마나의 흐름이 제한됩니다. 특정 시점이 지나면 저주 강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18%입니다.]

‘그럼 황성 전체에 결계가 쳐진 건가?’

결계의 영향 때문인지 사망 확률도 미세하게 올라갔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옆의 버틀러가 채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혹시 운신이 불편하십니까?”

그러면서 부축이 필요하냐고 묻는 듯이 팔을 내미는 것에 이온은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야.”

넋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낯선 곳에 온 만큼 빠른 상황 파악은 필수이니까.

그들이 가는 길 앞에는, 오브라이언 제국의 거대한 황궁이 버티고 있었다. 저 안에서 제국을 이끄는 42대 황제가 제 아비를 기다리는 중일 터였다.

황궁의 문 앞을 지키는 기사들을 보고 긴장한 이온은 숨을 꾹 참으며 급기야는 손수건을 구겨 잡았다. 옆에서 버틀러가 조금만 걸어도 비틀거리는 이온을 위해 지팡이를 건넸으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신 마나석을 움켜쥔 채 천천히 발을 떼려 했을 때였다. 대귀족의 품위를 나타내듯 꼿꼿한 자세로 황궁 문 앞까지 걸어가던 제멜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때마침 황궁에 나타난 달갑지 않은 존재 때문이었다. 그를 확인한 이온도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오랜만이십니다, 크레이거 공작.”

나직한 목소리, 가라앉은 눈동자.

얼굴에서 묻어나는 음울한 분위기를 한층 더 퇴폐적으로 만들어 주는 검은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보이는 생기 없는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이’였다.

이온은 제 또래가 분명한 그 사내아이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는 사이 방금 공작에게 인사를 건넨 상대가 눈을 돌려 이온에게로 시선을 향하자 움찔해 버렸다.

유리처럼 차가워 보이는 파란 눈동자에서 쏘아진 눈빛이 마치 예리한 화살촉처럼 이온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이온은 숨 쉬는 것마저 잊고 그 아이의 눈을 마주 보았다.

두근, 두근…….

심장이 크게 뛰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너무 긴장한 탓에 그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된 것인지.

이온은 손수건을 쥔 제 오른손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왼손으로 감쌌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치 사로잡힌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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