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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9)화 (9/317)

이온이 카밀루스의 품에서 조금 빠져나와 그를 마주 보았다. 어째서인지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갇혔, 었다고……?”

이유는 아마, 눈앞의 소년이 너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학대잖아?’

이쪽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덜컹거리는 이야기인데 카밀루스는 이온과 눈이 마주치자 희미하게 미소까지 비쳤다.

“응. 이온, 네가 저기서 날 꺼내 주었어.”

“…….”

이온은 순간적으로 대꾸할 말을 잃었다.

카밀루스의 말은 그곳에 갇혔던 것이 아닌 이온이 꺼내 주었다는 데 방점이 있었다. 이온은 카밀루스가 놓치지 않고 꽉 잡은 손을 움찔했다.

그 기척을 알아채고 카밀루스가 살며시 시선을 내리더니 이내 이온의 손등을 제 다른 손으로 덮어 주었다. 그 맞잡음의 의미는 명확해 보였다.

나는 괜찮다고, 놀라지 말라고.

하지만 이온은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제 얼굴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있는 카밀루스를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내가, 널?”

“그래, 네가 나를.”

이건가.

〈네놈은 이 크레이거 공작 가문의 명예를 실추했다. 고작 그놈의 측은지심 때문에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놈이 감히 황실의 명을 거역해?〉

아버지가, 크레이거 공작이 말했던 것이.

〈겨우 그런 쓸모없는 놈을 구하겠다고, 감히!〉

황실의 입장에서야 사생아의 존재가 달갑지 않을 것은 지당한 일이지만, 단순히 그 정도로 눙칠 만한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이온의 뇌리에 카밀루스의 정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마녀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마녀의 아들.

그래, 애초에 취급이 좋았다면 굳이 사생아라는 설명 뒤에 그런 수식이 붙을 일도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갇혀 있었다니. 그것도 저렇게 아득해 보이는 곳에.

이온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라 좀처럼 동요를 감추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왜인지 모르게 가슴에 작은 바늘이 파고드는 것처럼 날카로운 아픔이 일어, 가슴을 내리누르던 손으로 옷깃을 움켜쥐게 되었다.

‘몸의 주인이 반응하는 건가?’

기억이 없는데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 이유로 그 외에는 따로 떠오르지 않았다.

두근, 두근.

손 아래에서 박동하는 심장의 소리가 귓가로 올라와 저를 두드려 댔다. 그에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삼키자 카밀루스가 눈썹을 살짝 실그러뜨리더니, 두 손으로 감싼 이온의 손을 끌어갔다.

“그런 표정 지으라고 말해 준 건 아니었어.”

“……그렇지만.”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잘은 몰라도, 그가 저리 말하는 걸 보면 분명 썩 좋지 못할 게 틀림없었다.

알량하게 동정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그런 것은 싫었기에 이온은 억지로라도 얼굴을 폈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그게 맞는다는 듯이 눈을 휘어 웃었다. 그의 바다처럼 깊은 파란색의 눈동자에 자상한 빛이 올라왔다.

카밀루스는 이내 제가 감쌌던 이온의 손등을 바깥으로 드러내더니, 제 입술을 살며시 내렸다. 그의 조용조용한 음성이, 그 음성의 떨림이 이온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넌 내 인생의 구원자야.”

짧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 그러니 기억이 없다고 해도 내가 널 원망할 일은 없어, 절대로…….”

말끝을 흐리며 카밀루스가 이온의 손등에 더 깊게 입술을 묻었다. 예상치 못한 진한 스킨십에 이온은 당혹스러웠지만 차마 손을 뺄 수가 없었다.

거부하면, 거부해 버리면…….

단정한 얼굴과 가지런한 눈꺼풀, 그 아래로 혹시 다시 눈물이 비치진 않을까 싶어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온은 마치 심장이 떨어지듯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심장을 움켜쥐고 쥐어짜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대로면 뭔지도 모를 것에 자꾸만 속이 긁힐 것 같아, 그는 제 안의 누군가에게 외쳤다.

‘그래, 잘 알았으니까 그만해.’

처음 본 순간 오버스럽다고 생각했던 예의 ‘극도의 호의’ 상태는 아무래도 몸의 주인인 이온 크레이거에게도 해당하는 듯싶었다.

쿵, 쿵.

제멋대로 빠르게 뛰어 버리는 심장 탓에 이온은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버렸다. 그렇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와중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비행동도 죽음에 영향을 미친다.’

