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루스, 클로델.’
그렇게 속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되새겼다.
이온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저 아이가 공작이 ‘사생아 놈’이라며 멸칭했던 그 카밀루스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떴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과 조우하였습니다.]
[본 만남은 플레이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
생각하자 그것을 읽은 것처럼 때마침 또 다른 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나이 : 16세
직업 : 자작, 대마법사
특이 사항 : 황제의 사생아. 마녀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마녀?’
이온은 그곳에 적힌 단어에 의문을 품었다.
황제와 마녀 사이의 아들이라니, 그야말로 괴이한 이력이었다. 그 와중에 16살밖에 안 되는 녀석이 직업은 심지어 ‘대마법사’란다.
그런 이상한 녀석이 이온을 본 순간 얼굴을 슬쩍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이온…….”
이름을 부르더니.
“어?”
돌연 눈물을 터뜨렸다.
이온이 눈을 크게 떴다. 카밀루스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는 듯했다.
갑자기 왜 우는 거야?
이온의 초록빛 눈에 그러한 의문이 떠오른 사이 카밀루스의 뒤로 새로운 창이 생성됐다.
[상태 이상: 호의]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이 플레이어에게 극도의 호의를 느낍니다.]
그냥 호의도 아니고 극도의 호의……?
이온은 시스템의 표현이 좀 어처구니없었지만, 처음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는 저 감정이 호의에 기반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온을 향한 카밀루스의 표정은 무미건조하게 다른 이를 바라볼 때와 달리 어떠한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른빛을 띠는 카밀루스의 눈은 물기가 어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리기보다는 따뜻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온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쥐고 있던 마나석을 카밀루스 쪽에 내밀어 보였다.
“그, 이것을, 저한테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조금 숨이 차 손수건으로 입을 바짝 가리며 호흡을 들이켰다. 순간 카밀루스가 손을 움찔했지만 이온은 보지 못했다.
“자작님의 마나가 담긴 귀한 물건이라고…… 쿨럭, 죄송, 자꾸 기침이 나와서…….”
이온이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자 당황한 얼굴이 된 카밀루스가 성큼 다가와 손을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이온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쥐고 있던 마나석이 떨어졌다.
타악! 탁.
그 소리와 함께 작게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렸다.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가 해제됩니다.]
그와 함께 이온은 급격히 현기증이 몰려옴을 느꼈다. 그에 눈을 꾹 감고 호흡을 고르자 동요를 감추지 못한 카밀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무리해서 말하지 않아도 돼…… 됩니다.”
작게 뒤에 소공작, 하고 붙이는 소리에 자신감이 없었다.
이온은 어쩐지 뻑뻑한 머리로 뒤늦게야 제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무턱대고 이름을 부를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카밀루스와 이온은 반말을 하던 사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말투를 고치는 것은 더 부자연스러울 터였다. 어떻게 해야 상황을 대충 눙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온이 고개를 숙이며 한 글자씩 천천히 내뱉었다.
“네, 죄송합…… 흡, 하아.”
얘기하다가 이온은 실눈을 뜨고 옆에 서 있는 크레이거 공작을 힐끗했다.
공작은 제 아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는 게 못마땅한지 입술을 일자로 완고하게 다문 채였다.
그에 이온은 더욱 연약한 척 연기하며 비틀거렸다. 그러자 예상대로 크레이거 공작이 이온을 카밀루스에게서 떼어 내더니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잡았던 손이 떨어지자 카밀루스는 당황한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공작…….”
“자작이 건넨 엉터리 마나석 때문에 제 아들의 병이 더 깊어진 듯한데,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이런 사기꾼.
질문을 들은 이온이 손수건을 지그시 쥐며 생각했다.
마나석 때문에 그나마 병세가 약해진 것을 본인도 지켜봤으면 알 텐데 굳이 카밀루스를 자극했다. 한데 이 허술한 공격에 카밀루스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마나석을 향하더니 이내 그것을 주워 올렸다.
“……이게 효과가 없었습니까?”
못내 분해하는 감정이 그의 말투에서 묻어났다.
“그렇더군요.”
단호한 공작의 대답에 카밀루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살며시 물기가 어린 그의 눈이 이온에게 향했을 때, 미안함이 가득 어려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뿐일까.
카밀루스의 눈에는 아주 많은 언어가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들이 비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미안함과 더불어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안함, 염려와 두려움 등…….
그래서인지 이온은 다시금 눈이 마주친 순간 눈길을 돌릴 수 없게 됐다.
‘왜 그러는 거야?’
하여 그런 물음을 눈에 띄웠을 때였다. 돌연 이온의 눈앞에 창이 내려왔다.
[튜토리얼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갑자기?’
튜토리얼은 이미 끝난 거 아니었나? 튜토리얼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기는 한데.
잠시 이온이 당황한 사이 글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본 오픈 월드 게임 ‘영원의 제국’은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합니다.]
[다만 모든 행동과 비(非)행동은 플레이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흘러가는 글자를 보는 순간 이온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행동’이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비행동’ 또한 영향을 미친다니.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의미잖아.’
이온은 쌕, 쌕 숨을 넘기다가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곧장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이온!”
그가 움찔하며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텍스트는 계속해서 흘러갔다.
[아이템 획득, 인물과의 만남, 지역 방문 등 수많은 분기점에서 적절한 행동 및 비행동을 통하여 생존 확률을 올리시길 바랍니다.]
설명이 끝난 뒤 마치 동아줄을 내리듯 선택지가 떴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을 조우하였습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시겠습니까?
1. 손을 잡고 마나 주입을 요청하며 다른 장소로 가자고 한다
2. 마나석을 주워 달라고 요청한다
3.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본 선택은 플레이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튜토리얼답게 1번 선택지 주변에 빛이 났다. 저것이 가장 생존 확률이 높은 행동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함정 카드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카밀루스는 ‘극도의 호의’를 품은 상대였으니까.
이온은 주저하지 않고 공작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지극한 현기증을 느끼며 머뭇거리고 있는 카밀루스 쪽으로 손을 뻗었다.
카밀루스는 그런 이온의 행동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손을 거부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기꺼이 손을 잡아 준 그가 다시금 이름을 불러 왔다.
“이온……?”
이온은 한 걸음 그의 쪽으로 옮겨 가며 휘청거렸다. 그러자 곧장 카밀루스가 제 몸으로 이온의 몸을 받쳐 왔다.
이상하게 위화감이 없는 안정을 느끼며, 이온이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자작님의 마나가 필요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잡은 손을 통해 따뜻한 기운이 밀려왔다. 마나석을 만졌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될 만큼 강대하면서도 많은 양이었다.
[상태 이상 : 충만한 마나]
카밀루스는 걱정으로 눈살을 조금 찌푸리며 대답했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줄 수 있어. 아니,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좀 더 차분하게,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질문에 크레이거 공작이 먼저 당혹감이 어린 소리를 냈다.
“이온, 그게 무슨……!”
하지만 한 문장이 채 끝나기 전에 카밀루스가 결심한 듯 눈을 들어 공작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온을 품에 더 꽉 끌어안더니 짧게 한마디 했다.
“데려가겠습니다.”
허락 따위 요구치 않는 통보였다.
그 순간 이온은 보았다. 술식을 손으로 그린 것도 아닌데 단순히 주문을 외우는 것만으로 그들의 발밑에 펼쳐진 마법진을.
그러고는 이내 카밀루스의 청량한 파란색 눈동자 색을 닮은 푸른빛이 가루처럼 흩날렸다.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눈이 부시도록 강렬한 빛을 일구자 이온은 그만 눈을 감았다. 그 와중에도 카밀루스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아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