무언가 대꾸해 주지 않으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리고 카밀루스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대답만 잘한다면 그는 절대적인 자신의 우군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온은 잡히지 않은 손으로 살며시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콜록, 작게 기침 소리를 내어 시간을 끈 그가 천천히 운을 뗐다.

말하는 동안에도 머리를 굴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말 하면 네가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입이 찢어져도 이온 본인이 아닌 빙의자임을 밝힐 수 없었다. 카밀루스의 호의가 적의로 바뀔 가능성도 상존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과한 건 그렇게 좋은 징후가 아니다. 이온 크레이거의 존재에 극도의 호의를 느끼고 있는데, 사실은 그 몸을 차지한 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면.

……저 다정한 바다 같은 새파란 눈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얼어붙겠지.

어서 원래의 이온 크레이거를 내놓으라고.

‘그렇지만 여기 있던 영혼이 어디 갔는지는 나도 모르는걸.’

빙의 직전 죽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래 봬도 저주에 걸려 하루 살아갈 길을 걱정해야 하는 몸이니까.

어쨌든 현재 그에게 중요한 건 원래 ‘이온 크레이거’의 행방이나 빙의의 경위 따위가 아니었다.

살아야 해.

살고 싶어.

이렇게 자신이 누군지 기억도 못 하는 상태로 하루하루 아프기만 하다가 어쩌다 죽을 확률에 걸려 그대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를 반드시 빠르게 찾아내야 하는 이유였다.

여러 생각을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리며 이온이 뒷말을 덧붙였다.

“네 말대로 나, 아무것도 기억이 없어.”

순순히 시인하자 역시나 카밀루스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그러면서 그가 손을 꽉 조여 오자 이온이 살짝 아, 하고 엄살을 부렸다. 카밀루스는 얼른 손에서 힘을 빼며 대답했다.

“……실망하지 않아.”

표정과 다른 말이었다.

아무리 봐도 서운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눈썹도 파르르 떨리는 게, 기억이 없다고 쐐기를 박아 준 것이 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온은 그의 반응을 보며 어떻게 달래 줄까 고민하다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이 손을 타고 들어오는 기운만으로도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알 것 같아.”

이건 진심이었다. 이온은 손을 잡아 달라고 한 이후로 한시도 저를 놓지 않은 그의 손에서 흘러들어 오는 기운에 깊은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나의 기운이라는 게 다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따뜻한 물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나른함마저 몰려오는……. 결코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포근한 감각이었다.

그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 이온이 살며시 눈꼬리를 휘어 어여쁜 눈웃음을 지었다.

“엄청 따뜻해, 네 마나.”

따뜻하다는 말이 제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던지, 그게 아니면 사르르 지어진 미소 때문인지 이온을 바라보던 카밀루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뿐인가. 귀 끝부터 서서히 붉게 물들더니 금세 뺨에 홍조가 올라왔다.

입술을 미세하게 떠는 듯도 보였던 카밀루스가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너한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왜 그런 말을 해? 원래는 좋은 사람이 아닌 거야? 나한테만 친절해질 거야?”

“……응, 너한테만.”

아까까지만 해도 16살 같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길래 의외다 싶었는데,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꽤 귀여웠다.

역시 애는 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카밀루스가 다시 이온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며 다짐하는 듯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첫마디부터 꽤 절박했다.

“내가, 내가 널 지킬 기회를 줘, 이온.”

이온은 어느새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양 하얗게 관절이 불거진 카밀루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이 녀석의 간절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온 크레이거가 그를 어떻게 구원해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업보를 쌓은 게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안 그래도 저주로 몸이 금방 부서질 것 같은데, 적도 많았다면 금세 골로 갔을 테니까.

“꼭, 후회하지 않게 내 모든 걸 바칠게. 꼭 그렇게 할게.”

게다가.

이온은 카밀루스를 마주 바라보려 눈을 들었다가 잠시 그 존재를 잊고 있었던 욤뇽이를 발견했다.

아까 분명 카밀루스에게 꼬리를 붙잡혀 흔들리며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것은 까맣게 잊었는지 카밀루스의 어깨에 앉아 그의 애원에 맞춰서 저도 두 손을 모아 꼭 쥐고는 보석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큰 두 눈에서 곧 눈물이라도 떨어질 듯이 울망울망한 것이.

‘너무 귀여워…….’

덕분에 카밀루스의 애원도 효과가 두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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